180화 필멸의 검 (3)
후웅!
가디언 나이브리카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녀석이 달려들며 압박을 함은 물론, 등 뒤에 뻗어 난 촉수들까지 쉴 새 없이 휘둘러지며 성현을 압박했다.
분명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낸 놈이었지만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도 없는 꼴이었다.
악마종의 힘을 흡수하며 함께 흡수된 그들의 능력.
콰드드득!
잠복해 있던 여러 갈래의 촉수가 땅밑에서 솟구쳐 오르며 성현을 공격했다.
성현이 발밑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해 내며 촉수를 모두 피하긴 했지만, 그사이 가까이 다가온 가디언의 검이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큭……!”
주르륵 미끄러진 성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옆구리를 꽤나 깊이 베여 많은 양의 피가 쏟아졌다.
‘역시 쉽지 않아. 단순히 몸뚱이만 강한 게 아니야.’
원래의 의지를 되찾은 가디언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위협적인 상대였다.
그러나 놈은 악마종의 수많은 생명력을 흡수하고, 인간의 지식까지 얻은 상태였다.
헌터를 상대로 어떻게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성현의 허점을 끝없이 파고들려 했다.
덕분에 성현은 놈을 상대로 매우 고전 중이었다.
함께 싸우고 있는 이즈나와 함께 2 대 1의 상황임에도 녀석의 촉수가 움직임을 방해하고 공격해 오는 탓에 수적 우위의 이점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군주, 웨어울프 로드 ‘로칸’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재생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츠츠츠츠츳!
잘려 나갔던 성현의 옆구리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다.
아주 잠깐 사이에 상처가 있었는지도 모를 만큼 깔끔해진 옆구리의 모습.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위험해. 놈의 검에 베이면서 독이 더 깊이 파고 들어갔어.’
옆구리는 아물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신체를 재생하는 데에는 무시 못 할 체력이 소모된다.
나이브리카가 뿜어냈던 지독한 독까지 파고들고 있었고, 이대로 시간만 지체하다간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아까부터 뭔가 이상해. 제대로 확인해야겠어.’
검을 고쳐 잡은 성현은 크게 발을 박찼다.
가디언의 정면을 향해 정직하게 나아가는 성현의 움직임.
하지만 정직하다기엔 가디언의 머리 바로 위에선 커다란 화염구가 떨어지고 있는 데다가, 반대편에서 이즈나가 달려들고 있었다.
성현은 이미 이즈나와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작전을 짰다.
직접 말할 필요도 없이 눈빛만 주고받으면 되었고, 상대가 이를 간파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협공은 이번에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카아아앙!
‘젠장!’
무위로 돌아간 둘의 협공.
뒤를 노리던 이즈나는 튕겨져 나갔고, 성현은 오히려 반격을 당해 목이 통째로 뜯겨져 나갈 뻔했다.
간신히 목을 틀어 비껴 나가게 했을 뿐.
녀석의 반격 패턴을 분석해서 새롭게 짜 맞춘 합이었는데, 완전히 움직임이 뒤바뀐 채 돌아왔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움직임.
녀석이 강하긴 하지만 단순히 강해서가 아니었다.
조금 전부터 모든 수를 훤히 읽고 있다는 듯 대처하는 녀석의 움직임.
성현은 거기에서 확실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건 마치…….’
“이제야 눈치챘나?”
가디언의 입가가 비틀어졌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성현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설마 남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거냐?”
“그래, 네놈이 어떤 식으로 머리를 굴려 본다고 한들 내 손바닥 안이라는 거다!”
쿠구구궁!
날아드는 수십여 개의 촉수가 쏟아졌다.
부서진 땅 사이로 성현은 공격을 피해 뒤로 훌쩍 물러섰다.
하지만 정확히 그가 피하려는 방향을 통해 또 다른 촉수 하나가 날아들고 있었고, 성현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강타당하고 말았다.
“컥……!”
또 한 대를 더 얻어맞고는 바닥을 나뒹군 성현.
통증과 함께 비릿한 피가 입가로 새어 나왔다.
‘젠장… 설마했는데. 생각을 읽는다니 이게 말이나 돼?’
마치 자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한 녀석의 움직임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네 번째 가디언 나이브리카만이 지닌 특수한 능력.
무려 상대의 생각을 꿰뚫어 읽어 낼 수 있는 능력이었고, 상대가 어떤 전략을 떠올리든 미리 수를 읽고서 대처가 가능했다.
이러한 능력은 일반적인 특성이나 능력이 아닌 권능의 영역이었다.
갈루스의 권능을 품은 채 만들어진 ‘가디언’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성현으로선 저항이 불가능했고, 공격이 통하지도 않았다.
모든 노림수를 한발 빠르게 간파당하는 이런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분명 지금 나이브리카가 취한 인간의 몸 자체는 원래 본모습으로 낼 수 있는 힘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힘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불안정한 원래의 모습과는 달리, 이 상태에선 권능에 깃든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인간에게 얻은 지식을 토대로 ‘헌터’를 상대로는 이쪽이 훨씬 효율적임을 계산을 마친 것이다.
“슬슬 한계가 온 모양이군. 그러게 그깟 텅 빈 껍데기 몇몇을 잡아냈다고 자만하면 안 되지. 겁도 없이 차원까지 넘어왔으니.”
“큭…….”
바닥을 짚은 성현이 신음을 내뱉었다.
원래 같았더라면 이 정도 고통으로 호들갑 떨 것도 없이 전투 중엔 곧바로 일어서야 했다.
하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벌써 독이 돌기 시작한 건가.’
군주들의 재생력 특성을 가져와 활성화했음에도 부러진 늑골들이 제대로 붙고 있지 못했다.
맹독에 오래 노출되어 절여진 탓에 재생력 특성으로도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 지체된 것이다.
그러자 나이브리카는 떠들 것도 없이 발을 박찬 뒤 단숨에 검을 뻗었고, 정확히 성현의 심장을 노렸다.
“자만하고 있는 건 네놈이겠지.”
푸욱!
성현에게 검이 닿기 직전, 가디언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 섰다.
뒤에서 나타난 칼날이 성현의 심장이 아닌, 오히려 가디언의 심장을 꿰뚫고서 몸을 관통하고 있었다.
이즈나의 검이었다.
“…계속 귀찮게 굴어 대는군.”
콰앙!
휘둘러진 가디언의 팔이 변형되며 그녀가 서 있던 후방을 완전히 초토화했다.
곧이어 뻗어진 수십여 갈래의 촉수가 이즈나를 노렸다.
하지만 이즈나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촉수들을 모두 따돌려 가며 피했다.
심지어 마법으로 견제까지 해 가며 가디언을 역으로 공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번번이 당할 때도 이즈나는 크게 당하지 않았어. 오히려 마법으로 몇 번의 공격까지 성공했지.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놀란 성현의 눈이 바삐 돌아갔다.
만약 가디언이 상대의 생각을 읽는다면 그녀의 공격도 간단히 피해 냈어야 했고, 저렇게 공격이 번번이 빗나갈 일도 없었다.
‘설마…….’
“주군!”
이즈나가 시간을 끌어 준 덕분에 재생력 특성으로 성현의 부상이 모두 회복된 순간.
텔레파시를 통한 이즈나의 생각이 성현에게 닿았다.
성현이 떠올린 짐작이 사실이라는 그녀의 전언이었다.
‘망자의 생각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라니.’
겉모습과 사고 능력까지 멀쩡하나, 성현의 그림자로 되살아난 이즈나는 엄연히 분류상 언데드에 속했다.
그리고 가디언 나이브리카가 머릿속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생명체에 한했다.
언데드는 기본적으로 어둠의 가장 깊은 영역에 선 이들이고, 빛의 신인 갈루스의 권능을 받은 가디언으로선 미처 영향력을 가할 수 없는 것이다.
방금까지 생각을 훤히 읽히고 있던 성현이 놈을 상대로 이렇게나마 오래 버틸 수 있던 것도 함께 싸우는 이즈나의 변수 덕분이었다.
군단의 군주 중 최상위의 레벨대와 전력을 지닌 그녀답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전력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성현은 단숨에 발을 박찼다.
녀석을 상대로 해야 할 게 명확해졌다.
카앙!
“이, 이놈들이……!”
바로 이즈나를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며 뒤를 받쳐 주는 것이었다.
생각을 훤히 읽혀 버리는 성현 자신의 지시 없이, 간파당하지 않는 이즈나가 앞에 나서고 성현은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뒤를 받쳐 주며 가디언을 공략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이번 싸움의 유일한 공략법이었다.
‘함께 싸울 때 내가 보조하는 쪽이 된 건 처음이지만… 그동안 많이 해 왔으니 충분히 가능해.’
이즈나는 수동적인 일반 소환수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성현의 지시 없이도 전혀 위화감 없이 가디언과의 싸움을 주도해 나갔고, 성현이 부재할 때 지하 던전에서 쌓아 올린 수많은 경험이 그 과정을 더욱 매끄럽게 만들어 주었다.
쩌엉!
검이 부딪히고 이즈나와 가디언의 얼굴이 코앞에서 마주했다.
“이제서야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가 뭔지 알아? 네가 피를 잔뜩 흘려줬기 때문이야.”
“…뭐라고?”
땅바닥 곳곳에 흥건히 뿌려진 가디언의 핏자국들.
이는 나이브리카가 대악마와 인간의 육신마저 흡수한 덕에, 이전의 가디언이라면 결코 흘리지 않았을 피를 흘린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피가 아닌 갈루스의 권능이 일부 깃들어 있는 가디언의 피였다.
그런 피가 온 사방에 흩뿌려져 있던 것이었고, 마력을 끌어올린 이즈나는 그 피를 단숨에 자신에게로 흡수했다.
프리아가 몰래 귀띔해 준 내용처럼 말이다.
츠츠츠츳!
“네놈 무슨 짓을……!”
가디언이 흘린 대량의 피를 모조리 흡수한 이즈나.
그런 그녀의 곁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너 같은 놈이 흘린 피라기에 불쾌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맛은 그럭저럭 괜찮네.”
콰드드드득!
근접했던 이즈나가 반대편 팔을 뻗은 순간.
바닥에서 솟구친 피의 가시들이 나이브리카를 관통하였다.
“크아아악!”
어지간한 상처 정도로는 꿈쩍도 안 하던 녀석이었지만 이번만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단순한 공격이 아닌 권능이 담긴 자신의 피로 이루어진 수십여 갈래의 가시.
거기에 온몸을 꿰뚫린 가디언이었고, 나이브리카는 급히 몸을 틀며 빠져나왔다.
“어디 계속해서 재생해 봐.”
콰드드득!
하지만 이즈나의 정교한 혈마법은 그를 향해 계속해서 쏟아졌다.
성현까지 녀석의 움직임을 방해하며 거들자 속수무책으로 이어지는 공격에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가디언의 피를 이용한 이즈나의 혈마법은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혈마법의 위력뿐 아니라, 피를 흡수함으로서 이즈나의 신체와 마력 모두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게 되었다.
덕분에 이즈나는 녀석에게서 단숨에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되었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혈마법들이 가디언의 방대한 생명력을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보통의 몬스터라면 벌써 수백, 수천 번은 넘게 죽었을 시점.
콰드득!
“크억!”
떨어져 내린 커다란 피의 창이 가디언의 복부를 관통하며 바닥에 내다 꽂았다.
단단히 박힌 창을 버둥거리며 빠져나온 가디언이었지만, 그로 인해 뜯겨져 나간 옆구리는 곧바로 재생이 되지 않고서 너덜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생명력을 모두 소진시킨 건가. 하지만…….”
성현은 곧장 녀석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달려들지 못했다.
갈루스의 권능을 안고서 태어난 가디언들은 불멸의 개념을 지니고 있었고, 필멸자인 성현이나 이즈나로서는 놈의 목숨을 끝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콰득!
단숨에 달려나간 이즈나가 비틀거리고 있던 가디언의 가슴팍 깊숙이 팔을 박아 넣었다.
“좀도둑, 이제 그만 내놓지 그래.”
“네… 네놈이!”
촤아아악!
이즈나는 나이브리카의 몸속에 있던 봉인석을 뽑아내었다.
한 손에 딱 들어올 정도의 크기로 줄어든 봉인석.
이즈나가 빼낸 봉인석을 성현에게로 힘껏 던졌다.
“주군!”
“알겠어!”
카아아앙!
날아드는 봉인석을 향해 성현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그림자를 머금은 검은 칼날이 봉인석을 반으로 갈랐고, 수많은 메시지가 성현의 앞을 가렸다.
[연계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대량의 경험치 및 스탯을 획득하였습니다!]
[두 번째 봉인석을 파괴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을 획득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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