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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77화 (177/202)

177화 차원의 틈 (5)

“키이이익!”

복도를 가득 메운 온갖 몬스터가 사납게 달려갔다.

매서운 기세로 우르르 몰려가는 놈들의 곁엔, 기척을 죽인 성현이 조용히 어둠 속을 걷고 있었다.

‘후, 살벌하네.’

맹렬한 몬스터들의 모습과는 달리, 얌전히 걸어가고 있는 성현의 표정은 한결 느긋했다.

그도 그럴 게 녀석들을 앞장세운 성현은 벌써 스무 개가 넘는 층을 돌파하며 최하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번 언덕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한 눈덩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듯, 감옥을 뒤집어 놓은 소란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다만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간수역을 하고 있는 악마종들이 많아졌고, 경계도 촘촘해졌다.

물론 악마종들의 숫자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었다.

감옥의 규모가 규모인 지라, 간수들이 늘어나는 만큼 갇혀있는 몬스터들의 수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의미한 한 가지 변수는 바로 습격을 당했다는 사실을 녀석들이 인지하고서 제대로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

악마종들은 이 심상치 않은 상황을 파악했고, 중간에 놓인 몇 개의 층은 과감히 포기하며 아래층에 전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애매하게 각개격파당하기보다는 확실히 필요한 장소를 지키겠다는 녀석들의 전략.

녀석들의 전략은 유효하게 먹혀 들어갔다.

두세 마리도 아니고 많은 수의 간수 무리가 작정하고 입구나 통로를 지키고 서있으면, 무작정 달려드는 몬스터 무리만으로는 뚫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물론 밑도 끝도 없이 밀어닥치면 어거지로 뚫을 순 있겠다만, 아무리 풀려난 몬스터들의 수가 많아도 무한대는 아니었다.

콰아아앙!

“또 가로막힌 건가?”

저 앞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폭음에 성현이 중얼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통로 사이에 놓인 커다란 중간방 안에 열댓 마리의 악마종 간수가 입구를 단단히 가로막고 있었다.

콰드득!

“키이이익!”

악마종들이 마구 무기들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날려 버리는 모습.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종들은 온 몸의 촉수나 가시들까지 활용해 가며 공격을 퍼부었고, 몬스터들은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했다.

수라도 적었다면 계속해서 밀어붙이면서 피해를 강요했겠지만, 공간이 한정된 데다가 놈들의 수가 많다 보니 그조차 어려워하며 고전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뚫기가 버거운 상황이었다.

‘이번에도 내가 나서 줘야겠군.’

츠츠츠츳!

성현은 자신의 등 뒤편으로 그림자를 뻗었다.

하지만 차원의 틈 사이에 있는 그로선 당장 불러들일 수 있는 군단도 없는 상황이다.

“나와라.”

쿠우웅!

그림자가 펼쳐진 성현의 등 뒤편에서 무려 80여 명이 넘는 마족이 나타났다.

하지만 지구 차원의 지하 던전에 있을 뱀파이어나 리치, 다크엘프 같은 종족이 아니었다.

모두가 한껏 야성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곰 수인, 웨어베어들이 나타난 것이다.

“저놈들입니까?”

“그래, 구석으로 치워 버려.”

터엉!

성현이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앞으로 박차고 나간 수인족들.

원래 이들은 그림자 군단에 소속되지도 않았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 차원의 틈 내에서 새롭게 합류한 마족이었고, 그랬기에 이렇게 소환이 가능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채 악마종의 고급 재료가 되고 있던 저들을 성현이 다른 몬스터들과 함께 풀어준 것이다.

물론 처음에 놈들을 단순히 풀어주기만 했을 때에는 다른 몬스터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인간인 성현을 공격하려 들었다.

허나 일이 이렇게 된 건 성현이 감옥 내에서 새롭게 받게 된 퀘스트와 관련이 있었다.

후웅!

“꽤나 도움이 되었지?”

프리아가 성현의 곁에서 불쑥 튀어나오며 말했다.

말도 없이 시야로 튀어나온 그녀의 행동에 놀랄 뻔한 성현은 헛웃음을 흘리며 답했다.

“뭐… 인정해. 웨어베어들의 군주가 아직 악마종의 재료가 되진 않았을 줄은 몰랐으니까.”

콰아아앙!

성현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악마종 한 기가 나가떨어졌다.

어느새 선두에 선 웨어베어 대족장 ‘가우드’가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낸 채 악마종 하나를 박살 내고 있었다.

“크아아아!”

콰드드득!

덩치가 배 이상 불어난 곰인간의 모습이 되어 악마종의 팔 한쪽을 뜯어낸 가우드.

다른 웨어베어들도 그를 따라 악마종 간수들에게 달라붙어 공격을 매섭게 쏟아붓고 있었다.

각자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웨어베어들을 풀어줬을 때조차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이다.

성현이 몬스터를 자신의 군단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선 단순 몬스터의 시체가 아닌 그들의 군주가 필요했고, 강제로 끌려온 이런 감옥 안에서 놈들의 군주를 찾을 순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몬스터들과 함께 길을 조금이라도 더 뚫어 주기를 바랐을 뿐.

하지만 그런 성현에게 대뜸 주어졌던 새로운 퀘스트의 목표가 바로 웨어베어 군주인 가우드였고, 퀘스트 마커로 그가 갇혀 있는 위치가 표시되었다.

이는 프리아가 성현에게 정보를 건네준 것이었다.

내부를 꿰뚫어 보는 것을 방해하는 안개가 쳐져 있긴 했지만, 프리아는 첫 번째 봉인석이 깨지며 약간의 힘을 되찾을 수 있었고, 장소도 중립적인 ‘차원의 틈’에 있는 던전이었기에 이 안개들을 꿰뚫어 보고서 정보까지 전해 주는 간섭을 할 수 있던 것이었다.

덕분에 성현은 보스 몬스터인 가우드를 쓰러뜨림으로서 이곳에 갇혀 있던 모든 웨어베어를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거둬들일 수 있었고.

집중적으로 공세를 막아 내고 있던 악마종 무리를 웨어베어들이 나서 상대하며 훨씬 시간 단축을 할 수 있었다.

‘웨어베어들은 마족치곤 그 개체수가 상당히 많아. 물론 군단에 이제 막 합류한 탓에 레벨이 쳐지는 편이긴 하지만… 기존 레벨도 400 후반대는 되는 수준인데다 군단 강화 효과까지 받았으니.’

콰아아앙!

“크워어어어!”

요란하게도 악마종과 치고받으며 싸워대는 웨어베어들.

이들은 정교한 기술보다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전투 방식을 선호하였고, 무투가가 아닌 야만전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평소엔 점잖은 로칸이나 웨어울프 전사들하곤 확실히 다른 전투 스타일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 프리아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싸움 구경을 하고 있기 보다는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수호자 녀석의 낌새가 심상치 않으니.”

“그래, 나도 알아.”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그림자 틈 속으로 움직였다.

악마종 여러 마리가 까다롭긴 하다만 그렇다고 성현이 홀로 감당못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데도 직접 나서 저 녀석들을 청소하는 게 아니라, 굳이 웨어베어들을 불러낸 이유는 쓸 데 없이 놈들에게 시간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함이었다.

악마종들의 생명력이 워낙 질긴 지라, 저들의 싸움이 바로 끝나진 않을 것이었고.

웨어베어들이 악마 종들을 갈기갈기 찢으며 구석으로 밀어 넣는 사이, 성현은 텅 비게 된 입구를 지나며 유유히 빠져나갔다.

힘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함인지 프리아는 또 다시 모습을 감추었고.

그렇게 아래층으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가며 움직이던 성현은 등 뒤에서 나타난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았다.

“주군!”

“돌아왔구나.”

“네, 결계의 설치라면 모두 마쳤습니다.”

“수고했어.”

어느새 성현의 뒤를 쫓아온 이즈나가 합류했다.

각 층마다 피의 결계들을 촘촘히 설치하며 따라온 이즈나였고.

그것도 한 번 내려갈 순 있어도 다시 올라갈 수 없는 특수한 방식의 결계를 차가며 풀려난 몬스터들이 내려올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덕분에 지금처럼 수월하게 감옥을 공략할 수 있었다.

“이제 다 왔어. 바로 이 밑이야.”

“…드디어 닿았군요.”

둘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기다란 계단으로 향했다.

성현의 눈에만 보이는 퀘스트 마커가 바로 이 아래를 가리키며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럼 들어간다.”

어느새 지하 감옥의 최하층에 진입하게 된 둘은 주저 없이 발을 뻗었다.

따돌린 악마종들과 파괴되지 않은 시설이 아직 꽤 남아있긴 했지만, 그쪽은 몬스터와 새로 합류한 웨어베어들에게 맡겼다.

퀘스트 마커가 조금 전부터 고정되어있는 것을 보아 어딘가로 이동하는 건 아니었지만, 프리아가 서두르는 게 좋을 거라며 재촉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

철컹!

계단 아래 커다란 쇠문을 열고 들어간 성현과 이즈나는 드넓은 방 안에 들어섰다.

수 십 여개의 두터운 기둥들 사이로, 벽과 바닥엔 이끼와 수풀이 잔뜩 자라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피의 제단.

‘저건 뭐야…?’

붉은 피를 뒤집어 쓴 거대한 제단의 주변엔 온갖 악마종들의 시체가 잔뜩 널브러져있었다.

놈들이 재료로 사용하던 몬스터도 아니고 악마종의 시체라니.

“주군…!”

오싹한 기척을 느낀 이즈나가 성현을 뒤로 당겼다.

그녀의 시선과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으로 한 남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설마 여기까지 겁도 없이 따라올 줄이야.”

“그야 네가 멋대로 먹어치운 봉인석을 빼내주려 왔지. 그런 거 함부로 훔쳐 먹다가 배탈 난다.”

“그렇지 않아도 소화하느라 고생을 한 참이다. 신을 봉인한 물건답게 도통 얌전히 있질 못하더군.”

가디언이 자신의 배를 슬쩍 어루만지며 말했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아무리 조각난 일부라 해도 무려 ‘신의 정신’을 봉인한 봉인석이다.

그런 엄청난 물건을 몸 안에 두고 있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가디언의 상태는 꽤나 안정적으로 보였다.

프리아에게 들었던 이야기와는 꽤나 다른 상태였다.

“여기 있는 흔적들은… 다 네가 먹어치운 거냐?”

잠시 주변 광경을 둘러본 성현이 녀석에게 물었다.

하지만 가디언은 말없이 씩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 곳 제단에 남겨진 흔적들이 말해주듯이, 가디언은 엄청난 수의 악마종들을 먹어 치우며 자신의 힘을 보충했다.

악마종은 한 개체만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몬스터들의 생명력이 한가득 담겨 있는 존재였고, 그런 녀석들을 수도 없이 먹어치웠으니 힘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던 것이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인간 하나 따위 죽여 버리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으득! 으드득!

남자의 몸이 기이하게 비틀리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불어난 그의 몸은 곧 비늘로 뒤덮인 기다란 몸통이 되었고, 머리는 날카로운 독니를 품게 되었다.

커다란 제단을 빙 둘러쌓을 정도로 엄청나게 거대한 몸집을 지닌 뱀의 등장.

온 몸이 석상으로 되어있는 듯한 질감이었다.

쿠구구궁!

‘이건…….’

하지만 단순히 압도감을 주는 덩치와 외형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

성현은 눈앞의 가디언과 직접 눈을 마주하였고.

여태 상대해왔던 빈껍데기 상태의 가디언들과는 확연히 다른 강력한 기척이 그의 숨을 턱하니 틀어막았다.

네 번째 성소의 가디언 ‘나이브리카’.

신의 권능까지 일부 부여받은 수호자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하찮은 지구의 필멸자 따위가 차원을 멋대로 넘나들다니… 여기까지 들어선 이상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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