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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76화 (176/202)

176화 차원의 틈 (4)

예상했던 대로 감옥을 지키는 간수는 그들이 처음 상대했던 녀석이 전부가 아니었다.

야수의 모습을 한 악마종들이 곳곳을 서성이며 감옥을 지키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녀석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물론 성현은 안개 속에서 서성이고 악마종들을 따돌리거나, 가로막는 녀석들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며 나아갔다.

상황에 맞춰가며 선택한 두 선택지 중 어느 쪽이건 소란이 커지지 않게끔 최대한 은밀하게 들어갔고 꽤나 성공적이었다.

이는 텅 빈 감옥과 흔적들이 이어지고 있는 위쪽 층들이었기에, 악마종들의 배치나 경계가 비교적 약한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성현과 이즈나의 호흡과 솜씨 역시 큰 몫을 했다.

애당초 이런 이질적인 ‘차원의 틈’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지간한 S급의 헌터라도 저 간수 역할을 하고 있는 악마종을 하나라도 당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촤아아악!

성현과 이즈나의 칼날 아래 악마종 한 마리가 어김없이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모든 생명력까지 소진시키며 놈을 소멸하게 만든 둘의 솜씨.

악마종의 뒷목에서 깊이 박힌 검을 주르륵 빼낸 이즈나가 입을 열었다.

“이 녀석, 기습을 당하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저희에 대해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래, 슬슬 눈치챌 때가 됐지. 아무리 조심했다 한들 말이야.”

이즈나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한 악마종의 동선과 행동.

거기에 이즈나의 빙결 마법을 시작으로 기습당했는데도, 녀석은 큰 동요 없이 곧장 반격을 해왔다.

방금까지 쓰러뜨려온 열 댓 마리의 악마종들과는 확실히 반응의 결이 달랐다.

외부 침입자의 존재에 대해 놈들이 눈치 채기 시작했다는 것.

애당초 자신과 마주했던 가디언이 이 곳으로 들어와 있는데, 침입자인 자신들에 대한 방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게 더 이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우리도 이 곳에 닿기는 했으니까. 다행히 타이밍이 늦지는 않았어.”

성현이 주위를 슥 돌아보며 말했다.

통로의 양 옆에 줄지어져 놓인 철창과 감옥들.

그 전까진 감옥들이 텅 비어 있었지만, 10개의 층을 넘게 내려온 성현이었고 더 이상 그러지 않았다.

“크르르륵!”

철창 안 어둠 속에서 빛나는 괴수들의 눈동자.

이 층에 놓여진 대부분의 감옥 안엔 꼼짝 없이 갇혀있는 몬스터들로 가득 했다.

던전의 숲 속에 있던 야수종들도 상당히 많았지만, 다른 몬스터 종들도 굉장히 많았다.

지하 감옥으로 내려서기 전, 그가 확인했던 던전 환경상 있을 수 없는 몬스터도 상당수 섞여있었다.

그렇다는 건 차원의 틈에 놓인 또 다른 던전에서도 몬스터들을 곳곳에서 데려왔다는 것이다.

‘놈들은 던전 사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데려올 수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이만한 규모로 시설이 놓여있는 게 이해가 가지.’

수많은 던전의 몬스터들을 끌고 와 공장처럼 악마종들을 찍어내는 놈들의 시설.

지구 차원으로 악마종들이 끝없이 몰려드는 꼴을 보기 싫다면 본거지나 다름없는 이 곳을 파괴해야했다.

하지만 차원 건너에 있는 탓에 그림자 군단을 부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 둘만의 힘으로 이런 거대한 시설을 완전히 부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서걱!

성현은 단숨에 검을 휘둘러 철창을 베어냈다.

그러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야수종 몬스터가 밖으로 성큼 나타났고, 곧장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인간을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해오는 몬스터로서 본능적인 행동.

콰득!

물론 성현은 가볍게 팔을 뻗어, 몬스터의 목 부근을 잡아채고선 대롱대롱 붙잡아두었다.

덩치가 커다란 야수인 만큼 뒷발이 땅에 질질 끌리며 몸부림치긴 했지만, 성현의 근력에 비해선 동네 길고양이만도 못한 수준이다.

“덤벼들 기운이 있는 걸 봐선 싸울 수는 있는 거 같고. 정신 지배를 당했거나 본능이 거세된 것도 아닌 모양이네.”

성현이 녀석을 슬쩍 훑어보며 말했다.

단지 강제로 갇혀있던 약간의 후유증 정도가 눈에 띌 뿐, 악마종들에 의해 크게 무언가를 당한 흔적은 없었다.

이 감옥 내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갇혀있는 이유는 그가 예상했듯, 단지 악마종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을 뿐이었고.

갇혀있는 개체들은 아직 악마종을 만들어내기 위한 의식에 끌려가지 않았으니 상태는 크게 다를 게 없는 것이었다.

“이즈나, 그럼 시작하자.”

“네, 주군!”

성현은 쥐고 있던 몬스터를 휙 던져버리며 내동댕이쳤다.

그리곤 이즈나와 함께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아아앙!

해당 층의 각 통로와 방마다 줄지어 늘어서 있는 감옥들.

성현과 이즈나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고, 가두고 있던 철창들을 모두 베어냈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던 철창들이 사라진 상황.

“크아아아!”

안에 갇혀있던 몬스터들이 제각기 포효를 내지르며 쏟아져 나왔다.

이쪽 차원에 대동할 수 있는 군단이 없다면, 해당 던전 안에서 해결하면 될 일.

그리고 이런 감옥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선 죄수들의 폭동만한 게 없다.

* * *

키이이이익!

온갖 종의 몬스터들이 감옥으로 쏟아져 나왔다.

끔찍한 장소에서 마침내 풀려난 녀석들은 광분하며 밖으로 쏟아졌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이즈나가 이 곳을 감싼 기운과 악마종들에 대해 본능적인 불쾌감과 거부 반응을 보였듯, 이 곳에 갇혔던 모든 몬스터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걷잡을 수 없는 큰 혼란이 벌어진 상황.

규모가 워낙 큰 데다가 하나의 방 안에 많게는 수십 수백 마리까지 뒤엉켜 갇혀 있었기에, 한 층마다 있는 몬스터의 숫자만으로도 엄청났다.

그렇게 층 안의 온 통로들을 빼곡히 채운 괴수들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콰아아앙!

악마종이 휘두른 커다란 몽둥이에 바닥이 움푹 패였다.

그에 휩쓸린 몬스터들은 물론 즉살.

하지만 곤죽이 된 시체들을 넘어 더욱 많은 몬스터들이 들이닥쳤고, 악마종 간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무기를 쑤셔 박거나, 이빨로 물거나, 발톱을 휘두르며 제각기 악마종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아아아! 쓰레기들이!”

거구의 악마종이 달라붙은 몬스터들을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고, 실제 대부분은 나가떨어졌다.

비교적 좁은 입구 앞에 자리잡은 데다가, 어지간한 상처 정도야 눈깜짝할 새에 재생이 되었으니.

마구 날뛰기 시작한 악마종을 단순히 숫자로 찍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몬스터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실패작이 아닌 강력한 악마종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필요한 몬스터들의 숫자가 굉장했다.

하물며 마족의 지능까지 갖추고, 인간의 몸을 취할 수 있는 개체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마족을 충분한 숫자로 찍어내려면 시설도 그만큼 거대해져야 했고, 온 던전에서 들여온 몬스터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헌데 그런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일제히 풀려나니 악마종 간수들조차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콰직!

“크아아아!”

엄청난 수를 죽인 악마종 간수의 활약.

하지만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몬스터들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고, 늘어나는 상처들 속에 악마종의 생명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긴 싸움으로 인해 녀석의 몸이 잠시 휘청이던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콰직!

성현의 검이 악마종의 정수리를 정확히 관통하며 내리 찍혔다.

생명력이 바닥이 나고 있던 녀석에게 꽂힌 정교한 마무리 일격.

몸이 기울어진 악마종이 뒤로 넘어가 기우뚱 쓰러지고 말았고, 성현은 녀석을 한 번 박차며 땅에 안착했다.

“좋아, 잘 되어가고 있어.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속도도 빠른걸.”

모든 시설을 초토화해가며 나아가는 것임에도, 벌써 몇 개의 층을 박살낸 성현과 이즈나.

아니, 정확히는 몬스터 군단이라고 지칭하는 편이 나았다.

성현은 직접 싸우기보다는 구경만 하며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고, 지금처럼 가끔씩 거들어줄 뿐이었다.

안팎으로 쏟아지는 몬스터들은 시설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와중, 다른 몬스터들을 가둔 감옥 역시 무너뜨리며 나아가고 있었고.

굳이 성현이 나서서 일일이 감옥들을 파괴해줄 필요도 없었다.

“키이이이익!”

그때, 야수종 몬스터가 달려들며 바닥에 안착했던 성현의 등 뒤를 노렸다.

그러자 성현은 녀석의 배를 발로 뻥 차주며 튕겨냈다.

하지만 통로에 바글거리는 다른 몬스터들 역시 길을 막던 악마종 간수가 죽자 성현에게로 시선이 쏠려있었다.

“이것들이 도와줬더니만…….”

누가 봐도 공격을 하려드는 놈들의 낌새에 성현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녀석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진 않았다.

파앗!

그러자 성현은 재빨리 등을 돌린 채 자리를 떴다.

몬스터들이 포효해대며 쫓아오긴 했어도 작정하고 달리는 그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을 리 만무한 바.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가며 몬스터들을 손쉽게 따돌릴 수 있었다.

“하여간에.”

잠시 숨을 돌린 성현이 가볍게 혀를 찼다.

흥분해 이성을 잃은 몬스터 녀석들답게, 자신들을 꺼내준 성현과 이즈나도 구별하지 못하고 공격을 하려 들었다.

같은 몬스터가 아닌 이상 피아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한 상태.

하지만 사실 성현으로선 최대한 날뛰고 있는 몬스터들을 피해가며 따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이 곳 시설 전체는 모두 악마종 녀석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었다.

악마종 놈들의 입장에선 이 곳에 위치한 기반 시설들은 물론.

동족을 만들기 위한 재료인 몬스터들 역시 순순히 빠져나가도록 둘 수는 없었다.

비록 그림자 군단과 함께 싸우던 것처럼 아군은 아니라고 하나, 성현이 녀석들을 이용하는 것이었고.

그 성과는 매우 탁월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키이이익!”

다른 쪽 통로를 통해 들이닥친 비행 몬스터 무리가 악마종을 만들기 위한 의식이 이뤄지던 시설들을 파괴했다.

‘원래대로라면 저것도 내가 일일이 찾아내가며 해야 할 일이지만… 대신 때려 부숴주고 있으니 고마울 뿐이지.’

그림자 속에서 몰래 움직인 성현이 녀석들을 피하며 지나쳤다.

그로선 복잡할 것도 없이 길을 터가며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적당히 길만 찾아놓는다면 몬스터들은 알아서 그 뒤를 쫓아오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원래대로라면 감옥의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몬스터들이 위층으로 우르르 빠져나가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했겠지만, 성현에겐 이즈나의 혈마법이 있었다.

이즈나는 혈마법의 결계를 만들어 입구를 틀어막고선 몬스터들이 더욱 지하로 내려가도록 유도하는 중이었고.

몬스터 무리들은 출구를 찾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며, 자신들의 숫자를 점점 늘리고 있었다.

“아직 녀석과의 거리가 조금 남긴 했지만… 이 정도면 굉장히 가까워졌어.’

시야에 떠있는 퀘스트 마커를 확인한 성현이 중얼거렸다.

달아난 가디언의 위치를 가리키는 그의 퀘스트 마커.

많은 층을 따르게 내려온 덕인지 녀석에게 닿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성현의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부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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