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74화 (174/202)

174화 차원의 틈 (2)

쿠구구구!

미세하게 느껴지는 땅의 떨림.

프리아로 인해 멈춰 있을 시간을 생각하면 불가능해야 할 일이었고, 성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졌다.

“아까도 이러더니. 시간이 멈췄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글쎄, 아무래도 수호자가 움직인 모양이구나.”

“…글쎄라니? 신이라는 작자가 이런 것도 모르는 거야?”

“나의 아이들이 이곳으로 추방당한 것은 이 몸이 봉인을 당한 이후의 일이다. 이런 차원의 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까지는 알 길이 없지.”

프리아가 이즈나를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이즈나와 뱀파이어 혈족 역시 그녀의 피조물 중 한 갈래 임은 분명한 바.

성현이 몬스터들을 죽이거나 굴복시키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즈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엔 은근한 애정이 느껴졌다.

성현조차도 그녀의 속내는 제대로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뭐, 그렇다고 짐작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성소의 수호자들은 나의 봉인을 지키기 위해 빛의 신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피조물들이니, 시간을 멈춘 나의 권능을 어느 정도 상쇄할 여력 역시 있겠지.”

프리아와 적대하는 또 다른 신격, 갈루스가 특별히 신경을 써서 창조한 존재.

그녀의 말 그대로 성소의 가디언들은 빛의 권능을 일부 담아 가면서까지 만들어진 존재였고, 보통의 몬스터나 악마종과는 결을 달리했다.

물론 권능을 나눠 받은 것치고는 지성도 없이 공격해 올 뿐이던 녀석들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놈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현도 이전에 프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들었던 바였다.

각 성소를 지키고 있던 가디언들은 원래의 역할대로라면 성현이 던전의 안에 들어서자마자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나섰을 것이었다.

모든 가디언이 동시에 움직였을 테고, 이제 막 각성을 한 성현은 그들에게 대항하기는커녕 일방적으로 당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는 그들과 같은 장소, 지하 던전에 직접 봉인된 프리아가 손을 써 뒀기 때문이다.

프리아는 육신을 잃고 영혼과 정신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에서도 남아 있는 권능을 모아 가디언들에게 개입했고.

그 결과 가디언들은 원래의 자아를 잃고서 크게 약화되었다.

즉, 성현이 이전에 마주했던 가디언들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며 원래 지녔던 힘에 한참 못 미쳤을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른 악마종들이 성현의 집 바로 아래에 있는 던전의 위치를 찾지 못한 것도 바로 그녀의 권능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방금 그대가 보았듯, 수호자가 자신의 자아를 되찾았다. 이전과 같은 빈껍데기가 아니라는 것이지.”

“…어쨌든 놈부터 찾아야겠군.”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완전히 사라진 가디언의 기척.

가디언 녀석이 직접 말한 바로는 아직 이전의 힘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것이 유력해 보였다.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해서 이 곳으로 향한 것은 아닐 터.

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굳이 이런 차원의 틈으로 달아난 것을 보아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이곳은 지구 차원의 간섭 없이 세계의 파편이 그대로 옮겨 오기만 한 것인 만큼, 원래 차원의 환경과 훨씬 유사한 장소였다.

즉, 간섭을 받는 지구 차원 내에선 불가능할 꿍꿍이를 벌일지도 모른다는 것.

파앗!

“주군……?”

그때, 프리아의 등장으로 인해 멈췄던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을 뿐, 프리아가 말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는 성현의 곁에서 둥둥 떠 있었다.

하지만 이즈나나 다른 수하들의 눈으론 프리아를 보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하아, 슬슬 시간을 멈춰 두고 있는 것도 버겁구나.”

“일부로 힘까지 사용하며 멈춰 둔 거였어? 뭔가 깨는데.”

“시끄럽다. 어서 달아난 수호자 녀석이나 처리하거라. 차원의 틈 속에 영영 갇혀 있기 싫다면.”

“그렇다면 그 쪽은 가디언들의 뱃속에 한참 더 있어야겠네.”

“정말이지…….”

프리아의 시선이 째릿 성현에게 닿았다.

그러자 피식 웃은 성현은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이런 상황이라 한들 영원한 봉인을 당할 그녀의 처지보다야 나을 것이었기에, 굳이 고분고분하게 나서 줄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쓸데없이 말을 주고받는 건 여기까지 하고, 다시 시간이 돌아가기 시작한 이상 서둘러 가디언을 찾아야 했다.

“주군……?”

“가자. 놈이 달아난 방향이 보여.”

성현이 앞장서며 말했다.

그 커다랗던 기척까지 완전히 사그라뜨린 가디언이었지만, 성현의 눈엔 녀석의 위치가 퀘스트 마커로 인해 훤히 보였다.

봉인석에 대해 퀘스트를 받은 성현이었는데, 가디언이 그 봉인석을 삼켜 버렸으니 뱃속에 위치 추적기를 삼켜 둔 꼴이나 다름없었다.

다소 떨어진 거리의 지하로 내려가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먼 거리는 아니었다.

타악!

성현은 이즈나와 함께 숲 속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저 앞의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느껴지는 수많은 기척들.

성현은 달리면서도 검집에 슬쩍 손을 올렸고, 아니나 다를까 사각에서 기척을 죽이고 있던 괴물이 나타났다.

키이이이익!

커다랗게 벌려진 야수형 몬스터의 주둥이.

성현은 즉시 검을 휘둘러 녀석의 몸을 양단했고, 핏줄기와 함께 반으로 쩍 갈라진 몸뚱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일단 악마종은 아닌 것 같은데…….”

“숫자는 상당한 것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기척의 움직임들.

이즈나 역시 진즉에 검을 뽑아 들고 있었고, 곧이어 또 다른 야수형 몬스터들이 나타나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물론 성현과 이즈나는 가차 없이 검을 휘둘러 가며 길을 뚫어 냈다.

‘가디언이 포탈까지 열면서 달아난 곳이라 최소 S급 중에서도 상위권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몬스터의 수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

이 정도의 몬스터들이라면 기껏해야 평균적인 B랭크 던전 수준에 불과했다.

바깥의 S급 던전들은 우스울 정도의 온갖 괴수들이 바글거리던 그의 집 지하 던전과는 딴판이었다.

벌써 백여 마리가 넘게 도륙당했음에도 성현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음은 물론.

계속해서 달리는 성현의 앞을 유의미하게 가로막거나 시간을 벌지도 못했다.

이런 수준의 몬스터들 따위 성현으로선 어린 애들 상대하는 것만큼이나 간단했다.

하지만 소란을 듣고서 더 몰려온 것인지 몬스터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고, 나아가는 데 거슬리는 수준까지 되자 성현은 굳이 귀찮게 놈들을 하나하나 상대해 주기보다는 수하들을 불러들이는 것을 택했다.

‘이 숲의 몬스터들 정도야 자이언트 앤트 몇백 마리 정도만 불러내도 충분하겠지.’

성현은 자신의 그림자를 뻗으며 군단을 불러들이려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뻗어지던 그림자는 자이언트 앤트들을 소환하지 못하고 형체를 잃고서 도중에 흩어지고 말았다.

“소환이 안 되잖아……?”

놀란 성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어째서인지 군단의 수하들을 데려올 수가 없었다.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어느 장소에서든 소환이 가능하던 그의 그림자 군단이었는데, 어색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대에게 그리 호의적인 장소는 아닐 것이라고.”

그의 뒤편에서 불쑥 튀어나온 프리아가 말했다.

눈치 채지도 못한 새에 언제 나타난 건지, 달리고 있던 성현이 흠칫 놀라 넘어질 뻔했을 정도였다.

“안 따라 오길래 사라진 줄 알았더니… 아무튼 차원의 틈 안에선 소환도 불가능하다는 소리야?”

“그대의 차원 안에서 싸우던 때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정식으로 공간의 틈을 연 게 아닌 이상, 차원과 차원 사이를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

머리 위만 쳐다보지 않는다면 영락없는 던전의 구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구와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했다.

“그렇군… 그런데 저번엔 형체가 보이도록 유지하는 것도 버겁다더니. 이젠 힘이 남아도는 거야? 이렇게 계속 머무르고 있는 걸 보면.”

“차원의 틈은 그 누구의 관리도 받지 않는 무법 지대다. 달리 말하자면 그 누구의 간섭도 없는 중립적인 장소이기도 하지. 덕분에 신격이 없는 대신 강한 간섭이 있는 지구와는 달리, 겨우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정도로 유의미한 수준의 힘이 소진되지 않는다.”

프리아가 설명하듯 말했다.

각 차원에 존재하는 ‘간섭’과 차원의 틈의 특성인 ‘중립성’.

이는 빛의 신격인 갈루스가 그녀를 봉인한 봉인석과 피조물들을 굳이 차원의 틈에 던져두고서 방치하는 게 아니라, 많은 힘을 들여 가며 지구라는 차원에 가둬 두려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단순히 차원의 틈 사이에 던져둔 채 방치했다간, 언젠간 그 안에서 프리아의 힘이 회복되어 다시 돌아올 것이었고.

그를 막기 위해선 힘의 회복을 차단하는 강력한 간섭이 있는 다른 차원으로 보내 둬야 했다.

거기다 지구는 신격이 존재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차원 중 하나였다.

차원 내부에 자체적인 시스템이 존재하고, 다른 차원의 간섭에 대해 대비도 되어 있긴 하지만, 신격이 없는 차원은 결코 흔치 않았다.

그래서 갈루스의 눈에 들어 봉인석과 함께 프리아를 가둬 둘 표적이 된 것이었다.

신격이 있는 다른 차원에 수작을 부렸다간, 오히려 프리아의 봉인을 풀어 버리고선 역으로 엿을 먹일 게 뻔하니.

영구적인 봉인을 위해 간섭이 존재하고, 관리자는 존재하지 않는 지구만 한 차원이 없었다.

“갈루스도 자신의 차원만큼이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못하겠지만, 자신의 차원인 지구에서처럼 몸이 따라 주진 못할 테니 염두해 두 거라.”

“…알겠어.”

주의를 전하는 프리아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성현의 것이 된 각성자의 힘과 시스템이 먹통이 되거나, 특성들이 무력화되는 일이 없었다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고 나자 확실히 지구에서처럼 모든 힘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력의 양과 신체의 움직임조차도 말이다.

“…찾았다!”

그때, 꾸준히 몬스터들을 따돌리고 숲 속을 헤쳐 나가던 성현이 숲 속 한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시설의 입구를 찾았다.

특수한 돌로 만들어진 듯한 입구는 지하로 아주 깊게 내려서 있었고, 성현은 퀘스트 마커가 바로 이 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화르르르륵!

따라오던 몬스터들을 화염 마법으로 구워 버린 이즈나.

“이 안에 녀석이 들어간 건가요?”

“그래, 곧장 쫓아가자.”

뒤를 슬쩍 돌아보자 프리아는 또 다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최소한 잘못 짚은 건 아니라는 거겠지.

성현과 이즈나는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꽤나 깊은 계단들을 내려간 그들은 거대한 시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두컴컴한 장소에 푸르스름한 불꽃이 지펴져 있는 횃불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

싸늘한 돌바닥 위에 날이 선 철창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고, 공간 전체에서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 왔다.

“여긴… 감옥?”

밑을 내려다본 성현이 중얼거렸다.

그가 마주한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드넓게 펼쳐져 있는 거대한 지하 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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