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악마사냥꾼 (4)
[퀘스트 마커가 생성되었습니다!]
성현은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우두커니 지켜봤다.
새로운 퀘스트가 생겨난 것도 아니고, 오로지 퀘스트 마커만이 난데없이 생겨난 상황.
‘…그것도 봉인석을 파괴하라는 퀘스트와 연동되어 생겨난 거잖아?’
메시지를 자세히 확인한 성현이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 생겨난 퀘스트 마커는 다름이 아니라 프리아의 봉인에 대한 연계 퀘스트의 목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
‘분명 봉인석이라면 남은 각 필드에 위치해 있다고 했는데… 왜 지금 시점에?’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은 던전의 밖이 아닌 내부.
그것도 한참 안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하고 있었고,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 차원의 신격을 봉인했을 정도의 물건이 갑자기 바깥 던전으로 옮겨갔을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주군……?”
“아니… 정신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직접 확인해 보면 그만이야.”
키이이익!
어느새 악마종들이 낯선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채고서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성현은 이즈나에게 자신이 본 것과 생각을 전해줬다.
악마들이 몰려오고 있는 만큼 굳이 말로 하진 않았다.
성현의 권속인 그녀라 해도 메시지 자체는 공유되어 보이지 않지만, 텔레파시를 이용해 머릿속으로 고스란히 건네주는 건 가능했다.
그의 생각을 전해 받은 이즈나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럼 돌파한다.”
“정말 저희 둘이서만 진입하나요?”
“그래. 던전 안을 샅샅히 뒤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퀘스트 마커로 목표의 위치 정보도 입수했으니 굳이 군단 전체를 불러올 필요는 없지. 충분히 가능해.”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던전의 내부는 온 사방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용암 지대.
군단 강화 특성을 통해 화염 내성을 약간 갖췄다곤 해도 다른 속성의 저항력에 비해선 취약했다.
게다가 아래로 흐르고 있는 저 용암의 강들은 내성 정도로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서 악마종들을 상대로 대규모 전투를 벌이다간 괜히 과도한 피해만 생기기 쉬웠다.
어쩔 수 없다면 감수하겠지만, 퀘스트 마커가 나타난 이상 그럴 필요는 없었다.
키이이익!
그들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 맹렬히 달려드는 악마종들이 코앞까지 다가섰다.
제각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괴성을 내지르는 녀석들.
하지만 성현은 발을 한차례 구를 뿐이었다.
“그리고… 정확히는 둘이 아니라 셋이지.”
콰아아아앙!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악마종들이 튕겨 나갔다.
성현의 발밑에서 나타난 비룡 안타라스의 등장.
땅을 부수며 나타난 녀석은 커다란 두 날개를 펼치고는 성현과 이즈나를 등 뒤에 태운 채 순식간에 솟구쳐 올랐다.
악마종들을 단숨에 따돌린 성현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눈 깜짝할 새에 그들은 드넓은 용암 지대가 한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고도까지 올라서 있었다.
대강 봐도 보통 크기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최근 들어 공략했던 지하 던전의 거대한 각 필드들에 못지않을 정도였다.
물론 와이번 군주 안타라스가 빠르게 공중을 누비며 날아가는 이상 거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숫자가 더 늘어나 있네. 땅 밑의 굴속에서 더 나타난 건가.”
지상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악마종들의 모습.
성현은 불그스름한 땅 곳곳에 굴들이 뚫려져 있는 것과 그 곳에서 악마종들이 하나둘씩 기어나오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단순히 지상에 나와 있는 수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확실히 저 많은 악마종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나아갔다간 시간을 어지간히 잡아먹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중으로 올라왔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었다.
“…주군!”
“그래, 나도 봤어. 역시 호락호락하게 보내주진 않네.”
성현은 저 아래에서 날아들고 있는 작은 점들을 목격했다.
박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기이한 형태의 비행종.
아니, 그것은 가장 먼저 등장한 몇 마리에 불과했다.
그 뒤로도 수백, 수천여 마리가 넘는 비행형 괴수들이 등장했고, 놈들은 완전히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뭔가 했더니… 악마종 놈들이었군.”
키에에에엑!
하나둘 날아오르기 시작했던 비행형 악마종들은 어느새 수만 마리가 넘는 숫자가 되어 성현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 만큼 오히려 사방에 더 눈에 띄어 버려 온갖 곳에서 비행종들이 나타났다.
“온다!”
콰득!
성현은 달려들던 박쥐 형태의 악마종을 베어 갈랐다.
일격에 반토막으로 갈라진 녀석이 맥없이 추락했지만,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그 뒤를 바로 이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징그럽게 생긴 녀석들.
단순한 박쥐 형태가 아니라 몸통 부분에 붙어 있는 징그러운 촉수와 팔이 성현을 향해 뻗어졌다.
서걱!
하지만 역시나 악마종의 몸이 양단당하며 나가떨어졌다.
이번엔 성현이 아닌 어느새 검을 뽑아든 이즈나의 솜씨였다.
가장 먼저 달려들었던 수 마리의 악마종들은 그 둘에게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나가떨어졌을 뿐이다.
“주군, 크게 옵니다.”
“그래. 요란하게도 반겨 주네.”
하나의 무리로 뭉친 수천여 마리의 비행종들이 전방에서 몰려드는 모습.
놈들은 빠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던 그들과 부딪쳤다.
콰드드득!
안타라스가 날개와 꼬리를 휘두르며 몰려드는 악마종들을 최대한 쳐냈고, 몇몇은 직접 이빨로 씹어 먹으며 악마 떼를 헤쳤다.
물론 악마종들은 죽음의 공포 따윈 없이, 인간인 성현을 먹어치우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를 지닌 안타라스의 등이 넓은 편이라곤 해도 행동반경이 제약된 공중에서 이렇게 많은 적들이 몰려들면 곤란했다.
물론 그런 조건 속에서도 성현과 이즈나는 검을 휘둘러 달라붙으려는 놈들을 간단히 베어냈다.
하나 단순히 검으로 날파리 쫓아내듯 처리하기엔, 수십 수백여 마리 수준의 몬스터 떼가 아니었다.
주위를 빽빽하게 메운 악마종들을 베어 가르며 마구 지나쳤지만, 그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놈들은 다시 뒤로 따라붙었다.
키이이익!
거기에 한술 더 떠, 저 아래 지상에서 또 다시 빽빽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무리.
추가로 합류해 그들의 앞길을 빼곡히 가로막은 녀석들로만 최소 수만 마리에 달했다.
“정말이지 끝도 없이 몰려드네. 아직 퀘스트 마커가 닿는 곳까지는 거리가 꽤 남았는데… 벤시들을 불러야 하나?”
“아뇨, 저 녀석들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죠.”
타악!
검을 칼집에 집어넣은 이즈나가 성현의 앞에 섰다.
그러자 성현은 그녀를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특기인 광역 공격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공중인 데다 숫자도 워낙 많은 지라 한계가 있을 텐데 꽤나 자신감 넘쳐 보이는 모습이었다.
성현은 여기저기 나돌아 다니고 바삐 움직이느라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그동안 그의 군주들은 던전에서 함께 구르는 동안 상당히 많은 싸움을 거쳐 왔고 자연스럽게 수많은 합을 맞춰오게 되었다.
더욱이 군단에서 거의 초기에 합류한 군주들인 안타라스와 이즈나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퀴이이이익!
“…시작하자.”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선 수만 마리의 악마 비행종 무리.
이즈나는 안타라스의 목 뒤를 툭툭 치며 신호를 주었고, 그에 반응한 안타라스는 입을 쩍 벌리며 열기를 토해냈다.
화르르르륵!
안타라스의 화염 브레스가 전방으로 뻗어졌다.
녀석의 브레스라면 성현도 잘 알고 있었고, 가장 가까이 있던 수백여 마리를 단박에 휩쓸어 버릴 만큼 범위와 위력 역시 출중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게 끝이 아니었다.
츠츠츠츳!
곧바로 이어진 이즈나의 마법.
그녀는 안타라스의 화염 브레스에 자신의 화염계 폭렬 마법을 보태며 위력을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거기에 바람 속성의 마법을 전방으로 붙어닥치게 해 쏟아지는 화염의 범위를 배 이상으로 늘렸다.
콰아아아아!
이즈나가 동시에 사용한 두 가지 속성의 마법 덕에, 위력과 범위 모두 증폭된 화염 브레스.
성현조차 여태 보지 못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위력을 뽐냈고, 앞을 막던 악마종 무리들을 통째로 구워 버리며 쓸어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쏟아진 화염이 채 잦아들기도 전에 나타난 메시지들.
성현의 레벨이 아닌, 이즈나와 안타라스 양쪽의 레벨이 하나씩 오르며 그 결과를 미리 알게 되었고.
곧이어 화염이 잦아들자 말끔하게 지워진 하늘이 개었다.
“…제법인데?”
“크르르륵!”
안타라스가 이즈나 대신 대답하며 몸을 들썩였다.
다만 깔끔하게 지워진 전방만 보기엔, 여전히 뒤편에서 악마종들이 잔뜩 쫓아오고 있었고.
저 아래에서도 더 많은 악마종들이 날아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종일 이 녀석들만 상대하느라 시간을 날려 버릴 순 없는 노릇이다.
“다시 몰려들기 전에, 조금 더 속도를 올리자.”
성현의 말에 안타라스는 날개를 펄럭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놈들은 여전히 끈덕지게 달라붙긴 했지만, 방금 수만 마리를 태워 버린 덕에 포위망이 느슨해졌고, 그 틈을 타 매우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갈 수 있었다.
그 결과 닿게 된 던전 중심부에 위치한 화산.
그들은 퀘스트 마커가 찍혀 있는 화산 중턱에 나 있는 좁다란 동굴로 향해 단숨에 들어섰다.
쿠우웅!
안타라스가 동굴 안으로 들어서 착지했다.
등에서 내려온 성현과 이즈나는 자신들이 화산의 내부로 들어섰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인가요, 주군?”
“아니. 퀘스트 마커는 여기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을 가리키고 있어. 확인해보려면 더 깊숙이 들어가 봐야겠는데.”
키이이익!
뒤따라오던 악마종의 울음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고작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고 포기할 녀석들이 아니었고, 잔뜩 모인 녀석들이 몰려들었다.
물론 공중도 아니고 이런 좁고 기다란 통로를 통해 잔뜩 몰려들어 주는 녀석들은 그저 죽고 싶어서 달려드는 불나방일 뿐이다.
콰아아아아!
안타라스의 화염 브레스가 뻗어지며 내부로 들어오던 악마종 천여 마리를 단숨에 산화시켜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성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등을 돌렸다.
“이 정도로 끝은 아닐 거야. 아무튼 이쪽 입구를 부탁할게.”
“크르륵!”
안타라스가 입구를 지키기 위해 섰다.
어차피 좁아진 입구 탓에 여기서 더 비행을 하며 들어가기엔 어려웠고, 덩치가 작은 둘이서 내부로 들어가기로 자연스럽게 결정이 난 것이다.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는 무언가의 정체를 찾기 위해 성현은 이즈나와 안으로 들어섰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화산 동굴 내부의 통로.
그 안쪽에도 악마종들이 있었다.
다만 바깥에서처럼 엄청난 수는 아니었고, 간간히 나오는 녀석들은 손쉽게 베어 버리며 나아갈 수 있었다.
“악마종이라는 녀석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나름 소수 정예인 줄 알았는데… 여기 있는 녀석들은 실패작이라도 되는 건가.”
놈들의 시체를 내려다본 성현이 중얼거렸다.
앞서 성현이 상대해 왔던 악마종들에 비하면 여기 있는 녀석들은 공격 방식이든 재생력이든 훨씬 뒤떨어졌다.
물론 일반 몬스터에 비해선 까다로운 편인 건 여전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프리아의 종족들을 강제로 뒤섞어 만든 게 악마종이라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이곳에 남겨진 녀석들은 모두 충분한 성능을 내지 못한 실패작들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녀석들이라 해도 바깥으로 뛰쳐나왔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 텐데. 안쪽을 지키고 있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건가.’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아랑곳하지 않은 성현은 더욱 안쪽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