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악마사냥꾼 (3)
촤아악!
이즈나가 악마종의 두 다리를 가차 없이 베어 냈다.
동강난 다리와 함께 풀썩 주저앉은 악마종은 기이한 소리와 함께 발버둥 쳤다.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네.”
이즈나는 주저앉은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생명력이 완전히 바닥난 녀석은 두 다리가 사라진 데다, 턱도 반쯤 날아간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젠 신체 부위를 재생조차 시키지 못할 만큼 여력이 없다는 것.
그러자 이즈나는 뽑아 들었던 검까지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콰득!
“키이이익!”
그녀는 단숨에 악마종의 양 팔을 한 차례씩 짓밟아주었다.
뼈가 우지끈 부러지며 두 팔이 떨어져 나갔고, 이번에도 역시 재생될 기미 따윈 보이지 않았다.
“정보를 알아내고 싶으면 팔다리 정도는 떼어 내야 한다고 했지. 바로 이런 걸 말한 거야.”
이즈나는 꿈틀대는 악마종에 대해 경멸의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그 존재 자체가 뒤틀려있는 괴물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그녀에겐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무언가로 보일 뿐이었다.
다만 그런 혐오감과는 별개로, 놈의 생명력이 모두 바닥난 지금 치명상을 안겨 주는 짓을 하진 않았다.
제 발로 찾아온 녀석에 대해 최대한 뽑아내야 할 게 있었다.
“네놈 정도면 알고 있겠지.”
콰득!
이즈나가 검을 내리찍었다.
마력을 품은 칼날이 놈의 목을 깊숙이 찔렀고, 그대로 마력을 강제로 쑤셔 넣으며 혈마법을 발동시켰다.
“하나도 남김없이 이야기해 줘야겠어.”
* * *
지하던전의 울창한 숲 속.
성현은 그루터기에 걸터앉은 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창 던전의 공략을 진행하던 중 성현으로선 유일하게 가지곤 하는 휴식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타나는 모든 곳들이 원래는 다 녀석들의 고향이었단 말이지.’
성현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확실히 지구엔 존재하지 않을 법한 이질적인 숲 속의 모습.
프리아에게 들은 이야기대로라면 지구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던전들은 세계의 파편이었다.
빛의 신격인 갈루스는 지긋지긋하게 이어져오던 영원한 분쟁을 완전히 끝장을 낼 작정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리아와 함께 그녀가 낳은 피조물들까지 추방하는 과정에서, 대륙을 사실상 반토막내는 수준으로 들어냈다고 한다.
즉, 던전들의 정체는 몬스터와 함께 부서진 세계의 파편이 함께 차원을 넘어오는 것이었고.
이런 지하에 위치한 한정된 공간이었지만 나름대로 다 각자의 생태계가 이루어져 있고, 종종 문명의 흔적들이 나타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여태껏 나타난 몬스터나 마족들의 수는 프리아를 따르는 종족 전체에 비해선 새 발의 피 수준도 되지 못한다 했다. 즉, 아직도 넘어올 게 한참 더 남았다는 거지.’
던전이 발생하고 계속해서 몬스터가 쏟아진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게 흘렀다.
그런데도 몬스터의 수는 줄어든 기미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규모라니 절대 좋은 소식은 아니다.
그동안은 차원 간의 제약 탓에 던전을 쏟아내진 못했다곤 했지만, 최근 들어 던전의 생성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분명 갈루스 녀석이 손을 쓴 거겠지.
‘나타나는 던전의 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거라 했어. 지금이야 헌터 전력으로 버티곤 있다만, 그 한계는 금방 드러나겠지. 악마종이라는 변수까지 있으니.’
한마디로 쏟아지는 던전들을 틀어막기 위해선 차원의 틈새를 막는 조치가 필요했다.
그래서 성현이 봉인된 프리아를 풀어 주는 대신, 프리아는 차원의 틈을 막아낼 방법을 그에게 알려주는 동시에 약간의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다섯 개의 봉인을 모두 푼다고 해도, 프리아는 이미 소멸한 육신을 회복하는 데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갈루스라는 신격이 직접적으로 이쪽 세계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많은 걸 바랄 순 없다는 것이겠지.’
각 봉인석 안에 봉인되어 있는 것은 프리아의 정신뿐.
갈루스에게 패배한 뒤 그녀의 육체는 이미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
물론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다시 육체를 찾는 건 금방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건 그녀의 기준에서 말한 것뿐이었다.
영겁의 세월을 사는 신격의 기준에선 아주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지만, 보통 인간의 기준에선 기다리기 어려운 시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더욱 늘어나 쏟아질 던전들을 인류는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어찌됐건 지금의 성현으로선 그녀의 봉인을 풀어 준 뒤, 이 이상의 던전 생성을 막아낼 방법을 얻어내야 했다.
척척척!
걸터앉아 있는 성현의 옆으로 오크 군단이 나타났다.
잘 갖춘 무장과 함께 일사분란히 전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었고, 바라보고 있던 성현이 생각했다.
‘후방을 정리하고 있던 후발대도 벌써 여기까지 닿은 건가. 속도는 나름 순조롭네.’
성현과 그의 그림자 군단은 프리아의 첫 번째 정신이 갇혀있던 16번째 필드 공략을 끝냈다.
이미 다음 필드에 들어서 공략을 진행하고 있었고, 가장 앞서 간 선발대는 필드의 절반 이상을 나아갔다.
방대해진 그림자 군단의 전력을 생각하더라도 굉장히 빠른 속도.
이는 엄청나게 늘어난 언데드 오크 군단 덕분이었다.
기아스의 합류 이후론 필드의 오크들을 쓰러뜨리는 족족 언데드화시켜 군단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병력의 손실도 거의 없이 필드를 돌파할 수 있었다.
오히려 수십만의 오크 군단이 생겨나며 다음 필드의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탄력이 붙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퀘스트 마커가 없다는 거겠지.’
성현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향했다.
첫 번째 봉인석을 파괴한 이후, 그와 이어지는 연계 퀘스트는 생겨났다.
하지만 저번처럼 퀘스트 마커가 생겨나진 않았다.
설마 자신의 봉인이 걸린 문제인데 이번 퀘스트를 내어 줬을 프리아가 일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아닐 테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림자 군단이 필드 전체를 장악해 나가고 있는 데다, 추적에 능한 카론을 비롯한 다크 엘프들이 집중적으로 수색 중이니, 봉인석을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는 건 피할 길이 없었다.
“아무튼… 슬슬 일어나야겠네. 이번 필드 보스를 먼저 처리하면 공략이 더 빨라질 테니까.”
식사를 마친 성현이 손을 털며 일어났다.
하지만 그때, 성현을 향해 보고가 들어왔고 그는 잠시 지하 던전의 공략 참여를 미뤄 둬야만 했다.
* * *
파아아앗!
포탈이 열리고서 성현이 걸어 나왔다.
지하 던전 내부가 아닌 외부로 통하는 포탈이었고, 인상을 찌푸린 성현이 코를 부여잡았다.
“윽… 여긴?”
축축하고 고약한 냄새.
어딘지 모를 하수도의 통로였다.
그나마 사람이 발 디딜 곳이 있는 장소긴 했지만, 서 있기에 유쾌한 장소는 아니었다.
“주군, 오셨군요!”
이즈나가 성현을 반기며 다가왔다.
간만에 마주한 성현의 얼굴인지라 반가움을 숨기지 않았다.
던전 공략에 더 박차를 가하려던 성현이 급히 포탈을 타고서 밖으로 나온 이유도 바로 그녀 때문이었다.
“급한 일이라면서, 무슨 일이야?”
“악마종 녀석들의 소굴을 찾아냈습니다.”
“소굴……? 연루된 범죄 조직들이라도 찾아냈단 거야?”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팔을 들어올린 이즈나가 약간 떨어진 벽면을 가리켰다.
“저길 보세요.”
“저긴……?”
하수도 사이로 뻥 뚫려 있는 통로.
부서진 흔적도 없이 워낙 자연스럽게 뚫려져 있어 단순히 옆길로 착각할 만한 통로였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보자 일반적인 하수도의 통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던전……?”
“네, 악마종 녀석들이 처음 나타난 장소죠.”
“하, 악마 놈들이 어디서 이렇게 잔뜩 튀어나왔나 했더니… 아예 이런 장소가 있었던 거야?”
몬스터가 차원을 넘고서 이쪽 세계에 나타나기 위해선 언제나 던전의 존재가 필요했다.
던전이 없이 몬스터만 단독으로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이는 악마종 역시 다를 건 없었다.
성현이 처음으로 마주했던 악마종조차 마른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던전 속에 몬스터들과 함께 섞여 등장했었다.
다만 최근 들어 음지로 숨어든 악마종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대응 체계를 통합하며 이전보다도 더 던전을 철저히 관리함에도, 음지에 숨어든 악마종들의 수가 계속 늘어나 의아하던 참이었다.
차원을 넘기 위해선 던전과 함께 나타나야 했는데, 그 던전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던 것이라니.
“최근 외국 헌터들의 몸을 차지한 대부분의 악마종들이 바로 이 던전에서 나온 것이라 합니다.”
“안쪽은 확인해 봤어?”
“물론입니다. 크기는 최소 대형 이상, 악마종도 다수 확인됐습니다. 저 혼자 공략하기엔 무리일 거라는 판단에 주군께 보고를 한 것이고요.”
“잘했어.”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이즈나의 머리를 슥슥 헝클어트려 주었다.
서울의 하수도에 위치한 던전.
던전이 생겨나게 되면 발견도 어렵고, 장소도 장소인지라 헌터에겐 여러모로 반갑지 않은 장소였다.
“그래도 이런 장소에 이 정도의 대형 던전이 생겨나는 건 흔치 않은데… 일부로 이런 위치를 고른 거겠지. 한 방 먹었군.”
“들어갈까요?”
“그래, 일단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성현은 먼저 던전의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후우우웅!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던전의 내부로 진입한 성현을 맞이한 것은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었다.
어두컴컴한 동굴 형태의 던전이 있을 거라는 그의 예상과는 달리.
탁 트인 장소에 흐르는 용암과 불길이 이글거리는 황폐한 대지가 광활히 펼쳐져 있었다.
던전 중 가장 까다로운 환경 중 하나라는 ‘용암 지대’였다.
“…왜 대형 이상이라 했는지 알 것 같네.”
언덕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던 성현이 중얼거렸다.
마치 지옥을 옮겨 놓은 듯한 시뻘건 장소.
자 아래로는 온갖 악마종 몬스터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바깥에서처럼 사람의 몸을 차지한 겉모습이 아니라, 온갖 끔찍한 외양이 뒤섞여 있는 괴물들의 모습이었다.
“못 찾았다면 큰일 날 뻔 했군… 일단 던전을 닫아야겠어.”
이 던전 안쪽에 있는 몬스터는 하나같이 고약한 녀석들이었다.
서울 곳곳으로 통하는 하수도에 있는 장소의 특성상, 방치했다간 굉장히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다.
‘다만, 장소가 너무 넓어서 제때 닫을 수가 있을지…….’
입구에 막 들어선 그의 눈으로 봐도 아주 거대한 던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던전의 패턴이나 폐쇄 조건도 모르는 와중에, 이만한 던전을 하루 이틀 안에 클리어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아무래도 지하 던전의 필드를 공략 중인 병력을 잠시 빼내야겠어. 필드 쪽에 전력 누수가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길 방치해둘 순 없으니까.’
결정을 내린 성현이 망설임 없이 그림자를 뻗으며 대규모의 군단을 소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성현의 눈 앞에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퀘스트 마커가 발생하였습니다!]
“뭐…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메시지의 등장.
저 멀리를 향해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생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