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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69화 (169/202)

169화 악마사냥꾼 (2)

콰아아아앙!

요란한 굉음과 함께 벽면이 무너졌다.

뒤로 물러서는 악마종에게 다가선 이즈나는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두어 번 비껴 나간 검격은 결국 악마종의 팔을 세로로 크게 갈랐고, 잘려 나간 뼈와 살점 사이 검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완전히 팔을 못 쓰게 됨은 물론 출혈까지 심각해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였다.

츠츠츠츳!

하지만 그런 상처에도 남자의 팔은 금방 재생이 되었다.

너덜너덜해진 상처 따위 재생하기까지 불과 초 단위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

놈의 주위로 더욱 짙어진 진홍빛의 기운.

예상했던 대로 놈은 인간을 한두 명 먹어 치운 게 아니었고, 다시 신체를 재생시킬 생명력도 매우 많았다.

“네놈이 날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동안 네놈들이 사냥했던 개체들과 같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악마종이 날카로워진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인간과 괴물의 것이 섞인 듯한 갈라진 목소리.

놈의 말대로 확실히 다른 악마종들과는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즈나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쫑알쫑알 말도 많네. 사냥감이면 조용히 닥치고 있어.”

경멸의 눈빛으로 악마종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즈나.

그녀는 다른 마족들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저 악마종들에 대한 태생적인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마족뿐만이 아니었다.

표현을 하지 않을 뿐이지 성현의 군단에 속한 수하들은 모두가 놈들에 대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저 악마종들의 탄생과도 연관이 있었다.

“태생부터가 뒤틀린 역겨운 놈들. 너흰 애초에 존재해선 안 될 것들이다.”

그녀나 뱀파이어 혈족을 비롯한 여러 마족들은 지성이 부족한 일반 몬스터를 아래로 보거나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악마종에게 보이는 태도는 그것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성현이 던전 공략에 집중한 동안, 그에게 돌아간 적은 없지만 그녀를 포함한 마족 군주들은 전원 텔레파시를 통해 상세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차원 건너편에 원래 존재하던 몬스터나 마족과는 달리, 악마종은 빛의 신 갈루스가 쓸모가 없어진 프리아의 종족들을 한데 뒤섞어 놓은 피조물이었다.

단순히 시체를 이용해 만들어진 키메라와는 격이 다른 방식.

영혼과 육체까지 모두 다 산 채로 수많은 생명체를 뒤섞은 것이었고, 거기엔 끔찍한 저주와 권능이 동반되었다.

강제로 영혼과 육체를 합친 것이었기에 끔찍한 고통이 동반된 것은 당연했고, 그들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악마종들은 정신까지 개조당한 탓에 그 분노와 증오를 불태우면서도 자신들을 그 꼴로 만든 갈루스의 명령을 따르게 되었다.

사정에 대해 전혀 몰랐던 시점에서도 이들이 악마종들에 대해 알 수 없는 거부감을 느낄 것은 당연한 일.

“여기서 네놈의 존재를 말끔히 소각시켜 주지.”

“키이이익!”

휘리리릭!

악마종은 등 뒤로 감춰져 있던 꼬리를 뻗었다.

인간에게는 달려 있을 수 없는 기이한 뼈 형태의 꼬리가 이즈나의 복부를 노렸다.

쩌어어엉!

하지만 순식간에 검을 휘두른 이즈나는 가볍게 녀석의 꼬리를 받아쳐 냈다.

놈의 꼬리엔 굉장히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지만, 이즈나의 힘으로도 충분히 감당이 되었다.

그녀는 뒤에서 가만히 마법이나 쏘아 대는 마법사가 아니었고, 이즈나의 몸 주위에선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터엉!

단숨에 발을 박찬 이즈나가 움직였다.

훨씬 빨라진 움직임과 함께 검을 휘두른 그녀는 악마종의 허리를 양단해 냈다.

아예 반토막이 나 버린 녀석의 몸뚱이.

물론 녀석은 그럼에도 금세 잘려 나간 몸이 붙으며 재생을 했다.

콰드드득!

이번엔 이어지던 공격을 한 차례 막아 낸 악마종의 몸이 기이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단단한 뼈들이 마구 돌출되기 시작했고, 인간의 형상에서 반쯤 벗어나 버린 꼴이 되었다.

그러한 변화 속에서 놈의 기운은 더욱 커졌고, 악마종은 단박에 이즈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아!”

콰과과광!

득달같이 달려드는 악마종의 맹공이 퍼부어졌다.

팔과 꼬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녀석의 뼈가 닿는 걸 모조리 갈랐고, 주위를 완전히 헤집어 놓았다.

매우 저돌적인 공세였고, 거기에 실린 속도와 힘도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 예상했던 대로 놈은 로칸이 상대했을 악마종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의 상황에선 불공정하리 만큼 서로의 공격이 가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이즈나는 보스 몬스터답게 굉장히 강인한 생명력과 높은 재생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 헌터와 비교했을 때였지, 보스급 몬스터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뱀파이어 혈족인 이즈나는 늑대인간인 로칸과 다르게 재생력 특성이 없었고, 하물며 눈앞의 저 악마종이 지닌 말도 안 되는 재생력에 비해서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서로 무식하게 공격을 주고받다간 나가떨어지는 건 그녀뿐만이라는 것이다.

하나 그런 강적을 마주한 이즈나의 표정엔 전혀 당혹감이 서려 있지 않았다.

콰직!

서걱!

녀석의 맹공을 정신없이 받아 내고 흘려 내면서도, 이즈나는 꾸준히 반격을 가했다.

넉넉히 인간을 잡아먹어 생명력이 충분한 악마종 녀석은 상처에 대해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공격적인 공세를 취하기 위해 아주 치명적인 공격 정도를 제외하면 굳이 피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악마종의 상처는 계속해서 생겼다 아물었다를 반복했고.

둘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주변 바닥엔 녀석의 피가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우우우웅!

이즈나의 몸에서 커다란 마력이 일었다.

악마종이 흉측한 팔을 뻗으며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이었다.

카가가가각!

땅바닥에서 솟구친 붉은 가시.

무려 수백여 갈래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악마종의 몸을 꿰뚫었다.

단단한 악마종의 몸을 가볍게 뚫어 버린 이 가시들은 일반적인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피를 이용한 ‘혈마법’이었다.

“크어억……?”

이전까지는 마검사이자 검귀라는 이명을 지닌 헌터로서 활동하던 이즈나였지만.

마족으로서의 기억을 되찾고, 실전된 검술과 마법을 되찾으며 양쪽 모두 한 차원 높아진 그녀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전투 방식을 갖추게 되었다.

덕분에 그녀는 적들이 흘린 피를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음은 물론, 이전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혈마법의 활용이 가능해졌다.

차원에서 추방당하기 전, 원래 지니고 있던 진짜 뱀파이어 혈족들의 전투 방식 말이다.

“크아아아아!”

콰지직!

가시에 온몸이 관통당한 악마종이었지만, 녀석은 자신의 몸을 마구 비틀며 가시들을 떨쳐 냈다.

워낙 가시들이 단단한지라 살점과 뼈들이 같이 뜯겨져 나갔지만, 그 정도 상처쯤이야 금방 재생이 되었다.

하지만 이즈나는 이미 녀석이 흘려 놓았던 더 많은 피를 끌어온 뒤였다.

츠츠츠츳!

이즈나의 머리 위로 둥실 떠올라 있는 수많은 피의 구체들.

마치 빗방울처럼 아주 작은 구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지만, 이즈나의 마력을 담은 이상 빗줄기와는 비교도 안 될 경도를 지니고 있었다.

“이만 누워 있어. 귀찮게 하지 말고.”

이즈나가 들어 올렸던 팔의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그녀가 들어 올렸던 무수한 핏방울들은 작은 탄환이 되어 악마종에게 일제히 날아갔다.

푸부북!

수천, 수만여 개의 작은 핏방울이 악마종의 몸을 연달아 관통했다.

상처 하나하나의 크기는 작았지만 그렇기에 막을 수도 없었다.

생명력을 비축해 뒀던 악마종의 몸은 계속해서 재생해 나갔지만, 이즈나가 다루는 혈마법 역시 계속해서 이어졌다.

“크… 크아아아!”

이즈나가 부리는 혈의 탄들이 악마종의 몸뚱이를 난도질하며 너덜거리게 만들었다.

악마종은 어떻게든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이즈나의 본체에 닿으려 했지만.

놈의 재생 속도 이상으로 더 큰 데미지들이 계속해서 누적이 되었고, 온몸의 관통상들만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악마종으로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

녀석으로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싸움 방식과 전력이었다.

악마종은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까지 바탕으로, 이즈나에 대한 정보 수집까지 하고서 찾아온 것이었다.

정보의 유용성을 알고서 충분히 음지의 인간들을 먹어 치우며 힘을 길렀고, 목표인 이즈나를 확실히 압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던 시점.

한데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될 줄은 놈으로선 꿈에도 꾸지 못했다.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가 없다. 이… 이대로는!’

기껏 모아 둔 생명력이 아주 빠르게 고갈이 되어 가자 악마종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런 곳에서 당할 수는 없었기에, 녀석은 얼굴이 반쯤 날아간 채로 황급히 등을 돌렸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하나 녀석이 급히 몸을 빼내며 골목 밖으로 달아나려 했던 그 순간.

악마종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골목 끝자락에 멈춰 서고 말았다.

‘이게 무슨……?’

“어딜 도망가려고.”

어느새 피의 탄환들을 거두어들인 이즈나.

구석에 몰린 채 당혹스러워하는 악마종의 모습에, 조소를 머금은 그녀가 여유롭게 다가섰다.

“네가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미 이 주변엔 강력한 결계를 쳐 뒀지. 아무리 구석진 골목길이라 한들, 이렇게 요란한 싸움이 벌어졌는데 왜 소란이 벌어지지 않았겠어.”

장소를 완전히 격리시키는 이즈나의 강력한 결계 마법.

전투로 인해 주변의 피해가 생기지 않고, 또 자신에 대한 괜한 정보가 흘러 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둔 것이었다.

이전에도 항복한 인간들에게 피의 계약을 맺도록 사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혈마법은 단순히 몇 가지 공격 마법에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일반적인 마법에 여러 분파가 존재하듯, 뱀파이어인 그녀는 충분한 혈기만 확보되어 있다면 여러 갈래의 마법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뱀파이어 혈족에게 맞춰진 마법들인 만큼 그 위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더 오래 버티고 있다만… 지루하지 않게 어디 계속 발버둥 쳐 봐.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진 나갈 수가 없으니까.”

이즈나에게서 강렬한 붉은 기운이 일렁였다.

분명 인간을 먹어 치운 악마종들의 생명력과 재생력은 굉장했다.

이는 재생에 특화된 어느 보스 몬스터들조차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는 뱉어 낼 생명력도 많다는 것이었고, 쏟아 낼 피의 양이 굉장하다는 것이기도 했다.

즉, 혈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는 완벽한 악마종들의 카운터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우우우웅!

이즈나의 주위로 붉은 핏줄기들이 허공에서 파도치듯 일렁였다.

수많은 피의 탄환에 관통되며 악마종의 몸이 재생되기를 반복하는 동안, 놈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게 되었고.

그 피들은 모두 뱀파이어 혈족인 이즈나의 힘이 되어 주었다.

콰아아아아!

거대한 핏빛 물결이 놈의 시야를 메우며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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