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히든 던전 (3)
성현은 감춰져 있던 지하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빛도 거의 들지 않고, 어두침침한 장소.
하지만 그 약간의 빛만으로 성현은 훤히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지장은 없었다.
축축한 바닥과 기다란 통로가 이어져 있는 동굴 내부.
그 안에 들어선 성현의 눈앞에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지하 던전 속 지하 던전이라… 요즘엔 필드 위주로 포진해 있더니, 별도로 시스템까지 분류되어 있는 건 꽤나 간만이네.”
성현이 메시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미 지하 던전 내부에 들어와 있는데 이런 메시지가 나타났다는 건, 던전 속의 던전이라는 말.
그 말은 즉, 단순히 몬스터 수백여 마리 정도가 살고 있는 소굴이나 둥지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따로 던전으로 분류가 될 정도면 내부의 규모가 꽤나 클 게 분명해. 그렇다면 나로선 제대로 찾아왔단 소리지.’
[목표 장소에 진입하였습니다!]
[퀘스트의 추가 보상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래, 재촉하지 않아도 들어간다.’
마치 재촉이라도 하듯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에 성현은 고개를 저으며 발을 내딛었다.
애가 탈 만도 하다.
성현은 자신이 들어선 이곳이 보통의 장소가 아닌 걸 알았다.
가디언이 있는 성소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몬스터의 소굴도 아닌 곳.
이전에 그에게 주어졌던 연계 퀘스트와 별도로 큼직한 퀘스트가 주어졌고, 시스템은 이곳의 공략을 바랐다.
성현이 미리 결계를 파쇄하는 최상급의 단검을 제작해서 올 수 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시스템과 성소의 기록들을 모두 해석해 내며 얻어 낸 정보들이 바로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확실히 여태까지 봐 왔던 것과는 분위기부터가 달라. 반겨 주는 녀석들도 마침 나타났군.’
노골적인 기척을 느낀 성현의 눈이 휙하고 돌아갔다.
“크르르륵!”
곧이어 어둠 속에서 나타난 붉은 눈동자.
크림슨 오크 수십여 마리가 쿵 소리를 내며 나타났다.
하지만 놈들은 바깥 필드에 있던 오크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지금 성현의 앞에 나타난 녀석들은 모두가 흐리멍텅한 눈을 뜬 채, 성한 곳 없이 상처투성이인 몸을 가누고 있었다.
무엇보다 놈들에게서 느껴지는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
‘…언데드?’
“우어어어어!”
크림슨 오크들은 성현을 향해 단숨에 달려들었다.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머리를 향해 둔기를 휘둘렀다.
콰직!
머리가 으깨지며 피가 후두둑 흩뿌려졌다.
하나 머리가 맥없이 깨져 버린 것은 성현이 아니라 먼저 달려들던 오크의 쪽이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성현의 곁을 지키고 있던 군주, 카론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손에서 뚝뚝 피가 떨어지는 그는 순식간에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고, 달려드는 오크들에게 검을 박아 넣었다.
한 방 한 방이 전부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는 일격이었다.
촤아아악!
“쿠어억!”
몸을 사리는 것도 없이 무작정 달려들던 크림슨 오크들은 그의 검에 맥없이 쓰러졌다.
단, 앞의 동족들이 마구 쓰러짐에도 놈들의 행동엔 변함이 없었다.
동요나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강인한 멘탈… 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다는 걸 성현은 알고 있었다.
놈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언데드였으니 말이다.
‘싸움 자체는 수십 대 일이어도 일방적이긴 하지만… 무려 카론이 급소를 노리는 데도 한 방 이상을 버티는 녀석들이 있어. 당장 눈에 보이는 힘과 속도도 그렇고, 이 녀석들 꽤 강하네. 바깥의 오크들을 기준으로 잡으면 최소 정예급은 되겠어.’
싸움을 잠자코 지켜보던 성현의 눈빛이 일렁였다.
단순히 환경상의 이유로 언데드가 된 것이라면, 오히려 생전보다 약해져야 정상이었다.
손상되고 썩은 몸뚱이와 퇴화한 지능을 가지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데 언데드가 된 이후로 더욱 강해졌다면 대부분은 인위적인 마력이 개입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최근의 그 ‘붉은 힘’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느낌이 듦과 동시에, 익숙한 느낌마저도 들었다.
콰득!
수십여 마리의 강력한 몬스터였음에도 다크 엘프 군주 카론이 나서자 결국 싸움은 몇 초 만에 끝이 났고.
다가선 성현은 놈들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
이 언데드 오크들의 시체는 꽤나 특이했다.
부패하지도 않았고, 여기저기 상처가 많긴 했지만 움직이는 상태에선 필드의 살아 있는 크림슨 오크들과 단번에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이건 마치…….”
성현은 뒷말을 삼켰다.
마치 성현 자신이 되살린 그림자 군단의 수하들과 비슷해 보이는 크림슨 오크들이었다.
잠시 복잡해진 표정의 성현이었고, 그사이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카론이 입을 열었다.
“저 멀리서 또 다른 기척이 느껴집니다. 오크 언데드들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래, 아무래도 오크들의 무덤인가 싶은데.”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크기가 아닌 던전의 내부.
아직 초입부에 불과함에도 통로 안쪽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척의 수는 상당했다.
필드 위에서 죽은 오크들의 시체를 모조리 여기다 모아 둔 모양.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오크들이 굳이 자기네 시체들을 한데 모아 감춰 둘 이유 따윈 없었다.
이곳의 입구에 쳐져 있던 만큼 강력한 결계를 쳐 둘 능력은 더더욱 없었고 말이다.
“이 끝에 뭐가 있을지 더 궁금해지네. 대강 알 것 같기도 하고. 슬슬 감이 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성현은 통로 안쪽으로 나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언데드가 된 크림슨 오크들이 또 다시 달려들긴 했지만, 나눠져 있는 지라 대단한 숫자는 아니었다.
중간중간 나타나는 수십여 마리의 언데드 오크들 정도는 카론이 알아서 순식간에 처리해 냈고, 성현은 검조차 뽑지 않고서 걸어 나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서늘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는 더욱 커졌고, 곧 비교적 좁은 통로가 끝이 나며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여긴…….”
방 안에 들어선 성현은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드넓은 방 안에 양옆으로 줄지어 놓인 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지하 묘지에 어울리는 도구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마족도 아니고 일반 몬스터인 오크들 주제에 이런 시설까지 만들어놓다니… 자기들 솜씨 같진 않은데.”
오크들의 손재주라면 최악이라고 알고 있다.
과거 성현이 지하 던전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고블린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이런 대규모 시설을 만들 능력이라면 당연히 없는 게 정상이었다.
쿠우웅!
그 순간, 줄지어 있던 관짝의 문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먼지를 풀풀 날리며 그 안에 들어 있던 크림슨 오크 대전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 크림슨 오크들에 비해선 확실히 덩치도 크고,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여 험악한 인상을 지닌 녀석들의 모습.
필드에서도 이미 마주했기에 놈들의 정체라면 알고 있었다.
오크들을 지휘하는 대전사 개체인 놈들은 무려 준보스급의 몬스터였고, 일반 개체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들이 이렇게 많이 놓여 있다면…….’
방 안에 놓인 관들의 개수는 최소 백이 넘어갔다.
관마다 상당히 띄엄띄엄 놓여 있음에도 방의 크기가 워낙 큰 탓이다.
한데 그중 사분의 일 정도가 열렸고, 천천히 고개를 돌린 크림슨 오크 대전사들은 함께 묻혀 있던 무기를 집어 들었다.
쿠구구궁!
그와 동시에 땅 속에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 오크들.
얇은 바닥 면을 부수고서 모습을 드러낸 크림슨 오크들 수천여 마리가 저 멀찍이까지 공간을 가득 채웠다.
눈 깜짝할 새에 언데드 오크 군단이 성현의 앞에 선 것이었다.
“꽤나 많군요.”
“그래, 꽤 많네. 우리 둘이서 상대하기엔.”
물론 성현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츠츠츠츳!
피식 웃은 성현은 주저 없이 자신의 그림자를 펼쳤다.
성현의 등 뒤에서 나타난 것은 붉은 안광을 빛내는 검은 갑주의 데스나이트들이었다.
* * *
콰직!
성현의 부름을 받은 데스나이트들은 가차없이 오크들을 베어 나갔다.
할버드나 대검을 들고 있는 녀석들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크림슨 오크의 단단한 몸뚱이들도 간단히 베어 냈다.
마족들을 제외하고선 그림자 군단의 최고 정예 전력다웠다.
거기다 함께 데스나이트 군주 ‘칼라일’의 휘하에 있는 악령 병사 군단 수도 굉장히 많았고.
성현의 그림자 군단은 방 안에 가득 차 있던 수천 마리의 오크들을 순식간에 정리해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실히 경험치가 짭짤하네. 강화된 언데드라 더 그렇고.’
떠오른 메시지창에 성현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지하 던전 내의 던전에 진입한 만큼 경험치는 마찬가지로 8배로 적용되는 데다가, 언데드화된 크림슨 오크들은 개체 하나하나가 굉장히 강한 녀석들이다 보니 토해 내는 경험치의 양도 상당했다.
하물며 관에서 뛰쳐나온 오크족 대전사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콰득!
마지막 대전사까지 처리한 성현.
그의 발치 아래 오크족 대전사의 두개골이 으스러졌다.
커다란 방 안엔 으스러져 버린 오크들의 시체만이 가득했고, 성현의 곁으로 칼라일이 다가섰다.
철컹!
데스나이트들의 군주 칼라일.
이 녀석 역시 그동안 부지런히 던전 공략에 앞장서며 550레벨을 넘어선 상태였다.
다른 군주들 사이에서도 꽤나 특별한 녀석이었던 만큼, 데스나이트들과 함께 상당한 전력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성현은 이들 모두를 필드에 밀어 넣지 않고, 던전의 공략을 위해 일부러 후방으로 빼 두었다.
“그럼 가자.”
성현은 두 군주와 군단을 이끌고선 전진했다.
일자로 깊숙이 이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구조.
하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공간마다 잠들어 있던 언데드 오크족들이 쏟아졌고, 놈들의 수는 더 많아졌다.
그뿐 아니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덤벼드는 오크들이 더더욱 강해지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던전 깊숙이로부터 흘러나오는 검은 마력의 영향이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더 짙은 마력의 영향을 받았고,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고블린 대족장 게아드와 그의 고블린 군단까지 소환하며 되레 속도를 올렸고.
더욱 빠르게 던전을 돌파해 나갔다.
그렇게 무려 수만 마리의 오크를 도륙해 나가며 도달한 던전의 끝.
커다란 공간 안에 들어선 성현은 본능적으로 이곳이 던전의 마지막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온 공간에 검은 마력이 물씬 느껴지고 있었고, 저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건물 안에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엄청난 마력이 휘감겨 있었다.
[퀘스트 목표에 근접하였습니다!]
[퀘스트 목표에 근접하였습니다!]
…
성현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
정신없이 울리고 있는 알림음까지, 여태 시스템상 이런 반응이 나타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뭔진 몰라도 정확하게 찾아온 모양이야.”
성현은 자신의 앞에 거창하게 설계되어 있는 봉인진을 느낄 수 있었고.
주저없이 인벤토리로부터 결계 포식자의 단검을 꺼내 들었다.
바로 이 안에 성현이 줄곧 찾던 답이 있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