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히든 던전
악마종들은 헌터의 신체를 차지한 뒤, 그들의 지식과 경험까지 흡수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막 차원을 넘어온 세상임에도, 일반 몬스터와 달리 헌터를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한승희나 설기태 정도 되는 S급의 최상위 헌터들이 고전을 하던 데엔 그런 이유도 있던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도 헌터도 아닌 존재의 등장은 양쪽 모두의 지식을 흡수한 녀석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콰직!
“키이이익!”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로칸의 맹공에 악마종의 몸뚱이는 갈기갈기 찢겨졌다.
본모습으로 변한 뒤 그의 눈빛은 야성으로 가득 찼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로칸이 아무리 공격을 쏟아부어도 악마종의 신체는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진즉에 쇼크사했어도 모자랄 온갖 신체 결손 및 상처들이었겠지만, 악마종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서 오히려 더욱 거센 반격을 퍼부었다.
허나 로칸 역시도 한 번 물어 준 상대는 절대 놓지 않았다.
반격하는 악마종의 가시들이 뻗어지며 그의 온몸을 꿰뚫었지만, 힘으로 가시들을 떨쳐 내고선 놈에게 더욱 공격을 퍼부었다.
악마종 못지않게 로칸의 몸뚱이 역시 큰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웨어울프 종족 특유의 뛰어난 치유력.
그의 특성은 성현의 군단 강화 특성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성현의 그림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재생력 보너스 수치는 100퍼센트가 넘은 지 오래였다.
한마디로 말해 원래 지닌 치유 능력이 최소 2배 이상으로 뻥튀기가 된 상태라는 것.
성현 자신이나 각 헌터들에게 적용되는 그 자체의 효과도 좋았지만, 지금처럼 치유력 특성을 지닌 ‘보스 몬스터’와 합쳐지면 그 시너지 효과는 더더욱 뛰어올랐다.
로칸은 시스템상 보스 몬스터로 분류되었던 이답게, 인간 헌터로선 흉내 낼 수 없을 만큼 공격을 받아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엄청났고.
그 덕에 치유력까지 갖춰진 지금으로선 당장 즉사할 리가 없는 것이다.
카가가가각!
로칸이 막아 튕겨져 나간 일부의 가시들이 땅에 커다란 상처들을 남겼다.
이미 그들의 격렬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주변의 헌터들은 거리를 벌리고 있었지만, 휘둘러지는 가시의 범위가 상당했다.
“끄아아악!”
허나 그 가시에 당한 것은 오로지 그를 돕기 위해 지원을 왔던 범죄 조직의 조직원들뿐이었다.
튕겨져 나간 눈먼 공격 정도는 웨어울프족 전사들은 가뿐히 몸을 놀리며 피해 냈다.
기억의 고서를 입수하고 성소의 기록을 해석하며 웨어울프 일족의 실전된 무술과 기억을 되찾은 것은 다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이제 단순히 그림자 군단의 평균적인 정예 병력 정도가 아니었다.
굳이 지능과 이 이외의 면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일반 정예급 몬스터들과는 전투력에서부터 큰 차이가 생겼다.
“마침 잘됐군.”
콰드득!
악마종은 빗나갔던 자신의 가시를 뻗어 의도치 않게 쓰러진 시체들을 하나둘 잡아먹기 시작했다.
누적된 상처로 인해 떨어진 생명력을 다시 보충하는 것이었다.
“뭐, 뭐하는 거야!”
“크아아악!”
놈은 오히려 살아 있던 주변의 범죄 조직원들까지 먼저 공격해 먹어 치웠다.
오히려 그들의 적이었던 로칸이 방해했음에도 재생을 이어 나가며 꾸역꾸역 모두를 포식했다.
처음부터 놈에겐 저 조직원들이 이용할 도구였을 뿐, 아군이란 생각 따위는 없던 것이다.
“어디 한번 마음껏 발악해 봐라.”
하지만 로칸은 그런 놈의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공격을 퍼부어 줄 뿐이었다.
인간을 더욱 포식한 녀석의 움직임이 한 단계 더욱 빨라졌지만, 악마종과 마주한 로칸의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콰아아앙!
‘이, 이게 어떻게!’
반쯤 잘려 나간 악마종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싸움이 계속될수록 지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칸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져갔다.
완전히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모습.
[웨어울프 대족장 ‘로칸’]
[등급 - 군주]
[레벨 - 549]
[보스의 위압감], [광폭화], [무투술], [재생력], [무아지경]
[그림자의 군단 강화 효과를 적용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지하 던전에서 수련과 사냥을 계속하던 로칸의 성장세는 매우 가파랐고, 레벨 역시 성현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심지어 단순히 스펙상 강해진 것만이 아닌, 이전엔 없던 새로운 특성까지 개화해 냈다.
특성의 효과로 상처를 입고, 전투가 지속될 수록 로칸의 움직임은 더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악마종의 신체가 재생되는 속도보다, 파괴되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게 되었다.
콰드드득!
“크아아아아!”
심장이 꿰뚫린 악마종이 핏물과 함께 비명을 토해 냈다.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뻥 뚫린 상처 부위에서 피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아무리 큰 상처라도 금방 아물어지던 방금까지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
놈이 지닌 생명력이 드디어 바닥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콰득!
악마종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 * *
“끝인가…….”
피를 쏟은 채 널브러진 악마종의 사체 앞.
흉측한 두 악마종의 모습에 그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괴물이 튀어나올 줄이야. 그것도 인간의 몸에서.”
백룡의 길드장 진서연과 태산의 길드장 김진욱.
5대 길드 중 수도권 지역의 대표 두 명이 한자리에 서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내 구역을 들쑤시고 다녔단 말이지.”
진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백룡과 태산을 비롯한 나머지 5대 길드가 이지스의 산하 길드는 아니라곤 해도, 그들 역시 나름의 협조 차원에서 범죄 조직의 배척과 소탕을 함께하던 중이었다.
한데 그러다 수도권에서 수상한 활동이 그들의 정보망에 감지되었고.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간부급을 포함한 길드원들이 역으로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흔적을 발견한 진서연과 김진욱이 직접 나선 것이었지만, 추적 중 더욱 생각지도 못한 괴물들이 발견되었다.
“미국의 거대 길드, 오라클의 최고 간부급 헌터… 기이하게 변형된 모습이긴 하지만 맞는 것 같네.”
성현이 두 악마종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 장소에 악마종이 둘이나 나타났다.
그것도 어중간한 숙주를 챙긴 악마종이 아니라, 외국 최고위 헌터의 몸을 빼앗은 녀석들로 말이다.
이는 성현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5대 길드의 대표인 저들조차 역으로 이 악마종들에게 당할 뻔했다.
성현이 감지를 하자마자 급하게 포탈을 타고 오지 않았더라면, 싸움의 결과는 정반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뇌부들의 몸을 차지한 악마종들은 놈들의 주력이다. 이 정도 수준의 악마종들이 이유 없이 몰려다닐 이유는 없어. 둘이나 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거면 처음부터 함정을 파둔 거였겠네.’
성현이 유심히 시체들을 살피며 생각했다.
한 마디로 성현과 협력하는 길드장들을 제거하기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라는 뜻.
일반적인 몬스터라면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할 발상이겠다만, 보다시피 이 악마종 녀석들은 해외의 거대 길드 수뇌부의 신체를 먹어 치운 녀석들이다.
외국 최고의 헌터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노하우까지 모두 흡수한 이들이었고.
방심했다곤 하나 한국에서 치열하게 굴러왔던 진서연이나 김진욱조차 속여 넘길 수 있을 만큼 고단수의 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이 오합지졸 양아치 집단에 불과했던 범죄 조직들이 최근 들어 정교한 솜씨를 갖추게 된 이유도 이들의 존재로 간단하게 설명이 되었다.
“너 말야. 이놈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거지?”
“…그래.”
진서연의 물음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이렇게 활동을 본격화한 마당에 숨길 이유도 없었고, 숨길 수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진즉에 말을 안 해? 이런 괴물들이 범죄자 틈바구니에 섞여서 버젓이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말이야.”
“가능하면 내 선에서 해결해 보려 했지. 이놈들이 노리는 건 내 목이었거든.”
“네가 목적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진서연과 김진욱의 표정이 흠칫 바뀌었다.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지능을 가지고선, 겉모습까지 흉내내며 도시에 섞여 들어가는 기이한 괴물들.
난생 처음 나타난 몬스터 타입의 등장이었지만, 그게 성현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니.
‘아직 놈들이 선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내가 조금 안일하게 생각했나.’
성현은 들리지 않을 정도의 한숨을 잠시 내쉬었다.
이 악마종들은 그 자체로도 매우 강한 축에 속하는 몬스터였지만, ‘단순 몬스터’로선 한계가 있다는 걸 습득했다.
그렇기에 헌터를 상대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와 지식을 가져온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몸의 역할을 할 숙주가 필요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이나 헌터들은 성현의 지시로 각 길드의 감시망이 상당히 퍼져 있었고, 악마종들조차 쉽사리 활동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비교적 성현이나 이지스의 시선 밖에 놓인 음지로 향한 것이다.
깊숙한 음지로 숨어든 범죄 조직들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여, 새로운 악마족을 충원하는 데 필요한 숙주들을 마련하는 것.
지금도 어디선가 안 보이는 곳에선 악마종들이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었고, 하나둘 숫자가 늘어나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가장 위협적인 쪽은 해외 S급 헌터들의 몸을 차지한 쪽이겠지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권이던 미국 주도의 북미와 러시아 주도의 동구권 길드들.
그곳에 소속된 쟁쟁한 세계구급 헌터들의 몸뚱이를 차지한 악마종들의 전력은 굉장했다.
지금 나타나 쓰러진 녀석들은 비교적 이름값이 떨어지는 축에 속했음에도 상당히 강했다.
헌데 그런 녀석들이 음지의 인간들을 먹어치우고 난다면, 더욱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그럼 당장에라도 놈들을 잡기 위해 뒤집어엎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시 뒤, 성현의 간추린 설명을 들게 된 김진욱이 말했다.
놈들의 특성상 인간을 먹어 치울 수록 더욱 강해진다면, 그 전에 처리하는 게 가장 좋은 수임은 당연할 테니 말이다.
“아니, 그럴 것까진 없어.”
하지만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진즉에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했는데도 그들만큼은 찾을 수 없었다.
아주 깊숙한 곳으로 제대로 숨어들었다는 것.
한데 여기서 더 강도를 높여 쫓는다는 건 제 살까지 파먹는 독한 수를 동원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과거 청성이 벌이던 짓과 똑같았다.
“지금으로선 추적도 계속 이어 나가고, 바깥에서 피해가 생기지 않게 감시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성현이 단호히 말했다.
‘어차피 이 악마종들을 막아 낸다 해도 결코 끝이 아닐 거다. 조금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거지.’
가디언을 이용해 던전 내의 몬스터에 개입하더니, 외국 헌터들을 끌어들이고, 그조차 성현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자 악마종들을 세상에 풀어놓았다.
한마디로 말해 차원 건너편의 ‘그 존재’는 성현은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있었고, 포기할 녀석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당장 이곳저곳을 막는데 급급하기보다는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방어가 아니라 반격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그리고 성현은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