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음지의 존재 (5)
완전히 소탕이 되어 버린 범죄 조직의 지하 본거지 아래.
성현은 계단을 타고선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의 앞엔 도시 외곽에 위치한 음침한 뒷골목이 이어졌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뒷골목엔 온갖 음지의 각성자들이 험악하게 골목을 누비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과는 달리, 한국을 휘어잡기 시작한 이지스 길드의 눈치를 보느라 범죄자나 조직들은 기를 못 펴는 중이었다.
요즘 같은 시기엔 이런 구석진 뒷골목이라 해도 대놓고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그 때문에 방금 처리한 사흑 길드를 비롯한 범죄 길드들은 시선을 피해 더욱 깊숙이 숨어 들어가긴 했지만, 성현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파드득!
한 마리의 작은 벌레가 성현에게로 날아와 손 위에 앉았다.
일반적인 벌레처럼 크기는 작았지만, 정작 지구상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던 녀석이었다.
다만, 관심을 가지고서 아주 자세히 봐야 특이한 생김새인 걸 알 수 있었다.
“수고했어.”
성현이 피식 웃으며 녀석에게 말했다.
성현의 군단은 수많은 던전들을 해치우고, 지하 던전의 개척을 반복하며 더 많은 수하들을 흡수해갔다.
그가 다루게 된 몬스터의 종들은 더욱 늘어나게 되었고, 이 작은 녀석도 그 중 하나였다.
비록 외부 던전 중 하나를 처치한 것이라 이 작은 벌레 자체의 전투력이 엄청나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로서 필요했던 정보 수집 방면에 있어서는 아주 유용했다.
많은 개체수와 자연스럽게 숨어들 수 있는 크기와 생김새.
녀석들의 합류 덕에 성현은 재난관리국이나 흑련의 힘에 의존하지 않아도 폭넓고 독자적인 조사가 가능해졌다.
일반적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성현만이 알고 있는 지하 던전이나 퀘스트에 관련된 정보들은 이지스의 산하 길드들이 나서기엔 한계가 있었다.
독자적인 정보 수집 수단이 생긴 건 그에게 있어 충분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이지스의 직속 길드원들도 움직여 함께 막는 중이긴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언제 큰 사고가 터져도 이상할 게 없어. 조금 더 서둘러야겠어.’
파르르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벌레의 모습을 보며 성현이 생각했다.
지금 맞이한 악마종이라는 존재들은 여태껏 상대해 오던 일반적인 몬스터와는 달랐다.
인간의 틈에 숨어들 수 있는 능력과 마족들과 같이 인간과 다를 게 없는 지능을 가졌다.
무엇보다 악마종들은 자신들의 힘을 기르기 위해 대량 학살조차 전혀 꺼리지 않을 놈들이었다.
아무리 차원 너머라고는 해도 기존에 서식하던 생태계나 환경에 맞게 적응해온 여태까지의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이 악마종이라는 존재들은 오히려 시작부터가 인간을 해하기 위해 설계된 존재들이었다.
인위적인 개입 없이 일반적인 생명체로선 불가능할 구조였다.
‘인간의 몸을 잡아먹는 몬스터. 단순히 모습만 위장하며 바꾸는 게 아니라 지식과 능력까지 그대로 흡수하는 능력을 가졌어. 덕분에 보통 골치 아픈 게 아니다만, 어찌됐건 놈들에겐 차지할 인간의 몸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거지. 내 예상대로라면… 이번 일을 주도한 쪽엔 놈들이 있다.’
* * *
콰아아앙!
“커헉……!”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헌터들이 우수수 나가떨어졌다.
그 중 이마에 피를 주르륵 흘린 한승희는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젠장, 저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멍하니 자신의 앞을 바라봤다.
난데없이 인간을 먹어치운 괴물과의 싸움.
한승희를 비롯한 세 명의 S급 헌터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놀라운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를 퍼부었음에도 작은 상처를 안겨 주는 게 전부였고, 그마저도 금방 회복되어 아물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이 경악한 것은 단순히 놈의 힘 때문만이 아니었다.
‘저 얼굴…….’
남자는 격렬한 전투 중 눌러쓰던 후드가 갈갈이 찢겨졌고, 그 결과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그러자 그들의 앞에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
반쯤 괴물화가 된 기이한 모습의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의 주인에 대해선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녀석은… 가즈롬의 밀레르잖아?’
러시아의 헌터, 밀레르. 그는 러시아의 대형 세력인 가즈롬의 최고 간부격 S급 헌터였다.
원래도 유명했던 실력자이기도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로 쳐들어왔던 러시아와 동구권 길드 연합의 주요 인물 중 하나였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헌데 그런 이가 저런 기이한 모습의 괴물이 된 꼴이라니.
‘젠장, 이번 일에 러시아나 미국의 헌터들이 배후로 끼어있을 수 있다곤 생각했지만… 왜 저런 꼴이 되어 있는 건데?’
마치 기생형 몬스터에게 먹혀버리기라도 한 듯한 모습.
하지만 멀쩡히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기생형 몬스터들은 어디까지나 D급 이하인 하위 헌터들에게나 위협이 될 만한 요소였기에 그건 말이 되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저들은 헌터를 상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러시아의 헌터는 성현이 줄곧 추적해 오던 ‘악마종’에게 육체를 잡아먹힌 것이었다.
러시아 및 미국의 최고위 헌터들을 먹어치운 악마종들의 움직임.
사정을 알고 있던 성현으로선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던 동시에, 가장 걱정하던 일이었다.
“이제 그만 내게 와라.”
괴물이 반쯤 찢어진 입을 쩍 벌리며 말했다.
그리곤 순식간에 자신의 가시들을 뻗으며 주변에 기절한 이지스 산하의 헌터들을 낚아챘다.
그들에게 있어 어지간한 일반인 여럿보다 이런 고위 헌터들의 몸뚱이는 아주 질 좋은 먹잇감이었다.
‘제… 젠장!’
반면 이미 한승희는 모든 수를 쏟아 붓고는 그를 막아설 기력조차 남지 않은 상태.
그녀와 준하는 실력자인 설기태와 서연화는 이미 기절했다.
그러나 재난관리국의 헌터 한 명을 자신의 입 속으로 가져오던 순간, 남자의 등 뒤로 매우 빠른 무언가가 다가왔다.
콰아아아앙!
등 뒤로 꽂힌 강한 충격에 입을 벌리고 있던 악마의 몸뚱이가 한참을 나뒹굴었다.
일단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녀석의 척추가 산산히 부서졌고, 목까지 비틀리며 바닥에 꽂힌 모습이었다.
그 덕에 가시들에 낚아 채였던 헌터들은 모두 내팽개쳐지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주군께서 와 보라 한 이유가 있었군.”
“너… 너는?”
그림자 군단의 웨어울프 로드, 로칸.
외부에 알려진 공식적인 입장으로선 이지스 직속의 넷 뿐인 간부 중 하나인 그의 등장에 한승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젠장, 진즉에 좀 나타날 것이지. 길드장 놈은 직접 안 나타나고 어딨어?”
“다른 쪽의 일 때문에 직접 오진 못한다.”
“그럼 저 괴물은 어쩌려고?”
“내가 처리할 거다.”
“너 혼자서? 저 녀석 엄청 강한데. 여태까지 상대해 왔던 몬스터와는 완전히 달라.”
콰득! 콰드득!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기습에 나가떨어졌던 악마종의 몸이 기이하게 비틀리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러졌던 뼈가 복원되고 상처가 아무는 것이었다.
역시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는 있어도, 도저히 인간 비슷한 것처럼 보이질 않는 녀석이다.
“저 쪽이다! 이지스 놈들이야!”
“다 죽여 버려!”
“젠장… 이건 또 뭐야?”
거기다 한술 더 떠, 항구 한편에서 범죄 조직원들이 난데없이 나타나며 그들을 에워쌓았다.
거래 장소가 습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을 온 조직원들이었다.
후드를 썼던 남자가 반쯤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크게 놀라지 않는데다, 그들 모두에게서 악마로부터 얻은 힘인 진홍빛 기운이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이미 이 악마종들에 대해 알고 있고, 이지스와 흑련을 몰아내기 위해 직접 힘을 건네받고 협력한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이지스의 산하 길드원 중에선 악마종에게 당해 전투 가능한 인원이 한승희 자신 한 명뿐이었다.
“야……! 빨리 지금이라도 이성현 그 자식 불러와!”
“아니, 필요없다.”
그들이 사방에서 나타난 범죄 조직원들에게 둘러싸인 그 순간, 어두운 주변에서 빛나는 눈동자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컨테이너들의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족 웨어울프 전사들.
그들은 순식간에 뛰어내리며 주먹을 강타하였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저… 저게 뭐야!”
이지스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무려 수백의 인원이 몰려들었지만, 이 곳에 나타난 열댓의 웨어울프 전사들은 그들을 순식간에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악마의 힘을 손에 넣은 조직원들임에도 조무래기 마냥 버티지도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
아무리 군단에서 정예축에 속하는 마족들이라 해도,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간단히 처리할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뭐야… 저번에 봤던 것보다 훨씬…….”
“그동안 강해진 것은 주군뿐 만이 아니다, 인간.”
지하 던전에 위치한 세 성소들의 해석을 풀어낸 뒤, 성현 휘하의 마족들에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뱀파이어나 리치의 고대 마법, 웨어울프족의 실전되었던 무술과 단련법 등.
오랜 전통과 유산으로서 전해 내려오고 있었지만, 실전되었던 고대의 기록들이 각 성소엔 모두 적혀 있었고, 종족 전체가 잊고 있던 그 힘을 다시 되찾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가늠이 필요하던 참이기도 했다.”
터엉!
로칸은 순식간에 발을 박찼다.
순간적으로 주위로 강한 바람이 휘몰아쳤을 정도였고, 다가오고 있던 악마종을 향해 단숨에 주먹을 뻗었다.
모든 방면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던 놈이었지만, 녀석조차 로칸의 순삭적인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콰지익!
헌터들의 검으로도 제대로 갈라지지 않던 악마종의 단단한 몸뚱이가 순식간에 뻥 뚫렸다.
로칸의 주먹은 순식간에 놈의 심장을 파내었고, 동시에 왼팔을 우지끈 뽑아 옆으로 내던졌다.
“크아아아아!”
악마종이 고통에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녀석의 몸은 또 다시 금방 재생되며 아물기 시작했다.
악마종은 자신이 먹어치우며 초과된 생명력만큼이나 계속해서 상처를 회복할 수 있었고, 모든 생명력을 소진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산산조각을 내어도 도로 살아났다.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녀석.
콰직!
바짝 근접한 상태에서 격분한 악마종의 가시가 뻗어졌고, 가시들은 순식간에 로칸의 온 몸을 꿰뚫었다.
피할 겨를도 없이 수십 여 갈래의 가시에 깊숙이 찔린 탓에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이, 이런……!”
지켜보던 한승희조차 순간 움찔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곧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우득! 우드득!
악마종과 바짝 붙어있는 상태 그대로, 로칸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웨어울프 족의 본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시에 관통당한 수십여 곳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기 시작했고,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그의 커다란 손이 악마종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한 번으로 죽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죽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