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반격 (2)
경기권 외곽 지역의 도심, 얼쩡거리는 외국 헌터들이 거리 곳곳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이 행정상 경기 북부 지역이라곤 해도, 태산이 직접 관리하는 구역이 아니었다.
중견, 중소 길드들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었고, 이번 사태엔 취약하게 노려질 만한 곳이었다.
퀘스트를 노린 해외 세력 중 비교적 작은 길드들이 들이닥쳐 곳곳을 들쑤시고 있었고, 해당 지역 길드들의 입장에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의 선택을 받고 국내로 밀고 들어온 해외 길드들은 아무리 못해도 분류상 대형 길드 이상이었고, 한국의 중견 길드들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콰득!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을 획득합니다!]
“좋았어!”
“이 녀석이 마지막이었나 보네.”
널브러진 시체 앞에 외국 헌터들이 쾌재를 부르며 낄낄댔다.
이 주변 골목들을 차지하고 있던 중견급 길드를 완전히 밀어 버리고서 획득한 퀘스트의 보상.
퀘스트를 받은 모든 길드원에게 큰 폭의 스탯 상승이 주어졌고, 받자마자 스스로 강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우 이런 놈들 치워 버리는 걸로 이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니까.”
“서브 퀘스트긴 하지만 외곽 지역을 점거하는 것만 해도 이 정도 보상을 주다니. 어떤 식으로 계산해도 수지에 맞아.”
헌터 대 헌터의 싸움은 일반 던전보다 더 리스크가 있기 마련이었다.
거리 몇 개를 차지한 중견급 길드만 해도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고, 특히나 자국이 아닌 타국가라면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었고, 그들로선 거리낄 게 없었다.
물론 전 세계의 대형 길드들이 유래가 없을 정도로 한 지역에 몰려든 만큼 위험하긴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리턴이 돌아왔다.
자신의 기본 스탯이 오르면 힘을 증폭시켜 주는 붉은 힘과의 시너지 효과까지 있으니, 느껴지는 체감은 거의 배가 되었다.
“언제까지 이런 퀘스트가 주어질지 모르니 가능할 때 최대한 뽕을 뽑아먹어야지. 거대 길드들이 치고받는 동안, 우리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조용히 챙길 것만 챙기면 돼.”
“그래, 그럼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자고.”
헌터들은 즉각 다른 장소로 이동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불안정한 시기에 느긋하게 쉴 시간은 없었다.
여기서 길드 전체가 바짝 성장을 하고 돌아간다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세를 불릴 수 있었다.
그들도 자신의 국가 안에선 손 꼽히는 대형 길드라곤 해도 제3국가의 길드들답게 세계구급에선 전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는데, 전혀 달라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사태는 후발주자도 앞서갈 수 있는 기회이자, 놓치지는 순간 뒤쳐지고 마는 수렁이었다.
처억!
“여기 있었군.”
“어……?”
그때, 자리를 뜨려는 그들의 앞에 수십여 명의 헌터들이 나타났다.
거리를 막아선 한국 헌터들의 등장에 그들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 주변에 이 남아 있을 세력은 없을 테고. 설마 태산 길드의 헌터들인가?”
“그래, 맞다.”
태산의 간부가 앞으로 나서며 짤막하게 답했다.
예상 못 한 그들의 등장에 외국 헌터들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하, 유럽쪽 헌터들과 한바탕 붙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주변 지역까지 신경 쓸 여력이 있었나 보지?”
“있고말고.”
츠츠츠츠츳!
그 순간, 태산 길드의 헌터들에게서 검은 그림자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태산 길드의 급변한 분위기에 그들은 깜짝 당황하고 말았다.
“뭐… 뭐야? 저건……!”
“너희 같은 쓰레기 하나 치우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콰아아아앙!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나타난 태산 길드의 김진욱.
헌터들의 사이로 난입한 길드장의 등장과 함께, 주변에서 헌터들이 달려들었다.
그들로선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 이미 주변엔 수백여 명이 넘는 태산 길드 측 헌터들이 잔뜩 다가서 있던 것이다.
“크, 크아아악!”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적대 길드의 헌터들을 쓸어버리는 태산 길드.
최근 이래저래 손실을 봤다지만 태산 길드의 체급이 제3국가의 어중간한 대형 길드들을 당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태산과의 충돌 자체를 예상하지 못했던 녀석이었기에, 싸움은 금방 끝이 나고 말았다.
콰득!
적대 길드장의 목 깊숙이 검을 박아 넣은 김진욱이 기계적으로 검을 비틀며 그의 목을 쳐냈다.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한 채 숨통이 끊긴 남자.
길드장의 죽음과 함께 주변의 헌터들은 모두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를 바닥에 버렸다.
“이쪽도 끝난 건가. 확실히 빠르게 정리가 되고 있네.”
포탈을 탄 성현이 김진욱의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항복한 헌터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츠츠츠츠츳!
순식간에 그림자를 뻗어 헌터들에게 주입시켰고, 강제력을 지닌 그림자가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며 붉은 마력을 제거하고선 자리 잡았다.
그림자를 불어넣어 아예 자신의 산하 관계로 만들어 버리는 성현의 능력.
의식이 아예 없는 꼭두각시가 된 건 아니었지만, 그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속력에 묶인 것이다.
그동안 이즈나의 혈마법이 이런 역할을 해왔지만, 비교적 불완전하던 혈마법의 구속력에 더 이상 기댈 필요 없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진욱이 한마디 거들었다.
“설마 우리가 받은 이 그림자의 능력도 저런 효과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전혀 다르니까 괜한 걱정할 필요 없어. 마력을 받은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그렇긴 하지.”
양쪽 모두 성현의 그림자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느껴지는 마력의 기운부터가 달랐고, 거기엔 강제력의 유무에 대한 차이가 있었다.
국내의 협력 길드 측 헌터들이 받은 그림자들은 강제성을 띠진 않았다.
애당초 성현은 굳이 그들을 강제로 자신의 군단 아래 복속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중가서 싸워야 할 상대라면 그때 가서 쓰러뜨리면 그만이었고, 지금은 꼭두각시가 아닌 자체적으로 움직여 줄 협력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런 힘을 받은 건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나.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원.”
“나중에 잘 쓰고 반납하든가.”
피식 웃은 성현은 곧장 다음 장소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여기서 여유를 부리고 있기엔 곳곳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는 외국 길드는 아직 많았다.
성현과 태산 길드를 비롯한 한국 길드 연합은 퀘스트를 노리고서 외곽 지역을 들쑤시고 있는 헌터들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중이었다.
특히 성현은 자신의 그림자 군단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항복한 적대 헌터들을 우선적으로 굴려가며 적들을 무릎 꿇리고 있었다.
새로운 특성을 얻은 그는 언데드들을 불려나간 것처럼 헌터 세력 역시 고스란히 흡수해 버릴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식으로 비교적 작은 곳부터 외국 길드들을 하나둘 사냥해 나갔다.
“그럼 조금 더 속도를 내자고.”
파아아앗!
성현의 앞에 생겨난 커다란 포탈이 새로운 투항자들과 함께 그를 지역 너머로 보냈다.
* * *
후두두둑!
무너진 공장 건물의 잔해 사이.
전투가 끝난 뒤의 고요함 사이로, 성현이 걸터앉아 있었다.
곧이어 포탈과 함께 나타난 한승희가 그의 앞에 섰다.
“요란하게도 한바탕 하셨네.”
“이 녀석들이 하는 거에 비하면 요란한 것도 아니지.”
성현의 시선이 옆으로 휙 향했다.
쓰러진 외국 헌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성현이 직접 나서 홀로 모조리 쓸어버린 길드의 헌터들이었고, 모조리 기절까지만 시켜 두었다.
놈들이 공단을 점거하고서 벌이던 꼴을 직접 본 성현으로선 마음 같아선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악질들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 주면 그만이었다.
“다른 쪽 상황 파악은 좀 됐어?”
“그래, 온통 마비된 와중에 간신히 정보들을 긁어모았어.”
촤륵!
한승희는 성현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재난관리국과 흑련 길드에서 긁어모은 정보들이다.
급격한 사태에 더해 짧은 시간 안에 모은 것 치고는 상당한 양이었고, 전부터 돈을 투자해 가며 정보망을 펼쳐 둔 보람이 있었다.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도시나 시민들의 피해는 그리 크진 않더라고. 뭐, 그나마 다행이지.”
한승희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이번 사태는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전 지역에서 벌어진 상황에 시민들은 공포스러운 분위기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세력들이 아직 전면에 나서지 않고서 몸을 사리고 있는 덕에 시민들의 피해는 아주 크진 않았다.
혹시나 놈들이 나서 학살이라도 벌이면 어쩌나 싶었는데, 도시 한복판에서 날뛰어 대는 건 서브 퀘스트에 목숨을 걸고 있는 어중간한 세력의 외국 길드들뿐이었다.
그런 녀석들은 성현이 우선적으로 격파하는 중이었고.
특히나 그에겐 공간을 넘어 다닐 수 있는 포탈을 활용할 수 있는 덕에 지역을 막론하고서 사냥에 나설 수 있었다.
현재 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수도권과 충청 지역뿐만이 아니라, 한국 전역에서 날뛰는 길드들을 해치우고 있다는 것.
당장 성현이 서 있는 곳도 강원도 외곽 지역이었다.
“다만, 놈들도 우리의 움직임을 포착했어. 조금 더 신중하게 나설 생각인가 봐.”
유럽 길드 연합에선 이번 전투의 패배로 인해 꽤나 큰 피해를 입었다.
각 국가를 대표할 만한 주요 거대 길드들만 네 곳이 무너졌다.
물론 유럽 전체가 한데 뭉친 만큼 연합의 규모는 엄청났고, 전체에 비해선 큰 타격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거센 그들의 저항에 대한 소식을 접한 외국 길드들이었다.
한국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게 하루 이틀 만에 끝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서로 호시탐탐 뒤를 노리고 있는 타국 길드들의 존재까지 있으니 서두르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것.
때문에 북미, 유럽 등의 연합 세력들은 아예 지방에 터를 잡고서 세력을 펼치기 시작한 뒤, 서로 간의 눈치싸움도 벌어지고 있었다.
조금 더 신중한 접근법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지방 도시쪽 구역들을 차례차례 접수하고 있는 게, 누가 보면 자기들 나라인 줄 알겠네.”
“우선 각 지역의 7대 길드부터 완전히 잡을 생각인가 봐. 항복한 녀석들 말로는 퀘스트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고.”
외국 헌터들에게 7대 길드와 그를 이끄는 각 길드장들을 잡는 것은 거의 메인 퀘스트급 주요 목표였다.
그래서 한데 뭉친 수도권 지역보다는, 각 지방을 차지하고 있던 7대 길드부터 말려 죽이려 드는 것이다.
이대로는 그들의 저항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쩔 거야?”
“일단 각 지역에서 저항 중인 7대 길드 쪽과 연계할 필요성이 있겠어. 보상을 챙기면 곤란하니까.”
7대 길드를 무너뜨리고서 메인급 퀘스트를 깬다면, 큰 폭의 보상을 챙기며 적의 전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 뻔한 일.
놈들의 주요 목표들을 파악해 성장을 하지 못하게 틀어막고 차단해야 했다.
“마음 같아선 한 방에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성현은 뒷말을 잠시 삼켰다.
한국 안에서 제멋대로 들쑤시고 다니는 외국 헌터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불쾌했지만, 당장 외국 길드 모두와 동시에 맞붙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한줄기 생각이 번뜩였고 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
“왜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