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특성 개방 (4)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남자가 풀썩 쓰러졌다.
그러자 검을 든 한승희는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하아… 이게 대체 무슨…….”
그녀의 앞에 쓰러진 남자는 다름 아닌 나투랄 길드 측의 간부였다.
간부 중에서도 수뇌부급의 S급 헌터로, 방금 전까진 맞붙은 한승희를 가볍게 압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승희에게 목 부근을 깊숙이 베여 쓰러졌고, 꼼짝없이 시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상대가 발휘하는 붉은 힘으로 인해 열세에 처해 고전하던 그녀였지만, 성현의 등장으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움직임부터가 완전히 달라졌어. 그림자… 이게 정말 그 녀석의 능력이라는 건가?”
한승희는 우두커니 선 채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뿌연 안개처럼 생긴 검은 그림자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는 모습.
성현의 소환수들에게 주어지던 그 그림자와 똑같았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떠올라 있는 정체불명의 메시지들이 있었다.
[군단 강화 효과가 적용 중입니다!]
[추가 공격력 +37.2%]
[추가 방어력 +41.1%]
[생명력 +94%]
[재생력 +112.5%]
[상태이상 저항 +3.3%]
[힘 스탯 +245]
[민첩 스탯 +185]
[체력 스탯 +245]
[마력 스탯 +185]
.
.
.
“무슨 게임도 아니고…….”
한승희의 눈가가 길게 늘어졌다.
온갖 스탯과 부가특성들로 가득 차 있는 메시지 창.
헌터들이 시스템의 영향을 받긴 해도, 정확히 상태창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 성현뿐이었다.
때문에 이런 자세한 스탯들을 마주하던 건 그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메시지 속 수치들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헛것이 보인다기엔… 너무 확실히 체감이 된단 말이지.’
그녀는 이 검은 그림자를 받아들이자 급격히 자신의 능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이 메시지 속에 나타난 수치들과 상승폭이 거의 같게 느껴졌다.
그것도 눈에 보이는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듯, 엄청난 양의 상승폭이었다.
‘덕분에 흐름이 바뀌었어.’
한승희의 시선이 양옆으로 향했다.
양 연합의 헌터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 격렬한 전장, 일방적인 분위기 따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성현의 그림자로 인해 얻은 힘은 적들의 새로운 힘을 상쇄했다.
기존의 군단 강화 특성 정도였다면 저 붉은 힘의 상승폭을 상쇄하기엔 무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은 세 번째 가디언을 처치한 이후, 정수를 흡수하며 비약적인 상승이 있었고 어느 정도 상쇄하는 것이 가능했다.
거기다 그 순간, 새로운 포탈을 타고서 지하 던전에 있던 군단의 군주와 수하들이 쏟아졌다.
키이이이익!
“저, 저게 뭐야!”
“너무 많잖아!”
그림자 군단의 등장으로 완전히 뒤집힌 전장.
전세가 역전되며 유럽의 헌터들이 속수무책으로 쓸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군주들의 활약에 간부들 역시 하나둘 사냥당할 뿐이었다.
“좋아,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검을 바로 쥔 한승희는 곧장 반격에 나섰다.
엿을 먹은 만큼, 놈들에게 돌려줄 때였다.
* * *
‘이, 이런 젠장…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주변 상황을 마주한 미겔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돌아가는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림자의 힘을 업은 헌터와 몬스터 군단이 함께 들이 닥쳐오니, 그들로선 당해낼 수가 없었고 완전히 밀려나고 있었다.
붉은 힘을 얻은 그들로서는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야 할 상황이 뒤집혀 버린 것이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걸 봐선 초조한가 보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성현이 피식 웃었다.
군단 강화 효과를 모두와 공유하는 성현의 새로운 능력.
네크로맨서의 특성이 언데드가 된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그림자를 부여하는 것이 되다니.
새로운 특성의 효과에 성현 자신조차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하지만 혹시라도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값은 배로 치르고 가야 할 테니까.”
“이 건방진 놈이!”
콰아아앙!
미겔은 순식간에 발을 박차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변의 상황에 당황했다곤 해도 상대는 네크로맨서.
방심이라도 한 건지 검 한 자루만 쥐고 있을 뿐, 정작 주위엔 소환수 하나 세워두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네놈을 찾고 있었다! 네놈 하나만 잡으면 모든 게 해결돼!”
성현의 코앞에 들이닥친 미겔이 온 힘을 실어 검을 내려찍었다.
퀘스트를 깨면 그에 걸맞는 보상이 주어진다.
퀘스트 별로 주어지는 보상이 각기 다르긴 하지만, 성현을 잡는 퀘스트는 곁가지가 아닌 헌터들에게 주어진 핵심 퀘스트 중 하나였기에 그만큼 큰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불리해진 지금의 전황을 뒤집는 것 따윈 일도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그의 검은 가볍게 흘려지며 바닥으로 내리 찍혔다.
과한 힘이 들어간 검격을 성현은 마치 물 흐르듯 비껴낸 것이다.
그리곤 당황한 미겔이 몸을 미처 빼내기도 전에 반격을 가했다.
촤아아악!
“커억……!”
옆구리를 깊게 베인 미겔이 주르륵 옆으로 물러났다.
바닥까지 한 바퀴 구르며 간신히 몸을 빼냈지만 상처가 굉장히 깊었다.
벌어진 상처 사이로 붉은 피가 철철 쏟아져 내렸다.
“이, 이 새끼가……!”
이를 빠득 간 미겔이 검을 힘껏 쥐었다.
분명 성현은 미겔의 급소 부분을 정확히 가른 데다가 상처도 아주 깊었다.
보이는 대로 출혈도 심하고,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아야 정상인 상처 부위였다.
하지만 미겔은 붉은 기운의 힘으로 인간 헌터답지 않은 강인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고, 상처가 아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출혈량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성현은 그럴 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역시 그 힘 덕에 급소 몇 번으론 죽지도 않겠군. 하지만 그래 봐야 변하는 건 없을 거다.”
“닥쳐라!”
콰아아앙!
미겔이 힘차게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주변 거리를 요란하게 부수며 달려드는 그는 더욱 파괴적인 힘을 보이며 저돌적인 공세를 취했다.
마지막 남은 모든 힘을 짜내는 만큼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마주한 성현으로선 그저 마지막을 앞둔 발악처럼 우습게 느껴질 뿐이다.
[특성이 활성화 중입니다.]
[신검(S)]
S랭크의 검술 특성, 신검.
백룡의 진서연에게 검제라는 이명을 주고, 국내 최고의 S급 헌터 중 한 명으로 만들었던 원동력이다.
직접적으로 휘하에 있는 군단의 군주들뿐만 아니라, 그림자를 받은 헌터의 특성을 가져온 성현의 새로운 능력.
S급 최상위에 위치한 거물 헌터들의 정체성과도 같은 핵심 특성들을 성현은 입맛대로 골라올 수가 있었다.
‘젠장! 젠장!’
미겔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아무리 팔을 뻗어도 전혀 닿을 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격차.
세 번째 성소의 가디언을 처치하며 레벨이 훨씬 오른 성현이었고, 정수로 대폭 강화된 군단 특성 역시 스스로에게 적용이 되었다.
한마디로 성현은 엄청난 폭의 성장을 이루고 돌아온 셈이다.
물론 새로운 힘을 얻으며 훨씬 강해졌다 생각한 미겔로선 지금의 상황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네크로맨서 따위가 맨몸뚱이로 날 잡겠다고! 웃기지……!”
콰득!
“커억…?”
미겔의 몸뚱이가 우뚝 멈춰 섰다.
그의 검을 튕겨내며 심장 깊숙이 검을 꽂아 넣은 성현이 그와 눈을 마주했다.
“이… 이……!”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지 그래.”
성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심장을 꿰뚫려놓고서 피가 쏟아지는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촤아아아악!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반으로 쩍 갈라진 시체가 풀썩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주르륵 차오르는 메시지들.
성현은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고, 또 다시 훌쩍 뛰어오른 레벨을 볼 수 있었다.
‘473이라… 이제 곧 500이겠네.’
성현의 힘 스탯은 이미 1천을 넘어섰다.
군단 강화 효과까지 적용한다면 1,300대에 들어섰고, 다른 스탯들 역시 천은 가볍게 넘어섰다.
미겔처럼 붉은 힘을 취한 어지간한 S급의 헌터들조차 그의 맨몸을 당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럼 어디… 시험해 볼까.’
후우우웅!
성현의 손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뱀처럼 뻗어져 간 그의 그림자는 죽은 미겔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흘러들어갔던 그림자는 맥없이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역시 죽은 사람에겐 안 되는 건가.’
그림자를 회수한 성현이 입맛을 쩝 다셨다.
혹시나 싶어 시험해 봤지만 인간의 시체엔 여전히 그림자를 불어넣을 순 없었다.
“뭐, 아쉽긴 해도 그것까지 바라진 않아.”
성현의 시선이 주위로 돌아갔다.
그가 얻은 새로운 능력은 궁지에 몰렸던 기존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실제로 그의 등장 전까지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던 전장은 벌써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른 두 길드장은 이즈나와 로칸이 나서서 잘 처리한 모양이고. 사실상 싸움은 끝이네.’
이번 습격을 주도한 이들 중엔, 미겔을 제외하고도 유럽의 거대 길드를 이끄는 동급의 길드장이 두 명이 더 있었다.
그들은 성현을 대신해 군단의 군주들이 나서 사냥했고, 시체 꼴을 면치 못했다.
타악!
“후, 여기 있었구나.”
“이쪽도 싸움은 끝난 모양이군.”
그때, 한승희와 성찬일이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났다.
다른 간부들과의 싸움이 끝났는지, 핏자국이 묻어있는 둘은 모두 성현의 검은 그림자를 머금고 있었다.
“너 말야, 대체 이런 능력은 어디서 얻어온 거야?”
“설명하자면 길어. 그나저나 새로운 힘은 좀 어때?”
“놀랍더군. 종류는 다르다지만 외국 헌터들이 눈이 돌아가서 몰려든 이유를 알겠어.”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 성찬일에 성현은 피식 웃었다.
외부의 힘이라는 게 처음에야 꺼림칙하다곤 해도, 단 번에 주어진 강력한 힘은 힘이 전부인 헌터들의 탐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외국의 수많은 길드와 헌터들이 앞뒤 안 가리고 국내로 몰려든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남은 녀석들은 어떻게 할 거지? 싸움이 기울었다는 걸 놈들도 알아차렸는지 싸움을 포기하고 있는데.”
“모두 살려 둬. 기왕이면 저항하는 녀석들도 생포할 수 있으면 생포하고.”
“뭐? 저항하는 녀석들까지? 그냥 다 죽이는 편이 나을 텐데?”
한승희가 불쑥 끼어들며 말했다.
천하 길드와의 싸움은 대규모 전면전으로 인해 규모에 비해 금방 끝났다고는 했지만, 지금 그들의 상대는 길드 한두 곳이 아니었다.
싸움은 당연히 장기전이 될 테고, 워낙 숫자가 많으니 포로들의 관리도 어려울 것이다.
이지스가 아닌 다른 길드였다면 항복한 녀석들도 여지없이 죽여 버리는 게 정상일 상황에, 이해가 가지 않는 지시였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할 거 없어.”
성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가 얻은 새로운 특성의 능력은 아직 모두 드러난 게 아니었고, 다음 수를 위해선 오히려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알겠다. 전해 두지.”
한승희와 성찬일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성현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진 그들이었고, 길드장의 지시니 믿고 따를 뿐이었다.
두 간부는 지시사항의 전달을 위해 자리를 떴고, 성현은 잠깐 멈춰 선 채 숨을 돌렸다.
‘새삼스럽지만 꼴이 말도 아니네.’
자신의 차림을 내려다본 성현이 헛웃음을 삼켰다.
늪지대를 돌파한 뒤 가디언과 뒹굴고, 연달아 싸움을 벌여온 덕에 피범벅에 아주 엉망인 모습이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집에 돌아가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겐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몇 가지 남아 있었다.
“그럼… 다시 자리를 마련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