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특성 개방 (3)
콰아아앙!
“뭐, 뭐야!”
“꺄아아악!”
갑작스러운 폭발음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최근 급증한 고위 던전으로 인해 적잖은 피해가 발생한 만큼, 지레 겁을 먹고 대피한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대피 방송이 울려 퍼졌고, 시민들의 생각과는 다른 사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카아아앙!
“이… 이 새끼들이……!”
대낮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헌터들의 전투.
다수 길드의 헌터들이 사방에서 이지스 길드의 본사 건물을 향해 들이닥쳤다.
유럽 각국의 거대 길드들이 서울 중심부까지 치고 들어와 이지스 길드를 동시에 공격해 온 것이다.
“어서 막아!”
“발도 들이게 해선 안 돼!”
그러자 본사 건물 주위로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헌터들이 습격에 대응해 나서기 시작했다.
동맹 관계에 대한 회의 때문이라곤 해도, 이 건물 하나에 국내 대형 세력의 수장들이 대부분 모이게 되었고, 그 길드장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온 인원은 결코 적지 않았다.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의 숫자만 수백이 넘는 데다, 그 전력 역시 길드 내 정예로 상당한 고위 헌터들이다.
국내의 어지간한 길드들 정도야 이 인원으로도 간단히 밀어 버릴 수 있는 전력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콰아아앙!
“커헉……!”
붉은 기운을 머금은 헌터들은 성가신 방해꾼을 해치우고서 거침없이 길을 뚫었다.
사방에 훨씬 많은 인원이 다가오고 있긴 했지만, 당장 부딪힌 인원 자체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을 터.
구성원들 간의 힘의 격차가 이만큼이나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헌터들은 한 놈도 남겨 두지 마라.”
이번 습격을 주도한 유럽 굴지의 거대 길드는 총 세 곳.
나머지 길드는 해당 국가에선 최고 자리에 서지 못해 비교적 밀리는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퀘스트의 선택을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들 모두 결코 작은 세력은 아니었다.
길드장과 수뇌부들이 최소 S급 이상에 상당한 규모가 뒷받침되어서야 시스템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들이 붉은 힘까지 얻은 채 몰려오고 있는 만큼 쉽게 상대가 가능할 리 없었고.
하필이면 국내의 최대 전력인 성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진 대대적인 습격이라 대응이 불가능했다.
놈들은 순식간에 바깥의 헌터들을 쓰러뜨리고, 정문을 박살 내고서 건물 안까지 밀고 들어왔다.
콰직!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선 헌터의 몸뚱이가 붕 떠오르며 바깥으로 나뒹굴었다.
“이것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한승희가 주먹을 털면서 밖으로 나왔다.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던 헌터들은 멈칫 멈춰 서고 말았다.
한승희뿐 아니라 이지스의 성찬일 외 회의 중에 있던 이들도 모두 지금의 상황을 눈치채고서 무기를 챙겨 들고 나온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힘을 얻었다고는 해도, 거대 길드의 길드장과 수뇌부들 앞에서 덤벼 봐야 개죽음만 당할 뿐이라는 걸 그들도 모를 리 없었다.
터억!
“저기 나타났군.”
허나 그렇게 잠시 멈춰 선 사이, 유럽 헌터들 틈 속에서도 수뇌부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양측 S급 헌터들이 나타나자, 평길드원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났고 주변에 흐르는 기류부터가 달라졌다.
“저쪽도 주요 길드장은 세 명이군, 놈들은 우리가 맡겠다.”
“그래. 가급적이면 살아서 보자고.”
유호준과 한승희가 말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협상의 여지 따위는 없고, 결론이 나기 위해선 한쪽이 쓰러지는 것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상황.
괜한 대화 따위는 없었다.
살벌한 분위기 속, 누군가가 내딛은 발소리를 시작으로 양측의 헌터들이 움직였다.
콰과과과광!
요란한 충격과 함께 입구 쪽 기둥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쏟아지는 잔해들 사이로 헌터들이 흩어지며 맞부딪혔고, 개중엔 발길질에 얻어맞아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간 이가 있었다.
쿠웅!
스페인 최대 길드인 나투랄의 길드장, 미겔.
그는 자신의 앞에 선 검제 진서연과 마주했다.
“백룡의 길드장이군. 겨우 혼자서 날 상대할 수 있겠나?”
“다물어!”
카아아앙!
서로의 검이 거세게 맞부딪히며 소리를 토해 냈다.
순수 검술에 특화된 진서연의 검 솜씨는 매우 날카로웠고, 맞붙은 미겔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 따지기엔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스펙이 문제였다.
힘과 속도 양쪽 모두 따라잡기가 버거울 정도였고, 미겔은 더없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몰아붙였다.
“너희가 이마즈 놈을 제거해 준 덕에 본국으로 돌아간 뒤의 일이 수월해졌다. 도태된 헌터들 치고는 기대 이상이야. 하지만 너희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제 치워질 시간이거든.”
츠츠츠츳!
미겔의 몸 주위로 심상치 않은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흐르고 있는 붉은 기운도, 마법을 위한 마력도 아니었다.
콰과과과광!
미겔의 검이 휘둘러짐과 함께 전방이 통째로 휩쓸려 나갔다.
빌딩이 뻥 뚫려 버렸고, 누가 보면 검을 휘두른 게 아니라 거대한 대포라도 쏜 듯한 모양새였다.
타국의 헌터인 탓에 그녀로선 완전히 처음 보는 특성이었고, 조금만 반응이 늦었더라면 당할 뻔했다.
“크윽…….”
진서연의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대부분의 충격을 피하고 공격을 옆으로 흘려 냈음에도, 어깨에 굉장히 무리가 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칠 상대가 아니었다.
쩌어어엉!
몰아붙이는 공격을 한 번 막아 낼 때마다 팔이 덜덜 떨려 왔다.
치명상을 간신히 피해 가며 공격을 최대한 흘렸지만, 얕긴 해도 점점 늘어 가는 상처는 그녀의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네놈들의 수장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뭐하는 거지!”
“감히 내 위에 있을 헌터 따윈 없어!”
핀트에 몰린 와중, 순간의 빈틈을 노린 진서연의 검격이 매섭게 휘둘러졌다.
그녀의 날카로운 칼놀림에 미겔은 순간이나마 급히 방어를 취해야 했고, 그조차 두 발자국 이상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제법이긴 하다만… 시스템에 버림받은 이상 아무짝에 소용없는 발버둥일 뿐이다. 괜한 발악하지 말고 죽어라.”
‘젠장, 역시 나 혼자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멀쩡히 다가오는 미겔의 모습에 진서연이 입술을 잘근 물었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았음에도 제대로 상처조차 내지 못하고 끝이 나 버린 상황.
렙솔 길드의 길드장 이마즈와 싸웠을 때만 하더라도, 태산의 길드장인 김진욱과 함께 동시에 달려들었음에도 벅찼던 상대다.
하지만 다른 이의 지원을 바라기도 어려웠다.
김진욱과 유호준을 비롯해 다른 쪽 역시 그녀 못지않게 고전 중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적들과 부딪힌 한국 측 길드의 길드장과 수뇌부들은 이곳에서 궤멸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역시 저 붉은 힘의 존재가 있는 이상, 아무것도 주어진 게 없는 그들에게 승산이란 없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그 순간.
그들의 머리 위로 커다란 공간의 균열이 생겨났다.
“키이이이익!”
쩌렁쩌렁 울리는 비룡 군주의 울음소리.
커다란 덩치의 와이번이 포탈을 통해 빠져나왔고, 전장의 한복판에 쿵 소리를 내며 착지했다.
“뭐… 뭐야?”
“녀석이다!”
갑자기 등장한 커다란 보스 몬스터의 등장에 당황한 유럽의 헌터들.
하지만 국내의 헌터들은 녀석의 존재를 곧바로 알아챘다.
“하, 이제야 나타난 거야?”
타악!
안타라스의 등 뒤에서 성현이 바닥으로 내려섰다.
나투랄의 최고 간부와 싸우고 있던 한승희의 바로 앞에 선 성현은 그녀와 마주하였다.
하지만 반가움에 그에게 다가오던 한승희는 순간 멈춰섰다.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멈칫한 한승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옷이 온통 찢어져 피투성이에 엉망인 성현의 모습.
포션을 잔뜩 쏟아부어 몸에 생긴 상처는 대부분 아물긴 했지만, 얼핏 보면 시체가 넘어온 줄 알 정도의 몰골이었다.
“너,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방법을 찾으러
“아니… 그 모습으로 제대로 싸울 순 있겠어?”
열세인 전투에서 구르느라 자신도 상처투성이긴 했지만, 성현의 꼴은 자기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실제로도 방금 전까지 치른 전투에서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 성현이었고, 이 많은 적을 혼자 상대해 내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싸워 줘야지.”
성현이 씩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그림자를 뻗었고, 사방으로 퍼져나간 그림자들이 검게 드리워졌다.
후우우우웅!
“소환수들을 부르는 건가!”
“다들 바닥을 조심……!”
“아니. 틀렸어.”
그가 그림자를 뻗은 이유는 군단을 소환해 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뻗어진 그림자들은 이리저리 찢어져, 헌터들에게 흘러 들어갔다.
“이… 이건?”
모든 한국 헌터들의 몸에서 풍기게 된 검은 기운들.
세 번째 가디언을 처치하고 돌아온 성현의 새로운 S랭크 특성, ‘그림자 전이’였다.
[당신은 그림자를 받아들였습니다! 군단 강화 효과가 적용됩니다!]
* * *
카아아아앙!
잠깐 멈춰 섰던 진서연과 미겔의 전투는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가……!’
공세를 받아 내고 있는 미겔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진서연은 순식간에 달라진 몸놀림으로 그를 압박했고, 미겔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우위에 서 있었다.
진서연의 몸에 흐르고 있는 검은 그림자의 기운.
이것이 전투의 양상을 완전히 뒤바꾼 원인이었다.
세 번째 가디언을 처치한 성현은 퀘스트를 클리어해 내며 새로운 특성을 획득하였다.
그 결과 얻은 새로운 능력이 바로 그림자 전이(S)였다.
원래 시체에게나 그림자를 주입하는 게 가능했지만, 그의 새로운 특성은 모든 한국 측 헌터에게 그림자를 부여받게 만들었다.
그렇게 건네받은 그림자는 모든 헌터에게 ‘군단 강화 버프’를 안겨 주었다.
성현은 세 번째 가디언을 처치하며 완전한 정수를 획득했고.
군단 강화 특성의 각 수치들은 여태껏 얻은 정수들 중에서도 가장 큰 폭으로 오르며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효과를 내게 되었다.
외국 헌터들에게만 주어졌던 외부 힘의 공백이, 한국 헌터들에겐 성현의 그림자로서 메꿔지게 된 것이다.
“좋아, 이대로 반격해!”
“건방진 놈들, 다 쓸어 버려!”
덕분에 모든 전황이 일순간에 뒤집히게 되었고,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던 싸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카아앙!
‘큭… 젠장! 아까 벌어진 상처가……!’
다만 진서연의 경우는 그림자를 얻기 전에 생겼던 상처들이 점점 벌어지고 있었고.
전투 중 치명적인 빈틈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면 그렇지! 바로 끝을 내 주마!”
그 틈을 노리고서 달려드는 미겔이 진서연의 목을 향해 검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난 성현의 등장.
미겔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봐, 저 녀석은 내가…….”
“됐으니까 물러서 있어.”
스릉!
성현은 발을 내딛으며 앞장섰다.
검을 뽑으며 다가오는 것뿐인데도, 다른 헌터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의 기백에 미겔이 순간 움찔할 정도였다.
“대신 그림자는 좀 빌린다.”
[군주, ‘진서연’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신검(S)’ 특성이 활성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