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39화 (139/202)

139화 폭풍 속으로

성현을 습격했던 일섬 길드의 헌터들이 모두 제압당하고, 던전 폐쇄와 뒷수습을 위한 직원들까지 그들에게 합류하며 싸움은 완전히 끝이 났다.

메이트리아와 벤시 역시 임무를 다하고 나자 던전으로 되돌아갔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만… 마지막 힘이 남아 있었나.”

성현은 눈앞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일섬의 길드장의 시체가 핏자국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성현은 자리에서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봐, 아까 저 녀석이 뭐라고 했던 거야?”

터덜터덜 다가온 한승희가 성현에게 물었다.

다른 길드원들의 뒷처리를 하느라 미처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일섬의 길드장과 이야기를 나눈 이후, 성현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슬쩍 고개를 든 성현은 한승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 말야, 혹시 시스템이 주는 퀘스트에 대해 알고 있어?

“뭐……? 퀘스트? 가끔씩 잠적하더니만 무슨 게임이라도 시작했어?”

“역시 너희한텐 나타나지 않았나 보네. 하기야 국내 헌터들에게도 발생이 됐다면 진즉에 알려졌겠지.”

“아까부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스템상 주어지는 퀘스트의 존재.

성현이 지니고 있는 상태창 특성 덕분에 생겨나는 효과 중 하나였고, 다른 헌터들에겐 당연하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사실이 오늘에 와서는 흔들렸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나타난 ‘퀘스트’가 소수의 인원이 아닌 일섬 길드의 모든 인원에게 주어졌다고 했다.

그것도 한국의 성현을 죽이라는 내용의 퀘스트가 말이다

파악된 움직임을 보아, 이는 일섬 길드뿐만 아니라 S급 헌터가 이끄는 주요 길드들에겐 대부분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했다.

일섬 길드가 서둘러 움직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성현을 죽이는 것만이 퀘스트의 목표는 아니었고, 다른 길드에서 동시에 발생한 다른 퀘스트나 부분 목표들을 해치우는 동안, 메인 목표인 성현을 해치우려 했다.

한마디로 욕심을 냈던 것이다.

곁가지로 주어졌던 몇몇 서브 퀘스트를 통해 퀘스트의 보상 수준이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일섬 길드의 헌터들이었고.

가장 큰 보상을 먼저 챙기며 경쟁에서 앞서가, 일본 내에서 비교적 약세에 판도상 위태로웠던 일섬 길드를 이번 도박을 통해 최고로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물론 그의 전략은 철저히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덕분에 성현은 바깥에서의 상황을 깨닫게 되었다.

“그, 그게 정말이라고?”

그리고 성현에게서 그 모든 설명을 들은 한승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퀘스트라니……. 바깥에선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단 말이야? 어딘가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 수준이었지, 그 이상의 건 없었는데.”

흑련이나 재난관리국의 정보망이 해외에도 어느 정도 펼쳐져 있었음에도 혼란을 틈타 들키지 않게 움직인 저들의 움직임이다.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이미 전 세계에서 패권 다툼을 벌여오던 거대 세력들답게 일처리 솜씨도 정교했고, 그들에게 암투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거대한 규모를 믿고서 무식하게 숫자로 밀고 들어오던 천하 길드와는 여러모로 달랐다.

“하기야… 웬 오라클의 첩자 녀석이 네 주위를 집적거리던 것도 그 퀘스트인지 뭔지 때문이겠네. 그런데 너 혼자 가지고 있던 능력이 갑자기 왜 다른 녀석들에게까지 튀어나왔는지는 모르는 거지?”

“퀘스트를 직접 받은 일섬의 길드원들도 그런 게 생겨났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원리나 사정 같은 건 전혀 모르고 있었어.”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디언과 지하 던전의 존재를 알고 있는 성현으로서도 파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 모든 헌터들에게 상태창과 관련된 특성이 추가된 건 아닐 테고, 시스템이 독자적으로 저들에게 적용시켰다고 보여졌다.

‘일단 시스템 자체가 날 적대시할 리는 없어. 날 죽이고 싶었다면야 헌터로 각성시키고 이런 힘을 쥐어 줬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날 노리고 있다는 건너편의 존재가 시스템에 일부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건가?’

성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살짝 부여잡았다.

남자에게 진실을 듣고 났음에도 오히려 더욱 복잡해진 머릿속이다.

“네가 말한 퀘스트라는 게 큰 영향을 미칠까?”

“아마도. 내 성장 속도가 이만큼 빠를 수 있던 건 퀘스트의 영향도 굉장히 컸으니까. 물론 온전히 퀘스트 때문에 이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하, 뭐 좋아. 퀘스트라는 게 왜 생겨났는 지는 일단 뒤로 제쳐두고. 어쨌든 시스템이 보상을 미끼로 널 죽이라고 시킨다는 거 아니야. 보상에 눈이 돌아간 외국의 헌터들이 잔뜩 달려들 테고.”

“…그렇지.”

“그럼 간단하게 생각하자고. 그 눈 돌아간 놈들을 건너오는 족족 다 박살 내면 그만 아냐?”

“하지만 한두 명이 아니니 문제지.”

한국은 인구 대비 S급 헌터 비율이 상당히 높은 편이었고, 실제 헌터 길드들의 전력도 상당한 편이었다.

외부의 개입을 번번이 막아 내고서 오랫동안 자체적인 시스템을 갖춰 올 수 있던 이유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외국 전체로 따지면 아예 비교가 불가능했다.

심지어 미지의 힘을 얻으며 더 강해졌을 S랭크 헌터들의 존재.

지금 덤벼든 일섬의 길드장이야 백귀야행 특성을 끌어오는 것 정도만으로도 충분했지만, 만약 오라클이나 그에 준하는 세계구급 거대 길드장들이 붉은 힘까지 손에 넣었다면 절대 싸움이 쉽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이 붉은 힘까지 손에 넣었다면 솔직히 말해서 지금 내가 지닌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날 노릴 녀석이 한두 명도 아니니까. 게다가 놈들이 국내를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 퀘스트 보상으로 더 강해질 것까지 생각한다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는 예전부터 퀘스트를 받아왔다며?”

한승희가 이해 안 간다는 듯 말했다.

“지금은 주어진 퀘스트가 없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시스템상 퀘스트를 받고서 너를 죽이려는 녀석들이 있으니, 그럼 당연히 그놈들을 죽이라는 퀘스트도 주어질 거 아니야? 오히려 상대가 많으니 퀘스트로 챙길 수 있는 보상도 더 많겠네.”

“뭐?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주어질 리가…….”

한승희의 말에 성현이 난색을 표했다.

상태창으로 주어지는 퀘스트는 따로 주기가 있다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대 존재의 시스템 개입마저 의심되는 상황에, 그렇게 단순한 생각대로 움직여 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귀에 익은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번쩍 떠올랐다.

띠링!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하……?”

성현은 멍하니 메시지를 바라봤다.

* * *

충청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국내의 길드는 ‘유성’이었다.

현존 7대 길드의 일원이자, 길드장 유호준이 이끌고 있는 강력한 세력이다.

하지만 그들도 이번 사태로 인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다.

화르르륵!

완전히 난장판이 된 거리, 수 명의 헌터들이 그을린 거리를 걸었다.

“의심 가는 놈들은 다 죽여 버려. 최대한 혼란을 줘야 길드 놈들이 제대로 반응 못 하니까.”

“그런데 굳이 우리가 숟가락을 올릴 것도 없이, 이미 상황은 다 끝난 것 같은데?”

남자들이 킥킥거리며 떠들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유성 길드의 구역인 이 곳 도심 지역이 반폐허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대대적인 습격이 벌어지며 유성 길드는 충청 지역의 주도권을 빠르게 빼앗기고 있었다.

이건 일반적인 길드 대 길드의 싸움이 아니었다.

다국적 용병 길드 ‘블랙록’이 유성 길드와 전면전을 치르는 사이.

비교적 규모가 떨어지는 해외 길드들이 싸움에 동참하며 유성 길드의 구역 곳곳을 찌르며 난동을 피웠다.

세계 곳곳에 위치한 수십여 곳의 길드.

이들 중 대부분은 그동안 교류가 있던 것도 아니고, 어떠한 이해관계도 전혀 없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이 한꺼번에 뭉치며 공동으로 움직일 수 있던 이유는 바로 ‘퀘스트’의 존재였다.

막대한 보상이 약속된 시스템의 퀘스트를 받은 수 십 여곳의 해외 길드들이 일제히 충청 지역의 점령에 나선 것이었다.

그나마 국내로 밀고 들어오고 있는 해외 헌터 길드들에 비하면 지금 퀘스트를 받고서 싸움에 끼어들은 길드 수십여 곳 정도야 우스운 수준이다.

하지만 유성 길드 혼자선 강력한 블랙록 길드와의 전면전 하나만으로도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온 구역에 들이닥쳐 난리를 쳐대는 해외 길드들의 존재는 당연히 큰 문제를 낳았다.

“흑… 흐읍…….”

거리의 구석에 숨은 여성이 벌벌 떨며 입을 틀어막았다.

쑥대밭이 된 건물 앞 잔해 사이엔, 헌터도 아닌 일반 시민들의 시체가 한 무더기 쌓여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시체들과 뒤엉킨 여자의 몸이 덜덜 떨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 벌어진 상황.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평범한 일상이 이어져 왔지만, 그러한 일상은 한순간에 깨져 버렸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해외의 헌터들은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민간인을 상대로 끔찍한 테러를 벌였다.

대부분의 헌터가 자국의 비각성자도 거슬린다면 거리낌 없이 베어 버리는 이들이었는데, 해외의 민간인들을 상대로야 제동 장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유성을 비롯한 국내의 거대 길드들은 좋든 싫든 어느 정도 국내 여론의 눈치를 보고, 치안과 법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부분의 헌터들이 제 잘난 맛에 살며 갑질을 한다 해도, 살아가는 터전임은 일반인과 똑같았다.

하지만 타국의 헌터들에겐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 도시들이 쑥대밭이 되든 말든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

주어진 퀘스트로 최대한 뽕이나 뽑고서 자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일 뿐.

‘이, 일단.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해…….’

숨을 죽인 여자의 눈동자가 이러 저리 돌아갔다.

건물을 통째로 무너뜨려 버린 해외 헌터들의 만행.

방금 벌어진 일들을 직접 목격한 그녀였기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유성 길드의 헌터들에게 합류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탈출을 해야 했다.

‘큽… 아, 안 돼.’

하지만 일반인인 그녀로선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세한 떨림을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떨림은 고위 헌터들의 감각을 피할 수 없었다.

“하, 찾았다.”

“꺄아아악!”

쿠당탕!

순식간에 끌어올려진 여자의 몸뚱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인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여자였고,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그를 둘러쌌다.

“사, 살려 주세요!”

“이 여자, 뭐라는 거야?”

“몰라.”

킥킥 웃는 헌터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누가 봐도 유성 길드에 관련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저들은 그녀를 그냥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헌터가 칼날을 여자의 목으로 서서히 들이밀던 순간.

공간의 균열이 번쩍하고 열리더니, 새까만 그림자가 순식간에 주위로 들어찼다.

콰아아아앙!

“컥……!”

“뭐, 뭐야!”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 동료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뒤로 돌아갔다.

그러자 그곳엔 공간에 열린 거대한 포탈의 존재와. 성현이 그림자 군단과 함께 서 있었다.

“저, 저게 무슨!”

“젠장, 빨리 길드원들을 불……!”

콰직!

순식간에 다가선 성현은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던 무전기를 박살 내었다.

살벌한 성현의 눈앞에 헌터들은 그 자리에 뻣뻣이 굳고 말았다.

“그럴 것 없어. 알아서 모여 주지 않아도, 내가 직접 사냥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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