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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37화 (137/202)

137화 실마리 (3)

복잡한 심문 과정을 생략하고서 본론으로 넘어갔다.

네이아의 정신 지배 마법에 당한 남자는 꾹 닫고 있던 입을 열고서 성현이 던지는 질문들에 답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외국 길드 소속의 헌터인 건 맞았다.

하지만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길드의 이름만큼은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뭐, 뭐라고? 네가 오라클 길드의 소속이란 말이야?”

옆에 서 있던 한승희가 화들짝 놀라며 반응했다.

흐리멍텅한 표정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네, 맞습니다.”

“오라클이라면…….”

성현은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외국 길드라 한들 헌터라면 도저히 이름을 못 들어 볼 수가 없는 이름.

미국 서부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강대한 거대 길드다.

무시무시한 헌터 전력들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한 데다, 길드장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였다.

당연히 천하 길드보다도 전력상 훨씬 위였고, 이지스라는 새로운 변수를 뺀다면 한국을 통째로 뒤흔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럼 국내로 들어온 오라클의 길드원은 너 하나뿐인가?”

“서울엔 저 하나뿐입니다.”

“서울에는… 이라고? 그렇다면 다른 지역엔 더 들어와 있다는 거야?”

“네. 최소 백여 명 이상의 인원입니다.”

남자가 어눌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정신 지배를 당한 탓에 다소 느릿한 대답을 듣는 동안에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거짓을 섞을 수도 있는 고문이나 대부분의 심문 과정과는 달리, 여기서의 대답은 온전히 진실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한승희의 표정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녀석이 쓴 마법, 확실한 거 맞아?”

“정신 지배가 된 건 확실해.”

네이아를 힐끔 쳐다본 한승희의 시선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법의 시전자가 완전히 경험이 없는 초짜가 아닌 이상, 상대가 마법에 걸린 건지 아닌 건지 구별도 못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리치 종족인 그녀는 인간으로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마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다.

“그렇다면 너희 길드에서 뭘 원하길래 갑자기 한국에 들어와 수작을 벌이는 거지?”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저같이 잠행 임무를 맡는 길드원에게 전체 계획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진 않습니다. 단지 길드에선 먼저 수를 쓰진 말라고 당부했을 뿐. 최대한 마찰을 피하고 조용히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이 제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남자가 멍하니 말들을 이어갔고, 성현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오라클은 확장에 적극적인 길드는 아니었다.

분명 그들의 힘 자체는 원한다면 세계 곳곳의 국가들을 집어삼킨 뒤 제뜻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외적인 일엔 언제나 소극적으로 움직였다.

오라클은 거대한 세력권에 비해 인원이 적고 높은 전력을 갖춘 정예를 추구하는 편이었고, 때문에 무리하게 해외로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마디로 미국 밖의 일에선 확실한 이득이 있어야 움직일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의외였다.

‘거기다 나에게만 미행을 붙인 것도 그렇고, 놈들이 나한테 대체 뭘 원하고 접근하는 거지?’

네다섯 명 정도라면 새로운 길드에 대한 정보 수집 명목으로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가 말했듯 백여 명에 가까운 숫자라면 어떤 종류로든 국내에 개입을 해오려는 게 분명했다.

“혹시 그동안 특별히 수상한 낌새가 있었다 거나, 보고가 들어온 게 있었어?”

“아니, 수도권 바깥의 정보는 아무래도 다른 7대 길드가 꽉 쥐고 있다 보니 충분치 않아. 다른 지역의 길드들에게 연락을 넣어 볼까?”

“그래, 부탁할게. 그편이 가장 낫겠지.”

한승희의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난관리국에서 수도권의 국제 항공편들은 확실히 통제를 하고 있었고, 항구도 천하 길드에 한번 당한 백룡 길드가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외국 길드가 그들의 눈을 피해 국내로 들이닥치려면, 다른 지방을 통해 들어오는 것뿐.

다만 국내 최대의 세력으로 급부상한 이지스에 대해, 지방의 7대 길드들은 극도로 경계하며 견제가 심한 편이라 흑련이나 재난관리국도 정보를 얻기 위해 활동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외국 길드에 대한 문제니까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협조를 해주겠지. 국내 세력끼리 아웅다웅하다 공멸당하긴 싫을 테니까.’

용건이 모두 끝이 났고, 네이아를 역소환시킨 성현은 한승희와 함께 던전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번 사태로 인해 벌어진 혼란으로 인해, 아직 던전을 폐쇄할 길드의 인력조차 도착하지 않은 상태.

그래도 성현이 정신없이 뛰어다닌 덕에, 수도권 내 모든 고위 던전들의 공략이 끝이 났으니 빠르게 수습이 될 것이다.

“그럼 이 녀석은 내가 데려간다. 곧 정신 지배도 풀릴 녀석이니까. 확실하게 가둬 두겠어.”

“그래. 나는 남은 던전이 없는지 마저 둘러보고 갈게.”

“알았어.”

한승희는 축 쳐져 있는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서 질질 끌고 나왔다.

정신 지배야 조금 있으면 풀릴 테니, S급 헌터의 눈조차 속일 수 있는 그의 처분은 확실히 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를 질질 끌고서 길드에 데려가려던 찰나.

콰아아앙!

“뭣……?”

난데없이 일어난 폭발에 한승희가 급히 물러섰다.

다른 쪽으로 갈라지려던 성현의 시선 역시 그 폭발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이미 대피령이 떨어져 인적 하나 없던 길목에서, 그들의 주위로 회색 코트 차림의 헌터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것들은 또 뭐야? 설마 동료를 구출하러 온 건가?”

붙들린 남자를 슬쩍 들어 올린 한승희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마저 다 끝마쳐지기도 전.

피융!

그녀를 향해 예리한 화살이 날아들었다.

보통 헌터의 것이 아닌 강력한 화살의 위력이 파공음만으로 느껴졌고, 그녀는 살짝 옆으로 몸을 빼내며 화살을 피했다.

“뭐야, 이 자식들. 동료가 아닌 건가?”

방금의 저 화살은 누가 봐도 붙잡힌 남자를 자신과 함께 꿰뚫어 버릴 심산이었다.

동료는커녕 어찌 되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한 놈들의 행동.

“얼굴도 죄다 가린 탓에 보이질 않네.”

하나같이 복면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헌터들의 모습에 한승희가 중얼거렸다.

당장 모습을 드러낸 수십여 명의 헌터들을 제외하고도, 주위로 기척들이 한가득 느껴졌다.

최소 수백여 명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한승희는 피식 입가를 말아 올렸다.

“미안하지만 너흰 상대를 잘못 골랐어.”

콰아아앙!

곧이어 발생한 요란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잔뜩 피어올랐다.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 사이로, 달려든 성현은 헌터 수십여 명이 올라서 있던 옥상 바닥을 통째로 쪼개 버렸다.

우르르 무너지는 바닥 사이로, 당황한 헌터들이 빠져나가려 했지만 성현은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퍼억!

“커헉……!”

균형을 잃은 헌터들을 향해 순식간에 다가선 성현이 하나둘 사냥해나가기 시작했다.

굳이 검을 휘두를 것도 없이, 주먹과 발길질 한 방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물론 다른 헌터들이 합세해 그런 성현을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세계 유일의 S급 네크로맨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고, 감히 그를 상대로 수적 우위를 점할 순 없었다.

카가가가각!

섬뜩한 검은 낫이 휘둘러지며 바닥을 갈라 놓은 군주 ‘메이트리아’.

그녀의 주위로 천이 넘는 숫자의 밴시들이 솟구쳐 올랐다.

“이… 이건!”

키이이이익!

밴시들은 주위를 둘러쌌던 헌터들을 역으로 사냥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현을 노리고 왔던 만큼 아무런 대비 없이 찾아온 게 아니었고, 헌터들은 즉각 반격에 나서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곳에 있는 수백이 넘는 인원이 전부 최소 A랭크 헌터 이상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장 이곳의 인원만으로 어지간한 국내의 대형 길드들은 동원하지도 못할 전력이라는 뜻이다.

“끄아아악!”

하지만 그래 봐야 과정의 차이일 뿐,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다.

헌터들이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남자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다들 뭣들 하는 거냐! 이런 몬스터들 따위는……!”

“여깄군.”

콰아아앙!

“컥……!”

남자는 머리부터 그대로 바닥에 내다꽂혔다.

고위 헌터답게 그 정도로는 머리가 박살 나진 않았지만, 성현은 그의 머리를 쥔 채 놓아주지 않았고.

붙잡힌 남자는 압도적인 완력의 차이 앞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청성이나 화신 길드의 패잔병들이야 이미 정리된 지 오래고. 외국 길드인 것 같은데 국내에서 이 정도 인원을 동원하다니, 평범한 길드 같진 않아. 너흰 또 뭐 하는 놈들이지?”

“크헉……!”

목을 붙잡힌 남자가 붕 떠오른 채 버둥거렸다.

주변 길드원들은 벤시들에게 휩쓸리고 있었고,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순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입을 열진 않았다.

“이런 가면 같은 것도 단체로 써오고. 날 제거하려고 단단히 준비를 해온 모양인데. 말하지 않겠다면 직접 알아내 주겠어.”

성현은 우선 남자의 가면을 벗기려 팔을 뻗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현은 등 뒤에서 매서운 기척이 다가오는 걸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였다.

카아아앙!

성현이 날아든 칼날을 등을 돌려 가뿐히 받아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곧바로 이어지는 검격이 성현을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고, 그 틈을 틈타 붙잡혔던 길드원을 빼냈다.

“방금은 제법이네.”

성현은 자신의 앞에 선 녹색 가면의 남자를 마주했다.

비슷한 모양새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나타난 다른 헌터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 차림새였다.

하지만 방금 실린 힘으로 보아 최소 S랭크 대의 헌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가 이 녀석들의 수장인가?”

“그래, 맞다.”

가면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문대로 뛰어나군. 한국의 양대 길드를 무너뜨리고, 천하 길드마저 무릎 꿇렸다는 자다워.”

외국에서 온 헌터답게 남자는 영어를 내뱉으며 말했다.

하지만 어딘가 말투가 어설픈 게 느껴졌다.

방금까지 심문했던 녀석과는 확연히 다른 게, 오라클과 같은 미국 쪽 헌터들은 확실히 아니었다.

“해외의 헌터들에게 원수질 만한 일들을 하고 다닌 것 같진 않은데, 날 제거하기 위해 이 정도 인원을 대동할 이유가 있나? 아니, 그 이전에 너흰 어디서 온 거지?”

“굳이 그런 걸 알려 들 필요는 없다. 어차피 넌 이 자리에서 제거당할 테니까. 뭣보다 네놈들의 영역 한복판에서 시간을 질질 끌려 줄 순 없지.”

“…네 힘으로 날 제거하겠다고?”

“그래, 여긴 네놈의 무덤이 될 거다.”

츠츠츠츠츳!

검을 치켜든 남자의 몸 주위로 붉은 기운이 일렁거렸다.

그러자 그를 본 성현의 두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이… 이건……?”

처음 본 광경이라기엔 익숙한 감각과 기운.

성현은 발현된 불길한 힘의 정체를 곧장 알아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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