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실마리
“크아아아아!”
쩌렁쩌렁 울리는 바르고스의 포효가 던전을 뒤흔들었다.
성현의 칼날에 발린 맹독의 효과가 발휘되었다.
인간의 솜씨론 흉내도 내지 못할 고도로 발전한 뱀파이어 혈족의 연금술이다.
그것도 던전의 최상급 재료들을 쏟아부어 제조한 포션이나 독 중에서도 최상품만을 추려서 성현에게 주어진다.
거기다 독의 효과는 단순히 피해를 입히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성현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주 다양한 맹독을 지니고 있었고, 움직임을 둔화 효과에 저항력을 감소시키는 약화 등.
수많은 디버프를 바르고스에게 안겨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촤아아악!
비대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는 덕에 마음껏 베며 독을 먹여 줄 수 있었다.
녀석은 저주 마법에 대한 저항을 가진 것이었지, 모든 상태 이상에 면역인 것은 아니었다.
바르고스에게 상태 이상의 효과가 하나둘 나타났고, 분명한 독의 대미지가 들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바르고스도 접근한 성현을 마냥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건방진 놈! 아무리 발버둥 쳐 봐야 죽음을 피할 순 없다!”
후두두둑!
바르고스의 살점들이 빠르게 부패하더니 주위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곤 부글거리던 살점들은 뭉치더니 수백여 마리의 악마종들이 되어 움직였다.
하지만 놈들이 성현을 향해 달려드려는 순간, 로칸과 카론이 난입해 악마종들을 빠르게 해치워 나갔다.
그사이, 성현은 코앞에서 촘촘하게 뻗어지는 촉수들을 헤치고 바르고스에게 더 많은 상처를 누적시켰다.
때려 넣을 수 있는 모든 상태 이상을 놈에게 먹이고, 독의 피해가 누적되며 곳곳에 중독의 증세가 보였다.
버티기조차 어려웠던 놈의 전투력을 저하시키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하지만 성현은 긴장의 끈을 조금도 풀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상황을 끝낼 수 없어. 더 결정적인 게 필요하다.’
바르고스의 생명력은 보통이 아니었고, 고작 독 묻은 검에 수십여 번 베인다고 한들 죽을 만한 녀석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방팔방에서 날아드는 놈의 괴랄한 공격들도 여전했다.
뭔가 결정적인 수가 없다면 체력이 깎아먹힐 뿐, 제시간에 싸움을 결판낼 수 없었다.
[군주, 카론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매의 눈’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보인다……!’
성현의 왼쪽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안을 통해 바르고스의 몸속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러자 성현은 주저 없이 놈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더 이상 거리를 않겠다는 듯 수많은 촉수들이 오로지 성현에게만 향했지만, 성현은 개의치 않았다.
콰아아앙!
‘피하기도 더 쉬워졌고.’
매의 눈 특성을 발현시키고 있는 성현은 놈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훤히 읽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날아드는 수많은 촉수들의 움직임을 모두 읽어 내렸고, 더욱 수월하게 공격을 피하며 파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성현이 바르고스의 바로 앞에 닿은 그 순간.
바르고스의 온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이건?’
“죽어라!”
콰지지지직!
강력한 전격이 바르고스에게서 방출되었다.
마치 거대한 번개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 폭음을 동반한 바르고스의 강력한 패턴.
움푹 파인 땅바닥이 새까맣게 그을려, 근처에 있는 모든 걸 휩쓸어 버렸을 만큼 강력한 광역 마법이었다.
범위가 넓은 데다 위력은 거의 즉사기에 가까웠다.
어지간한 헌터라면 반응조차 못하고서 산화되는 게 당연했다.
“큽, 찌릿찌릿하네……!”
파앗!
성현은 잔뜩 피어오른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런 걸 직격으로 얻어맞은 덕에 온몸에 저릿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나 저항력을 지닌 건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전격저항력 +80%]
무려 80퍼센트의 전격 저항.
어지간한 전격계 마법 따윈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고, 지금의 이 공격조차도 찌릿거리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성현이 지닌 몸뚱이의 내구도는 어지간한 S급 수준을 넘어서 있었는데, 위력이 다섯 토막 나 버린 마법으로 뭘 할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바르고스는 이런 큰 공격을 벌이느라 다음 동작을 취하는 데 딜레이가 걸린 뒤였고, 성현은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콰드드득!
“크아아아악!”
고통에 찬 바르고스의 비명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마치 고막이 터져 나갈 듯한 불쾌한 소음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그동안 마법을 쏟아붓거나 살점을 한참 베어내도 이런 격정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던 녀석이었기에 확실히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후두두둑!
곧이어 보이기 시작한 녀석의 변화.
살점과 뼈들이 악취와 함께 쏟아져 내렸다.
“마력으로 한가득 뭉쳐 있는 지점. 파괴하면 어떻게 되나 했더니… 이런 거였나.”
성현이 피 묻은 검을 털어냈다.
신체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린 바르고스의 비대한 덩치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이는 성현이 바르고스의 비정상적인 몸뚱이를 지탱하고 있는 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의 핵은 한 곳이 아니었다.
마력이 가득 실려 있는 녀석의 몇몇 부위.
매의 눈 특성을 발현한 성현은 그 약점의 위치들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네놈……!”
격분한 바르고스는 던전을 통째로 파괴할 기세로 마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지만 놈의 약점 부위를 알게 된 성현으로선 거리낄 게 없었다.
오로지 핵이 숨겨져 있는 부위만을 노리며 녀석을 침착하게 공략해 나갔다.
검이나 마법으로도 닿지 않을 아주 깊숙이 숨겨져 있는 핵들도 있었지만, 바깥쪽 핵을 파괴하면 근처의 살점과 뼈들이 쏟아져 내리는 덕에 안쪽도 문제없이 노릴 수가 있었다.
물론 바르고스의 저항은 갈수록 더 격렬해졌다.
쏟아지는 불꽃과 주위를 휩쓸며 날아드는 거대한 팔에 성현은 잠시 뒤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그럴 땐 양쪽으로 흩어져 있던 이즈나와 네이아가 약점 부위를 향해 마법을 쏟아부었고 핵들을 연달아 파괴했다.
“크어어어!”
고통에 가득 찬 바르고스의 비명.
처음에 성현을 장남감 대하듯 하던 오만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라도 묻는 말에 답해 보는 건 어때? 잘만 하면 살려 줄 수도…….”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콰아아아앙!
고통스러운 만큼이나 격분하며 발악하는 바르고스.
하지만 수많은 핵이 파괴된 바르고스는 처음보다 덩치가 많이 줄어들어 있었고, 움직임까지 느려진 상태였다.
성현은 이제 수백여 개밖에 남지 않은 놈의 촉수들을 가뿐히 피하고선 검을 번뜩였다.
“하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
파앗!
성현은 네이아의 단거리 공간 도약 마법으로 모습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곤 거의 천장과 가깝던 바르고스의 목덜미 바로 뒤편에서 나타났다.
겁도 없이 남의 세상에 날아와 행패를 부린 값을 치를 때였다.
콰직!
키이이이익!
끔찍한 비명 소리와 함께 바르고스의 몸이 뒤틀렸다.
마지막 핵이 파괴된 녀석의 신체가 산산조각났고, 바닥에 착지한 성현의 눈앞에 주르륵 메시지들이 차올랐다.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제한 시간 내에 던전의 보스를 성공적으로 처치하여 퀘스트 보상을 수령합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스탯이 50만큼 증가합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되었습니다!]
[마지막 정수 파편을 획득해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힘 스탯 +10]
[민첩 스탯 +10]
[물리 저항력 +10%]
[마법 저항력 +10%]
[생명력 +10.5%]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주어졌던 두 개의 퀘스트를 동시에 완료하며 보상들이 쏟아졌다.
특수 연계 퀘스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훌륭한 보상들이 주어졌고, 특히나 획득한 경험치의 양이 대단해 30레벨 가까이 레벨이 오르며 성현의 레벨은 400을 넘어섰다.
바르고스가 내뱉은 경험치만 해도 상당한 탓에 싸움에 함께 참여한 이즈나와 군주들마저 레벨이 치솟아 올랐다.
“후… 끝났다.”
성현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도중에 공략법을 찾아내고서 무사히 해치우긴 했어도, 구르고 다니느라 온몸이 잔상처와 피투성이였다.
하나 그런 그의 상태는 주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란하게도 싸웠네.”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는 지하 유적지의 모습.
아니, 더 이상 유적지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원래의 원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있던 수상쩍은 마력을 풍기는 제단에 대해 조사하려던 성현으로선 다소 아쉬운 일이었다.
‘악마종이라… 나에 대해 알고 있던 것도 그렇고, 무작정 달려들고 보는 몬스터들과는 완전히 달라. 자기 입으로 마족도 아니라 했고.’
성현은 놈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일단 어떻게 해치우긴 했지만, 다른 던전의 일처럼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이런 특이 현상까지 발생시키며 자신을 끌어들였다는 건데, 언제 다시 이런 놈들을 보내 자신을 노리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런 던전을 고의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면,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일지도 모르겠지. 다만 이런 퀘스트가 주어지는 걸 봐선 헌터들의 시스템 자체는 놈이 의도한 건 아닐 거야. 날 제거하려 들면서 이런 보상 같은 걸 건네줄 리 없지.’
성현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향했다.
길다란 시스템 메시지가 주르륵 떠 있었다.
[군단 강화 특성]
[추가 공격력 +3.2%]
[추가 방어력 +8.1%]
[생명력 +51%]
[재생력 +62.5%]
[상태이상 저항 +3.3%]
[힘 스탯 +165]
[민첩 스탯 +85]
[체력 스탯 +165]
[마력 스탯 +85]
[물리 저항력 +10%]
[마법 저항력 +10%]
[화염속성 저항 +5.9%]
[냉기속성 저항 +50%]
[전격속성 저항 +80%]
‘…엄청나네. 특히 이번 퀘스트에서 잔뜩 늘어났고.’
새롭게 획득한 보상들을 더해, 현재 그의 군단 전체에 적용되는 버프들이다.
단번에 체감이 될 만큼 아주 강력한 특성들이다.
특히 마지막에 얻은 물리 저항과 마법 저항만 봐도 굉장한 보상이었다.
다른 특성들과는 다르게 거의 모든 공격에 반감이 적용되는 특성.
10퍼센트라는 수치는 절대 작은 양이 아닌데다가, 군단 전체에게 적용이 되는 능력치였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주군.”
그때, 화면을 들여다보던 성현의 곁으로 군주들이 다가왔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아직 할 일이 남았지.”
성현은 벌써 S급 던전을 몇 곳이나 클리어한 뒤 이번 싸움까지 해치운 것이었고, 다리가 살짝 풀리려 하는 게 마음 같아선 조금 더 늘어져 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경기권 던전들의 공략은 다 끝나지도 않았기에 그럴 시간은 없었다.
뭣보다 바르고스의 역겨운 살점과 시체 조각들이 곳곳에 질척하게 늘어진 탓에 고약한 악취들이 진동했다.
“이곳이 파괴된 건 아쉽지만… 나머지 던전까지 모두 정리한 뒤에,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알아봐야겠어.”
성현은 내려놓았던 검을 다시 집었다.
이번에 공동으로 등장한 던전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어쩌면 이번 사태, 더 나아가 던전과 건너편 차원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