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퀘스트 인 (3)
“크아아아아!”
혼란스러운 도시에 나타난 거대한 야수종 몬스터.
곰을 닮은 사나운 괴수가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을 노리고선 벽을 통째로 뜯어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마저 벽을 뜯어내기 직전.
놈을 향해 휘둘러진 검이 빛을 번뜩였고, 녀석의 몸은 위아래로 쩍하니 갈라졌다.
쿠우우웅!
“젠장!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이것들은 또 뭐야!”
한승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거리로 뛰쳐나온 그녀였지만, 대체 무슨 일인지 도시 한복판에서 이미 사방으로 몬스터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곳이면 몰라. 사방이 던전의 기척으로 가득해.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서만 해도.’
고개를 돌린 한승희의 표정이 팍 찌푸려졌다.
당장 그녀의 앞에 나타났던 몬스터들의 종류부터가 최소 수십여 종 이상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던전에서 나온 녀석들이라기엔 종부터가 따로 노는 데다가, 그녀에게 직접 느껴지는 던전의 기척만 해도 여럿이었다.
즉, 동시다발적인 던전의 생성 및 몬스터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지는 건 나도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동시에 밀집 지역 내에 여러 던전이 생겨 나는 현상이야 흔치는 않아도 여러 차례 보인 적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몬스터의 출몰까지 겹쳐서 한꺼번에 이루어질 순 없었다.
생성과 동시에 활성화되는 것만 해도 극소수의 던전 뿐이었는데, 생성된 모든 던전들의 활성화 타이밍까지 모두 맞아떨어지며 몬스터를 쏟아 내다니.
한승희의 경험이야 물론, 세계 그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헉헉대며 쫓아온 남자가 한승희의 앞에 겨우 섰다.
이지스 소속이라곤 해도 헌터가 아닌 일반 사무직원이라, 뛰쳐나간 한승희에 발 맞춰 쫓아올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을 순 없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아냈어?”
“예, 수도권 전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던전의 대량 생성입니다. 최소 수천여 개의 던전이 나타났고, 심지어 개중엔 S급의 최고위 던전까지 여럿 섞여 있습니다. 우선 1차적으로 급하게 데이터를 뽑아냈는데, 당장 파악된 S급 던전만 무려 열 곳이 넘는 숫자입니다.”
“열 곳이라고……?”
수도권 내에서 발생한 S급의 던전만 무려 열 곳.
나머지 수천여 개의 던전까지 합한다면 가히 재앙이 벌어졌다 해도 무방한 수치다.
‘마치 우릴 기습이라도 하는 것 같은 상황이잖아. 어쩌면 인위적인 개입이 이루어진 건가? 아니,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돼.’
벌써 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건너편 세계와 던전에 대해 밝혀진 것은 매우 적었다.
발생하는 원인조차 모르는 와중에 헌터들이 이러한 던전 현상을 이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저 전례 없는 참사가 되진 않도록 행동에 나서는 것 뿐이었다.
“파악된 던전들의 위치는?”
“여기 있습니다.”
남자가 재빨리 서류를 건넸고, 한승희는 주변에 있는 던전들의 목록부터 재빨리 확인했다.
그리곤 다 기억했다는 듯 서류를 휙 내던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 파악은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이 몬스터 놈들부터 청소한다. 각 지부에 즉시 전달해. 또 어디 틀어박혀 있느라 연락을 받을 진 몰라도 길드장 놈한테도 일단 연락하고.”
“예, 알겠습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인 남자는 등을 돌려 바쁘게 뛰어갔고.
한승희는 곧장 발을 박차며 건물을 타고 올라 가볍게 뛰어올랐다.
주변에 잡다한 던전과 몬스터들의 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건 자신이 아니라 길드원들의 몫이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방금 확인한 던전들의 위치 중 한 곳으로 향했다.
촤아아악!
길을 막아서는 커다란 덩치의 몬스터를 반토막 내며 미끄러져 내린 한승희.
그녀는 커다랗게 뻥 뚫린 던전의 입구 앞에 섰다.
“여기가 맞는 것 같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던전의 입구.
그녀의 위치로부터 가장 가까웠던 S급의 던전이었다.
그동안 헌터들을 상대하거나, 길드의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느라 제대로 된 던전에 들어선 지도 꽤 시간이 지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실력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일단 여기 한 곳 정도는 내 손으로 처리해 주겠어. 하지만… 빨리 나타나는 게 좋을 거야.”
* * *
콰드드득!
성현이 달려드는 몬스터를 가차 없이 베어 갈랐다.
이미 S급 던전 안으로 들어선 성현이다.
그는 던전을 빠른 속도로 돌파해 나가고 있었고, 이미 그의 발치엔 수백이 넘는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어둡고 커다란 통로 너머엔 여전히 수많은 몬스터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성현은 주저 없이 발을 내딛었다.
터엉!
“키이이익!”
단순히 던전 하나를 공략할 때야 적당히 템포 조절을 해나가며 공략에 나서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느긋하게 움직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콰아아앙!
단숨에 보스룸까지 격파해 들어간 성현.
검 한 자루만을 쥔 채, 단신으로 수많은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 쓴 그는 던전에 군림하고 있는 보스 몬스터에게도 단숨에 뛰어들었다.
던전의 보스 몬스터도 그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S급 헌터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려 오고, 청성과 천하 길드까지 무너뜨린 성현이다.
당연히 어지간한 수준대의 S급 보스 정도야 여럿이 달려든다 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번 싸움에 성현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오로지 시간일 뿐.
‘끝이다!’
쿠우우웅!
성현의 검이 번뜩이며 괴수의 목을 갈랐고, 커다란 몸뚱이가 쓰러져 내리며 싸움은 끝이 났다.
그가 보스룸 안에 들어선 지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정수의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되었습니다!]
[추가 공격력 +2.0%]
[추가 방어력 +1.9%]
“확실히 들어왔군.”
쓰러진 보스의 시체가 산산조각 나며 성현의 그림자에게로 흡수되었다.
퀘스트에 적혀있던 대로 각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고 나니, 정수의 파편으로서 흡수되었다.
무려 군단 전체에 적용되는 강력한 버프인 만큼 보상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걸로 기뻐하긴 이르지. 보상이야 상황이 다 끝난 뒤에 느긋하게 감상해도 되니까.’
성현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아주 빠르게 던전의 공략을 마쳤음에도 이제 첫 S급 던전의 공략을 끝낸 것이었다.
헌데 퀘스트 창에 알림으로 나타났던 서울 지역 S급 던전의 수는 무려 39곳이다.
[남은 던전의 수(1/39)]
‘S급 던전만 이 정도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퀘스트상 주어진 목표는 S급 던전들뿐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길드를 이끌고, 서울과 경기 남부를 차지하고 있는 성현으로선 단순히 퀘스트 목표만 신경 쓸 순 없었다.
그나마 성현이 지하 던전에 있을 타이밍은 아니라, 던전의 생성을 곧바로 눈치채고서 나설 수 있던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성현이 거느린 군단의 수가 많다 해도, 무려 수도권 전역에 발생한 수천여 개의 던전이었고, 이 넓은 지역의 모든 던전을 틀어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그에겐 두 가지 무기가 있었다.
그동안 수차례 몸집을 불려오며 국내 최대의 세력이 된 ‘이지스 길드’, 그리고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게 해주는 ‘포탈’이었다.
파아아아앗!
성현의 바로 앞에서 나타난 커다란 균열의 틈.
공간을 잇는 포탈의 등장이었다.
“더 속도를 낸다. 피해가 커지기 전에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해야 해.”
검을 움켜쥔 성현은 곧장 포탈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동시다발적으로 생겨난 던전 만큼이나,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던전의 공략들.
지하 던전 속 마나의 맥에 보관 중인 보주들을 통해 리치들은 포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성현은 자유자재로 수도권 전역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고, 이동 시간을 줄이며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물론 포탈을 이용할 수 있는 건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성현의 그림자 군단 전체가 포탈을 이용하며 곳곳의 던전을 공략하고 피해를 틀어막는 중이었다.
S급 던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군단의 군주들이 정예를 이끌고 각 S급 던전들을 빠르게 공략해 나갔고, 성현은 주르륵 이어지는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정수의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됩니다!]
[생명력 +1.5%]
[추가 방어력 +2.5%]
[남은 던전의 수 (14/39)]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정수의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됩니다!]
[상태이상 저항 +3.3%]
[재생력 +2.5%]
[남은 던전의 수 (21/39)]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여 정수의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특성이 부가됩니다!]
[힘 스탯 +20]
[체력 스탯 +20]
[화염저항력 +5%]
[남은 던전의 수 (33/39)]
…….
콰직!
성현은 커다란 괴수의 머리를 짓밟았다.
터져 나오는 피와 함께 꿈틀거리던 보스 몬스터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이게 38번째 던전이로군.”
또 다시 주르륵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성현이 중얼거렸다.
길드가 피해를 최소화하며 몬스터들을 억제하는 사이, 성현의 군단이 적극적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제 서울 지역 내에 남은 S급의 던전은 단 한 곳뿐이었다.
물론 그 한 곳이 문제이긴 했다.
“가장 큰 파장이 일었던 던전이 남아 있었다 했지.”
서울 중심부에 등장한 가장 큰 규모의 던전.
아직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길드만의 힘으론 방어가 어려울 만큼 쏟아지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이에 있던 성찬일이 시간 벌이를 위해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정도의 실력자조차 버거울 정도로 몬스터들의 전력과 공세가 거셌다.
‘그동안 S급 던전만 백여 곳을 가까이 해치워 온 성찬일이다. 한데 그런 성찬일이 보스 몬스터도 등장하지 않은 상황에 애를 먹을 정도라면 확실히 다른 던전과는 급이 다르단 소리겠지.’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중간 보스급의 몬스터들이 웬만한 S급 던전의 보스들 이상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심지어 던전의 규모 등급 또한 ‘대형’으로 크기가 상당했다.
최소한 이번에 집단 발생한 던전 중 가장 강한 던전임은 분명했다.
후웅!
성현은 또 다시 생성된 포탈을 건넜고.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마지막 S급 던전의 입구로 향했다.
파아아앗!
하지만 정작 건너온 성현의 눈앞엔 격렬한 전장 따윈 없었다.
처참하게 찢겨진 몬스터의 시체들만 가득할 뿐.
“주군.”
양옆에 선 이즈나를 비롯한 마족 군주들이 고개를 꾸벅였다.
성현의 주위로는 새까맣게 늘어서 있는 그림자 군단의 수하들 뿐이었다.
어지간한 S급 보스 몬스터 이상이라는 중간 보스급 몬스터들은 군주들의 손에 모조리 정리되어 있었다.
상태창이 준 ‘퀘스트’의 보상 덕분에 38번의 강화 보너스를 얻은 그의 군단은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져 있었다.
“가자, 이 안에 있는 게 뭐 하는 녀석인지 얼굴 좀 보자고.”
검을 짊어진 성현은 괴물의 시체를 잘근 밟아 주고선 던전으로 향했다.
남은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40분.
그 안에 던전의 공략은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