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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30화 (130/202)

130화. 퀘스트 인

그동안 끈질기게 한국을 노리며 접근해오던 중국의 천하 길드를 완전히 정리해 버렸다.

이번 싸움으로 인해 이지스도 약간의 피해를 입긴 했지만, 궤멸시킨 상대의 세력 규모나 이지스의 전체 규모에 비하면 이 정도를 피해라고 하기에도 뭐할 정도였다.

어찌됐건 이지스 길드는 혼란스러웠던 국내를 빠르게 뒷정리했고.

중국 역시도 성현에게 무릎을 꿇은 대간부들이 되돌아가며, 완전히 해체된 천하 길드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했다.

혈마법을 통해 강한 구속력으로 묶어뒀으니 스스로 목숨을 버릴 생각이 아닌 이상 배신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뱀파이어가 나타난 적 없는 이쪽 세계에선 혈마법의 파훼법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사실상 해외에 거대한 산하 세력이 생겨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 싸움을 끝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이 정도 헌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정부의 재난관리국 국장 설기태.

시선을 슬쩍 든 그는 탁자 앞에 마주 앉은 남자를 조용히 바라봤다.

‘설마 천하 길드를 잡아낼 줄이야.’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서류를 읽어내리고 있는 성현의 모습.

국내의 가장 큰 두 세력을 무너뜨리고, 해외의 거대 길드마저 몰락시킨 남자였다.

그것도 그의 활약을 보자면 사실상 혼자만의 힘으로 천하 길드를 완전히 와해시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창기에서부터 활동하던 저명한 헌터도 아니고, 뒤늦게 나타난 후발주자가 이런 저력을 보이게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전투를 거듭하며 경험을 쌓아 강해지는 헌터들의 특성상, 세계 그 어디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전에 봤을 때와는 느껴지는 기척부터가 달라졌어.’

성현이 딱히 존재감을 과시하며 앉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재난관리국을 맡고 있는 설기태 역시 S급의 헌터였고, 전과는 달라진 미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저번에 봤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강해진 성현의 기운.

그 짧은 시간 만에 이런 차이가 느껴질 만큼 비약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겨우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 저 남자를 잡아보려 했던 건가. 완전히 멍청한 짓거리였군…….’

당시 자리에 있던 재난 관리국측 간부진 전원이 투항자의 입장에서 이즈나의 혈마법을 받아들였다.

피의 맹약이 맺어진 이상 그들은 성현을 배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굳이 정체모를 마법의 구속력이 아니더라도, 뒤에서 다른 꿍꿍이를 갖는다던가 반기를 드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아직 각 지역에 7대 길드의 세력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미 국내에선 대적할 자가 없는 강자였다.

그리고 서류를 읽고 있던 성현은 입을 열었다.

“뿔뿔이 흩어진 천하 길드의 남은 잔당은 이 정도가 전부인가?”

“네, 맞습니다. 이미 중국 내의 상황도 뒤바뀌었고, 본거지들도 모두 사라진 마당에 잔당이 결집해봐야 아무런 변수도 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헌터들이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건 거슬려. 시민들에게 괜한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국내에 있는 남은 잔당들은 서둘러 사냥하지.”

“네, 알겠습니다. 우선 재난관리국 차원에서 추적에 나섰다가, 필요하다면 경찰 인력까지 동원하겠습니다. 다른 지역까지 넘어간 인원도 있겠지만, 중국 헌터들에 대한 문제라면 다른 7대 길드들도 어느 정도는 협조해줄 겁니다.”

설기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부의 기관들까지 자신들의 손 안에 두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재난관리국이다.

물론 헌터들의 시대에 일반인으로 구성된 정부 기관들이 예전처럼 제대로 힘을 내기란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공권력이라는 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였다.

특히나 지금처럼 길드의 영역 밖인 지역이자, 전국 단위의 문제일 때 더욱 빛을 발했다.

아무리 7대 길드의 강력한 영향권 내라고는 해도 정부의 움직임인 이상 뚜렷한 명분은 있었으니.

성현이나 이지스가 직접 나서서 타지역을 들쑤시는 것과는 다르게, 트집을 잡을 만한 요소가 거의 없었다.

“아,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됐지?”

“모두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국내 길드들의 견제 때문에 정보 수집 분야가 반쯤 무너졌었다지만, 원래 저희의 전문 분야 중 하나였으니까요.”

“잘 됐네.”

성현이 열한 번째 필드의 공략으로 던전 속에 본격적으로 틀어박히기 전.

그는 자신의 밑으로 굴복시켰던 재난관리국에게 한 가지 임무를 주었다.

바로 정보 수집을 위한 첩보망을 구성하라는 것.

이번 잔당들의 규모를 발 빠르게 파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국내에 대한 시스템 구축이라면 이미 끝났고, 외국에 대해서도 첩보망들을 발 빠르게 구성 중이었다.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출처라도 한쪽 정보망으로만 듣는 건 위험하다. 귀는 두 개인 편이 낫지.’

앞으로 활동하며 수집할 모든 정보에 대해서 흑련 길드에게만 의존할 순 없었다.

어차피 자신의 밑에 들인 재난관리국인 만큼, 쓸 데 없는 견제를 하기보단 제대로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이번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해외의 다른 거대 길드들이 지닌 위협적인 아티팩트들도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어. 거기다 이번에 손에 넣은 보주들을 노리는 녀석들도 있을 테니. 어떤 식으로 접근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성현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던전이 나타나며 헌터들이 주도하는 사회가 된 뒤, 세계는 철저히 힘의 논리로 돌아갔고, 제대로 된 명분조차 사라진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었다.

잠재적인 적들이 사방에 있는 와중, 가만히 앉아서 당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 * *

저벅저벅.

성현은 눈 내리는 거리를 걸었다.

한겨울답게 꽤나 추운 날씨였지만,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친 모습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그의 몸이 움츠러들 일은 없었다.

고위 헌터로서의 몸뚱이에 더해 냉기에 대한 내성까지 있는 성현은 던전 안에 불어 닥치는 극한의 추위도 가뿐히 버텨낼 수 있었고, 이런 바깥 세상의 추위 정도로는 감기에 걸리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날씨에 비해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건 주변 사람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성현만큼은 아니더라도 꽁꽁 싸맬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주로 오가는 장소였다.

“후, 여긴 오랜만이네.”

거리에 멈춰 선 성현이 주변을 눈에 담았다.

이 곳은 헌터들의 전용 장비를 거래하는 상가들이 늘어선 거리였고, 지금도 제법 많은 수의 헌터들이 오가고 있었다.

자신이 막 각성을 했을 적에 여길 찾았을 때만 해도, 남들의 시선을 피해 최대한 조용히 다니려 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젠 그를 노릴 청성도 없고, 가면을 쓰고 활동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묘한 감흥과 함께 발을 내딛은 성현은 한 구석진 자리의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엔 익숙한 얼굴의 대장장이 노인이 서있었다.

“자네는……?”

“알아보시겠죠?”

깜짝 놀란 듯한 노인의 표정.

그를 본 성현이 씩 웃었다.

“허허… 그야 당연하네. 내 물건을 받아간 사람 중 가장 성공한 헌터니까.”

대장장이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굳이 지역을 한정지을 필요도 없이 한국 안에 살고 있는 한, 성현에 대한 소식을 못 들을 순 없었다.

예전부터 얼굴을 알고 있던 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여긴 어쩐 일인가?”

“이런 검을 받았었는데 당연히 다시 찾아와야죠.”

성현은 자신의 허리춤에서 검을 빼들었다.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매끈한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래… 분명 내 손에 쥐어져있을 때만 해도 형편없는 실패작이었는데, 자네의 손을 타니 근사한 검으로 바뀌어있더군.”

노인이 눈을 빛내며 성현의 검을 건네받았다.

자신이 직접 제련해 탄생시킨 검이었음에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놀라울 뿐이었다.

“믿기지 않는군. 내가 본 어떠한 걸작보다도 뛰어나. 자네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잠재 능력이 있던 검이었을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만… 정말 처음부터 이랬나?”

“처음부터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성장형의 특성을 지닌 무기더군요.”

“아아… 그랬던 건가. 여러모로 주인을 잘 만난 녀석이군.”

노인은 그제야 이해가 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이 지닌 검은 마력 감응이란 특성을 지니고 있어 주인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그동안 빠른 성장을 거듭한 성현의 레벨과 스탯이 치솟아 오르며, 검의 성능 역시 함께 뛰어올랐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걸리는 점이라?”

“감정을 통해 알아봤더니 아직도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능력이 있더군요.”

성현이 노인에게 말했다.

그동안 검에 잠들어 있던 많은 잠재능력들이 깨어나며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지만, 아직도 검의 세 번째 특성만은 닫혀있었다.

성현이 이만큼이나 성장했는데도 특성이 열리지 않는 걸 보아 평범한 이유는 아닐 터.

그래서 제작자인 대장장이를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혹시 검에 특별한 재료나 과정을 거친 것은 없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니, 그런 건 없네. 저번에 자네에게 설명했던 게 전부지. 그 외엔 내 방식대로 만들었을 뿐 특별할 게 없어.”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장 길들여진 모양새만 봐도 무기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처럼 보였는데, 아직도 감춰져 있는 특성이 존재한다니.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지만, 아무리 직접 만든 제작자라 해도 무기의 감춰진 잠재능력에 대한 부분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점은 성현도 잘 알고 있었다.

‘조금 아쉽긴 해도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따로 알아보는 수밖에.’

검에 숨겨져있는 마지막 능력.

마력 감응을 비롯해 기존에 검에 발현된 두 가지 특성 모두 더할 나위없이 최상급의 특성들이었기에, 아직도 발현하지 않은 세 번째 특성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것 받으시죠.”

성현은 노인에게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고개를 갸우뚱한 노인은 봉투를 받아들었고, 그 봉투 안엔 수억 원짜리 수표들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헌터 무기 하나에 붙을 액수라곤 믿기 어려울 금액이다.

하지만 자신이 받았던 검의 성능을 따져보면 전혀 과분한 액수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나 노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거래라면 저번에 이미 끝났을 텐데? 돈은 필요 없네. 돈 때문에 무기를 건넸던 게 아니야. 오히려 나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검의 잠재력이 자네 덕에 빛을 발하게 되었으니 고마워해야 할 쪽은 이쪽이지.”

“어찌됐건 제 값은 치러야죠. 그냥 사례입니다.”

“안 받겠다고 말했네.”

타악!

노인은 봉투를 내팽개치듯 성현의 품으로 되돌려주었다.

혹시 저번처럼 고집을 부리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음…….”

성현은 잠시 곤란한 표정이 된 채 멈춰 섰다.

이 완강한 노인의 고집을 꺾어줄 만한 수가 필요했다.

“여기서 더 고집을 부릴 생각이라면 이만 돌아가게. 자네의 검을 본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우니까.”

“돈은 포기하겠습니다. 다만, 이건 그냥 선물입니다.”

“선물……?”

콰르르르르!

대장간 한 켠을 가득 채우며 쏟아진 물품들.

깜짝 놀란 노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종 희소 금속 재료들부터 마력이 담긴 보석 등 하나같이 장비 제련에 있어 최상품의 재료들뿐이었다.

거대 길드에서도 수급 문제로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최상위 중의 최상위 재료들만을 쏟아낸 만큼, 이것만으로도 이미 수백억 어치는 넘을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언제나 무구 제작에 온 힘을 쏟는 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쓸 만한 물건들이다.

“자… 잠깐……!”

“그럼, 나중에 다시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성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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