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26화 (126/202)

126화 일인군단 (2)

파스스슷!

좁은 동굴 내부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날개 소리.

냄새를 맡았는지 빠르게 다가오는 몬스터의 소리가 들려왔고, 성현이 주저 없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악!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타난 거대 곤충 하나를 베어 낸 성현.

쿵 소리와 함께 큼지막한 곤충 시체가 점액을 쏟아 내며 쓰러졌다.

고꾸라진 상태에서도 거의 성현의 허리까지 오는 녀석의 크기.

발도 잔뜩 달려 있는 것이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기절하고도 남을 만큼 외양이 징그러운 건 덤이다.

“키이이익!”

하지만 동굴의 통로엔 그 안을 가득 채운 곤충 몬스터들이 바글거렸고, 성현은 크게 놀라지 않고서 곧장 검을 휘둘렀다.

달려드는 수많은 벌레의 목을 베어 내는 성현.

좁다란 동굴 안에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온갖 거대 곤충들, 압박감을 느낄 만도 했지만 성현은 기계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놈들을 베어 나갈 뿐이었다.

쿠우우웅!

그렇게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끝내 모조리 쓰러뜨려 버린 성현.

그는 산산조각 난 거대 곤충들의 시체를 밟고서 통로를 지나쳤고, 곧 자신의 눈을 비추는 밝은 햇빛을 볼 수 있었다.

진짜 지구의 태양빛은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터억!

“후… 여긴 드디어 끝인가.”

한창 청소를 마친 후, 성현은 동굴의 밖으로 빠져나왔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지형 구조였지만,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내부에 있던 곤충 몬스터들을 청소했다.

“젠장, 또 옷이 지저분해졌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성현이 투덜거렸다.

좁은 지형에서 점액질을 쏟아 내는 몬스터들과 한참 뒹굴고 왔으니, 차림새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매무새를 정리할 새도 없이, 저 앞의 숲속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크아아아아!”

숲속에서 쏟아지는 야수종들의 무리.

그 모습에 성현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쪽 숲도 저 녀석들의 구역이었나. 필드의 전체 크기에 비하면 아직 얼마 돌파하지 못하긴 했지만, 적어도 이번 필드의 메인 몬스터는 확실한 모양이네.”

지금 성현의 앞에 잔뜩 나타난 녀석들의 정체는 염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 카르고트였다.

이번 열한 번째 필드 ‘비명 고원’의 주요 몬스터로 아주 강력한 몬스터였다.

아직 성현과 군단이 나아간 것은 필드의 일부에 불과했지만, 나타나는 비중으로 보아 저 카르고트들의 땅이 분명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놈들에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던전 안의 마족들은 저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바깥 세상의 헌터들에겐 알려진 바가 없는 몬스터 종이라는 것.

실제로 놈들은 지난 십수 년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몬스터 종이었다.

뱀파이어나 웨어울프 같은 마족도 아닌데,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종이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번 열 번째 필드를 넘어간 이후, 이곳에서부턴 갑자기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급상승했어.’

이전부터 필드를 한 단계 넘어갈수록 몬스터들의 수준이 상승하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지하 던전의 절반을 넘게 돌파해 온 덕인지, 그 상승이 갑작스럽게 대폭 이루어졌다.

당장 몰려들고 있는 카르고트들도 일반 몬스터 종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고 매우 강했다.

‘하긴… 여긴 SSS급의 던전이었으니까.’

여태 나온 몬스터들만 봐도 S급 중에서도 상위급의 몬스터들이었고, 어지간한 던전이었다면 여기서 더 강해질 수도 있나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현의 집 지하에 위치한 이 초대형 던전의 등급은 SSS.

단순 필드의 숫자로만 따져도 이제 겨우 절반을 넘어섰다는 것이었고, 깊이 들어갈수록 필드의 크기가 더 커지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커다란 크기의 구역들이 남은 셈이었다.

피유웅!

‘뭐, 나쁘지 않아.’

고개를 살짝 숙여 날아든 화살을 피한 성현이 생각했다.

아직 필드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아니었는데, 곳곳에서 군단의 발목을 잡을 정도로 강해진 몬스터들의 수준.

이번 필드에서 발생한 변화는 앞으로 남은 필드들도 많다는 걸 생각한다면 부담스러울 만도 했다.

하지만 성현은 크게 개의치 않을 뿐만 아니라, 한 켠에선 그 사실이 반갑기까지 할 정도였다.

더 강력한 몬스터가 도사리고 있을수록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반대로 성현 자신이 이곳 던전을 통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크아아아아!”

사나운 콧김을 내뿜는 카르고트들이 흉측한 도끼를 치켜들었다.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다가선 놈들은 성현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정작 성현은 검을 들어 올리지도 않고 있었다.

“여태 쉬지도 않고 계속 달려서 말이야. 잠깐은 숨 좀 돌려야겠어.”

콰지지지직!

머리 위로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와 함께 십여 마리의 카르고트들이 짓밟혀 즉사했다.

어느새 성현의 뒤편엔 거체를 지닌 고대 병기 ‘발텐’이 골렘들을 이끌고 등장해 있었다.

성현이 동굴을 홀로 청소하며 반대편 출구에 닿는 동안.

필드의 각 거점들을 돌파하던 성현의 그림자 군단은 이 숲의 입구에도 이미 닿아 있었다.

뿌우우우!

그림자 군단의 등장에 카르고트들은 곧장 전투태세를 취했다.

뿔 나팔 소리와 함께 숲속에서 더 많은 병력이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콰아아앙!

“키이이이익!”

고대 골렘, 스켈레톤 전사, 철갑 거미들로 구성된 군단과 카르고트 전사들이 맞서며 팽팽한 전투가 벌어졌다.

격렬하게 치고받는 전장의 모습에 성현이 중얼거렸다.

“역시… 여태까지와는 달라. 꽤 까다로워졌어.”

그동안은 던전 안에서 성현의 군단이 통째로 움직일 경우, 크게 걸림돌이 될 상대도 없이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다.

물론 곳곳의 몬스터들이 저항하긴 했지만, 압도적인 물량과 보다 뛰어난 군단의 전력에 대부분은 일방적으로 짓밟힐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 비명 고원은 달랐다.

카르고트 전사들은 그 수도 굉장히 많고,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며 군단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군단이 놈들로 인해 완전히 가로막힌다는 건 아니었다.

양쪽엔 메울 수 없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었으니까.

콰아아아앙!

“그어어어어!”

골렘들의 군주인 ‘발텐’이 전장의 중심에서 앞장서 치고 나가자, 카르고트들은 쉽사리 저지를 하지 못했다.

일제히 발텐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화력을 집중하기도 해 봤지만, 성현의 군주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방어력과 맷집을 지닌 발텐이다.

움직임은 비교적 둔하다곤 해도 덩치에서 나오는 파괴력 역시 굉장했기에 녀석의 돌파를 막을 만한 자가 없었다.

콰아아아앙!

발텐이 팔을 휘두르자 휩쓸려 나가는 카르고트 전사들.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난 모습과 함께, 파괴적인 발텐의 돌파는 계속되었다.

그러자 결국 위기를 느낀 카르고트들은 행동을 강행했다.

“크아아아!”

매섭게 달려드는 소수의 카르고트 전사가 전선을 돌파해 왔다.

발텐과 고대 골렘들의 돌파에 전선이 붕괴되며 뒤로 밀려나고 있음에도, 되려 군단을 헤치며 앞으로 다가오는 녀석들.

이 모든 그림자 군단을 이끄는 진정한 군주, 성현을 노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마족도 아닌 주제에 꽤나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들이다.

콰아아앙!

심지어 놈들은 보통 몬스터가 아닌 카르고트 혈족의 정예 전사들이었고, 앞을 가로막는 스켈레톤 전사들을 순식간에 베어 갈랐다.

마력 부여가 된 뛰어난 장비들을 두른 스켈레톤 전사들을 간단히 파괴해 버리는 놈들의 실력.

하지만 전사들이 성현의 앞까지 닿은 순간.

그들의 발밑에 붉은 빛의 기운이 일렁였다.

콰드드드득!

핏빛의 가시가 솟구쳐 오르며, 카르고트 정예 전사들을 모조리 벌집을 만들어 버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알 수 있듯 보통의 마법이 아닌 혈마법이다.

“하등종 따위가 감히 누구의 앞에서…….”

“이즈나, 생각보다 빨리 왔네.”

“네, 주군.”

이즈나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성현의 앞에 섰다.

뱀파이어와 가고일들을 이끌고서 바로 옆쪽 산맥을 정리하던 그녀였는데, 금방 정리를 해 버리고는 성현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역시 끈질긴 녀석들이군요. 저희도 바로 돕겠습니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어.”

성현이 고개를 슬쩍 저었다.

카르고트들은 더욱 격렬하게 저항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궁지에 몰린 녀석들이다.

전장의 판도는 이미 급격하게 기울어 버린 뒤였다.

“다른 쪽의 상황은 어떤가요?”

“다들 순조롭게 진행 중이야. 저항이 꽤 심하긴 하지만.”

직접 다른 곳의 상황이 보이진 않았지만, 성현의 머릿속에선 곳곳에서 보고가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백귀야행 특성을 얻고 난 이후 성현은 군주들과의 의지를 주고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특성에 붙어 있는 보조적인 능력이었음에도, 이런 대규모 병력 운용에 있어선 굉장히 유용했다.

칼라일이 이끄는 데스나이트와 악령 병사 군단이 정면으로 깊게 들어가며 나아갔고.

그사이 옆을 우회한 카론은 다크엘프들과 함께 서남부 구역의 흑철광산을 점령했다.

동시에 로칸은 웨어울프와 군단의 일부를 이끌어 바위산을 순조롭게 점령 중이었다.

그 외에도 바스퀴르가 이끄는 개미군단, 메이트리아가 이끄는 벤시군단 등.

각 군주와 군단들도 서로 경쟁하듯 빠르게 치고 나갔다.

급상승한 전력을 지닌 11번째 필드의 몬스터들이었지만, 그동안 전력이 급격히 증가해 온 것은 성현이 오히려 더한 덕분이었다.

“아직 필드의 전체 크기에 비하면 많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카르고트 녀석들이 까다로운 만큼 경험치도 많이 뱉어 주고 있는 덕분에 나나 군주들의 레벨도…….”

띠링!

[돌발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열한 번째 필드 ‘비명 고원’의 모든 거점을 완전히 손에 넣으십시오!]

[성공 보상 - 대량의 경험치 및 스탯 획득]

[남은 시간 ‘239:59:58’]

“이, 이건……?”

성현이 눈이 크게 뜨였다.

새로운 퀘스트 발생이었다.

“퀘스트인가요?”

“그래, 그렇지 않아도 하나 안 나와 주나 했는데…….”

반가운 표정의 성현이 메시지 창을 끌어당겼다.

호기심 넘치는 표정의 이즈나도 그와 함께 읽어보려 고개를 살짝 들이밀었지만, 역시 그녀의 눈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시무룩해진 이즈나를 뒤로 하고서, 성현은 메시지를 빠르게 읽어 내렸다.

오래 들여다보고 있을 것도 없을 만큼, 주어진 퀘스트의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하지만 간단한 내용을 결코 간단하지 않게 만드는 한 가지 조건이 달려 있었다.

바로 제한 시간이 걸려 있다는 것.

‘퀘스트의 완료까지 주어진 시간은 10일. 대략 1주 반 정도… 여태까지 해치워 왔던 어지간한 필드들이라면,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클리어하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성현의 표정이 다소 복잡해졌다.

본격적인 필드 공략에 앞서 성현은 미리 비룡 안타라스를 타고서 비명 고원의 전체적인 지형을 살펴보았었다.

한데 상승폭이 급격해진 건 몬스터의 수준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전 지역보다도 훨씬 광활해진 필드의 크기.

실제 공략에 나서고 있는 지금도 꽤 많은 거점을 손에 넣으며 나아갔음에도, 아직은 필드 보스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크기를 고려한다면 주어진 열흘의 시간은 오히려 매우 촉박한 수준이었다.

“후… 당분간 나돌아 다닐 시간도 없겠네.”

머리를 긁적인 성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주어질 퀘스트의 보상 역시 확실할 것이었고,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이즈나, 우리 초창기 시절 기억나지?”

“…네?”

“당분간 빡세게 구를 거야, 각오하라고.”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곧 들이닥칠 적들을 대비해야 하던 시점, 타임 어택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