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24화 (124/202)

124화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4)

“다들 모였군.”

“다들이라 하기엔 절반도 안 모였지만 말이야.”

“시간 없으니 어서 시작하지.”

한 자리에 모인 천하 길드의 대간부들이 자리에 앉았다.

S급 헌터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실력자들이 열 명이 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타 국가나 지역에 나가있는 인원들을 제외한 것임에도 이 만큼이나 모인 것이었다.

그 중 왼편의 가운데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본안으로 들어가지. 마침 작전도 시작한 것 같으니. 우리 중에서도 몇몇은 직접 넘어갈 거다.”

“잠깐, 그 전에 셴 룽이 한국에서 죽었다는 건 너희도 다 들었겠지. 언제까지 공석으로 둘 생각이지? 놈이 이끌고 있던 산하 길드에서 그대로 승계하기엔 지역이 너무 커.”

“길드장께서도 계시지 않은 데 우리끼리 모여서 그걸 숙덕거린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 벌써부터 욕심이 얼굴에 그득그득 끼어있는 꼴만 봐도 알겠다마는.”

“이 새끼가 뭐라고!”

쿠웅!

발끈한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들 기세였다.

회의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살벌한 분위기였다.

서로가 이끄는 거대한 산하 길드와 함께, 각 지역을 한 자리씩 지배하고 있는 대간부들이다.

지금이야 강력한 천하 길드의 아래에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밑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대간부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각자의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방금 언쟁을 벌인 이들처럼 서로 사이가 아주 좋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앉아라, 라우.”

“네가 욕심을 부린 건 사실이잖아. 바로 옆 동네라 탐이 나는 건 알겠는데 천천히 하자고.”

“…젠장.”

주변 대간부들이 한 마디씩 거들자, 남자는 씩씩거리며 자리에 도로 앉았다.

어차피 길드장이 자리를 비운 와중에 제대로 굴러갈 만한 논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다들 이 곳에 모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천하 길드의 대간부 중 하나인 셴룽이 죽게 된 원인이자, 최근 세력 구도에 격변이 생긴 한국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한 공략에 나설 거다. 길드장께서 확언을 하셨지.”

“그거 잘 됐네. 건방진 놈들이 바로 옆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다니던 게 거슬렸는데. 이번 기회에 싹 밀어버리자고.”

“비밀 유지를 위해 자세한 사항은 전달하지 않았었지만 작전은 이미 시작됐다. 이미 보주를 통해 한국과의 포탈을 하나 열어둔 참이고, 적사 길드가 먼저 이성현을 제거하기 위해 건너갔다.”

“그 이름은… 이지스의 길드장이라고 했었나?”

“그래, 한국 정부측 헌터들과 연계해서 던전 안에서 홀로 고립시켰다고 하니, 제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럼 뭐 끝났네. 어차피 이지스의 길드장만 제거하면 더 이상은 큰 문제는 없는 거 아냐. 양대 길드라는 놈들도 이젠 없으니까. 기껏해야 백룡?”

남자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댄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한국의 거대 세력들 중 가장 까다롭던 화신과 청성 길드가 알아서 내부 싸움으로 무너져줬으니, 남은 세력들이야 그들이 나선다면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뿐 아니라 다른 대간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하 길드의 입장에선 유일하게 파악되지 않은 변수인 이지스 길드만이 남아있었는데, 해당 길드장을 제거하고 난다면 거리낄 게 없었다.

그동안은 국가의 크기나 규모에 비해 헌터들의 전력이 까다로워 먼저 건드리지 않았다만, 이런 상황에서 바로 옆에 있는 국가를 굳이 건드리지 않을 필요는 없었다.

차라리 미국이나 러시아의 거대 길드에서 끼어드는 게 거슬릴 수 있을 만한 가장 큰 변수였다.

그러자 해당 사안에 대해 회의가 진행되었고, 한창 이야기가 진행되던 도중.

갑자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비서가 가운데에 앉은 대간부의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앞서 나섰던 선발대에게서 연락이 돌아오지 않는다는군.”

“…뭐? 적사한테서 말인가?”

남자의 말에 대간부들의 표정이 슬쩍 뒤바뀌었다.

조금 전에 들었듯 한국과의 포탈을 만들고서 선발대로 나섰던 것은 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거대 길드 적사였다.

대간부가 직접 나선 데다가 해당 길드 내에서도 수천 여 명의 정예 전력을 추린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한국 헌터와 손까지 잡고서 함정을 파놓고선, 설마 네크로맨서 하나를 처리 못 했을 리는 없을 텐데.”

“애초에 상황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연락 하나 못할 리는 없어.”

수 천 여명이 동시다발적으로 한 순간에 쓸려나갈 것도 아니고, 불리한 와중에서도 통신 정도는 가능했다.

만약 누군가가 고위 마법진을 동반한 정교한 함정이 던전 전체를 덮도록 준비해놓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쿠구구구궁!

“음……?”

“뭐지?”

미세한 진동이 그들이 선 바닥 전체를 울렸다.

일반인은 눈치조차 못 챌 작은 소음과 진동이었지만 자리에 모인 대간부들 중 낌새를 눈치 채지 못한 이는 없었다.

하지만 단순 진동은 잠깐 이어졌다 사라졌을 뿐.

곧이어 섬뜩한 기척들의 거대한 파도가 건물 바깥쪽에서부터 뚜렷이 느껴져 왔다.

“아니, 그게 아니잖아!”

“이, 이건 대체 무슨…….”

대간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중국의 헌터들로선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

갑작스레 천하 길드의 본거지 중심부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기척들은 그들이 가늠할 수 있는 수를 넘어서 있었다.

* * *

주저 없이 포탈을 향해 발을 뻗었던 성현은 반대편의 통로를 통해 빠져나왔다.

예상대로 중국과 연결된 포탈은 천하 길드의 본거지와 연결되어 있었고, 드넓은 천하 길드의 본진을 볼 수 있었다.

크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길드의 거대한 규모에 맞게, 본거지의 스케일도 어마어마했다.

마치 거대한 성 혹은 도시처럼 건물과 땅들이 이어져있었고, 그 안에 있는 헌터들의 숫자도 굉장했다.

물론 놈들의 본거지가 넓을수록 성현의 움직임은 더욱 편해졌다.

기척을 죽인 성현은 순식간에 헌터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안으로 파고 들었다.

천하 길드에서 포탈을 사용하려 한다는 계획을 들었을 당시부터 그가 역으로 짜둔 계획이었기에, 길을 헤매거나 조금도 머뭇거릴 필요가 없이 물 흐르듯 이어져나갔다.

물론 이 곳은 천하 길드의 수뇌부들이 있는 본거지답게 경계를 서고 있는 헌터들조차 대부분이 B급 수준의 실력자였다.

허나 A랭크에도 못 미치는 이런 어중간한 헌터들이 아무리 많이 서성이고 있어봐야 그림자 속에 숨어든 성현의 기척을 읽기는커녕, 바로 눈앞을 지나기 전까진 알아채기도 어려웠다.

콰득!

“컥……!”

경비를 서고 있던 남자가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성현은 의식을 잃은 헌터의 몸뚱이를 그늘 진 구석으로 던져 넣었고, 느긋한 표정으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녀석들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겠군.”

먼저 한국으로 보낸 인원들에게서 연락이 끊긴 지 시간이 경과되었을 시점이다.

단순 착오나 지연은 아니라는 걸 눈치 챌 만한 시간이었고, 곧 후속 인원를 보내거나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리고 성현은 그 전에 일들을 마무리해야 했다.

스릉!

거대한 창고의 앞에 선 성현은 검을 뽑아들었다.

오히려 자신이 타고 온 포탈의 쪽으로 시선이 쏠리지 않도록, 요란하게 이 곳을 뒤엎어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여기서부턴 몰래 들어가긴 어려우니까. 슬슬 놀아보자고.”

콰지지직!

거대한 창고의 문이 통째로 뜯겨져 나갔다.

거체의 고대 골렘이 비집고 들어가며 뭉개진 창고 내부엔 수많은 헌터들이 빽빽이 차있었다.

천하 길드의 본거지 안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이라고 봐도 무방한 바로 이 곳.

성현은 이 곳의 금고를 털어줄 작정이었다.

“저… 저게 뭐야!”

“몬스터가 여긴 왜……!”

“됐으니까 일단 막아!”

거대한 골렘의 등장에 혼비백산한 경비 인원들.

하지만 골렘 한 기 정도에 놀라기엔 너무 일렀다.

츠츠츠츠츳!

성현은 곧바로 자신의 그림자를 뻗어냈다.

그의 뒤편에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검게 드리워졌고, 헌터들은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숫자의 군단을 마주해야만 했다.

“키이이이익!”

“우, 우아아악!”

수 천, 수 만의 자이언트 앤트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다.

천하 길드의 본거지 한복판에서 쏟아진 군단의 무리였고, 전방에 있던 헌터들은 일시에 쓸려나가고 말았다.

물론 개미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건물들을 온통 파괴시키며 난동을 부렸다.

괴력과 덩치가 있는데다가, 숫자까지 넘쳐나는 자이언트 앤트들인지라 무차별적으로 깽판을 치고 발목을 잡는 데에 이만한 녀석들이 없었다.

그 틈에 성현은 창고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창고 내부의 인원은 이미 개미들에게 쓸려나간 지 오래였고, 길드 전체가 초토화되고 있는 와중에 그를 막아설 이는 남아있지 않았다.

콰드드득!

“찾았다.”

맨 손으로 금고의 문짝을 뜯어낸 성현이 내부로 들어섰고, 여러 보화와 아티팩트들이 진열되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성현의 시선을 끄는 것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금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줄지어 놓여 있는 공간의 보주들.

수십 여 개의 보주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고 있었다.

‘천하 길드의 보주들은 워낙 엄격히 관리되어 쓰고 나면 무조건 이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지.’

워낙 노리는 이들도 많은 귀한 물건이다 보니,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천하 길드 측에서 엄격히 관리하는 물건이다.

“뭐, 그야 누구도 천하 길드의 본진 한복판에 쳐들어와 보주를 훔칠 생각을 하진 못할 테니… 이 곳에 한데 모아두는 게 어찌 보면 가장 안전하기야 하지. 물론, 덕분에 내 입장에선 완전히 대박을 친 거지만.”

촤르르르륵!

성현은 눈앞에 보이는 보주들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거기다 성현은 아예 인벤토리까지 열어 주변의 쓸 만해 보이는 아이템들까지 골라서 챙겨 넣기 시작했다.

상태창으로 대강 훑어보기만 하는 데도, 중국 전역에서 쓸어 담은 물건답게 하나같이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뿐이었다.

콰아아아앙!

“이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 때, 벽을 통째로 무너뜨리며 안으로 들이닥친 남자의 칼날이 성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성현은 재빨리 검을 받아쳐냈고, 뒤로 훌쩍 물러섰다.

꽤나 날카로운 솜씨, 천하 길드의 대간부인 ‘라우’였다.

“그래도 거리가 꽤 있었을 텐데. 개미들을 뚫고서 벌써 들이닥칠 줄이야. 제법인데.”

“네 놈이 이지스 길드의 그 자식이냐?”

“이런 외국 길드에서도 날 알아보다니 영광이네.”

“닥쳐라! 감히 겁도 없이 중국 안에 들어선 것도 모자라, 이런 짓거리를 하다니. 살아돌아갈 생각은 마라.”

“잠깐, 난 여기서 더 싸울 생각은 없거든. 마침 시간도 다 되었고.”

격분해 검을 치켜들려하는 라우의 모습에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다른 대간부들이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었고, 그들까지 한꺼번에 덤벼들면 아무리 성현이라 해도 곤란했다.

한국도 아니고 이런 중국 한복판에선 더더욱 그랬다.

“이제부턴 괜히 바깥에 나돌아 다니면서 행패부릴 생각 말고, 분수에 맞게 내부 단속이나 열심히 하고 다니도록 해.”

“그건 또 무슨 헛……!”

파아아앗!

라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 성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고, 공간 이동……?!”

네이아의 공간 이동 마법.

중국과 한국을 잇는 포탈의 앞에 네이아가 미리 마법진을 쳐둔 뒤 좌표를 통해 성현을 불러들인 것이다.

포탈의 만료 시간을 정확히 계산까지 해둔 지라, 이제 와서 천하의 헌터들이 그를 쫓아 후속을 보내려 해봤자 무용지물인 상황.

하지만 단순히 천하 길드의 입장에선 단순히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이런 젠장!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그 놈을……!”

분통을 터트리던 라우의 말문이 순간 막혔다.

금고의 한 켠이 텅 비어있는 모습.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보주들의 자리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 잠깐. 이… 이건…….”

라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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