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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23화 (123/202)

123화.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3)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중국의 한 도시에서 S급 던전이 생성되었다.

당시 중국에선 이미 S급 헌터들이 여럿 배출되어 S급 던전이 생성된 것만으로 크게 두려워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S급 던전은 그 안에서의 수준 차이가 천차만별이기 마련.

해당 지역에서 나타난 S급 던전과 몬스터들은 소탕에 나섰던 1차 공격대를 전멸시켜버리고는 무려 도시 세 개를 밀어버리며 기록적인 희생자 피해를 내게 되었다.

하지만 던전이 늘 그렇듯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위기를 이겨낸다면 그만한 보상을 뱉어내었고, 보스를 처치하고서 S급 던전을 클리어해낸 뒤 얻어낸 특수한 아티팩트가 있었다.

공간의 보옥, 지역을 잇는 포탈을 생성하는 아티팩트였다.

일반적인 공간 이동 마법으로는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가 많았는데, 이 아티팩트들은 그런 한계점들을 대부분 무시했다.

국가를 넘을 수 있을 만큼 훨씬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이동할 수 있음은 물론.

아예 지역을 잇는 통로인 포탈을 여는 방식인 덕에 인원수의 제한도 없었다.

수 십 여개에 달하는 보옥들은 꽤 긴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긴 했지만, 흔히 보이는 일회용 아티팩트도 아닌 덕에 지속적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온갖 군소 길드로 넘쳐나던 드넓은 중국의 땅을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바로 이 아티팩트였다.

기존에도 중국 최강의 길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천하 길드였지만, 원체 넓은 땅이다 보니 전역을 장악하기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러시아나 미국 등 다른 거대한 영토를 지닌 국가들도 이는 사정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하 길드에서 보옥을 얻고 나자 훨씬 넓은 지역에 대한 통제가 가능해졌고, 지금과 같은 거대하고 일체화된 세력이 탄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해외 국가들에 대한 광폭적인 개입이 가능해진 것도 바로 이 덕분이었다.

우우우우웅!

새하얀 빛을 내며 공간의 틈을 벌려놓은 포탈.

서울의 한 던전과 중국을 잇는 포탈이었고, 수많은 천하 길드의 헌터들이 그를 타고서 넘어왔다.

재난관리국장인 엄태오가 주도한 이번 일은 분명 완벽해보였다.

이지스의 전력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길드장, 이성현.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이해관계가 중국의 천하 길드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보옥까지 건네받으며 그들을 국내로 끌어들이기로 한 것이다.

최근 들어 영왕은 서울을 차지했다는 생각에 방심이라도 한 것인지 혼자 떨어져 다니며 던전을 공략했고, 제대로 경비를 세워두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헌터도 아닌 관리직의 일반 직원들이 입구를 서성일 뿐.

이지스의 간부인 검귀 이즈나가 호위겸 안에 함께 따라붙은 게 전부였다.

던전 안에서 벌어질 일이었기에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굉장히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정확히 이 때를 노려 고립된 성현을 제거한다는 계획이었다.

분명 모든 것이 완벽한 계획이었고, 실패할 가능성 따위는 없을 터였다.

크르르륵!

“구… 국장님!”

“젠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주춤주춤 물러난 엄태오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포탈을 타고 넘어온 수천이 넘는 중국측 인원이 모조리 전멸당한 광경.

거기다 그들을 이끌던 천하 길드측 대간부의 시체마저 처참하게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 이야기는 모두 들었거든. 그렇게 뒤를 치려고 호시탐탐 노려보고는 눈치 못 채고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게 더 웃기지.”

성현이 검을 빙글 돌리며 앞으로 다가 섰다.

재난관리국의 헌터들이 천하 길드와 내통했음은 물론,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보주와 포탈을 사용할 거란 것까지 흑련의 정보망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리고 해당 정보를 입수한 성현은 오히려 그들이 자신을 치려들기 쉽게 이런 장소를 마련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등 뒤가 찜찜했던 참에, 먼저 그런 수작을 부려준다면 나야 좋지.”

오히려 포탈을 타고서 최대한 많은 인원이 넘어오길 기다린 성현은 충분히 저들의 숫자가 쌓이자 곧장 싸움을 시작했다.

네이아에게 미리 준비시켜둔 대규모의 약화 마법을 발동시켰고.

던전 곳곳에 널브러져 있던 크림슨 좀비의 시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며, 그림자 속에서 쏟아진 군단이 던전 내부를 가득 채웠다.

미리 마련해놓은 공간에 더해, 절대적인 수적의 열세.

역으로 함정에 빠진 천하 길드의 헌터들은 그대로 쓸려나가게 된 것이다.

남은 인원은 이제 스무 명 남짓한 재난관리국의 헌터들 뿐이었다.

반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괴수들의 눈동자는 어두컴컴한 던전 속에 가득했다.

“국장님, 이젠 승산이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포위된 엄태오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왕이 지녔을 대부분의 소환수들이 청성과의 대규모 전면전으로 인해 소실되었어야 정상일 텐데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원래도 이 정도 수준의 몬스터들이 이만한 숫자를 이루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성현의 비약적인 성장 속도.

이전의 싸움에 대한 소식이 접해지고, 새어나간 정보가 주어지더라도 성현의 전력은 언제나 상대의 예상보다 한발자국 더 앞서 있었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성현의 저력이었다.

“다들 무기를 들어라. 저 놈의 목만 베면 우리의 승리다.”

“예? 하지만…….”

“닥쳐! 어차피 저놈이 너희라고 살려줄 것 같아! 살고 싶으면 끝까지 싸울 생각이나 해라!”

엄태오가 버럭 고함을 치며 검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재난관리국의 헌터들은 마지못해 무기를 들어올렸다.

네크로맨서인 성현만 제압한다면 이 많은 군단이 모두 무력화되는 것은 맞았다.

본체를 노린다는 건 네크로맨서를 상대로 한 가장 정석적이고 효과적인 공략법일 터였다.

하지만 유일의 S급 네크로맨서인 상대가 그런 흔한 정석이 통할 만한 위치가 아닌 게 문제였다.

바로 방금 전만 해도 천하 길드의 대간부가 그걸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처참히 찢겨지는 꼴을 봤기에 도무지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들을 모두 몰살시킬 생각은 없었다.

후웅!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선 성현.

약화 마법까지 잔뜩 걸린 재난관리국 헌터들은 순간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성현은 순식간에 검을 번뜩였다.

푸욱!

“커억……!”

“구, 국장님!”

“죽고 싫지 않으면 뒤로 물러서라.”

성현의 뒤를 따른 로칸과 이즈나가 끼어들었다.

앞을 막아선 그들의 살벌한 경고에 헌터들은 주춤이며 한 발 물러났다.

이 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최소 A급에 S급의 헌터까지 동원된 인원이었지만, 그들의 앞에 선 로칸과 이즈나는 사실상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존재들이었다.

“엄태오, 너에 대한 이야기라면 청성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지. 소속만 다르지 한인호와 똑같은 부류라는 걸 말이야.”

“이… 이 새끼가 감히 누구더러……!”

엄태오가 국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상, 재난관리국과 좋게 해결될 거란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리곤 결국 이렇게 예상대로 움직여주며 성현의 생각이 맞았음을 입증해주었다.

“크으으윽……! 젠장!”

엄태오는 검이 꿰뚫린 상태에서도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마주 선 성현의 목과 팔까지 움켜쥐며 발악하는 엄태오였지만, 성현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넌 살려둬 봐야 똑같은 짓이나 반복하겠지. 그러니 이만 가라.”

촤아아악!

성현은 엄태오의 복부에 꽂아 넣었던 검을 순식간에 밀어 올렸고, 몸뚱이를 반토막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털푸덕 쓰러진 엄태오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굳이 군단이 거들 것조차 없이 끝이 나버린 둘의 승부.

방금까지 네크로맨서의 본체를 노리니 마니 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알게 되었다.

이 압도적인 격차 앞에 자리엔 침묵이 감돌았다.

“…이제 우린 어떻게 할 셈이지?”

재난관리국의 부국장 설기태가 입을 열었다.

자신들의 목숨이 성현에게 걸려있다는 걸 알았다.

“남은 인원에겐 선택지를 주겠어.”

“선택지라고……? 우릴 죽이지 않겠다는 거냐?”

“그거야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

성현이 슬쩍 시선을 주었고, 위협적인 살기를 풍기고 있던 군단의 존재들이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이즈나와 로칸 역시 먼저 무기를 내리며 살기를 거두었다.

그러자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재난관리국의 헌터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무리 정부가 허수아비 꼴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없애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성현은 먼저 검을 들이민 녀석들은 굳이 살려두지 않는 주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난 관리국 전체를 통째로 도려낼 순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 기관이라는 형태 자체는 존속을 해야 했고, 재난 관리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한이 깊었던 한인호조차도 당시 정부를 통째로 뒤집어엎진 않은 것도 괜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꾸준히 자신의 뒤를 노릴 만한 기관을 방치해두는 것도 문제였다.

대신 성현에겐 한 가지 차선책이 있었다.

외국 길드와의 전쟁에 앞서, 그는 아예 재난관리국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로 통째로 집어삼킬 생각이었다.

“이즈나. 이쪽은 맡겨둘게.”

“알겠습니다, 주군.”

이즈나에게 저들을 처리를 맡긴 성현은 휙 고개를 돌렸다.

성현은 느슨한 관계만으로 신뢰를 할 생각 따윈 없었고, 이즈나의 혈마법을 통해 저들의 배신을 방지할 생각이었다.

마침 이 곳에 찾아온 모든 이들이 부국장이나 본부장 등 최소 간부급 이상인 고위 헌터들이었으니, 굳이 모두에게 알려지지 않고서도 재난관리국을 통째로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재난관리국이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까지 통제하고 있으니, 정부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앞으로의 외부와의 싸움에서도 훨씬 도움이 되겠지.’

한 번의 싸움 만으로 재난관리국을 완전히 무력화시킨 성현.

하지만 모든 게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싸움에서도 보았듯 위협이 될 수 있는 진짜 적이 아직 남아있었으니 말이다.

“포탈은 아직 멀쩡하네.”

로칸, 네이아와 함께 성현은 포탈의 앞에 섰다.

천하 길드가 지닌 수십 여 개에 달하는 보옥은 이미 다른 쪽에서 적극적으로 사용되어 오느라 한국엔 투입되지 않아 왔던 물건이다.

헌데 이 곳에 직접 등장했다는 것은 천하 길드가 길드 전체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국내를 넘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우우웅!

일렁이는 포탈의 기운이 건너편을 흐릿하게 비췄다.

방금 넘어온 인원의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포탈은 천하 길드의 본거지와 연결되어 있었다.

보주의 특성상 포탈이 사라지려면 제법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아직 이 곳에 넘어온 헌터들의 소식이 전해지진 않았는지, 천하 길드 측의 후속 인원이 등장하진 않았다.

곧 더 많은 인원이 이 곳에 넘어오도록 가만히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성현은 그보단 다른 방식이 끌렸다.

“저 놈들만 남의 나라에 멋대로 와서 깽판 치는 건 아무래도 불공평하지. 안 그래?”

성현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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