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118화 (118/202)

118화 종지부

강남 지역 한복판으로 쳐들어간 성현과 청성 간의 싸움이 막 시작되었던 시점.

경기 북부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의 충돌은 여전했다.

9대 길드인 화신과 태산 길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었다.

국내를 쥐고 있는 두 거대 길드 간의 분쟁답게 팽팽한 싸움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소속 길드원의 단순 숫자든, 고위 간부들의 전력이든 세력 규모의 체급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결국 시간은 화신 길드의 편이었고, 태산 길드 홀로 그들을 감당해 내기란 무리였다.

콰아아앙!

“크아악!”

요란한 폭음과 함께 헌터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태산 길드의 본사 내부로 대거 들이닥친 화신의 길드원들이 무기를 휘둘렀고, 순식간에 수백여 명의 헌터들이 어지러이 뒤엉켰다.

물론 건물의 밖에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싸우고 있었다.

거의 모든 전력을 끌어 모아 부딪친 상황.

산발적인 전투가 아니라 태산 길드의 심장부를 노린 저들의 움직임이었기에, 그만한 전력이 한꺼번에 움직였다.

“이쪽은 거의 다 끝나가는군.”

화신의 길드장, 최성준이 입을 열었다.

직접 싸움에 참여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있는 그는 전황이 기울어져 가는 전장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더 속도를 낸다. 천하 길드까지 끌어들여 놓고선 생각 외로 반대편에서 변수가 생기고 있는 모양이니… 이쪽을 어서 끝내고 합류해 줄 수밖에.”

“예, 알겠습니다.”

굳이 자신이 나설 것도 없이 이미 승기를 잡은 상황.

화신의 최고 간부 두세 명이 그의 바로 곁에 붙어 있음에도 전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태산 길드 역시 아직 진짜 전력이 다 드러난 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나타났군.”

무언가를 느낀 최성준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갔다.

건물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콰아아앙!

벽이 요란하게 박살 나며 헌터들이 쓸려나갔다.

널브러진 헌터들의 시체와 함께 부서진 벽으로 나온 한 명의 남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며 나타난 김진욱이었다.

“겁도 없이 여기까지 기어들어와? 다 죽여 주마!”

버럭 소리친 태산의 길드장, 김진욱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부상당한 태산 길드원들을 뒤로한 채, 그의 바로 앞엔 수십여 명의 화신 측 헌터가 있었다.

하나 그 한 명에게 압도당한 것은 화신의 헌터들이었고, 김진욱이 다가오기도 전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쿠웅!

바로 그 순간, 최성준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언제 나오나 했다. 김진욱.”

“너 이 새끼…….”

최성준을 마주한 김진욱이 이를 빠득 갈았다.

“처음부터 무의미했던 싸움이었다. 놈들이 네게 무슨 소리를 해줬는지는 몰라도 지나친 도박이었어.”

“다물어라.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당할 게 뻔한데, 멍청하게 이용만 당하다 당해 줄 바엔 네놈들 목이라도 물어뜯어 주는 게 낫지.”

“어리석기는…….”

화르르륵!

최성준이 뽑아든 칼날에 맹렬한 화염이 일렁였다.

곧 두 헌터가 충돌했고,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염제라는 이명에 걸맞는 최성준의 강력한 화력은 거의 대지를 뒤흔들 듯이 하며 불꽃을 뿜어냈다.

콰아아앙!

물론 김진욱의 방어도 그에 못지않았다.

검과 방패를 치켜든 그는 정면에서 쏟아지는 불꽃을 뚫어내며 최성준에게 위협적인 역공을 가했다.

9대 길드장 중 유일한 기사 클래스인 김진욱의 방어력이라면 국내 제일이었고, 덕분에 이 엄청난 불길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국내에서 최성준의 화력을 받아내며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헌터였다.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큭……!”

아낌없이 모든 화력을 쏟아내고 있는 최성준.

그는 여기서 김진욱과의 싸움을 완전히 끝을 낼 작정이었다.

한인호는 백룡과 이지스를 이용할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만, 최성준은 태산 길드에 대해선 싸움을 길게 가져갈 생각 없었다.

수도권 내에 존재하는 9대 길드 정도의 변수는 둘이면 충분했다.

뭣보다 위아래로 적이 있는 건 사절이었다.

콰아아앙!

이어진 폭발이 요란한 폭음을 토해내며 시야를 한가득 가렸다.

하나 이번 폭발엔 화기가 없었고, 최성준의 것도 아니었다.

화신 길드의 최고 간부 두 명까지 싸움에 거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 했을 텐데.”

‘젠장……!’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싸움에 대기하고 있던 최고 간부들까지 싸움에 끼어들자 양상은 순식간에 기울었다.

태산 길드의 S급 전력들은 이미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지라, 여기에 합류할 여력이 없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을 당한 데다가 두 길드 간 체급 차이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세 명이 합공을 가하며 완전히 몰아넣고 있는 상황.

각자 특성을 지닌 S급의 헌터들이 미리 그를 잡기 위해 합을 짜놓고 나선 것이었기에, 파고들 빈틈조차 없었다.

이대로는 반격의 여지조차 없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최성준이 배후로 돌며 김진욱에게 쐐기를 날리려던 그 순간.

“답지 않게 쩔쩔매고 있는 꼴이라니.”

“뭣……?”

콰아아앙!

김진욱과 최성준의 사이에 정확히 떨어진 커다란 화염구.

그 충격으로 인해 최성준과 최고 간부들은 주르륵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어떤 놈이냐!”

갑작스럽게 싸움에 끼어든 정체불명의 불청객들.

열세에 있는 태산 측 헌터들이라면 계획대로 발목을 붙잡혀, 자기 싸움을 제대로 하는 것도 버거울 터였다.

자욱해진 흙먼지가 가라앉고 나자, 최성준은 그제야 그들의 앞에 나타난 수천여 명의 헌터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백룡 길드라고?”

김진욱과 최성준 할 것 없이 양쪽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했다.

놀랍게도 백색 길드복 차림의 백룡 길드의 헌터들이 거리를 가득 채운 채 나타나 있었고.

그들의 선두엔 검제, 진서연이 서 있었다.

“청성 쓰레기 놈들하곤 잘만 붙어먹더니.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나 보지?”

“네… 네가 어떻게 여길……!”

최성준의 두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백룡 길드는 이곳과는 한참 떨어진 위치에 있었고, 그것도 한창 전쟁 중인 강남의 청성을 바로 앞에 두고 있었다.

거기다 무려 열댓 명도 아닌 수천의 숫자는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만약 이만한 숫자의 헌터들이 움직였다면, 굳이 자신들을 노린 게 아니더라도 미리 파악이 되어 연락이 왔을 것이다.

한데 한창 전투 중인 그들의 코앞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룡의 헌터들이었고, 완전히 상황은 반전되었다.

“미안하지만 네놈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줄 시간은 없어. 아직 다른 쪽 싸움은 안 끝났거든.”

스릉!

검을 뽑아든 진서연은 고개를 가볍게 까닥였다.

“다 쓸어버려.”

* * *

“키이이이익!”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괴수들의 울음소리 속.

그들에게 둘러싸인 한인호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콰아아앙!

“큭…….”

넘쳐나는 그림자 군단의 파도 앞에 한인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던 한인호는 최대한 성현의 본체를 노려보았지만, 일반적인 네크로맨서와는 몸놀림 자체가 차원이 다른 성현은 가뿐히 몸을 빼내며 피해낼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계속 추격하려 해봐도 수많은 소환수들이 끼어들며 방해했고, 로칸이나 칼라일을 비롯한 군주들도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이런 젠장……!’

한인호가 이를 빠득 갈았다.

체력적으로 점점 지쳐 갔지만, 쏟아지는 군단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당장 통하는 광범위 공격 수단이 없는 한인호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최상위 던전을 섬멸하고, 경쟁 헌터들을 쓰러뜨리는 동안에도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은 난생처음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독을 무력화시키는 적은 처음이었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수적 열세에 빠져 본 것도 처음이었다.

“네놈… 대체 정체가 뭐지?”

“직접 알아내 주겠다 하더니 벌써 포기한 건가?”

“이런 건방진 새끼가!”

콰아아앙!

한인호의 검격은 또다시 빗나가고 말았다.

애꿎은 땅만 박살 내며 파편을 튀겼고, 그 뒤편에서 섬뜩한 기척이 느껴졌다.

체력적으로 지친 덕에 처음보다 다소 굼떠진 데다, 동작이 지나치게 커진 만큼 헛동작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컥……!”

늑대인간의 모습을 한 로칸의 주먹이 휘둘러졌고, 한인호는 한참을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땅바닥에서 솟아난 쇠사슬이 한인호의 다리로 날아들었다.

발목을 감는 게 아니라, 아예 살갗을 뚫고 들어가며 사슬을 박아 넣어 버린 네이아의 마법.

‘젠장.’

날카로운 쇠사슬이 다리에 박힌 순간 한인호는 직감했다.

그가 짜두었던 상황이 완전히 어그러져버렸고, 여기서 더 싸워 본다 한들 승산이 없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다.

“도망칠 궁리라도 하고 있어? 포기하는 게 좋을걸. 네가 믿고 있는 구석이라면 이미 조치를 취해 둔 데다, 설령 네가 여기서 도망쳐 봐야 아무 소용 없거든.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을 테니까.”

“…뭐라고?”

“너희와 손을 잡은 화신 길드라면 지금쯤 진서연이 합류했을 테고, 네가 외국에서 데려온 용병 길드들도 지금쯤이면 다 처리가 되었을 거야.”

“하, 그따위 허세가 통할 것 같나? 웃기지 마라.”

청성과 거의 동등한 세력인 화신 길드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는 데다가.

청성이 고용해 국내로 밀입국시켰던 다수의 용병 길드들 역시, 상당한 규모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모든 소환수를 쏟아 부은 와중에, 후방에 숨어든 용병 길드들까지 처치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의 생각과는 달리, 성현의 군단은 이곳에 다 쏟아져 나온 것도 아닐뿐더러 아직도 그 수가 많이 남아 있었다.

“뭐… 너희야 모르겠지만 이러는 동안에도 내 소환수들은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든.”

성현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순간조차도, 구역이 넓어져 갔고 수하로 만들 시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아무리 이런저런 싸움에 휘말려 전력의 소모가 이루어진다 한들, 늘어나는 숫자에 비해선 극소수에 불과했고, 지하 던전이 존재하는 한 성현은 점점 강해질 뿐이었다.

쿠우우웅!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 남자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청성의 최고 간부 중 하나였던 ‘이희재’였고, 충격을 받은 한인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거리 공간 이동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희재는 이번에도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아, 위험 상황에 대비해 핵심 인원과 함께 길드장인 한인호를 빼돌리려는 준비를 해두었다.

하지만 비룡 안타라스가 놈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었고, 이렇게 사냥을 해버린 것이다.

“이… 이 새끼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되나 보지?”

미리 모든 변수를 계산해 차단해 두었을 만큼, 성현은 이곳에서 한인호를 놓아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을 보였다.

덜컥!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가면에게로 손을 뻗은 성현.

그는 주저 없이 가면을 벗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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