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독사 (2)
“자, 잠깐만…….”
“너흰 끼어들지 마라.”
유은하의 손길까지 뿌리친 한인호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평소라면 모를까 전투 중엔 어지간해선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그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독기가 휘감기며 주위를 부식시켰다.
‘역시 위험한 능력이야.’
그 모습을 본 성현은 검을 바로 쥐었다.
아무리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자신의 몸뚱이라 해도 저 독만큼은 위험했다.
독사 한인호는 무려 두 가지나 되는 S급 특성의 소유자였다.
양쪽 모두 등급에 걸맞게 아주 치명적인 특성이었고, 그가 다루는 맹독은 그 중 하나였다.
“그동안 우리 일을 사사건건 방해해왔지만,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헛짓거리까지 벌이며 방해하려 든다면… 이 자리에서 끝을 맺어줄 수밖에. 곱게 죽여주진 않겠다.”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발을 박찬 한인호가 검을 휘둘렀다.
앞을 가로막아선 단단한 고대 골렘을 통째로 박살내며 들이닥쳤다.
단숨에 성현의 코앞까지 다가선 한인호.
“우선 네 가면부터 두 동강 내어주지.”
“큭……!”
성현은 급히 물러나며 한인호의 검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는 훨씬 빠른 속도로 따라붙었고,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받아쳐내야 했다.
치이이익!
허나 검을 마주 댄 것만으로도 독기가 스멀스멀 뻗어져왔다.
독에 노출된 성현의 살갗엔 따끔한 것 이상의 통증이 동반되었다.
직접 베인 것도 아니었지만 독기만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강요하는 한인호의 맹독 특성.
대비책이 마련되어있지 않은 어지간한 헌터들은 직접적인 상처 하나 없이 죽어나갈 수 있었다.
“한인호 녀석은 빠지라 했지만… 그래도 조금 거들어볼까.”
그때, 청성의 유은하가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다른 간부들과 함께 뒤편에 떨어져 있었지만 이 거리에서도 얼마든지 마법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츠츠츠츳!
그녀에게로 휘감기기 시작한 새하얀 빛의 신성력.
저 건방진 영왕 녀석에게 길드의 본사까지 털리고, 당한 게 있기 때문에 직접 한 방 때려 박아주지 못하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영왕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동시에,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언데드들까지 통째로 날려버릴 셈이었다.
자기 몸뚱이 자체는 사람인 영왕이야 신성 마법에 원래의 피해 이상으로 더 큰 피해를 입진 않겠지만, 그가 다루는 수하 언데드들은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한꺼번에 쓸려나갈 것이었다.
“키이이이익!”
“오, 온다!”
물론 그들의 낌새를 느낀 성현의 군단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군단의 괴수들이 곧장 청성에게 들이닥쳤고, 청성의 헌터들도 앞으로 나서며 놈들에게 맞섰다.
굉장한 숫자의 몬스터와 헌터들이 뒤엉키며 벌어진 전투.
“이것들이 겁을 상실했나.”
그 모습을 본 유은하는 코웃음을 쳤다.
감히 언데드 따위가 겁도 없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다니.
“그렇게 죽고 싶은 게 소원이라면야…….”
우우우웅!
유은하의 손에 하얀 빛이 일었다.
큰 마법을 먹여주기 위한 준비였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만, 그것도 금방이었다.
범위를 최대한으로 늘려 눈앞에 있는 언데드들 따위 그녀의 마법에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었다.
그렇게 유은하의 마법이 거리를 뻗어지려는 그 순간.
“저건……!”
콰아아아앙!
눈앞으로 날아든 거대한 불덩이가 폭발했다.
요란한 굉음을 동반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주변 전장을 통째로 뒤들었을 만큼 굉장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뱀파이어 로드 이즈나가 사용한 화염구다.
“큭… 젠장.”
유은하가 이를 빠득 갈았다.
저 화염구가 날아든 덕분에 원래의 공격 마법 시전을 취소하고서, 급히 방어 마법으로 전환해야 했다.
처억!
“감히 그 분의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마라.”
“너희는…….”
유은하의 양 옆에 선 이즈나와 카론.
그들은 성현과 한인호의 싸움을 직접 옆에서 거들기보다는, 골치 아픈 유은하의 발목을 잡아두는 임무를 맡았다.
물론 아무리 둘이 달라붙는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뭐야, 너희… 왜 언데드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거지?”
유은하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봤다.
검은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는 그들은 정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고, 성녀라는 이명을 지닌 그녀는 저들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겉보기엔 사람과 다를 것이 없는 이즈나나 카론 역시도 언데드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S급의 네크로맨서라더니… 설마 사람을 죽이고 되살리는 것도 가능했다는 건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세력을 불렸는지 알겠어. 그럼 성찬일 그 녀석까지도… 이거 재미있네.”
유은하의 입가가 씩 올라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었지만, 이제야 대강 알 것 같았다.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편으로 되살리는 능력을 지녔다면 여태 성현이 보여온 수많은 행적이 이해가 갔다.
물론 실상은 엉뚱한 추론을 하고 있는 유은하였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게 설마 던전의 몬스터들 중 마족이라는 자들이 존재할 거란 건 상상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성현의 집 지하실을 제외한다면 그 어느 곳에서도 출몰한 적이 없던 이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여기 있는 녀석들이 모두 언데드라면 날 어떻게 막을 생각으로 찾아온 거지?”
유은하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청성의 유은하는 국내에 존재하는 빛 속성의 최강자로서 굉장히 골치 아픈 상대였다.
덕분에 네크로맨서인 성현으로선 싸움에 돌입하기에 앞서서 성녀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이 필요했다.
그녀는 청성 내 최고 수뇌부인 3성의 멤버답게 속성 차이가 없더라도 아주 강했고, 어지간한 수로 발목을 잡아두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물론 대책 없이 온 건 아니지. 네가 있을 거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쿠구구궁!
이즈나의 말과 함께, 그녀의 주변에서 거대한 골렘들이 나타났다.
바닥을 뜯어내며 등장한 거체의 골렘들.
물론 고대 골렘들이야 이미 성현의 군단에서 적잖은 활약을 하며 청성에도 노출이 된 전력이었고, 특별할 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건 그 녀석들과는 달랐다.
우우우웅!
“이건……?”
동력원으로부터 새하얀 빛을 띠고 있는 골렘의 모습.
성현이 직접 쓰러뜨린 뒤 그림자의 힘으로 되살려낸 고대 골렘들과는 달랐고, 이는 유은하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언데드가 아니잖아……?’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모든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언데드였다.
꼭 생체를 지닌 몬스터가 아니더라도 네크로맨서가 다루는 어둠의 힘이 깃들어 부활한 몬스터들은 시스템의 분류상 언데드가 되었다.
헌데 저 골렘들은 거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성현의 명을 따르긴 하지만, 그의 마력 혹은 그림자를 통해 부활시킨 것이 아니라.
‘마나의 맥’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통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골렘을 리치들이 제작한 것이다.
콰아아앙!
“큭…….”
주변을 둘러싼 수십 여기의 골렘들이 유은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은하는 반격을 위해 신성 마법을 골렘들에게 때려 박아 넣었지만, 직접적인 충격을 받았을 뿐 속성에 따른 추가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지닌 공격 마법의 원래 위력보다 훨씬 더 경감이 된 듯한 모습이었다.
“내성까지 지닌 녀석들이란 말이야……?”
던전에서 나오는 온갖 희귀 재료와 고도의 마법 부여까지 활용해, 강력한 빛 속성 내성을 지니게 된 골렘들.
이전에 제작했던 것보다 더욱 심혈을 기울여 엄청난 자원을 때려 박은 덕에 내구성이 매우 높았고, 거기에 더해 마법 저항까지 더했다.
인간으로선 흉내낼 수 없는 리치들의 솜씨와 마나의 맥 덕에 가능한 작품들이었다.
“이 새끼들이……!”
콰아아앙!
물론 유은하는 S급의 전력이자 청성의 최고 수뇌부다.
갑작스레 상성상 불리한 적들을 한가득 상대하게 되었음에도 골렘들을 연이어 박살내었고.
골렘들은 유은하에게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하거나 닿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속도가 나진 않았다.
‘이 자식들…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 대체 몇 마리나 있는 거지?’
쿠구구구!
유은하가 수를 줄이는 것 이상으로 더 많은 숫자의 골렘들이 바닥에서 솟구쳐 나왔다.
심지어 그 뿐만이 아니었다.
비교적 둔한 골렘들의 공격 따위 유은하에게 아무런 위협 거리도 되지 못했지만, 그녀를 향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마법과 화살들이 있었다.
콰아아앙!
골렘들을 잔뜩 앞에 세워둔 채, 거리를 벌리며 공격해오고 있는 이즈나와 카론.
언데드인 이즈나나 카론으로선 한 번이라도 잘못 당했다간 그대로 소멸당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유은하의 발목을 묶어두는 것에 집중하며, 유은하가 골렘들을 떨쳐내지 못하도록 이런 공격을 원거리에서 퍼부어주는 것이다.
‘젠장,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온 거였어.’
이를 빠득 간 유은하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다른 쪽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S급의 전력인 최고 간부들은 군단의 군주들이 들이닥치며 제각기 전투를 치르고 있었고.
고립된 유은하를 도울 여력 따위는 없었다.
‘하… 이것들이 꽤나 머리를 굴렸네. 하지만 고작 내 발목을 잡아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텐데? 지금쯤이면 영왕 녀석은 이미 죽어가고 있을 테니까.’
* * *
한인호는 무려 양대 길드 중 하나인 청성의 수장이다.
다른 9대 길드장들보다도 남다른 실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서울 지역을 차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 사실이야 청성에 몸을 담았던 성현도 아주 잘 알고 있었고, 안일하게 홀로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
“키이이이익!”
입을 쩍 벌린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가 산성액을 뿜어냈다.
발을 박찬 한인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고, 움푹 파인 땅 뒤에서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성현의 주위로 니아드라를 비롯한 수많은 철갑 거미들이 있었다.
“…….”
검을 잠시 내리고선 가만히 앞을 응시하는 한인호.
부식액을 다루며 기본적으로 독에 대한 내성이 있는 철갑 거미들이다.
거기다 S급 이상의 보스 몬스터라면 그 체력도 엄청나기 마련이었으니, 자신의 독기를 버티고 있는 것이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다른 쪽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놈… 어떻게 아직도 버틸 수 있는 거지?”
한인호의 시선이 성현에게 향했다.
그의 독기에 이 정도로 노출이 되었으면 S급의 헌터라 해도 최소한 쓰러졌어야 정상이다.
“그럼 네가 독을 쓰는 걸 다 알고 있는데, 대비도 없이 찾아왔을 것 같아?”
성현은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성현은 독에 대한 저항력 올리는 최상급의 비약을 세 개나 마셔 중첩 적용을 했고, 독에 대한 저항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한인호의 독에 대한 대비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도핑은 나만 가능한 게 아니거든.”
철컹!
왼편에서 나타난 수백의 데스나이트, 검은 기사 칼라일이 나타났다.
반대편에선 웨어울프와 그들의 로드인 로칸이, 그리고 성현의 뒤에선 리치들과 네이아까지 나타났다.
여기 나타난 모두가 최상위의 비약을 마신 이들이었다.
“독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 싸워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