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공정한 싸움 (2)
마법을 차단해 성현의 강령술을 차단하려는 파천의 시도는 결국 무위로 돌아갔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계의 주도권을 잃은 걸 넘어, 아예 상대에게 모든 통제권이 넘어간 지금.
그들의 머리 위를 덮고 있는 거대한 결계는 재앙이 되어 돌아왔다.
콰아아앙!
“끄아악!”
붕 떠오른 헌터들의 몸뚱이가 나뒹굴었다.
네이아의 손에 들어온 저 검은 결계는 아래에 있는 모든 적에게 강력한 저주 효과를 안겨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군주들을 맞서 디버프를 줄줄이 달게 되는 악재까지 겹치게 되었으니 당연히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철컹!
칼라일은 길을 막는 헌터들을 가차 없이 베어 냈다.
무시무시한 솜씨로 검을 휘두르며 붉은 안광을 내뿜는 검은 기사에 앞에 선 모두가 움츠러들었다.
하나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이 주위로 강력한 보스급 소환수가 가득했고, 외부의 시선상 이즈나나 로칸 같은 S급 헌터들까지 셋이나 있었다.
“젠장할, 저런 것들을 대체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조, 조심해!”
콰직!
덕분에 간부가 아닌 일반 길드원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고기 방패 신세로 전락하였다.
그저 네크로맨서인 성현을 처리하기 위해 안재현의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다.
“…이대로는 버티는 것도 어렵겠는데. 놈의 전력이 완전 예상을 넘어섰어.”
“피해라면 이미 감수하기로 결정되었으니, 최대한 붙잡고 있는 수밖에. 길드장이 놈을 처리할 거다.”
그나마 S급에 달하는 최고 간부들은 전투를 치르며 성현의 군주들을 묶어 놓고 있었다.
물론 보통 전력이 아닌 데다가 S급 헌터만 따지면 성현의 군주 쪽이 숫자가 더 많았기에 그들조차 오래 버티기엔 무리였다.
그들로선 안재현이 영왕을 빨리 처리하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놈이라 해도 길드장인 안재현을 당해 내지는 못할 터.
하지만 지금 이 자체만으로도 조급함을 느껴야 할 입장은 이미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는 뜻이었다.
* * *
콰아아아앙!
주먹을 뻗은 안재현이 기둥을 요란하게 박살 냈다.
하지만 성현은 그 공격을 보란 듯이 피해 냈다.
“이대로는 오래 가지 못할 걸.”
되려 여유로운 듯 입을 여는 성현.
지금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듯, 파천은 자신들이 준비해 둔 함정에 역으로 걸려 완벽히 당해 버렸다.
파천 길드의 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고, 이미 이 뒷일을 생각할 게 아니라 이 싸움의 승패조차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9대 길드인 파천이 전력을 다했음에도 밀리고 있다니.
싸움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생각지도 못했던 전개였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물러나기만 하려는 거냐?”
“시간을 끌면 유리해지는 건 나니까.”
상대의 수준을 얕보고서 되도 않게 병력을 분산시키고, 연달아 당해 주느라 밑천이 드러난 건 놈들이다.
반면 성현은 아직 모든 카드를 모두 꺼내 들지도 않은 데다가 반대편이 정리가 되어 군주들이 합류할수록 더욱 구도가 유리해졌다.
시간은 성현의 편이라는 것이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하지만 안재현은 코웃음을 쳤다.
저런 식으로 도망만 다니는 짓거리로 자신에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그는 단숨에 발을 박차고 들어왔다.
콰아아앙!
순식간에 다가온 안재현이 주먹을 뻗었다.
성현은 그의 공격을 피했고, 그로 인해 빗나간 안재현의 주먹이 뒤편의 건물 벽면 한쪽을 통째로 부숴 버렸다.
쿠구구구!
그러자 건물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만약 일반적인 충격이었다면 주먹질이 아무리 강해 봐야 파괴 범위는 좁기에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안재현의 권과 각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가 지닌 S급의 특성 덕이다.
단순히 바깥부터 깨부수는 일반적인 격투술과는 달리, 안쪽에서부터 부수는 공격이었기에 사람에게도 더욱 치명적이다.
물론 투왕이라는 이명을 지닌 이답게 맨주먹의 위력도 무시무시했는데, 그런 피해가 안쪽에서부터 몸을 산산조각 내니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방어력이니 물리 저항력이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무시해 버리는 말도 안 되는 능력. S급의 특성다워.’
지금 성현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권투사 계열의 정점인 안재현이다.
간을 본답시고 안일한 대응을 보였다간 단 한 번의 공격만 허용해도 그대로 싸움이 끝장나 버릴 수도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아직 저 정도의 움직임은 충분히 읽을 수 있어.’
달려드는 안재현을 마주해 바라보는 성현의 눈이 빛났다.
후웅!
또 다시 빗나간 안재현의 주먹.
그러자 그의 표정이 크게 꿈틀거렸다.
‘젠장! 역시 느려지긴 했어.’
현재 안재현의 몸은 원래 지니고 있던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네이아가 결계를 이용해 사용한 강력한 광역 저주들은 아무리 안재현이라고 해도 피할 수는 없었다.
‘저주’의 효과로 인해 전반적인 능력치 감소 및 받는 피해가 증폭되었고.
‘부패’의 효과로 공격력이 감소하며, 다른 마법계 헌터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결계 안에선 원활한 마력 수급까지 방해되었다.
하지만 안재현에게 무엇보다 치명적으로 다가왔던 네이아의 저주는 바로 ‘쇠약’이었다.
민첩했던 움직임이 느려지고, 체력과 공격력까지 감소시키는 효과를 지닌 디버프였다.
권투사로서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고서 오로지 신체 능력만을 엄청나게 강화해 온 안재현이었기에 가장 치명적인 효과로 다가왔다.
“…그래 봤자다. 지금 이깟 장난질 따위로 날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콰아아앙!
하지만 그만큼 전력이 저하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놀라운 속도와 위력을 보였다.
무지막지한 그의 괴력에 성현이 주르륵 밀려났다.
‘저주를 줄줄이 달고서도 이런 위력이라니…….’
더욱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 안재현이 성현을 가차 없이 몰아붙였다.
하지만 성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파천 길드와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던 성현이다.
상대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사냥이나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레벨만 올리고 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9대 길드장 중 하나인 투왕 안재현과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고, 그렇기에 그가 사용하는 능력의 약점을 공략해야 했다.
“넌 전략을 잘못 짰어. 차라리 네 능력을 이용해서 보스 쪽부터 숫자를 줄여 나갔어야지. 네크로맨서니까 금방 끝낼 수 있다며 얕본 게 네 패인이다.”
“무슨 헛소리를…….”
쿠구구궁!
그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땅 속에서 거대한 골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놈들은 안재현과 성현을 가운데 두고선 순식간에 주위를 둘러쌓았다.
푸르스름한 빛을 내며 성큼 다가서는 고대 골렘들.
원래 이런 일반 소환수들 따위 안재현 정도 되는 실력자의 앞에선 특별한 상성이 아닌 이상에야, 아무리 숫자가 많아 봤자 쓸려 나갈 뿐이다.
콰아앙!
“이건…….”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내구성이 뛰어난 데다가, 온몸이 특수한 마력제 금속으로 이루어진 골렘들에겐 안재현이 입히는 내상이 거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으로 들어갈수록 마력의 핵에 더욱 영향을 받아 단단해지는 구조였기에, 이 골렘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선 다른 평범한 격투가들처럼 외부에서부터 깨부숴야 한다는 것이다.
방어력과 물리 내성까지도 무시하는 안재현을 대상으로 한 몇 안 되는 상성종이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래 성현의 수하 중 골렘류 몬스터라면 발텐을 비롯한 고대 골렘들뿐이었고, 실제 생김새도 그들과 거의 동일했다.
하지만 지금 나타난 이 골렘들은 과거에 성현이 수하로 들였던 녀석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골렘 같은 경우 한 번 수하로 만든 이상 그 숫자가 늘릴 수 없고, 지속적으로 소모될 뿐이야. 하지만 마나의 맥을 확보한 덕분에 숫자를 엄청나게 늘렸지.’
성현은 발텐을 비롯한 고대 골렘들의 구조와 동력부까지 참고해 본 따, 강력한 골렘을 대량으로 생산 제작하였다.
지하 서고 아래에 위치한 마나의 맥을 이용해, 리치들의 오랜 지식까지 합쳐 이 마력 생물체를 양산해 낸 것이었다.
커다란 덩치와 마력 감응이 필요한 까다로운 제작법 탓에 자원을 대량으로 먹긴 했지만, 어차피 지하 던전에 넘쳐 나는 게 자원들이었다.
콰아아앙!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냐……!’
안재현이 신경질적으로 골렘의 머리통을 부쉈다.
성현을 압박해 끝내려 했던 안재현이었지만, 난입한 골렘들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
워낙 민첩해 골렘들이 안재현에게 유의미한 공격을 가하는 것은 무리였지만, 애초에 성현이 이들을 잔뜩 불러낸 것은 그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시간 벌이를 위함이었다.
가장 강력한 특성이 무의미해진 데다가, 워낙 많은 숫자가 달려들다 보니 안재현조차도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이미 그를 상대로 많은 손실이 있을 걸 가정하고서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던 탓에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이 따위 잔머리를 굴려 봤자다!”
하지만 안재현은 기어코 앞길을 막는 골렘들을 부숴 버리며 접근하는 데에 성공했고.
순식간에 성현의 간격 안쪽으로 파고든 그는 결국 정권을 찔러 넣는데 성공했다.
콰아아앙!
“컥……!”
한참을 날아간 성현이 피를 한 움큼 토해 냈다.
각성한 이후 수많은 싸움을 거쳐 오며 이런 고통이나 충격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잠시 멈춘 것처럼 멍해질 정도였다.
겉으론 큰 외상이 없어 보여도 속은 이미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동안 체력 스탯이 늘어난 데다 생명력 보너스까지 받고 있는 덕에 즉사는 면해 목숨은 건졌다.
물론 그렇게 머리가 멍한 와중에도 그는 거의 본능처럼 벌떡 일어나 자세를 취했다.
전투 도중에 정신줄을 놓으면 어찌 될 지야 뻔한 일.
아니나 다를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길을 막는 골렘들을 부숴 가며 안재현이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이대로 끝을 내주마!”
“아니… 그렇게 쉽게 당해 줄 순 없지.”
[군주, 로칸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재생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츠츠츠츳!
비틀거리며 일어난 성현의 몸 주위로 옅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지간한 치유 포션으로는 이 정도의 깊은 내상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가져온 재생력 특성은 달랐다.
오히려 내부에서부터 빠르게 내상을 회복하며, 급속도로 그의 몸 상태가 회복되었다.
카아아앙!
검을 휘두른 성현이 안재현을 마주했다.
아주 멀쩡해진 몸 상태로 말이다.
“조금 더 노력해 봐. 아직 끝나려면 한참 멀었으니까.”
* * *
결계로 인한 저주들에 더해, 수천에 가까운 고대 골렘의 숫자.
그럼에도 안재현은 성현이 동원한 골렘들을 대부분 박살 내며 싸움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체력을 갉아먹는 쇠약 디버프까지 달고서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법도 하건만, 사람이라지만 괴물들보다도 지독한 녀석이었다.
하나 안재현이 또 다시 골렘들을 물리쳐 내며 성현을 향해 달려들던 그때.
콰아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안재현이 옆으로 나뒹굴고 말았다.
“이런 젠장! 또 어떤 놈이 방해를……!”
신경질적인 그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하나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또 다른 골렘이 아니었다.
전투에 참여하던 이즈나, 결계를 유지 중이던 네이아까지 포함한 네 마족 군주가 성현의 옆에 섰고.
그 주위로 커다란 보스 몬스터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키이이익!”
그 뒤편으로는 결계 내부를 휘젓던 수많은 자이언트 앤트와 수하들이 가득 차 있었고.
한승희와 이지스의 산하 길드원들까지 결계 안으로 들어와 합류해 있었다.
“이, 이건…….”
어느새 주위를 가득 채워 버린 성현의 수하들.
결계 내부에 그의 편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싸우느라 시간이 지체된 사이, 파천의 모든 헌터가 이지스에게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너 하나 정도인 것 같은데, 그만 끝을 낼 시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