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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96화 (96/202)

96화 파천

“이성현, 이 자식! 그렇게 말려도 직접 가더니, 갑자기 연락 두절이라니……!”

한승희가 분통을 터트리며 도심을 가로질렀다.

기어코 걱정하던 일이 터져 버린 것이다.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잖아! 자기 목숨만 걸린 문제도 아니고!”

성현의 목숨 따위, 원래대로라면 그녀가 상관할 바 아니다.

하지만 혈마법으로 인해 계약 관계로서 묶여 있는 그녀는 성현의 목숨과 함께 묶인 운명 공동체 신세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죽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연락이 두절된 위치도 주변인 데다, 이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 했는데.’

고개를 돌려가며 성큼성큼 도로를 걷고 있는 한승희.

갑작스러운 사태 때문인지 버려진 차들이 잔뜩 어질러져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방향은 제대로 찾아온 게 맞았다.

“이쪽이야!”

“바, 방금 그거 어떻게 된 거야? 던전인가?”

“몰라, 일단 대피부터 해! 괜히 주변에 있다가 무슨 꼴을 당할지 몰라.”

한승희가 향하는 방향의 반대로 빠져나오고 있는 시민들의 무리.

도심의 모습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시민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와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운이 좋게 결계 안에 아슬아슬하게 갇히지 않은 이들이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대피령이 내려지거나 상황이 파악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 저번 서울에서 일어난 결계형 던전의 참사가 벌어진 지 오래 지나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고, 주저 없이 주변을 최대한 빠르게 벗어나려 했다.

몬스터가 출몰한 것이 아닌 헌터들 간의 싸움이라 해도 주위에 있는 일반인의 목숨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이게……!”

“헌터들? 이렇게나 많이 나타나다니.”

하나 결계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오던 시민들은 한승희를 마주하고선 자리에 뻣뻣이 굳고 말았다.

정확히는 그녀를 마주한 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녀의 뒤편에서 함께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수많은 헌터.

한승희를 따라온 길드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저, 전쟁이라도 난 건가.”

“어서 가자고.”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와 인원수에 사람들은 발걸음을 서둘렀다.

보통 사안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들이 잘못 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한승희는 처음부터 파천과의 전면전까지 상정하고서 이 인원을 데려왔다.

“파천 쪽 움직임은 어때?”

“긴급 소집까지 내리고서 인원을 모조리 동원하려는 모양입니다. 이미 길드장인 안재현과 본대는 이쪽을 향해 접근 중이고요.”

“역시나…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개 같은 놈들. 파천 놈들하고는 웬만해선 엮이기 싫었는데 이런 식으로 붙게 될 줄이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놈들이 준비한 함정이라는 게 확실해진 이상 무슨 수를 써서든 길드장 놈을 빼내야지. 녀석이 당하면 어차피 길드고 뭐고 다 끝이야.”

성현의 연락이 두절되자마자 한승희는 즉시 비상소집을 통해 수천의 길드원들을 데려왔다.

파천 길드의 영역과 멀지 않은 거리인 데다 과한 대처가 될 수도 있었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바로 수를 쓴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모른다곤 해도 이지스의 직속 길드원들은 모두 성현의 소환수였고, 성현이 당하게 되면 이 길드는 산산조각 나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파천의 수작일 거라는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우우우우웅!

“저건가. 도시 한복판에 결계가 생겨났다더니 역시나…….”

고개를 들어 올린 한승희가 인상을 찌푸렸다.

더 가까이 다가서자 시야에 결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S급의 결계형 던전이라도 생겨난 듯한 모습.

하나 던전의 존재 때문은 아니었고, 이 정도의 결계를 인위적으로 펼칠 정도라면 파천의 정시영뿐이었다.

‘잠깐, 그럼 이성현도 정말 위험한 거 아닌가? 아무리 녀석이라 해도 상성상 너무 불리한데.’

무려 S급의 안티메이지인 정시영이다.

아무리 보통 네크로맨서와는 거리가 먼 성현이라 해도, 마법을 쓸 수 없으면 전력이 한참이나 깎여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거기다 그가 상대해야 할 것은 저 결계의 안에 있을 헌터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파천 길드가 이곳을 향해 통째로 움직이는 중이었고.

놈들은 이곳에서 확실히 성현의 숨통을 끊어 버린 후, 이지스 길드 전체를 아예 전면전으로 밀어 버릴 셈이었다.

“저희가 먼저 도착하긴 했지만, 결계가 있으면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반면 파천 녀석들은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겠지.”

한승희가 눈앞의 결계를 노려봤다.

던전의 결계와는 달리, 정시영이 만들어 낸 결계는 피아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아, 진짜 골치 아프네.”

비교적 전투 능력이 떨어짐에도 S급 헌터 중에서 윗급 취급받는 이유가 바로 그녀의 강력한 특화 능력 덕분이었다.

마법 파쇄가 가능한 안티메이지에 더해 강력한 결계 생성까지.

물론 결계 해제 능력을 지닌 헌터라면 그들 중에서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한 차원 다른 ‘S급 헌터’의 결계였다.

어중간한 등급의 헌터들 수십여 명이 달라붙어 봐야 이만한 강도의 결계를 열려면 일주일도 넘게 걸릴 것이었고, 그마저도 정시영이 자기 결계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 뿐이었다.

한 마디로 정시영을 직접 제압해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이다.

‘파천의 본대가 지금쯤 코앞까지 다가왔을 텐데, 이대로 가다간 끝장이야. 결계의 반대편으로 가 시간 벌이라도 해 줘야 하나? 아니, 파천의 길드장인 안재현까지 있다면 시간 벌이조차 불가능할 텐데…….’

“다들 제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군요.”

한승희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그 순간.

기다란 스태프를 쥐고 있는 한 여성이 불쑥 그녀의 앞에 나타났다.

“뭐?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넌 또 누구지?”

“이지스 소속의 새로운 간부입니다.”

리치들의 군주, 네이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도 이지스의 길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한승희는 바로 정체를 직감할 수 있었다.

‘이지스의 간부라면… 이성현이 밑에 둔 보스 몬스터 녀석이라는 건데. 무슨 S급 전력들이 이렇게 하나씩 튀어나는 거야.’

한승희가 반쯤 질린 듯한 눈빛으로 네이아를 바라봤다.

저 간부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한승희였기에, 한 번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즈나나 로칸처럼 딱 봐도 한 실력 할 것 같은 자들과는 달리.

겉으로 보기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을 뿐, 그렇게 강해 보이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한승희조차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평소 자신의 기척을 마법으로 완전히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정을 알고 있는 한승희를 제외하고는 다들 못 미더운 눈빛으로 네이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아주 강력한 결계예요. 그것도 외부에서 부수기 매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죠. 하지만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마법진의 도움을 받은 듯합니다.”

“마법진이라면…….”

“마법진 덕분에 이런 강력한 결계 마법을 홀로 사용하고 있음에도 안정적으로 마력을 공급받고, 부담을 덜도록 보조받을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보조할 수단으로 사용할 뿐, 마법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는 아니네요.”

결계를 이리저리 바라보던 네이아가 훤하다는 듯 말을 쏟아 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못마땅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도 있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마법진이라면 심각한 비주류인 탓에 원래 전문가가 거의 없는 분야다. S급은커녕 A급 수준의 능력자조차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워.”

한승희의 옆에 서 있던 백명 길드의 간부가 끼어들며 말했다.

실제로 S급 헌터의 마법진을 파훼할 수 있는 이는 사실상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네이아의 입가는 피식 올라갈 뿐이었다.

츠츠츠츠츳!

네이아는 줄곧 기척을 감추고 있던 자신의 장막을 걷어 냈다.

그러자 그녀의 주위로 어마어마한 마력이 휘감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그녀가 그야말로 압도적인 마력량을 뿜어내자 남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앞에서 마법진을 사용하다니. 어디, 인간들의 실력을 한번 구경해 보도록 하죠.”

* * *

콰아아앙!

휘둘러진 검격에 기둥들이 거칠게 베여 나갔다.

마치 던전 안에서 싸우듯 주변 피해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거친 싸움 방식이었다.

이미 수차례의 충격으로 인해 심하게 파손되었던 건물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서 통째로 무너지며 잔해가 쏟아졌다.

물론 상위 S급 헌터들 간의 싸움에 쏟아지는 잔해들 따위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자기 건물들 아니라고 너무 막 부숴 대는 거 아니야?”

“그렇다면 너도 같이 부숴 주마.”

카아앙!

여유를 부리는 성현에게 오정우가 검을 뻗었다.

하지만 성현은 무기조차 꽂아 넣은 채로 맨손으로 오정우의 검을 쳐 내고 반격까지 가해 왔다.

웨어울프 로드인 로칸의 핵심 특성, ‘무투술’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체술적인 능력이 급격히 상승하였고, 성현의 팔과 다리는 무엇보다도 강력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

쿠우우웅!

성현은 땅을 박살 내며 기어코 오정우를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러자 오정우의 인상은 한껏 찌푸려졌다.

‘젠장,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법도 사용할 수 없는 녀석한테 이렇게 시간을 끌리다니.’

원래 S급 헌터쯤 되면 자신의 분야에 최고 수준 경지에 이른 자나 다름이 없었다.

똑같은 전사 직업군에 전투 방식까지 비슷하다 해도, 일반적인 수준의 헌터들이라면 결코 불가능해 보일 일들을 해낼 수 있었다.

덕분에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상대가 아니라면, 서로 지닌 특성 간의 상성 차이를 크게 받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같은 이유로 마법계 헌터들에게 S급의 안티메이지인 정시영의 존재는 완전한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S급의 마법계 헌터들에게 어설픈 안티메이지들이 덤벼 봐야 얼마든지 찍어 누르면 그만이라 해도, 그녀의 마법 파쇄는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하나 이는 성현에게는 상관이 없는 말이었다.

그림자 아래에 둔 모든 군주의 특성을 가져올 수 있는 S급 특성, ‘백귀야행’의 존재.

자신의 약점을 찔러 들어오는 상대라면 즉시 다른 전투 방식을 선택하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젠장!”

신경질적으로 땅을 차 낸 오정우.

그는 다시 성현을 향해 살기를 뿜어냈다.

‘뭐, 그래도 파천의 오른팔 자리는 괜히 따낸 게 아니긴 하네.’

청성의 3성과 동급 취급을 받던 오정우답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무리 두 번째 정수까지 획득하고 강해진 성현이라 해도 마법이 봉쇄된 상태로는 시간을 지연시키는 게 전부일 뿐.

이대로는 쉽게 싸움의 끝을 볼 순 없을 것이다.

이즈나는 다른 S급 헌터에게 묶여 있는 상황.

정시영은 마법 봉쇄와 함께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었고.

네 명의 S급 헌터 중 성현이 직접 감당할 자들은 눈앞의 오정우를 비롯한 두 명뿐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아까부터 창이 날아오지 않고 있지 않아?”

“…….”

성현이 꺼내 든 말에 오정우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며 반응했다.

그 역시 조금 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장거리에서 강력한 투창을 던지며 성현을 압박해 오던 또 다른 S급 헌터의 개입이 사라졌다.

“하긴 슬슬 시간이 되었지.”

성현은 슬쩍 시계를 내려다보고는 미소 지었다.

“아무래도 그쪽에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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