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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94화 (94/202)

94화 손님맞이 (2)

바깥으로 나온 성현은 거리를 걸었다.

누군가를 처리한다거나 싸우기 위해 나선 것은 아니었다.

가면도 쓰지 않고서 나온 것이었으니 그를 알아볼 이도 없었다.

“주군.”

“밖에선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 네.”

그 옆을 함께 걷고 있는 이즈나가 있었다.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쓴 데다, 짙은 선글라스까지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누가 보면 연예인인 줄 알겠네.”

“그, 그거야 성현 님께서 시키셨으니까……!”

“나도 알아.”

성현이 피식 웃으며 걸었다.

이지스 길드의 간부이자 S랭크의 헌터다.

처음이야 정보가 적다 보니 알려지는 것이 늦었지만, 이즈나도 이제는 얼굴까지 곳곳에 알려진 유명인 신세였다.

최근 들어 검귀라는 이명이 붙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 활동 기간도 짧고 적들도 항상 확실하게 처리를 해 놓는지라, 그녀가 전력으로 싸우는 모습을 제대로 본 이는 없었다.

덕분에 자세한 전력이나 전투 방식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백명 길드의 한승희를 제압하고서 굴복시킨 장본인이라는 것과 강력한 마법과 검술을 함께 구사하는 마검사라는 것도 알려졌다.

비주류에 속해 있는 마검사 계열의 국내 유일의 S급 헌터다 보니, 엇비슷한 활동량을 보인 로칸보다도 조금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

모자나 선글라스 정도로는 부족했는지 힐끔힐끔 돌아보는 사람들.

물론 그녀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고서 돌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 시선을 끌어들이는 그녀였는데, 자신과 함께 다니는 중에 맨얼굴로 다니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처음엔 나 혼자 올 생각이었지만, 호위 역을 자처한다니까……. 그리고 한승희도 절대 혼자서 다니진 말라고 경고했지. 확실히 이젠 나도 마냥 마음 놓고 다닐 순 없겠어.’

성현은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지하철역도 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중심가답게 중간중간 헌터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중 특별히 눈에 띌 만한 헌터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태 이곳 주위를 걸으며 계속해서 느낀 것이었다.

성현이 지금 들어서 있는 장소는 파천과 이지스 길드의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자리 잡은 세력이라곤 몇몇 중견 길드 정도가 최대인, 이른바 중립 지역이었다.

당연히 그런 만큼 성현을 조금이라도 위협할 전력은 없었다.

오히려 성현이 홀로 이곳 길드들을 다 쓸어 버린다면 모를까, 거창하게 호위가 필요한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9대 길드 중 셋을 적으로 돌린 데다가, 파천과의 전면전을 앞둔 성현의 입장 때문이었다.

‘고위 헌터일수록 특수한 자신만의 능력을 지니기 마련이니까. 예측 못 할 변수를 만들어 내는 능력도 훨씬 많아지고.’

수준이 높은 고위 헌터들 중에선 각자 자신의 특성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로 인해 싸움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아무리 개인이 강하다고 해도 자칫 함정에 빠지거나 능력간 상성의 문제상, 상황이 나쁘게 전개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과거 개인 무력으로는 더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도윤일이 성현에게 맥없이 당해 버렸던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그나마 성현은 여태까지 청성이나 길드를 상대하는 동안 싸울 시기나 장소를 마음대로 주도해 변수 계산이 되었다지만, 이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기반 세력도 드러나 버렸고, 녀석들이 엄청난 바보들이 아닌 이상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서 싸우기만 하는 건 힘들었다.

한인호나 안재현처럼 최강이라는 길드장들이 시작부터 앞장서 적대 길드를 박살 내고 다니지 않는 이유도 바로 혹시 모를 변수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인간인 이상 목숨은 하나뿐이었으니.

성현도 밖을 다닐 땐 웬만해선 호위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좋을 수 있었다.

“아무튼 시선은 최대한 피해 가며 조사하자고. 이 지역 주변에서 연락이 갑자기 끊겼으니, 뒤쫓을 단서 말고도 놈들이 뭔가를 준비해 놨을 수도 있으니까.”

이 주변 지역에서 파천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그 보고를 마지막으로 정보원은 실종되어 버렸다.

산하 길드원이긴 했지만, 그래도 엄연한 내부 길드 소속 헌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주변 지역은 파천이 꼬드길 만한 중대형의 길드들이 여럿 포진해 있는 만큼, 정황상 놈들과 직접적인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거리를 걷던 도중.

“어, 잠깐. 너, 성현이 아니냐? 여기서 뭐 해?”

“응?”

성현이 우뚝 멈춰 섰다.

아는 척을 하며 다가오는 남자.

성현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용호?”

성현의 고등학교 동창, 최용호였다.

이전까진 굉장히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으나, 청성에 입사한 뒤로는 워낙 바쁘게 지낸 탓에 연락이 거의 끊어진 상태였다.

알아보는 그의 반응에 반갑게 다가선 최용호는 성현의 손을 낚아채 흔들었다.

“이야, 진짜 맞네! 하하하! 이런 우연이 다 있냐.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직장 잘 잡아서 출세하더니.”

“출세는 무슨. 거기서 잘린 지가 언젠데.”

“자… 잘려?”

갑자기 훅 들어온 성현의 말에 최용호는 당황했다.

동창 중에 성현이 청성을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웬만한 대형 헌터 길드만 해도 급여 조건이 엄청난지라 꿈의 직장이라고 불렸고, 경쟁률도 말이 아니었다.

한데 성현은 대학까지 금방 중퇴해 버리고선 청성에 덜컥 입사를 해 버렸으니.

졸업 후 각성해 D급 헌터로 활동 중인 박영현을 제외하면, 사실상 동창 중에선 가장 출세한 녀석이나 다름이 없었다.

승진도 하고서 자리도 잘 잡았다고 들었는데 거기서 잘렸다니.

잠시 말문이 막혔던 최용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이런, 그런 소식은 전혀 못 들어서. 미안하다.”

“아니. 미안할 것도 많네. 아무튼 반가워. 정말 오랜만이네.”

“그러게 저번 동창회는 왜 안 왔어?”

“우리 나이에 무슨 동창회를……. 사실 그때 한창 바쁘기도 했고.”

“하긴 차라리 잘했다. 박영현 그 자식, 헌터로 각성했다고 완전 코가 하늘을 찌르던데, 거만에 찌들어서는 도중에 못 볼 꼴도 봤다니까.”

예전 일을 떠올린 최용호가 질색하며 말했다.

헌터랍시고 동창회에 나와서 일반인 상대로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꼭 일반인 사이로 끼어들어 와 그런 알량한 우월감을 느끼려는 헌터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뭐… 뻔한 이야기지만.’

성현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당시 청성에서 헌터들과 함께 한창 구르던 성현으로선 대강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갔다.

청성의 헌터들도 마찬가지라지만, 원래 어중간한 수준의 헌터들이 주변 일반인들을 더 심하게 갈구며 우월감을 충족하려 들기 마련이었다.

“잠깐, 그런데 이분은……?”

그러던 중 최용호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눌러쓴 모자 아래로 새하얀 머리칼을 늘어뜨린 미인.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시선을 끄는 분위기의 소유자였다.

성현의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이즈나에게 시선이 간 것이다.

“혹시 너, 설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성현은 괜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

하지만 최용호는 눈을 반짝이고 있는 게, 여기서 대화를 멈출 기미가 안 보였다.

‘으음… 슬슬 돌려보내야겠는데.’

슬쩍 고개를 돌린 성현은 잠시 주위를 살펴보았다.

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긴 하다만, 이럴려고 여길 찾아온 건 아니었다.

이즈나에 대해 캐물으려 든다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적당히 대화를 주고받던 성현은 대화를 끝맺으며 그를 돌려보내려 했다.

“야, 얼마 만에 봤는데 정말 그러기야?”

“됐으니까 이만 가. 다음에 먼저 연락할 테니까.”

“진짜지?”

“그래, 이 자식아.”

최용호의 투정에도 성현은 그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그 순간, 성현의 뒤편에서 섬뜩한 기척이 번뜩였다.

콰아아아앙!

난데없이 도심의 거리 한복판에서 들려온 굉음.

건물의 벽이 무너지며 잔해들이 바깥으로 튕겨 나왔고, 그로 인해 잔해들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바로 옆에 있던 성현과 최용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하필이면 가장 커다란 잔해 덩어리로 말이다.

“우, 우아아악!”

날아드는 잔해에 기겁한 최용호가 비명을 질렀다.

속도든 크기든, 맞으면 무조건 즉사일 테지만, 도무지 일반인이 피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었다.

콰과과광!

하나 반으로 쪼개진 잔해 덩어리는 두 조각이 되어 그의 양옆을 스쳐 지나갔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도로에 처박혔다.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이 구해진 최용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고.

야구 모자를 벗어 던진 이즈나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맨손으로 저 커다란 잔해 덩이를 반으로 박살 내 버린 모습.

심지어 다른 시민들을 향해 날아들던 크고 작은 잔해들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불길에 모조리 산화되어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입을 쩍 벌린 최용호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이 인근을 떠들썩하게 만든 S급 헌터, 이즈나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한데 그런 거물이 자신의 앞에 다가오더니 믿을 수 없는 말을 건넸다.

“일단 자리를 피하죠.”

“네… 네?”

“성현님의 친구분이라 들었습니다. 우선 안전한 곳으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인간이라 해도 성현과 친분이 있는 관계이다 보니 이즈나도 그를 함부로 대하진 않았다.

“서… 성현이라고요?”

그의 이름에 최용호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땐 이미 성현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뒤였다.

* * *

와장창!

“커헉……!”

박살 난 유리창과 함께 만신창이가 된 헌터가 튕겨 나왔다.

유리 파편 따위, 헌터인 그에겐 박히지도 않았지만, 이미 험한 꼴을 당한 터라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었다.

“제, 젠장…….”

겨우 땅을 짚은 남자가 거친 숨을 뱉었다.

처참한 꼴이 된 그의 길드 건물.

주변엔 희생당한 길드원들이 쓰러져 있었고, 흐릿해진 시야는 제대로 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게 좋은 말로 했을 때 협조를 했어야지.”

“우린 너희 싸움에 끼고 싶지 않다 했을 텐데!”

“하, 이것들이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네.”

난데없이 길드로 들이닥친 수십여 명의 습격자.

이들은 파천 길드의 의뢰를 받아 움직이고 있는 용병단 소속 헌터들이었다.

파천과 적대 관계도 아니었던 이 중견 길드가 습격을 당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지스와의 싸움을 거부한 경기 남부의 길드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최근 성찬일이 나서 파천의 편에선 중대형 길드 몇 곳을 박살 내며 주변 지역의 길드들에게 강렬한 경고를 날렸고.

괜히 거대 길드 사이에서 불똥 튀지 않도록 상당수의 길드는 이 판에서 빠지려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일이 잘 풀려 나가고 있던 파천 길드의 입장에선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보복까지 가해 가며 자신들에게 힘을 보태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걱정했는데 말이지.”

“음?”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헌터들의 시선이 돌아갔다.

입구 쪽에 선 성현이 검을 쥔 채 서 있었다.

“굳이 이런 어중간한 길드들까지 박박 긁어모아 봐야 큰 의미도 없을 텐데. 앞에서 장렬히 산화할 고기 방패로나 쓰려는 건가?”

“…넌 또 뭐야? 이 길드 소속이냐?”

“글쎄.”

달그락!

성현은 자신의 얼굴 위로 가면을 덮어썼다.

“그건 보면 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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