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86화 (86/202)

86화 사냥 개시 (3)

텅 빈 도심의 거리.

갑작스러운 몬스터의 등장에 사람들이 대피하고 난 뒤였다.

하나 모두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레 몬스터가 나타난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달려온 청성의 헌터들.

그리고 뒤이어 네크로맨서인 영왕이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자, 인근 지부에서 청성과 산하 길드의 헌터들이 속속들이 증원을 통해 합류해 왔다.

무려 3성의 멤버 중 하나인 도윤일을 쓰러뜨린 상대다.

소속조차 없는 개인이라 한들 수차례나 청성과 부딪혀 온 적이었고, 어떤 수를 써서든 이 자리에서 끝을 보아야 했다.

하지만 개인 헌터 단 한 명을 상대할 거라는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그들보다도 한발 앞서, 전혀 예상치 못한 자들이 이미 도시로 잔뜩 들어서 있었다.

카아앙!

어질러진 거리에 날카로운 검 소리가 곳곳에서 울렸다.

차량이 통째로 갈라지며 건물 벽들이 무너지는 살벌한 헌터들 간의 싸움.

B급 이상의 고위 헌터까지는 아니라 해도 양측 모두 결코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고.

당혹감에 빠진 길드장은 거친 숨을 뱉었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영왕을 잡는다는 거 아니었어? 길드끼리 전쟁이 났다는 말은 듣지도 못했는데……!”

청성 측 산하 길드인 금륜의 헌터들이다.

영왕을 상대로 포위망을 짜는 것을 돕기 위해, 옆 구역에서 길드원을 이끌고 달려온 그들이었으나.

집결한 그들을 반기는 것은 이지스의 산하 길드원들이었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 이미 구역을 대대적으로 넘어온 그들이었고, 청성 산하의 헌터들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공격해 왔다.

심지어 다른 쪽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산하 길드간의 전초전이 아니라, 청성과 이지스의 길드원들도 격렬히 부딪히고 있었다.

경계가 모호한 분쟁 지역도 아니고, 대놓고 강남 도심에 나타난 수천의 길드원이다.

이는 대놓고 길드 간 전면전에 들어섰다는 뜻이었다.

“길드장! 이거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하긴, 빨리 뚫어내! 미친것들이 겁도 없이 여기가 어디라고!”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

대체 어쩌다 이런 싸움이 벌어지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청성과 외부 길드의 싸움이 벌어진 이상 해야 할 일이라면 뻔했다.

이지스 길드.

최근 수도권의 대형 길드 여럿을 쓰러뜨리고서 급부상한 세력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도 감히 9대 길드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

한데 그것도 서울을 차지하고 있는 양대 길드, 청성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오다니.

놈들 길드의 간부나 길드장에게 제정신이 박혀 있다면 불가능했을 짓거리다.

이러한 의구심은 적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성을 상대로 싸움을 걸다니… 이거 잘하고 있는 거 맞아?”

“몰라 젠장, 여기까지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인데.”

이지스의 중견급 산하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미 선이라면 한참 넘어 버린 지 오래였기에, 거리 장악을 위해 서로 간의 싸움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맞닥뜨린 인원수가 비슷한 데다, 길드 체급도 비슷한 상대였기에 팽팽한 싸움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균형은 일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콰아아앙!

“뭐, 뭐야!”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폭음.

그리고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에서 커다란 덩치의 몬스터가 나타났다.

“크아아아아!”

“트… 트롤?”

“그것도 보스 몬스터잖아!”

서리트롤 왕 ‘그롬’.

갑작스럽게 전장에 난입한 녀석의 등장에 누구 할 것 없이 양쪽의 헌터들 모두 기겁하고 말았다.

서리트롤이라면 강력한 상위 던전의 몬스터였고, 보스라면 더 골치 아픈 괴물이었다.

콰아앙!

“크아아악!”

휘둘러진 그롬의 팔에 금륜 길드 측 길드장이 나가떨어졌다.

중간에 막아서던 길드원 여럿까지 순식간에 때려눕히며 전진한 그롬의 파괴적인 모습.

성현의 군주가 되며 200레벨을 넘어선 그롬이다.

처음 칼날 협곡에서 쓰러뜨리고 부하로 맞이했을 때 녀석의 레벨이 109레벨이었는데, 당시의 스펙보다 거의 2배 가까이 강해진 것이었다.

일반적인 서리트롤의 군주만 해도 벅찬 마당에.

당연히 이곳 중견급 길드의 헌터 전력 정도로는 막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뭐… 뭐가 저렇게 강해.”

“그런데 저 녀석, 저희는 공격하지 않는데요?”

“어, 그러고 보니…….”

오직 적대 헌터들만을 공격하고 있는 그롬의 모습.

어지러이 양측의 헌터들이 섞여 싸움이 일어나고 있던 걸 생각하면, 마치 소속을 구별할 수 있다는 듯 보이는 녀석의 행동이었다.

그 행동에 이상함을 느끼고 자세히 살펴보자, 그들은 그제야 그롬의 몸에서 검은 그림자를 풀풀 풍기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저건 영왕의 소환수잖아? 몬스터가 아니었어. 저번에 영상에서 봤던 그대로야. 그렇다는 건 설마…….”

남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 주변에 영왕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야 이미 들려온바.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길드원은 여전히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이해 못 한 듯 보였지만.

몇몇 눈치 빠른 이는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베일에 감싸여 있던 그들 길드장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다.

* * *

9대 길드, 청성.

놈들은 성현이 여태 쓰러뜨려 온 다른 길드들처럼 어정쩡한 전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국내의 모든 길드를 따져도 두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고, 당연히 그가 지닌 전력을 다해야 가능성이 보일까 말까 했다.

지금 상황에서 청성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조금 더 힘을 키운 뒤 청성과 맞붙을 생각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던전의 통로가 뚫려 버린 변수 탓에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이것뿐이었다.

어차피 지하 던전의 존재를 들키고서 싸우는 것보다야 먼저 선수를 치고서 던전의 존재까지 감추는 편이 나을 테니 말이다.

어찌 됐건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 이상.

싸움이 성립되기 위해선 여태껏 숨겨왔던 이지스와의 연관성 역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지스의 전력은 물론, 영왕으로서의 전력까지도 모두 끌어내야 했기에 더 이상은 정체를 숨겨가며 따로 놀 수는 없었다.

쿠구구궁!

“키이이이익!”

“젠장, 이렇게 질긴 놈은 처음이네.”

바닥을 구른 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수십여 차례의 검격을 집중적으로 퍼부어 주며 니아글리프의 한쪽 날개를 이미 잘라낸 성현이었다.

덕분에 니아글리프는 방해를 떨쳐낸다 한들 다시 날아오를 수 없었다.

하나 여전히 녀석의 생명력은 바닥나지 않았다.

꽤 긴 시간을 마주해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니아글리프는 펄펄 날뛰며 성현을 죽이려 들고 있었다.

‘가디언이라는 놈들이 일반 보스들보다 한 단계 위인 건 확실해.’

여기까지 치고받은 것만 봐도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수준의 생명력이다.

애초에 미지의 힘을 주변 필드의 몬스터들에게 불어넣고, 미쳐 날뛰게 한 것이 바로 놈의 소행이었다.

정확한 수준까지 파악은 무리라 해도 어느 정도는 예상한바.

하지만 지금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싸움이 터지고서 시간이 많이 지났어. 청성의 헌터들이 본격적으로 몰려들기 전에 빨리 합류를 해야 한다. 특히 공략이 끝나기도 전에 3성급의 전력이 도착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까.’

본격적으로 길드 간의 싸움이 터져 버린 지금.

성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 가디언 녀석과의 싸움을 빠르게 끝내는 것이었다.

도중에 방해를 받거나 청성에게 빼앗기기 전에 직접 처리해야 연계 퀘스트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데다가.

몰려들 청성의 헌터들을 자신의 힘없이 그의 소환수와 소속 길드원들만으로 받아내라 할 순 없었다.

“발텐, 조금만 더 부탁할게!”

“그어어어!”

성현의 말에 고대 골렘 발텐은 더욱 힘차게 니아글리프를 잡았다.

그리고 성현은 빠르게 발을 박찼다.

‘이대론 발텐도 얼마 버티지 못해, 조금 더 속도를 올린다.’

발텐의 몸 곳곳엔 커다랗게 금이 가 있었고 위태위태해 보였다.

날뛰고 있는 니아글리프를 계속해서 붙잡고 늘어지며 뒤엉키다 보니 무시 못 할 대미지가 누적된 것이다.

그의 군주들 사이에서도 굉장히 뛰어난 내구성과 생명력을 지닌 발텐이었으나, 가디언인 니아글리프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만약 이대로 발텐이 쓰러지고 니아글리프가 다시 전격을 마음껏 방출하기 시작한다면, 공략에 필요한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반드시 발텐이 멀쩡할 때 이 공략을 끝을 내야 해.’

콰악!

검을 쥔 성현이 니아글리프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 * *

콰아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잔해들이 터져 나왔다.

건물 여러 폭이 동시에 무너지며 뿌연 흙먼지로 가득 찼고, 그 안에서 주르륵 한 남자가 미끄러져 나왔다.

“검을 쓰길래 검사인 줄 알았더니… 이런 마법도 쓸 줄 알았던 건가?”

청성의 최고 간부, 주창연이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그의 앞엔 검은 코트 차림의 이즈나가 서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이지스의 간부였다.

‘간부급이 한승희와 유정수를 쓰러뜨렸다 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확실히 보통 실력이 아니다.’

주창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급격히 세를 불린 이지스 길드와 그 간부들에 대해 주창연도 길드 차원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몇 가지 건네받기야 했었다.

하나 워낙 나타난 지 얼마 안 된 헌터인데다 대외활동이 거의 없다 보니 알려진 정보도 매우 적었다.

오히려 한승희를 제압했을 때보다 레벨업을 거듭하며 더욱 강해진 이즈나였고, 당연히 청성 길드 내에서 예상하던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어 있었다.

“방금 공격으로 확실히 끝을 내려 했는데 어떻게 버티긴 했네. 꽤 의외인걸.”

“잘난 체하지 마라. 아직 끝이… 큭?”

그때, 주창연이 순간 비틀거리더니 복부를 움켜쥐었다.

방금 휩쓸렸던 강력한 마법의 여파 때문이었다.

검사인 줄 알고 있던 와중에 마법을 지근거리에서 얻어맞은 탓에 충분히 피해내지 못했다.

“이런…….”

좋지 못한 상황에 주창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다른 이지스 측 간부에게 발목을 잡힌 유정수 쪽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는 상황.

오히려 그쪽 역시 상대에게 밀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끝을 내주지.”

이즈나가 검을 휘릭 잡았다.

몰려들 청성의 길드원으로부터 성현이 가디언을 공략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 그들이 맡은 주된 역할이었다.

하나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것은 적의 최고 간부인 S급 헌터.

청성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력이었고, 미리 제거해 둘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달려든 이즈나가 주창연의 목을 앗아가려던 순간.

쩌어엉!

“……!”

갑작스레 끼어든 창이 휘둘러진 그녀의 검을 가로막았다.

순간 끼어든 것을 눈으로 쫓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너희… 인간이 아니었군.”

S급 헌터 뇌제, 성찬일.

청성의 최고 간부이자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강의 전력이 앞을 가로막은 채 그녀를 응시했다.

금빛으로 물든 그의 눈동자는 이미 자신의 앞에 선 이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꿰뚫고 있었다.

“네 주인은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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