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사냥 개시 (2)
쿠구구구구!
“도… 도망쳐!”
거대한 괴조 몬스터의 등장.
가디언 니아글리프가 도시 한복판으로 난입해왔고, 녀석의 난동으로 인해 대지가 뒤흔들렸다.
한참 멀리서도 보이는 거체인 데다, 놈이 날개를 펼치며 몸부림칠 때마다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 탓에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도망쳤다.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사태.
니아글리프가 본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로 시스템이 돌아가며 대피 방송이 송출된 덕도 있었다.
덕분에 서둘러 대피에 나섰다만, 모든 시민들이 몬스터들의 습격을 피해 제때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지배 구역 내라고 한들, 사태를 파악한 청성 길드에서 파견한 헌터들이 도착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가디언이라는 저 존재들은 어쭙잖은 지역 길드의 헌터들이 도저히 막을 수 있을 만한 몬스터도 아니었고.
시간을 지연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격차가 있었다.
웬만한 S랭크 던전조차 상회하는 수준의 강력한 보스급 몬스터.
저 정도 수준의 몬스터 앞에선 보통의 헌터들도 일반인과 다름이 없는 수준이었고, 자기 목숨을 챙겨 달아나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사전에 발각되지 않은 데다 어떠한 징조조차 없이 나타난 몬스터인 탓에 자연히 그동안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다.
쿠웅!
“괴… 괴물……!”
기겁한 남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붉은 안광의 석상이 서 있었다.
온몸이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사람의 두 배 정도 되는 덩치였다.
니아글리프가 소환한 수하들.
성소를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을 모두 데려와 도시에 풀어놓은 것이었고, 수천 마리에 달할 만큼 그 숫자가 대단했다.
철컹!
남자의 앞에 선 석상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녀석들이 뿜어내는 안광은 일반인 정도는 가볍게 압도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몬스터의 존재에 다리가 뻣뻣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하나 녀석의 검이 내리쳐져 남자를 해치려는 순간.
콰드드득!
석상의 견고한 오른팔이 나가떨어졌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녀석들의 몸뚱이였으나, 양옆에서 달려든 검은 기사, 데스나이트가 동시에 할버드를 휘둘렀다.
그러자 놈은 목과 몸뚱이가 토막 나며 단박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사, 살았…….”
쿠구구궁!
“그어어어!”
“우아악!”
건물을 박살 내며 쏟아진 오우거의 무리.
그 모습을 코앞에서 본 남자는 거의 기절할 뻔했으나, 거리로 쏟아진 오우거들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데스나이트가 석상을 저지했듯 다른 쪽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에 나타난 석상들을 가로막은 건 청성의 헌터가 아닌 검은 기운을 풍기고 있는 그림자 군단이었다.
붉은 힘을 흩뿌린 성소의 존재들답게 일반 몬스터 수준이 아닌 굉장히 강한 적들이었다.
고블린이나 스켈레톤 전사 같은 일반 수하들로선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야 석상 하나를 제압해 파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나 그렇다고 한들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성현이 거리낌 없이 쏟아낸 물량이 있었고, 게아드와 자고스 등 몇몇 군주까지 합세하며 석상들을 빠르게 정리해 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큰 피해를 입었을 시민들의 피해가 급감하며, 혼란했던 사태가 빠르게 수습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단 한 녀석만은 제외하고 말이다.
콰과과광!
‘큭……!’
가디언 니아글리프의 난동에 단숨에 건물 하나가 증발했다.
거대한 덩치를 바탕으로 그저 날뛰어 대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남아나지 않을, 무지막지한 스펙의 소유자였다.
당연히 일반 수하들로는 저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괴물이다.
‘나도 한번 잘못 걸렸다간 뼈도 못 추리겠어.’
녀석의 앞에 선 성현조차도 마냥 쉽게 접근할 수는 없었다.
수차례 접근을 시도하려 해봤지만, 워낙 요란하게 난동을 부려대는 통에 지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니아글리프가 두 날개를 펼쳤다.
“키이이이익!”
지상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던 니아글리프가 마치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떻게 따라왔는데 그건 안 되지. 안타라스!”
성현의 부름을 들인 비룡 안타라스가 단숨에 날아들어 그를 낚아챘다.
녀석은 니아글리프가 쏟아내는 강한 번개들을 피해 틈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고층 건물의 벽면을 타고 나타난 니아드라의 등장.
촤아아아악!
“키이이익?”
거미여왕 니아드라의 거미줄이 니아글리프를 뒤덮었다.
끈적하고 단단한 거미줄이 붙잡자 몸을 띄우려던 가디언의 움직임에 다소 제약이 생겼다.
물론 놈의 거체와 괴력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니아드라의 거미줄이라 한들 이것만으로 녀석을 붙잡기는 당연히 무리였다.
하나 안타라스의 등 뒤에 올라타 있던 성현은 몸을 내던지며 고대 골렘 발텐을 소환했다.
‘먹어라.’
후우웅!
니아글리프의 머리 위.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 발텐의 거체.
가디언인 니아글리프에 미치진 못한다고 한들, 성현의 모든 수하들 중 가장 큰 몸집을 지닌 보스급 몬스터였다.
물론 단순히 몸집만 큰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골렘의 몸뚱이답게 그 무게야 상상을 초월했다.
콰아아아앙!
위에서부터 떨어지던 발텐은 주먹까지 내리찍으며 무게로 니아글리프를 짓눌렀고, 녀석이 하늘로 날아가지 못하게 찍어 눌렀다.
“키이이익!”
충격에 휘청거린 니아글리프가 마구 몸부림을 쳤다.
등 뒤에 올라탄 발텐을 떨쳐내기 위함이었다.
하나 발텐은 끈덕지게 녀석을 붙잡고 늘어졌고, 비슷한 질감의 두 거체의 괴조와 골렘이 주위를 마구 부수며 실랑이를 벌였다.
콰지지직!
니아글리프는 자신의 주위로 강력한 전격을 방출했다.
성현이 접근에 애를 먹었던 녀석의 까다로운 패턴 중 하나였다.
파앗!
하지만 오히려 발텐은 흘러들어온 전류를 흡수해 자신의 동력원으로 사용할 뿐이었다.
고대의 골렘인 발텐에게 순수 전격만으로는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빛으로 번쩍인 발텐은 되레 육중한 주먹을 힘껏 내리찍으며 니아글리프를 더욱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쿠구구궁!
“잘했어! 그대로 계속 흡수해!”
발텐이 달라붙어 전격을 흡수하고 있는 덕에, 니아글리프가 지닌 한 가지 패턴이 봉쇄되었다.
성현은 전격에 대한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었고.
곧이어 거미줄에 이어 쏟아낸 니아드라의 산성액이 니아글리프의 몸을 뒤덮으며 적셨다.
치이이익!
단단한 석상과도 같은 니아글리프의 겉표면이 지글지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혹여 발텐이 휩쓸리지 않게 신경 써야 했던 동시에.
니아글리프의 몸뚱이가 워낙 큰지라 어지간한 상대들처럼 산성액에 제대로 절여 버리기란 무리였다.
하나 니아드라는 성현이 원하는 니아글리프의 부위에 부식액을 확실히 뿌렸고, 부식 효과를 제대로 발생시켰다.
‘어차피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해.’
저런 거체의 괴물을 인간의 몸으로 일도양단하기란 불가능한 일.
힘껏 땅을 밟으며 박차 오른 성현은 검을 휘둘러 니아글리프의 어깻죽지를 베어냈다.
“키이이익!”
고통에 몸부림치는 니아글리프.
절단난 부위가 쩍 하고 벌어졌고, 분명한 대미지가 들어갔다.
물론 니아글리프의 전체 몸뚱이에 비해선 아주 작은 부위였고.
가디언이라는 이름답게 워낙 생명력이 압도적인 상대인지라 이런 공격 몇 번으로 쓰러뜨리기엔 무리였다.
하지만 아예 쓰러뜨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 페이즈의 변화만 조심해서 대미지를 누적시킨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다. 그래도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누적시켜야 하는 대미지의 양은 상당했다.
한두 시간 안에 금방 끝을 낼 수 있을 만한 공략은 아니었다.
그가 여태 상대해 온 그 어떤 보스보다도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다.
하나 이번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니아글리프가 공중으로 달아나진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다.
만약 녀석이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내버려 둔다면 공략의 난이도는 배로 올라간다.
아무리 안타라스와 와이번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들, 공중에선 녀석을 막기 훨씬 까다로워지는 데다가 전투 중 지상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날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기껏 진정시킨 도시와 시민들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하니… 일단 날개부터 떼어내야겠어.”
고개를 든 성현이 검을 번뜩였다.
여기서부턴 장기전이 필요했다.
* * *
콰아아앙!
한참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도 들려오는 폭음 소리.
도시 전체를 울릴 정도로 요란하게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었고,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물론 대부분은 몬스터를 피해 대피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오히려 몬스터가 나타난 장소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난리가 했다 해서 부랴부랴 달려왔더니… 생각지도 않은 녀석이 다 있네.”
처억.
무장까지 제대로 갖춘 채, 검은색과 청색이 어우러진 길드 복장을 차려입고 있는 이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나타난 청성의 길드원들이었다.
최고 간부를 비롯해 수백여 명의 길드원이 부서진 도시에 들어섰고.
자연히 니아글리프와 싸우고 있는 성현의 모습까지 목격하게 되었다.
“얼마 전엔 우리 몫의 던전까지 가로채더니 마치 자기 영역인 것처럼 돌아다니고 있잖아? 건방진 놈이.”
“뭐, 우리야 잘된 일이지. 몬스터도 대신 막아 주고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잡아야 할 녀석인데 둘 다 한꺼번에 처리하면 되니까.”
S급의 최고 간부, 유선재와 주창연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체 모를 거대한 보스 몬스터와 영왕이 싸우고 있는 와중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긴 했지만, 청성과 최악의 관계인 영왕을 발견한 이상 그들이 해야 할 일이야 뻔했다.
“전투에 돌입한 지 제법 시간도 흐른 것 같은데. 네크로맨서 놈이 체력적으로 정상은 아닐 것은 당연하고, 저 보스도 꽤나 대미지가 누적됐을 테지. 양쪽 모두 딱 먹음직스러운 상태야.”
주창연이 입가를 씩 말아 올리며 말했다.
거기다 영왕이 소환하는 소환수들이야 시민들을 구하겠답시고 여기저기 흩어져 전개된 탓에, 정작 네크로맨서인 녀석의 곁엔 거의 없었다.
청성의 입장에선 마치 숟가락만 들면 된다는 듯이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의 상황이었다.
최고 간부인 그들 둘은 물론이거니와.
3성의 멤버인 뇌제 성찬일까지 가까운 거리에서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주변 지부에서 산하 길드를 비롯한 청성의 헌터들 수천 명이 대거 몰려오고 있었고, 몬스터에게 발목을 잡힌 영왕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번처럼 방심하는 일 따윈 없어. 여기서 무조건 잡는다.”
“잡긴 누굴 잡아?”
처억!
하나 그 순간 끼어든 여성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변에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척들에 청성의 헌터들은 당황하며 무기를 집어들었다.
검은 코트 차림의 수많은 헌터.
모두 한 길드에서 나타난 헌터들이었다.
“네놈들 따위가 방해하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이… 이건 대체.”
당황한 주창연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즈나, 로칸을 비롯한 마족 수하들이 나타나 그들의 주변을 잔뜩 둘러싸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 해도 최소 천 단위를 거뜬히 뛰어넘는 숫자.
아무리 성현의 소환수들이라 한들 공식적으로 이지스 소속으로 올려져 활동하고 있던 길드원들이다.
대놓고 길드 복장까지 갖춰 입은 채 나타났으니.
최근 급부상한 이지스 길드의 헌터들이라는 걸 저들로서도 모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 구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스의 산하 길드 신세가 되어 버린 백명의 대표.
야차 한승희까지 길드원들과 함께 이 자리에 나타나 있었다.
“한승희 네놈까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그녀를 발견한 유선재가 이를 빠득 갈았다.
청성의 구역 내에 기세등등하게 나타난 이들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뻔했다.
“나도 딱히 오고 싶지 않았거든.”
인상을 슬쩍 찌푸린 한승희가 퉁명스레 말했다.
업무 더미에 쌓여 있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통이었는데 이런 미친 짓까지 동참하게 되다니.
하지만 지시가 떨어진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하아… 나도 이젠 모르겠다. 길드장 명인데 어쩔 거야.”
스릉!
한승희가 검을 뽑아 들었다.
강남을 지배하는 거대 길드, 청성과의 전면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