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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84화 (84/202)

84화 사냥 개시

“후… 이건 대체.”

성현이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선 채 중얼거렸다.

그로선 당혹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지하실의 던전과 이어진 공간의 균열이 그의 등 뒤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작은 크기는 결코 아니었다.

설마 이런 짓을 벌여 놨을 줄이야.

생각도 못한 상황에 직면한 성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이 균열을 누가 발견한 건 아닌 것 같다는 건데.’

하지만 아무리 골목길이라 해도 깊은 지하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크기의 입구가 지상에 대놓고 생겨난 이상 누군가의 눈에 띄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국내로 나온 건 확실한데. 정확한 위치는 어디지?’

성현은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서울 강남의 서남부 구역.

그나마 그의 집과는 거리가 어느 정도는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만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어차피 던전의 입구가 생겨난 이상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젠장, 하필 청성의 구역 안과 이어지다니. 당장이야 숨겨 놓는다 해도 오래가지 못해.’

성현이 균열을 슬쩍 바라봤다.

외형은 조금 달라도 결국엔 던전의 입구나 다름없었다.

다만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저 통로가 영구히 지속되는 건지, 아니면 파괴가 가능한 건지였다.

만약 이 통로가 던전의 입구와 완벽히 동일한 성질의 것이라면 그로선 결코 간섭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아예 던전 내부를 공략해 폐쇄하는 것이 아닌 이상, 던전의 입구를 틀어막거나 파괴하려는 행동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이 공간의 균열이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통로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고, 그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주군.”

머뭇거리던 이즈나가 입을 열었다.

새롭게 합류한 네이아와 뒤늦게 쫓아와 넘어온 로칸까지 함께 서 있었다.

통로를 나온 이들은 모두 마족의 군주들이었고,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건 그들도 알고 있었다.

“일단 가디언이라는 녀석부터 찾아야지.”

성현이 고개를 휙 돌렸다.

통로를 넘어왔음에도 어째서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 가디언이었지만, 지금으로선 밖으로 나온 녀석을 찾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성현은 골목 밖으로 나서기 전, 인벤토리로 검을 슬쩍 숨겼다.

“로칸, 이즈나. 너희 둘 다 이 주변을 뒤져 봐. 혹시 가디언의 수하들이 함께 넘어왔을 수 있으니까. 네이아 너는 주변에 누군가 다가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어. 누구든 간에 이 입구를 봐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성현의 말에 군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던전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만큼,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닌 이상 마족이 아닌 몬스터들은 동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제 막 수하로 들인 네이아를 생소한 도시에 풀어놨다간 소란만 벌어질 테니, 그녀는 이곳을 지키도록 시켰다.

파앗!

두 군주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고.

성현은 골목을 나섰다.

‘예전에 봤던 수호자와 비슷한 녀석이 도시 한복판에 나타났다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너무 조용해.’

대로변에 들어선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느 때와 같은 서울 도심의 풍경.

통제되는 길거리 없이 차량이 오가고, 사람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굉장했던 덩치의 가디언을 직접 상대해 본 적이 있는 성현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디언이 던전 밖으로 넘어온 건 확실한데, 아무런 소란이 일지 않았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성현의 눈에 둥둥 떠 있는 퀘스트 마커의 존재.

시스템이 멀지 않은 위치에 가디언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그에게 알려 주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다행인 일이겠지. 왜 이렇게 조용한지는 몰라도, 사고가 터지기 전에 빨리 놈을 찾아보는 수밖에.’

첫 번째 성소에서만도 굉장히 강력했던 가디언의 전력이다.

자신에게 벌여온 짓만 해도 인간에게 호의적인 존재로 생각되진 않았고.

그 정도 존재가 아무런 징조도 없이 나타나 갑자기 도시 한복판에서 날뛰기 시작한다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퀘스트 마커를 쫓아 성현이 빌딩의 모퉁이를 돌아선 순간.

쩌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성현의 몸이 붕 떠올랐다.

갑자기 나타난 주먹에 얻어맞은 성현은 한참 떨어진 건물 외벽에 메다꽂히고 말았다.

콰과과광!

“꺄아아악!”

갑자기 무너진 벽에서 사람이 날아들자 깜짝 놀란 시민들이 혼비백산 흩어졌다.

백화점 진열대 위에 널브러진 성현.

이마와 입가에선 주르륵 피가 흘러나왔다.

“…하.”

어처구니없다는 듯 몸을 일으킨 성현은 얼굴 위에 얹어진 인형을 치웠다.

건물 안을 물밀 듯이 빠져나가는 시민들이 있었다.

반드시 몬스터가 출몰한 것이 아니라 해도.

헌터들의 싸움에 휘말렸다간 일반인들은 꼼짝없이 죽어난다는 걸 모두가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너진 벽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이는 인간도 마족도 아니었다.

“저 녀석인가.”

퀘스트 마커를 머리 위에 둥둥 달고 있는 남자.

특이한 빛을 내는 문신이 얼굴을 포함한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대놓고 뿜어내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

무엇보다 시스템상 퀘스트가 가리키고 있는 상대라면 하나뿐이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더니. 인간의 모습도 할 수 있는 거였나.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건 이미 물 건너갔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성현은 포션을 들이켰다.

아무리 이곳이 사람들의 시선이 있는 도심 한복판이라 한들, 어중간하게 정체를 숨기기란 불가능했다.

방금 얻어맞은 그 주먹 한 방만으로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숨겨가며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달그락!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 쥔 성현은 가면을 썼다.

영왕으로서 간만에 나서는, 도심지 몬스터 토벌이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 * *

골목길로 들어선 청성의 헌터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디지?”

“바로 이 근방에서 던전이 발생했다고 신호가 왔다는데.”

지하실의 던전과 연결되는 통로가 생겨나며 꽤나 큰 파장이 발생하였고.

그를 눈치챈 청성 길드의 헌터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보통은 던전이 열리고서 활성화가 가까워져야 파장을 내뱉기 시작한다.

하나 이번은 마법진을 비롯해 다소 다른 방식으로 생겨난 입구다 보니, 생성의 순간에 일시적으로 강한 파장을 뿜어낸 것이다.

“육안으로도 쉽게 보일 거라 했는데… 건물 옥상 위에서도 안 보이는데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근처만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감지팀의 말과는 달리, 육안은커녕 기척조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숨겨 놓기라도 한 듯 감쪽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골목 사이사이를 직접 떠돌던 청성의 헌터들은 순간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뭐야?”

헌터들의 앞길을 막아서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

좁은 길목을 당당히 가로막고 서 있는 데다가, 이상한 로브 차림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봐선 헌터 같은데. 산하 길드 소속도 아닌 것 같아 보이고.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여긴 못 지나가니 돌아가라.”

네이아가 그들을 향해 짤막하게 말했다.

하지만 헌터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대뜸 내뱉는 그녀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는 데다가, 오히려 이 의심만 살 행동이었다.

“네가 던전을 숨겨 놓은 거였나.”

“어느 길드에서 온 녀석인지는 몰라도, 겁도 없이 청성의 구역 안에서 가로채려 해? 주제 파악을 시켜 주마.”

스릉!

자신들이 처리하러 온 던전을 웬 도둑놈에게 빼앗길 뻔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청성의 헌터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들어 네이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파아아아앗!

“이… 이건?”

그들의 발치에 감춰져 있던 마법진이 빛났다.

골목 안에 발을 들인 모든 헌터들에게 저주 마법이 발동이 되었고.

수십 여 갈래의 쇠사슬이 동시에 뻗어졌다.

촤르르륵!

“컥……!”

“이런!”

쇠사슬에 묶인 헌터들이 당혹감에 빠졌다.

단단히 옥죄어 오는 사슬.

나름 청성의 헌터들이라는 건지 빠르게 반응해 사슬을 잘라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그들의 눈앞엔 커다란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콰아아앙!

“크아아악!”

작열 마법에 휩쓸린 헌터들이 형편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나마 가장 뒤편에 있던 한두 명을 제외하고선 한 개의 팀이 순식간에 전멸해 버린 것이었다.

“이… 이게 무슨.”

압도적인 힘의 격차.

A랭크 헌터인 팀장마저도 순식간에 당해 버리고 말았다.

일반 길드원조차 고위 헌터로 구성된 청성의 길드원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이… 이 정도의 마법이라니… 설마 백룡의 헌터냐?”

“백룡?”

네이아의 고개가 갸웃 돌아갔다.

강남 내에선 적수가 아예 없는 청성이었고, 이 구역에서 인접한 위치에 있는 대형 길드라면 백룡과 이지스 길드뿐이었다.

그중에서 9대 길드인 백룡 길드와는 최근 마찰을 빚고 있었으니 그들을 의심한 것이다.

“길드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물론 네이아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이제 막 성현의 밑으로 들어온 그녀였고.

바깥 세상에 대해서라면 인간이나 던전, 사냥꾼 같은 대략적인 개념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저들이 말한 길드나 백룡이 무엇을 뜻하는지 구체적인 개념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그녀는 청성 길드나 성현이 지닌 원한 관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주인인 성현은 목격자가 없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고, 그를 따라야 한다는 것뿐이다.

화르륵!

네이아의 손에 강력한 마력이 일렁였다.

* * *

쿠구구궁!

청성의 헌터 팀 하나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전멸을 당하는 사이.

도심 상공을 뒤덮은 거대한 존재의 등장이 있었다.

녀석의 모습을 목격한 시민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심지어 지역 길드의 헌터들조차 기겁하며 물러났다.

“우… 우아악!”

키이이이익!

거대한 괴조의 모습을 한 석상.

온몸이 고대의 문양으로 가득 찬 거대 석상이었고, 두 날개를 펼친 가디언의 등장에 모두가 패닉에 빠졌다.

일반적인 던전이나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이 본래 모습이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아주 요란하게도 부숴대네.”

녀석과 한창 싸우던 성현이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았다.

성현과의 전투에서 팔 한쪽이 잘려 나가자, 분노한 가디언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저번에 상대했던 수호자처럼 대단히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였고, 온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받고 말았다.

이 정도로 난리가 나 버린 이상, 지금쯤 청성의 S급 헌터들이 직접 수습을 위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성현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야 뻔한 일.

“이렇게까지 된 이상 어쩔 수 없나.”

네이아가 마법진까지 이용해 던전의 입구를 감춰둔 모양이지만, 다른 길드도 아닌 청성의 영역 한복판에서 그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이 정도 몬스터가 던전의 징조도 없이 갑자기 생겨난 상황.

이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된다고 해도, 청성 길드에선 당연히 자신들이 놓친 던전을 찾기 위해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설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춰둔 던전의 입구를 발견해, 성현의 비밀이 탄로나게 된다면 단순히 소동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려 8배의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초대형의 던전이다.

온갖 자원들까지 대규모로 담겨 있는 장소였고, 청성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헌터가 그의 목을 노리려 들 터였다.

자신이 독점해 온 중요한 기반이기도 했기에 무슨 수를 써서든 들키는 것은 막아야 했다.

‘입구를 닫을 수 있는 지는 나중에 알아본다고 쳐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이상 던전에 대해 들키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지.’

스릉!

‘청성이 지닌 이 구역을 통째로 빼앗아 먹어치우는 수밖에.’

결정을 지은 성현의 눈빛이 굳어졌다.

조용히 숨어 기회를 노리는 것은 이쯤이면 충분했다.

청성과 가디언. 둘을 동시에 사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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