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78화 (78/202)

78화 그들의 움직임 (2)

“젠장, 그 자식.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이지스 길드의 본사.

한창 길드 업무로 파묻혀 있던 한승희였지만, 최근 강남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로 인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덜컹!

마침 도착한 성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러자 한승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네가 벌인 짓이지!”

한승희가 번쩍 들어 올린 신문을 그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청성 길드와의 충돌, 그리고 도윤일의 사망 소식이 1면을 차지하며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럼 내가 벌였지 누가 벌여. 영왕이라는 이명이 또 있는 것도 아니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성현이 가면을 벗었다.

눈앞을 가리고 있던 신문을 슥 치운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정말 끝까지 갈 셈이구나. 이젠 청성에게 쫓기는 수준이 아니라 길드장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고.”

9대 길드의 길드장.

국내 헌터계를 손안에 쥐고 있는 거물들이 성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그럴 각오도 없었으면 청성을 건드리지도 않았겠지.”

어차피 한번 청성을 건드린 이상.

끝을 보지 않으면 당하는 건 자신의 쪽이었다.

그의 태연한 모습에 한승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뭐. 이젠 나도 모르겠다. 뒷감당은 네가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네가 죽으면 난 구속에서 풀려나는 것뿐이니까.”

“풀려나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물어? 네 소환수가 걸어둔 이 혈마법인지 뭔지 말이야. 네가 죽으면 사라질 거 아냐.”

“사라지는 건 맞지. 그런데 너까지 같이 사라질걸.”

“뭐? 설마…….

한승희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이 짐작하는 그게 아니길 바랐지만, 그의 말이 뜻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네가 죽으면 나까지 같이 죽는다고?”

“배신을 막으려고 걸어둔 마법인데 당연하지. 남의 손을 빌리는 것 정도로 무력화되는 허술한 마법 같은 걸 걸어 놨겠어?”

“야, 야 이……!”

성현의 대답에 한승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친놈아! 이거 빨리 풀어!”

“그건 안 되겠는데. 우리가 마법 없이 믿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잖아?”

“네가 죽는다고 나까지 죽는 게 말이 돼? 미리 말도 안 해줬으면서… 그럼 조건이라도 바꾸든가!”

“중간에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니…….”

한승희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죽기 싫어서 적의 아래에 들어왔더니, 두 번째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녀석과 목숨을 함께 하는 강제 운명공동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자기 목숨만 놈에게 종속된 일방적인 관계였지만.

“하아…….”

한승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발 떨어져 지켜보는 제삼자의 입장인 줄만 알았는데.

자기의 진짜 처지를 이제야 바로 알게 되니 착잡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청성에게 시비를 거느라 성현이 죽건 말건 아무런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저 녀석이 살아야 자신도 살 수 있었다.

최소한 이 마법을 해제시킬 방법을 찾기 전까진 성현이 죽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문제는 저 녀석이 밑도 끝도 없이 거대 길드를 상대로 들이받는 중이라는 것이었지만.

“청성하고 싸우는 건 내가 말려도 안 들을 거지?”

“어.”

“개 같… 아니, 아무튼. 그럼 다음 계획은 뭔데?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건 아니겠지?”

한승희가 성현에게 말했다.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다녔다고 해도, 이번 일로 끌어들인 시선은 가볍게 넘길 만한 게 아니야. 9대 길드의 길드장들까지 나서서 너를 찾아다닐 게 뻔하고. 영왕과 이지스 길드가 관련되어 있다는 걸 들통날 확률도 높아. 최소한 의심은 받겠지. 너나 이 길드나 미심쩍은 부분이라면 넘쳐나니까.”

갑작스러운 등장과 최근 급격히 성장한 세력과 개인이라는 것.

심지어 구창환의 길드를 상대로 동선까지 겹친 적이 있으니,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이지스와 영왕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다.

국내를 장악한 9대 길드는 자신들의 영역 외부에 펼쳐둔 정보망도 따라올 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래, 이 비밀이 언제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안해. 그러니까 우린 그 전에 최대한 전력을 끌어올려야지.”

옆을 슬쩍 본 성현은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다크엘프의 군주, 카론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엔 또 누구야?”

“우리 길드의 새로운 S급 헌터지. 천태성을 죽인 녀석이기도 하고.”

“저… 저 녀석이?”

카론을 본 한승희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이지스의 헌터들처럼 성현의 소환수일 거라 예상은 했다만.

설마 청성의 최고 간부를 죽인 장본인이었다니.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변에서 얼굴이 찍히거나 한 건 아니지?”

“그래, 목격자는 다 죽었으니 괜찮아. 던전 밖으로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성현은 바로 말을 이었다.

“당분간 바깥일을 배울 테니 네가 맡아서 가르쳐 줘. 아직 어수선한 길드 내부를 정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나는 볼일이 따로 있어서 말이야.”

“아, 알았어.”

그의 말에 한승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을 떠넘기고 사라지려 해도 전보다는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덜컥!

‘한결 협조적이 되니까 편하네. 물론 마법에 대한 건 거짓말이었지만.’

방을 나선 성현이 피식 웃음지었다.

방금 나눈 이야기와는 다르게,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녀에게 주어지는 페널티 같은 건 전무했다.

정보를 누설한다든가 직접적인 배신 행위에 대한 제약은 있어도, 오히려 성현이 죽으면 그녀는 구속에서 풀려날 뿐이었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 혈마법에 대해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그녀로선 그의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기 목숨을 걸고 실험을 해보려는 무모한 짓이 가능할 리는 없을 테고,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이만한 수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한승희는 꽤나 다급해진 모습이었다.

청성과의 충돌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 갈등 사이에서 적당한 보신주의로는 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려면 청성을 실제로 누를 만큼 성현이 강해지고 길드를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 빼는 것 없이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덕분에 길드 쪽 일은 당분간 걱정할 거 없어 보이고. 청성에 대한 것도 반응을 보니 확실히 알겠어. 이번 수가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는 걸.’

도윤일의 죽음.

청성의 입장에선 굉장히 큰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다.

S급 헌터 둘이 사망하며 큰 전력 손실이 벌어진 것임은 물론.

양대 길드인 청성에 대한 굳건한 인식마저도 조금이나마 흔들리게 만들었다.

평소 거대 길드들이 쥐고 있는 특권과 영향력은 강력한 힘과 명성이 뒷받침되었기에 휘두를 수 있는 것이었다.

강력한 힘은 명성을 불러오기 마련이었지만, 그렇다고 실제 지닌 힘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길드의 이름이 갖는 명성과 위엄이 떨어지게 된다면 평소야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해도.

다른 거대 길드과의 마찰이나 내부 요인으로 인해, 길드의 상황이 조금만 불안정해지면 문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산하 길드의 배신, 소속 길드원의 이탈 등.

두려울 게 없는 거대 길드들도 여론을 어느 정도는 신경 쓰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었다.

‘청성 녀석들. 지금쯤이면 이번 일을 만회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겠지.’

지금쯤 발칵 뒤집히고도 남았을 청성 길드의 내부.

당연히 강압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릴 것도 없이, 영왕에 대한 수색을 재개할 것이다.

당분간 강남 지역 안에서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기엔 부담스러운 만큼, 던전 안에서 잠시 시선을 피하는 편이 나았다.

뭣보다 성현에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 * *

쿠우웅!

“오셨습니까, 주군.”

안타라스에게서 내려선 성현의 앞에 이즈나가 섰다.

“말씀하셨던 대로 생명의 숲과 어둠 숲, 두 필드를 모두 장악해 두었습니다.”

“그래, 오는 동안 대강 훑어봤어. 지시했던 것도 다 잘 처리해 준 모양이고 요즘엔 믿고 맡겨도 걱정이 없네.”

성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지역을 장악하기만 한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각 주요 통로에 관문을 짓고, 견고한 요새들이 들어섰다.

적대적인 몬스터의 습격을 막을 수 있을 만한 충분한 병력이 배치되었고, 강적이라도 최소한 발목 정도는 잡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즈나가 거대한 성채 위에 살았던 것처럼 뱀파이어를 비롯한 마족들은 건축술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다.

거기다 이 던전 안에서야 넘쳐나는 게 온갖 건축 자재와 자원들이었기에.

아낄 것 없이 시설들을 지으며 제대로 된 방비를 할 수 있었다.

안타라스를 타고 여기까지 오면서 하늘 위에서 바라봤을 때도 확실히 견고한 성채들이었고.

새로운 필드뿐 아니라 이전 지역에 위치한 거점들까지 이러한 방비를 철저히 해두었다.

“이제 저번처럼 맥없이 입구까지 뚫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런데 특이한 사안이 있었다면서?”

“아… 네! 주군. 꼭 봐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이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칭찬을 받아 배시시 웃음을 띠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몇 시간 전에 성현에게 급한 보고를 전했던 그녀였고, 성현이 던전에 돌아오자마자 그녀에게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이즈나는 앞장서 성현을 어디론가 안내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급하게 돌아와 달라고 한 거야?”

“황야 지대에서 마주한 몬스터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몬스터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점이라고?”

성현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여섯 번째 필드, 황야 지대.

어둠 숲을 장악한 성현이 새롭게 넘어가야 할 지역이었다.

바로 옆 지역에 살던 다크엘프들의 말에 따르면 해당 지역엔 마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변수 파악을 위해 이즈나가 주도해 미리 해당 지역에 선발대를 보냈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심상치 않은 걸 발견하고 만 것이었다.

“무언가의 힘을 받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직접 보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으음.”

뭔가 알기 어려운 상황에 성현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직접 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이즈나의 안내대로 장소에 도착했고, 무너진 동굴의 입구 앞에 서게 되었다.

“동굴이 무너져 있잖아? 마법으로 무너뜨린 듯한 흔적인데. 몬스터가 벌인 짓인가?”

“아뇨, 제가 한 겁니다. 녀석을 얌전하게 만드는 게 쉽지 않아 제가 직접 나서야 했죠.”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한곳에 가둘 수 없어서, 아예 동굴을 통째로 무너뜨려 놈을 가둬둔 것이었다.

다른 뱀파이어나 수하들의 힘을 생각하면 굳이 군주급이 나서지 않아도 일반 몬스터 하나 정도야 생포하는 건 쉬울 터.

하지만 이번엔 그녀가 직접 나서야 할 이유가 있었다.

‘보스급 몬스터도 아닌데 저 동굴 안에 깔려 있는 채로 살아 있다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성현의 인상이 슬쩍 찌푸려졌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성현이 동굴로 한발 다가섰다.

쿠구구궁!

그 순간, 쌓여진 잔해 더미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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