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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76화 (76/202)

76화 격전지 (5)

콰아아앙!

큰 폭발과 함께 천태성이 바닥을 뒹굴었다.

머리를 부여잡은 그는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큭… 이게 무슨 난리인지.”

생각지도 못했던 영왕의 등장.

그리고 바로 이어진 갑작스런 폭발로 인해 튕겨 나가며 도윤일과 서로 엇갈리고 말았다.

마치 그들을 노골적으로 갈라놓기 위해 벌인 짓 같았다.

그리고 떨어진 천태성의 앞에 다크엘프 카론이 나타났다.

“일부로 도윤일과 날 떨어뜨려 놓은 거냐?”

“네놈이 싸움을 방해해선 안 되니까. 따로 처리해 주지.”

“하, 아까 내가 방심했다고 기세등등한가 본데. 여기까지 온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검을 든 천태성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하지만 곧 그의 주위로 불청객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철컹!

“이놈들은…….”

중무장한 갑주 사이로 붉은 안광을 빛내고 있는 검은 기사.

데스나이트들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나타났다.

그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듯 천태성의 주위를 포위하며 둘러쌌다.

“혼자서도 충분하다만, 확실하게 끝내기 위해서니까.”

단검을 든 카론이 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사방의 데스나이트들 역시 점점 그에게로 다가왔다.

최소 수십은 되어 보이는 녀석들의 숫자.

‘영왕 녀석의 소환수인가. 비장의 수를 꺼내들었나 본데, 젠장… 애를 먹겠군.’

천태성의 표정이 슬쩍 찌푸려졌다.

데스나이트라면 S랭크 대의 정예 몬스터다.

어지간한 네크로맨서로선 조종하기에 과분할 만큼 강한 개체다.

물론 S랭크의 헌터인 그라면 보스 몬스터도 아닌 정예 몹들이야 몇 마리가 달려들든 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 사이에 있는 저 S급의 헌터였다.

영왕의 동료 하나만으로도 확언할 수 없었는데, 옆의 데스나이트들까지 동시에 상대하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도 잠시.

비웃기라도 하듯 천태성의 입가가 씩 비틀어졌다.

“꽤나 그럴듯하게 함정을 파두긴 했네. 하지만 나야 그렇다 쳐도, 도윤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녀석 나보다 강하거든.”

청성의 최고 간부 도윤일.

3성의 멤버이기도 한 그의 존재가 아직 남아 있었다.

“도윤일을 상대하려면 차라리 네가 그쪽으로 갔어야지. 네크로맨서인 네 동료하고는 상성이 정말 좋지 않으니까.”

영왕이 수많은 몬스터를 다룬다는 사실쯤이야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윤일의 앞에선 그 많은 시체는 의미가 없었다.

그저 타버린 잿더미가 될 뿐이었다.

“뭐, 인제 와서 말해 줘 봐야 이미 늦었지만.”

* * *

콰아아앙!

폭발이 주위를 쓸어버렸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 모두를 순식간에 산화시켜 버린 강력한 마법.

성현과 도윤일이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 녀석… 저번에 봤던 녀석이 아니로군.”

도윤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광견 구창환과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을 당시.

던전 안에서 영왕과 직접 마주한 적이 있던 도윤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대는 체격과 목소리, 풍기는 기척마저도 모두 달랐다.

실제로 당시의 영왕 행세를 하던 이는 성현이 아니라 그의 가면을 빌려 쓴 로칸일 뿐이었다.

청성과 마주하지 않고서 던전을 빠져나가기 위해 마련한 눈속임용 시선끌기용였을 뿐.

“어쩐지 네크로맨서가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더라니. 그 주변에서 수작을 부린 거였나.”

당시에 속았었다는 걸 확실한 도윤일은 말을 이었다.

“방금 그 단검을 쓰는 녀석도 그렇고. 네놈을 따르는 동료들이 한두 명이 아니란 거겠지. 네 정체가 점점 궁금해지고 있는데.”

“궁금해하지 않는 게 좋을걸.”

“청성을 상대로 이런 일들을 벌일 정도라면 보통 사연은 아닐 테고, 길드장이 숨겨온 과거의 옛 악연이라도 되는 건가?”

“…그건 꽤 비슷하네.”

성현이 헛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청성의 대표, 한인호와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 먼 과거도 아니고 아마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을 악연이겠지만, 그래도 악연은 악연이었다.

그가 청성을 부술 이유이기도 했고.

‘하지만 확실히 보통 상대는 아니야.’

고개를 돌린 성현은 타들어간 숲속을 바라봤다.

그가 방금 몰고 온 천이 넘는 몬스터 무리와 주변의 울창했던 나무들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던전의 몬스터들이라 더 쉽게 당한 것도 있지만… 군단을 꺼내든다 하더라도 크게 차이가 나진 않겠지.’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닌 도윤일의 광역 마법.

단순히 물량으로 물어 붙이는 전략이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건 성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청성의 최고 간부이자 그중 3성의 멤버이기도 한 도윤일은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다.

현자라는 이명을 지닌 S랭크의 마법계 헌터.

기본적으로 지닌 마나량 역시 보통이 아니었고, 마력과 관련된 아티팩트의 보조까지 있었다.

대책 없이 소모전으로 가게 되면 그의 수하들이 감당 안 될 정도로 갈려 나가기만 할 뿐이다.

“보아하니 이 던전의 몬스터들을 끌고 온 것 같은데. 네 소환수들은 언제 꺼내들 셈이지?”

“헌터 하나쯤이야 나 혼자 상대해도 충분해.”

“네크로맨서가 소환수도 없이 맨몸으로 달려들 셈이라는 거냐?”

“그래.”

성현의 말에 인상을 찌푸린 도윤일은 그대로 팔을 들어 올렸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몰라도 되도 않는 소리일 뿐이다.

“아직 패를 숨길 여유는 있나 본데. 얼마나 버틸지 한번 보지.”

화르르륵!

도윤일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주위로 커다란 불덩이들이 생겨났다.

그리곤 엄청난 범위의 폭렬 마법들이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여태 봐왔던 수많은 마법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위력이 대단했다.

콰아아앙!

‘큭……! 장난이 아니네.’

워낙 쓸려나가는 범위가 넓다 보니, 쏟아지는 마법들을 피하기 위해 성현은 전력으로 다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접근할 틈을 잡는 게 아예 불가능할 정도야.’

예상을 하고 있던 성현조차 난색을 표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걸 보고 나니 더욱 확실해졌다.

‘무작정 군주를 많이 꺼내 놓는다고 능사는 아니야.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들을 쓰는 상대라면 더더욱 말이지.’

정신없이 마법을 피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는 다른 군주들을 소환할 생각이 없었다.

이 정도의 화력이라면 아무리 보스급 몬스터들이라 해도 위험했다.

공격 범위와 화력 모두 막강한 상대의 특성상, 숫자가 많아지면 되레 피해만 커질 수 있었다.

오히려 함부로 군주를 꺼내들었다가 소멸당하면 휘하에 있던 모든 부하들의 통제권을 잃게 되는 만큼 신중해야 했다.

3성의 멤버들은 다른 최고 간부들과는 또 다른 벽이 있다고 할 만큼 매우 강했다.

무작정 정면 승부로 맞붙었다간 큰 피해가 따를 수밖에 없었고.

약간의 공략법이 필요했다.

터엉!

뿌연 연기 속에서 성현은 단박에 발을 박찼다.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도윤일에게 접근하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얕은수에 당해 줄 도윤일이 아니었다.

“어딜!”

콰과과광!

전방을 휩쓸며 터져 나오는 연쇄 화염 폭발.

망설이지 않은 성현은 그 틈의 사이로 파고들며, 놀라운 움직임으로 상대의 마법을 피했다.

“네크로맨서치고는 날쌔다만, 폭발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거다.”

도윤일은 단숨에 손을 비틀었다.

그러자 폭발의 여파로 지면을 뒤덮었던 화염이 더욱 거세지며, 화염 폭풍이 휘몰아치며 터져 나왔다.

아무리 폭발에 직격당하는 것은 피했다고 한들.

이어지는 충격과 뜨거운 열기 속에 휘말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콰아아아!

‘엄청난 열기지만… 한 번 정도는 버틸 만해!’

하지만 맹렬한 화염의 열기 속.

그림자가 성현의 피부를 뒤덮고 있었다.

안타라스의 특성 ‘용의 비늘’을 빌려온 성현.

일시적인 급상승한 방어력과 마법 저항으로 인해 이 휘몰아치는 뜨거운 열기를 한차례 견뎌낼 수 있었다.

파앗!

“어떻게……!”

화염을 뚫고서 단숨에 다가선 성현의 모습에 도윤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성현이 지니고 있는 특성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다.

무지막지한 광역 마법을 쏟아내는 마법사에게 접근한 단 한 번의 기회다.

성현은 상대의 목을 향해 힘껏 검을 휘둘렀다.

후웅!

그러자 도윤일은 급히 몸을 비틀었고.

날아든 성현의 칼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도윤일 역시 S급 헌터답게 마법 계열임에도 아주 빠른 움직임과 반사신경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콰직!

도윤일이 걸고 있던 푸른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부서지며 후두둑 떨어졌다.

그제야 도윤일은 성현이 무엇을 노리고 있던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이걸 노리고 있었을 줄이야.”

도윤일은 부서진 목걸이를 내려다봤다.

부르는 게 값인 최고위의 아티팩트.

착용자의 마력량을 대폭 증가시켜 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처음부터 목걸이를 부수고서 장기전을 치를 셈이었나. 완전히 한 방 먹었군.”

다른 직업군들보다 마법계 헌터들은 훨씬 강력한 화력을 낼 수 있었고,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도 좋았다.

하지만 마법계 헌터들에겐 마나라는 확실한 약점이자 제약이 있었다.

공격 마법은 상당한 마나를 잡아먹는 탓에, 전투 지속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어지간한 강자가 아닌 이상 마법계 헌터들은 반드시 공격대와 함께 다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도윤일 역시도 마법사인 것은 마찬가지.

마력 고갈을 방지해 줄 아티팩트가 없는 상황에, 네크로맨서인 영왕이 수많은 수하들로 밀고 들어오면 상황은 역전당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에 대해 파악을 해두고서 치밀하게 짜여진 수였다.

“꽤 그럴듯했지?”

“…인정하마. 어디 가서 루키 취급받을 솜씨는 결코 아니라는 걸.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어.”

츠츠츠츠츳!

도윤일의 눈이 번뜩이며 그의 주위로 마력이 일렁였다.

S급에 막 들어선 마법계 헌터였다면 그의 전력이 들어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없어졌다 한들, 도윤일이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마나량은 다른 헌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의 목걸이는 거대한 던전을 홀로 공략해야 할 때나, 거대 길드간 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나 존재하던 것이었다.

“네놈이 거느린 소환수가 수만 마리는 된다고 했었지? 어디 한번 모두 꺼내 봐라. 이 자리에서 모두 불태워 줄 테니까.”

화르르르륵!

도윤일의 등 뒤로 커다란 불의 구체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마력만으로 상대가 소환해 낼 언데드 수만 마리를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키이이익!”

하지만 머리 위로 지나간 와이번의 울음소리에 성현의 고개가 잠시 돌아갔다.

“슬슬 오고 있네.”

“…뭐?”

“아까 너희가 잡다 말았던 몬스터들 말이야.”

이 거대한 대형 던전 속.

아직 남아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야 넘쳐났다.

천태성이 버리며 고립당한 청성의 길드원들을 전멸시키고, 흩어졌던 수많은 몬스터 무리를 와이번들이 다시 불러모으고 있었다.

“그거 다 너희 몫이거든. 수만 마리 정도는 맛보기니까,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자고.”

키에에에엑!

마침 들려온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도윤일이 이제 상대해야 할 적들은 대형 던전의 몬스터 수만 마리에 더해.

그다음 소환될 성현의 수하들까지, 최소 십여만 마리를 가뿐히 넘어서는 숫자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른 이의 도움을 바랄 수도 없었다.

* * *

털썩!

“커억…….”

피를 토해낸 천태성이 무릎을 꿇었다.

커다란 대검이 그의 복부를 관통한 채 박혀 있었고, 온몸의 상처에서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천태성의 표정.

주위를 둘러싼 데스나이트들은 천태성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놈들은 던전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데스나이트가 아니었다.

성현의 수하로서 함께 레벨업을 하는 개체들인 데다, 군단 강화 버프까지 받고 있는 개체들이다.

심지어 전원이 최상급의 무기로 무장한 정예 병력.

그런 데스나이트 열댓 기와 함께 다크엘프 군주인 카론이 함께 싸우니, 천태성은 오래 버틸 수조차 없었다.

철컹!

결국 결판나 버린 싸움의 결과가 이것이었고.

데스나이트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가왔다.

“이, 이럴 수는 없……!”

콰악!

붉은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강남 지역을 움켜쥔 거대 세력이자, 양대 길드인 청성에게 간 커다란 첫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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