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75화 (75/202)

75화 격전지 (4)

사원 내부의 미노타우로스들을 모두 바깥으로 유인해 따돌린 뒤.

성현은 사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녀석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아직 남아 있는 볼일을 마저 보기 위함이었다.

“지금쯤 와이번들이 실컷 어그로를 끌고서 몬스터에게 길을 안내해 주고 있겠지.”

텅 빈 사원 안에서 성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는 와이번들을 소환해 안내역을 맡겼다.

온 던전을 들쑤시고 다니게 해 몬스터들을 청성의 헌터들에게로 유인하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지금쯤이면 와이번들은 방금 따돌린 미노타우로스 무리는 물론.

이 대형 던전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을 긁어모아 가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 숫자가 몰려가면 아무리 청성 놈들이라고 해도 애 좀 먹겠지. 마무리야 조금 거들어 줘야겠지만.’

여기 있던 미노타우로스 정도야 직접 처리해도 큰 상관이야 없었지만, 기왕이면 청성의 녀석들에게 맡기는 편이 훨씬 나을 테니.

놈들끼리 치고받으라고 넘겨주었다.

최대한 체력을 갉아 먹히도록 말이다.

그사이, 성현은 마음 편히 사원 내부를 뒤졌다.

안카라스를 타고 이동한 성현에겐 흔적도 남지 않았기에 유인을 위한 거짓 흔적만 쫓고 있을 거다.

‘이 주변에 뭔가가 있을 텐데…….’

오래된 사원 곳곳을 유심히 살폈다.

S급 던전에 등장하곤 하는 전리품의 유무에 대해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보스 룸이 이런 건축물 안에 자리 잡고 있다면, 근처에 추가 아이템이 존재할 확률이 높았다.

드르륵!

“찾았다.”

사원의 뒤편에 놓인 창고에 들어선 성현이 미소 지었다.

창고 안에 주르륵 진열되어 있는 던전의 보상 아이템들.

길게 이어진 낡은 진열대에 대검과 핼버드, 장검 등이 놓여 있었다.

‘숫자가 상당하잖아?’

대략 60여 개가 넘는 무기들.

생각 이상의 숫자에 성현이 놀란 듯 바라봤다.

‘거기다 성능도…….’

[폭군의 칠흑 대검]

[등급 - 최상급]

[내구도 - 매우 견고함]

[무기 공격력 751~890]

[파쇄 - 높은 방어력을 지닌 적에게 더욱 큰 피해를 안깁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무기의 상태창들.

제각각의 특성과 스펙을 지닌 녀석들이다.

그리고 여기 있는 것들은 전부 최상급의 아이템들로 특수 능력까지 붙어 있는 무기였다.

‘스펙으로 보아 최상급에 턱걸이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그 아래의 다른 무기들과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야.’

성현이나 이즈나가 지닌 최상급의 무구에 비해선 살짝 처지지만.

이 정도만 해도 A급 이상의 고위 헌터들조차 손에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툴 만큼 뛰어난 무기였다.

이런 것들이 60여 개 넘게 한 장소에 있다니.

완전히 수지맞은 거나 다름없었다.

‘청성 놈들한테 이 던전을 안 넘기길 잘했네. 배가 꽤나 아플 뻔했어.’

S급 던전 중에서도 대박을 품은 던전이다.

청성에게 이 최상급의 무기들이 넘어갔다면 고스란히 놈들의 자금과 전력이 되었을 텐데.

그 전력을 그대로 자신의 몫으로 빼돌리게 된 셈이다.

‘그런데… 녀석들한테 맞는 무기는 거의 없구나.’

무기들을 바라보던 성현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의 휘하에 있는 대부분의 군주들은 보스 몬스터답게 덩치가 상당한 편이었다.

반면, 여기 있는 무기들은 인간이 쓰기 딱 좋을 법한 크기의 무구들이었다.

게아드나 자고스 같은 덩치들에게 쥐어 주기엔 날카롭기만 한 이쑤시개를 들려 주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나마 적당한 크기의 군주들이라면 칼라일이나 카론뿐인데, 그렇다고 남은 걸 그냥 내다팔기엔 너무 아깝지.’

최상급의 무구는 말 그대로 돈을 주고도 못 사는 무기였다.

팔 때야 희소한 만큼 웃돈을 잔뜩 붙여 처분할 수 있겠지만, 구입하는 입장에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매물로 나와 있지 않으면 구할 수가 없었다.

헌터 업계 특성상, 돈 많은 집단이나 개인들이 많다 보니.

필요에 따라 갑자기 매물이 증발하거나 천정부지로 시세가 올라가기도 했다.

‘역시 나눠 줘야겠지.’

고개를 끄덕인 성현은 뒤를 돌았다.

그러곤 자신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데스 나이트들에게 말했다.

“그럼 하나씩 나눠 줄 테니까 다들 받아 들어.”

성현은 무기를 하나씩 꺼내 데스 나이트들에게 나눠 주었다.

최상급의 무기를 헌터도 아닌 소환수의 손에 쥐어 주는 호화스런 짓이었지만, 지금이든 나중을 생각하든 이편이 가장 나았다.

새로운 대검과 핼버드를 하나씩 쥔 녀석들.

철컹!

무기를 건네받은 데스 나이트들은 영광이라는 듯 성현에게 무릎을 꿇었다.

칼라일에게 건네줄 무기인 대검 하나는 미리 빼 놨고, 조금 남은 무기들은 일단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다.

“다들 일어나. 지금쯤이면 손님맞이를 시작했을 텐데 슬슬 나가 보자고.”

아이템을 모두 털어 낸 성현은 산뜻하게 사원을 나섰다.

* * *

콰과과광!

울창한 숲속을 가득 메운 몬스터들의 무리 사이.

강력한 마법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저기 더 온다!”

“젠장, A랭크대의 언데드 몬스터……! 다가오기 전에 어서 화염 마법을 퍼부어!”

“이젠 마나가 없어! 어엇, 끄아아악!”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청성의 헌터들.

하지만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무리에 맞서 싸우던 그들은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최소 B랭크 이상의 고위 헌터들이었지만, 문제는 이곳이 무려 S급의 던전이라는 것이었다.

퀴이이익!

와이번에게 유인당한 몬스터들은 인간을 발견하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들을 해치기 위해 달려들었다.

몰려드는 대부분의 몬스터가 미노타우로스처럼 S급 던전 수준에 맞는 몬스터는 아니라고 한들.

아무리 베고 날려 버려도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끝도 없이 몰려드니 버텨 낼 재간이 없는 것이었다.

“후, 아주 개판이 따로 없군.”

천태성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난장판이 되어 버린 전장 속.

몬스터들의 피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그였다.

“벌써 몇백 마리는 벤 것 같은데, 끝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나고 있군.”

아무리 몬스터가 많고 하드한 던전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몬스터들이 각자의 영역에 분포되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몬스터가 한데 뒤섞여 물밀 듯이 몰려드는 웨이브는 그도 처음이었다.

“던전 밖으로 몰려 나가는 것도 아니고 비정상적으로 몰려드는 걸 봐선, 영왕 그놈이 벌인 짓이겠지.”

쩌어억!

천태성은 달려드는 미노타우로스를 단숨에 반으로 갈랐다.

가장 많은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그의 페이스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몬스터를 베어 나가는 모습.

‘꽤나 참신한 장난질이다만… 이딴 수작을 벌여 봐야 아무 의미 없다는 걸 보여 주지.’

서걱!

천태성은 조금 더 속도를 올려 몬스터 사체를 늘려 나가기 시작했다.

공격대와 함께하는 게 당연한, S급 아래의 등급대와는 달리 S급의 헌터로서 인정을 받기 위해선 혼자서 S급 던전을 토벌할 능력이 있어야 했다.

기본적인 개념부터가 일반적인 헌터와는 격이 다른 것이 바로 S급 헌터의 존재였다.

그 역시 S급 헌터로서 이런 잔챙이들이 몰려드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상대해 줄 수 있었다.

피융!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허공을 가르는 화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눈을 번뜩 뜬 천태성은 급히 옆으로 몸을 던졌다.

콰아아앙!

그의 뒤편에 있던 나무가 터져 나갔다.

마치 대포라도 쏜 듯한 말도 안 되는 화살의 위력이었다.

“헌터?”

천태성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갔다.

굉장히 먼 거리에서 자신을 노리고 쏜 화살이었다.

이런 정교한 활솜씨는 몬스터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인 영왕이 이런 화살을 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동료가 있던 건가?’

콰아아앙!

하지만 그에게 미처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집요하게 그를 노리는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젠장, 가만히 있다간 당해 버리겠군.’

궁수가 있는 방향이라면 이미 파악이 된 바.

과녁 꼴이 되어 죽고 싶지 않다면 직접 가서 놈을 쓰러뜨려야 했다.

“너희 실력으로 이 몬스터들을 뚫고 나가기란 무리겠지. 그렇다면 버티고 있어라.”

“예… 예?”

길드원들에게 짤막한 말을 남긴 천태성.

여기서 큰힘이 되어 주던 그가 이탈해 사라진다면 남겨진 길드원들의 최후야 뻔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천태성은 아니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까지 온 이상, 이미 죽은 거지.’

파앗!

천태성은 오히려 자신의 발목만 잡을 뿐인 길드원들을 포기했다.

그러곤 정체 모를 궁수에게 다가가기 위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사이를 빠르게 돌파해 나갔다.

날아드는 무지막지한 화살들을 피하고, 몬스터들을 베어 내면서도 그는 체력이 소진되는 기색조차 없이 더욱 속도를 내었다.

파악된 궁수의 위치를 향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드는 천태성.

과연 청성의 최고 간부다웠다.

“잡았다……!”

콰아아앙!

힘껏 뛰어오른 천태성의 검이 휘둘러졌다.

땅이 움푹 파여 버리기 직전 몸을 빼낸, 수풀 속에 숨어 있던 궁수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넌 가면을 쓰지 않고 있군. 정체를 숨기지 않아도 상관이 없는 모양이지?”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후웅!

순식간에 다가온 카론이 그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대화 따윈 필요 없다는 듯, 다짜고짜 달려든 녀석의 행동에 천태성은 급히 검을 받아쳐 내야 했다.

카아앙!

“이 자식이……!”

다크 엘프 특유의 민첩한 움직임에 더해, 예리한 두 개의 단검이 그를 노렸다.

궁수인 줄만 알았는데, 단검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최소 S급의 헌터다.

‘국내에 이런 녀석이 있었을 줄이야……. 전혀 보지 못했던 얼굴인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지?’

궁수를 상대로 거리만 좁히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되레 상대의 본 실력이 드러났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천태성에게서 순간적으로 빈틈이 생겼다.

그러자 카론은 정확히 상대의 빈틈을 찌르며 급소를 노렸다.

단검이 천태성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던 순간.

콰아아앙!

“큭……?”

강력한 마법이 폭발하며 주변을 휩쓸었다.

길을 막던 몬스터와 함께 굉장히 넓은 범위를 쓸어버린 규모의 마법이었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던전 안이 심상치 않아 와 봤더니… 예상대로 이 사단이 나 있었군.”

청성의 최고 간부.

도윤일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네가 여길 왜 와!”

눈을 크게 뜬 천태성이 버럭 소리쳤다.

그가 여기 나타났다는 건 입구가 텅 비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야 네가 영왕의 손에 당할까 봐 내려왔지.”

“멍청하긴! 누가 누구 손에 당해? 그리고 놈은 네가 여길 내려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을 거다!”

“놈의 함정에 빠져 쩔쩔매고 있던 주제에 말이 많군.”

도윤일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도 몰라서 여길 찾아온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빨리 일을 처리하든가. 굳이 영왕을 놓친다고 해도 이 녀석 하나만 확실하게 처리하면 된다.”

도윤일의 시선이 카론에게로 꽂혔다.

방금 목격한 놈의 실력은 이제 막 S급에 들어선 풋내기가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녀석인지는 몰라도, 이런 일까지 함께한 걸 보아 영왕의 가까운 동료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당연히 그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을 것이다.

“네놈들의 목적부터 가면 속에 들어 있는 얼굴까지… 다 토해 내게 만들어 주마.”

도윤일의 손에 마력이 일렁였다.

“쳇.”

그러자 천태성도 마지못해 검을 움켜주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이상, 영왕의 동료라도 확실히 잡아야 했다.

하지만 헛다리를 짚고 있던 그들에게 남자의 목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왔다.

“미안하지만, 너흴 두고 갈 생각 없는데.”

저벅.

가면을 쓴 영왕, 성현이 두 헌터의 앞에 당당히 나타났다.

그것도 등 뒤에 훨씬 많은 던전의 몬스터들을 데리고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