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격전지 (2)
장비를 모두 확인한 성현은 던전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내부엔 비교적 좁은 통로가 길게 뻗어 있었다.
메시지로 나타난 던전의 사전 정보상, 대형 던전으로 분류되어 있던 만큼 이런 구조가 전부는 아닐 터.
본격적인 던전이 아닌, 안으로 통하는 입구에 불과할 것이다.
크르르륵!
저 앞에서 그를 반기는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성현은 검을 부드럽게 뽑아 들었다.
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무언가.
‘어디 한번 수준 좀 볼까.’
성현은 여유로운 태도로 검을 가볍게 쥐었다.
곧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나운 맹수.
야수형 몬스터 중 하나인 그레이 울프였다.
“컹컹컹!”
달려든 그레이 울프의 입이 순식간에 쩍 벌어졌다.
커다란 덩치와 저돌적인 공격성으로 유명한 녀석다운 사나운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모습을 본 성현은 되레 검을 슬쩍 내렸다.
콰직!
성현은 맨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으깨 주었다.
내리찍는 주먹 한 방에 으깨져 버린 그레이 울프의 몸뚱이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털썩!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이 끊어진 녀석.
성현은 별 감흥이 없는 듯 놈의 사체를 내려다봤다.
“아무리 입구에 막 들어선 참이라고 해도 S급 던전에 나올 만한 녀석은 아닌데.”
침입자를 반기는 문지기 수준도 못 되는 몬스터 수준.
그렇다면 답이야 뻔했다.
‘S급 난이도에 대형의 던전이니… 다른 몬스터들도 여럿 섞여 있는 구조인가 보네.’
크기가 큰 던전일수록 주류 몬스터가 아닌 다른 계열들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형이라는 드넓은 던전 안을 S급 수준대의 몬스터들만으로 바글바글 채우는 것도 웬만해서는 어려울 일이니 말이다.
시선을 거둔 성현은 녀석의 사체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저긴가.’
새어 나오는 빛에 성현은 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통로의 끝, 본격적인 던전의 내부로 들어선 성현은 고개를 들었다.
파아아앗!
들어선 좁은 입구와는 다르게 드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는 모습.
넓은 내부를 보니 대형 던전에 들어섰다는 것이 확 체감이 되었다.
중형이나 소형 던전들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였다.
물론 지하실의 던전처럼 초대형 이상의 세계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최소한 금방 공략이 끝날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역시… 조금 서둘러야겠어.’
언덕 아래의 대략적인 주변 지리를 성현은 빠르게 눈에 담기 시작했다.
청성의 영역 안에서 S급 던전에 발을 들인 것인 만큼 시간이 그다지 여유롭지 않은 탓이었다.
당장은 놈들에게 들키지 않았다고 한들 최대한 공략 시간을 단축시켜야 했다.
‘청성이 알아채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거야. 이렇게 조용히 생겨난 던전을 바로 파악할 방법은 없을 테니까.’
청성이 전문적인 탐지 분석 팀까지 운용하는 거대 길드라고는 해도, 추적이나 탐지 능력의 특성상 한계가 뚜렷했다.
그 거대한 규모의 청성에서 자기들의 코앞에 있는 성현을 여태 찾지 못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방법만 안다면 약간의 조치만으로도 탐지 계열 능력자들을 따돌리는 건 쉬웠다.
‘하지만 그게 오래가진 못하겠지.’
단순히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것과는 달리, 던전의 경우엔 그가 개입해 숨기는 것은 어려웠다.
던전 내부의 대다수 몬스터들이 입구에 대해 눈치를 채고 던전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될 시점.
해당 던전은 주위에 특유의 파장을 뿜어내었고, 그때 범위 안에 탐지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 있다면 꼼짝없이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이 던전의 활성화 시간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전에 최대한 빠르게 퀘스트를 처리해야 했다.
‘대형 던전이라 금방 처리하기엔 어림도 없는 크기지만… 그나마 내가 처리해야 할 건 보스 몬스터뿐이니까.’
성현이 고개를 휙 돌렸다.
입구 주변의 숲속에 몬스터들의 기척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성현이 리스크를 감수하며 이곳에 온 이유는 엄연히 퀘스트의 보상 때문이었고.
해당 퀘스트의 내용은 이 던전의 모든 몬스터를 말끔히 처리하라는 게 아니었다.
“가자.”
성현의 말과 함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안카라스.
거대한 비룡이 성현의 몸을 사뿐히 들어 올렸고, 순식간에 공중으로 솟구쳤다.
후우우웅!
마음껏 날개를 펼친 안카라스가 바람을 갈랐다.
비록 지하에 위치한 던전의 내부라고는 하지만,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대형 던전의 크기는 지상의 그것과 유사할 정도였다.
덕분에 안카라스가 머리 위를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비행할 수 있었다.
‘음…….’
한편, 안카라스의 등에 탄 성현은 그 위에서 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대략적인 던전의 크기와 지형을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청성의 헌터가 올 것을 대비해서 미리 지형 정도는 파악해 둬야 하니까. 그나저나 역시 크기가 상당하네. 위로 올라와 보니 가늠이 돼.’
시야 아래로 보이는 던전의 모습들.
꽤나 빽빽한 숲이 던전 전역에 펼쳐져 있는지라 언덕 위에서 무언가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높이 올라오니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던전의 끝자락이 모든 방향에서 보였다.
초대형의 규모는 아닌 만큼 그의 집 지하실의 던전처럼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 다양한 몬스터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구 쪽에서 한 마리 발견했던 그레이 울프부터 시작해 와이트나 스켈레톤 등이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심지어 놈들의 수준도 제각각이라 저레벨대의 몬스터들부터 시작해 A랭크 던전에나 나올 법한 꽤나 높은 수준의 몬스터들도 있었다.
‘하지만 던전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
그가 발을 들인 곳이 S등급의 던전인 만큼, 방금 확인한 몬스터들은 모두 들러리일 뿐이었다.
던전에 대해서라면 대강 파악했고, 이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런 대형 던전에서 보스 하나를 찾아 처리하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드넓은 대형 던전 안에서 보스를 찾는 건 분명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안카라스의 도움을 받는 성현이라 해도 한두 시간 안에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성현에겐 S급 특성인 상태창이 있었다.
‘저기로군.’
성현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에 보이는 퀘스트 마커가 보스 몬스터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덕분에 길을 헤맬 것 없이 곧장 그리로 향할 수 있었다.
후우우웅!
단숨에 속도를 올린 안카라스는 퀘스트 마커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꽤나 떨어져 있는 거리였지만, 안카라스에겐 아주 짧은 거리에 불과했고 퀘스트 마커의 위치는 금방 가까워졌다.
“수고했어. 여기서부턴 내가 처리할게.”
“크르륵!”
파앗!
안카라스의 소환을 해제한 성현은 발을 박차 밑으로 뛰어내렸다.
미리 고도를 적당히 낮춘 상태였다고는 하나 꽤나 높은 위치였지만, 성현은 아주 가뿐히 착지해 내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착지한 성현.
그의 주변엔 조잡한 석재 건축물들과 함께 거대한 몬스터들이 주위에 한가득 서 있었다.
“그르르르.”
“이 녀석들은…….”
성현을 둘러싸고 있는 미노타우로스 무리.
황갈색의 피부에 근육질의 거체를 지닌 녀석들로, 거의 사람만 한 크기의 도끼를 손에 쥐고 있었다.
흉포한 성격에 더해 무지막지한 괴력으로 유명한 놈들이다.
당장 보이는 녀석들을 제외하고도 기척으로 보아 최소 수백 마리가 넘는 미노타우로스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번엔 어떤 녀석들인가 했더니 미노타우로스의 던전이었군.’
하지만 놈들의 모습을 본 성현의 입가가 살짝 위로 올라갔다.
S급 던전 수준의 몬스터종이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쿠어어어!”
포효한 미노타우로스들이 위협적으로 도끼를 치켜들고는 성현에게 달려들었다.
인간인 성현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니 잠깐 당황하긴 했지만, 녀석들은 금세 본능과 야성을 되찾았다.
츠츠츠츳!
하지만 성현은 곧장 발밑의 그림자를 내뻗었다.
암흑 기사 칼라일의 휘하에 있던 데스 나이트 무리가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길을 뚫는다.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 해.”
철컹!
검은 기사들은 대답을 대신해 무기를 치켜들었다.
불과 50여 마리의 데스 나이트.
악령 병사를 제외한 칼라일의 휘하 전원을 데려온 것이었지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미노타우로스의 무리에 비하면 명백히 부족한 숫자였다.
하지만 성현은 그런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콰직!
촤아악!
“쿠어어어!”
데스 나이트들이 가진 핼버드와 대검이 휘둘러졌다.
성현을 향해 달려들던 미노타우로스들은 검은 기사들에게 가로막혀 하나둘 쓰러져 갔다.
흉포한 대형 괴수들을 묵묵히 베어 가르고 있는 데스 나이트들.
똑같은 S급 던전 출신의 몬스터들임에도 싸움은 지극히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역시 든든하네.’
데스 나이트.
군주급 정도를 제외하면 정예 몬스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력을 가진 수하들이다.
던전 안에서 벌어진 저번 몬스터의 습격에서도 악령 병사 군단과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웠다.
지금도 뱀파이어를 비롯한 마족들이 이런저런 일로 바쁜 사이, 던전의 개척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성현도 빠른 시간에 돌파해야 하는 만큼 최정예를 끌고 온 것이다.
숫자의 차이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쿠구구궁!
미노타우로스를 베어 가르며 단숨에 한쪽 길을 터 낸 데스 나이트들.
마치 성현의 기대에 답하듯 매서운 실력을 뽐내었다.
그러자 성현은 그들이 터놓은 길을 걸어갔다.
굳이 던전 일로 바쁜 와중에 대군을 끌고 와 모든 몬스터들을 제거하기보다는, 놈들의 보스에게로 향하는 길만 뚫어 주면 되었다.
“우어어어!”
콰직!
아무래도 시선이 많이 끌리는지 인간인 성현을 향해 놈들이 달려들긴 했지만, 미노타우로스 따위는 성현의 발치에 접근하지도 못하였다.
이미 위치를 보고서 내린 것이었기에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는 장소에 금방 닿을 수 있었다.
콰아아앙!
검을 휘둘러 두꺼운 석벽을 통째로 날려 버린 성현.
벽 안으로 들어선 그는 낡아빠진 사원 안에 자리하고 있는 놈들의 군주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단순 무식하기로 유명한 녀석들이 잘도 해 놓고 사네.”
군주와 마주한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마치 궁전이라도 되듯 양옆에 줄지어 서 있는 미노타우로스들.
그 끝에 놓인 사원의 커다란 석좌 위엔 그들의 왕인 ‘안두스’가 거만하게 군림하고 있었다.
철커덕!
한편, 성현의 뒤를 따라 데스 나이트들이 핼버드를 어깨에 지고 나타났다.
붉은 안광을 뿜어내고 있는 검은 기사들.
그들의 무기엔 도륙당한 동족의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어어어!”
자신의 군주를 지키고 있던 미노타우로스들이 적의를 드러내었다.
사원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놈들의 숫자.
거기다 곧 바깥에서 몰려들 녀석들까지 따지면 그 수는 상당했다.
쿠우웅!
드디어 몸을 일으킨 안두스가 석좌 아래로 내려섰다.
왼쪽 눈에 기다란 흉터가 있는 녀석은 다른 미노타우로스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답게 강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하지만 성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츠츠츠츳!
치켜든 성현의 검에 검은 기운이 서렸다.
이전보다 한층 강해진 그림자의 힘이었다.
“빨리 여길 치우고, 손님을 맞이해야 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