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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72화 (72/202)

72화 격전지

“킥!”

“키익!”

고블린들이 바삐 움직이며 무너진 요새를 재건하고 있었다.

한편, 떨어져 있는 구석엔 몬스터들의 시체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지하실의 던전에서 벌어진, 지난번 대대적인 습격에서.

성현이 가장 급하게 생각했던 것은 당연히 몰래 침입해 왔던 다크 엘프들이었다.

놈들이 하나라도 바깥으로 빠져나가게 된다면 일이 그냥 골치 아픈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뿐만이 아니라 정면에서 몰려들던 몬스터의 존재들 역시 결코 만만치 않았다.

어둠 숲에 있던 몬스터 중 대부분이 던전의 입구가 생겨났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입구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역을 건너뛴 한층 수준 높은 몬스터들이 수도 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러자 로칸과 칼라일을 비롯한 보스들을 중심으로 각 거점을 틀어막으며 놈들을 막아섰다.

설마 몬스터들이 이 정도의 대규모 공격을 먼저 해 올지 몰라 당황했던 처음과는 달라졌다.

아무런 정보 없이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야 거점들이 부서지며 몇몇 곳에서 밀려났지만.

이번에는 성현의 수하들이 군주들의 지휘 아래 각 거점들을 충실히 틀어막았고, 역으로 몰려드는 놈들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며 승기를 잡았다.

그사이, 엔트를 처리하고 성현은 입구로 향한 모든 다크 엘프들을 자신의 그림자 권속으로 만들었다.

새롭게 군단에 합류한 다크 엘프와 엔트들.

거기에 성현까지 합류하자, 이번 습격 사태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성현의 지휘 아래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일반 몬스터들을 각개격파해 나갔고, 놈들은 알아서 몰려와 주는 경험치 덩어리꼴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성현은 습격해 온 모든 몬스터를 몰살시켰다.

이미 어둠 숲에 도사리고 있던 몬스터의 대부분은 입구를 향해 몰려들다가 전멸했기에 직접 찾아가 줄 필요도 없이 필드는 텅 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성현은 이미 대부분 점령을 마쳤던 생명의 숲뿐만이 아니라.

바로 다음 지역인 어둠 숲까지 빠르게 장악할 수 있었다.

두 지역을 통째로 먹어 치우며 세력을 확장한 군단.

거기다 새로운 마족인 다크 엘프 종족이 합류하며 던전 안엔 변화가 생겨났다.

다른 마족들에 비해 자연에 대한 뛰어난 이해력을 지니고 있는 다크 엘프들은 일반적으로 재배가 불가능한 각종 희귀 약초들을 기를 수 있었다.

그동안은 희귀 약재에 대해선 잿빛 땅에 위치한 자연 재배지에 대부분 의존하던 상황이었는데.

다크 엘프들은 대량으로 각종 희귀 약재들을 인위적으로 기를 수 있었고, 덕분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런 게 가능하다니 녀석들도 제법이네.”

이즈나가 흥미롭다는 듯 거대한 나무를 바라봤다.

고개를 한참이나 들어야 할 만큼 큰 키를 자랑하는 녀석.

츠츠츠츳!

영롱한 빛이 감돌고 있는 나무의 모습.

단순한 빛이 아닌 축복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기억의 고서를 통해 일부분의 기억을 되찾은 것은 카론과 다크 엘프들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단순히 던전의 몬스터가 아닌, 차원 너머의 존재로서 잊어버리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되찾게 되었다.

덕분에 잊고 있던 다크 엘프의 능력도 일부분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고, 그중 한 능력으로 식물에 축복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축복을 받은 나무들에게서 얻는 목재는 일반적인 던전의 목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화살을 비롯한 무기든, 진보한 건축이든 다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했다.

“다크 엘프라…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쓸 만한 녀석들이었군.”

“우리 혈족에 비해선 당연히 못하지만, 마법 부여에도 어느 정도 소질이 있으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들었어.”

두 마족을 이끄는 군주, 로칸과 이즈나가 대화를 나누었다.

다크 엘프들 역시 마법 부여가 가능했기에 뱀파이어들의 업무를 어느 정도 줄여 줄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력이 부족해 아슬아슬해지려던 참이었는데.

합류한 인원수도 제법 되었기에 던전 안팎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은 소식들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어둠 숲이라면 이미 절반 이상을 손에 넣었어. 뒤쪽은 좀 어때?”

“이쪽도 마찬가지지.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틀어막고 있는 중이다.”

“몬스터들의 습격이라면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르니 확실히 해야 해. 주군의 명이기도 하고.”

이즈나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속도로 보아 이다음에 있을 필드들에서도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올 것은 뻔한 일.

이번 일 같은 위험한 상황이 두 번 다시 연출되지 않도록, 각 지역에 대한 경계태세를 강화시켰다.

각 길목을 파악해서 감시대를 배치하고, 방어 시설까지 지어 놓으며 제대로 대비를 하고 있었다.

이는 새로운 필드를 손에 넣는 데 있어서 단순히 거점을 차지하며 빠르게 나아가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더불어 제대로 인원을 배치하고 방비를 해 두며 이즈나의 주도로 꼼꼼하게 점령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서둘러 여길 마무리 짓고서 다음 지역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몬스터가 주도하며 공격당하는 입장보다는, 공격하는 쪽이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이끌어 가기 좋았기에.

각 필드의 공략에도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성현이 자리를 비운 상황.

부재중인 그를 대신하여 군주들이 일처리를 맡고 있는 중이었고, 성현은 그 전에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 * *

‘퀘스트 마커가 이쪽이었는데.’

강남 지역의 골목길.

가면을 쓰지 않은 채 성현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고 있는 성현.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기척까지 파악하며 꼼꼼하게 둘러보고 있었다.

‘찾았다.’

벽 아래에 둥둥 떠 있는 퀘스트 마커.

위치를 알려 주는 표식이 바로 앞에서 보였다.

“여기서 던전이 나타난단 말이지?”

다음 퀘스트의 목표인 던전이 나타날 위치를 미리 알려 주는 퀘스트 마커.

무려 S급 던전의 발생 예상 지역이다.

아직 생성이 되지 않았음에도 시스템상의 정보인 만큼 그 신뢰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청성의 영역 내부에 나타날 예정이라는 거지.’

자리에 잠시 멈춰 선 성현은 머리를 긁적였다.

거리가 가까운 중립 구역만 하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데, 아예 청성의 구역 내에서 생겨난 S급의 던전이라면 놈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곤란하네.’

S급 던전에 나타날 길드원이라면 당연히 S급의 헌터일 테고, 최소 청성의 최고 간부가 이 자리에 나타난다는 의미였다.

그것도 던전의 크기가 작지도 않은 터라, 무조건 마주치게 될 가능성이 높은 임무.

아무래도 리스크가 굉장히 컸다.

가뜩이나 성현의 가면만 봐도 눈이 돌아가 미친 듯이 달려들 놈들인데.

아예 청성의 구역 안으로 침범해 S급 던전까지 먼저 털어 먹을 작정이었으니.

청성과 직접적인 마찰을 빚을 확률이 그만큼 높았다.

그러나 적혀 있던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한 성현으로선 이 임무를 무시하기엔 곤란했다.

‘경험치만 주는 퀘스트라면 다음을 기약하겠지만… 이번은 더 큰 보너스가 있으니 포기할 수는 없지.’

거기다 청성을 간접적으로 엿 먹이는 일이기도 했다.

S급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상당히 컸다.

단순히 나오는 아이템과 자원들뿐만이 아니라, 고위 몬스터들이 토해 내는 경험치 또한 중요했다.

이미 정점에 오른 S급 헌터들도 몬스터를 처치하고 꾸준히 성장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정체되면 결국엔 따라잡힐 뿐.

청성 같은 거대 길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S급 헌터들의 전력이었으니.

길드에서는 S급 던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다른 S급 헌터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쉽게 눈에 띄진 않는 위치이긴 하고.’

성현이 주위를 슬쩍 둘러보았다.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구석진 골목길이었다.

아예 도시 바깥이나 폐쇄된 건물 지하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도심 한복판 거리에 나타나 바로 눈에 띄는 것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이다.

‘그래도 안심할 건 못 되지만.’

던전의 위치가 알려지는 것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게 아니더라도 몇 가지 방법이 더 있었다.

청성쯤 되는 거대 길드에선 아예 탐지 계열 능력자들을 모아 팀까지 꾸려 가며 던전의 발생을 놓치지 않도록 관리했다.

위치 정도로는 안심할 요소는 되지 못한다.

‘일단 던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직접 확인해 보기 전까진 판단할 수 없으니까.’

성현은 골목에 털썩 주저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정확한 던전의 생성 시간까지 메시지가 친절하게 알려 주진 않았기에 그 위치 근처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0분가량의 시간을 보내자.

퀘스트 마커가 떠 있던 벽 밑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쿠구구구!

‘나타났다.’

밑을 향해 입을 쩍 벌린 던전의 입구가 약간의 소음을 내며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던전이 생겨날 때엔 아주 큰 소음이 발생했고, 도시에서 대부분의 던전이 발견되는 가장 쉬운 이유 중 하나였는데.

다행히 이번 던전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렇다면 정해졌네.’

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변의 기척을 잠시 파악하고는, 무너진 벽을 가리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커다란 천을 꺼냈다.

그러곤 무너진 벽면을 적당히 가려 두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이 이상으로 손을 댈 순 없었다.

던전의 입구는 기본적으로 변형이 불가능한 데다 통행을 방해할 정도로 너무 큰 장애물을 가져다 놓으면 반발 작용으로 인해 요란한 굉음을 동반하며 파괴된다.

이 정도로 숨기는 게 최선이었다.

‘어차피 육안으로 숨기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달그락!

성현은 인벤토리에서 가면을 꺼내 들었다.

뼈 가면이 그의 얼굴을 덮었고, 성현은 검을 꺼내 허리에 찼다.

확실히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진입한다.’

성현은 발을 성큼 내디뎠다.

* * *

“도윤일? 네가 여기 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잠깐 들른 거다. 따로 맡은 일이 있어서 말이야.”

청성 길드의 한 지부.

천태성, 도윤일.

S급 헌터이자 청성의 두 최고 간부가 마주했다.

“다른 길드와 마찰이 있었다던데, 네가 용케 참았다더군.”

“…그놈들 말이지?”

기억을 떠올린 천태성이 불쾌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

새롭게 나타난 신흥 길드, 이지스.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과 빠른 성장에 청성 내부에서도 놈들에 대한 논의가 적잖이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놈들의 간부를 봤다. 한승희나 구창환을 쓰러뜨렸다는 게 괜한 소문은 아니었어. 방심했다곤 해도 내가 기척도 못 느끼고서 뒤를 내줘 버렸으니까.”

이즈나에 대해 떠올린 천태성이 말했다.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들지도 않았고, 아주 잠깐 마주하고 만 것뿐이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확실히… 여러모로 꺼림칙한 점이 많은 녀석들이지. 방해꾼만 아니었어도 진즉에 밀어 버렸을 만큼.”

도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며칠도 되지 않아 급격히 세력을 불린 정체불명의 길드다.

S급 헌터가 무려 셋이나 소속되어 있었고, 길드장은 아직 모습도 드러내지 않은 채 베일에 싸여 있었다.

심지어 다른 길드들로서는 흉내 낼 엄두도 못 내는 파격적인 조건들을 일반 시민들에게 내걸었고, 실제로 엄격하게 시행하는 중이었다.

“거둬들이는 보호세를 포기하고, 헌터들의 위법 행위들을 잡아들이고 있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놈들이야.”

파격적인 조건인 만큼 당연히도 시민들의 열띤 호응이 있었다.

이지스 길드에 대한 여론은 당연히 매우 좋았고, 소식을 들은 다른 지역의 시민들 역시 큰 관심을 보였다.

바뀐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이었기에 오히려 상식으로서의 회귀가 더욱 놀라운 일이 된 것이다.

“특히 이대로 놈들의 세력이 커져서 서울 내 시민들에게까지 영향이 갈 정도가 되면 곤란하니까.”

당장은 부럽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그 이상의 움직임은 없었다.

하지만 이게 오랫동안 유지되어 이야기가 돌다 보면 점차 다른 지역 시민들의 불만이 쌓일 수 있었다.

헌터와 지배 길드로서의 특권을 쥐고 있는 다른 길드들은 꽤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손을 봐줘야겠지. 백룡 놈들만 어떻게 정리하고 나면.”

쿠당탕!

천태성과 도윤일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와중.

급히 달려온 지부의 길드 직원이 그들의 앞에 섰다.

“무슨 일이지?”

“길드의 구역 내에 S급 던전이 발생했다는 소식입니다! 최고 간부분들 중에선 두 분께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계셔서…….”

“그래? 마침 몸도 근질거리던 참에 잘됐네.”

천태성이 찌뿌드드한 몸을 풀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장 맡을 일이 없어 심심하던 차였는데, S급 던전이 나타났다면 그야말로 환영한 일이었다.

“하지만 특이할 만한 점이… 이미 던전 내부에 누군가가 들어섰다고 합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구역 안에 생긴 거라면서.”

“예, 그게… 던전을 발견한 탐지팀에서 내부를 확인해 본 결과, 몬스터가 아닌 S급 헌터의 기운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외부 헌터가 길드의 허가 없이 들어간 모양입니다.”

감히 청성의 영역 내부에서 최상위 던전을 가로채려 하다니.

평소 같았더라면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범인의 정체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놈이군.”

“그래.”

시선을 주고받은 천태성과 도윤일.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바로 가지. 이번만큼은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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