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침입자
콰과과광!
연달아 터져 나오는 강력한 폭발.
쏟아지는 화염구가 폭발하며 막강한 화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즈나가 지닌 마력의 심장 특성을 가져온 덕에 성현은 자유자재로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높은 마력 스탯의 힘이 더해져 S급 마법계 헌터 수준의 마법들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그어어어!”
치솟는 불길 사이에서 엔트들이 당황한 듯 허우적거렸다.
워낙 덩치가 크고 단단해 폭발의 충격만으로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지만, 녀석들에게 치명적인 화염이 놈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나무로 된 몸뚱이를 빠르게 태워 버리자 불길이 사방으로 번져 나갔고.
엔트들의 몸뚱이를 먹이 삼아 불은 더욱 맹렬하게 활활 타올랐다.
쿠구구궁!
놈들의 거체가 하나둘 쓰러져 갔다.
물론 녀석들은 몬스터의 본능을 따라 이 불길 속에서도 인간인 성현을 죽이려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어딜……!”
하지만 성현은 느릿느릿한 마법사들과는 달랐기에 가까이 다가선다고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가볍게 몸을 빼낸 성현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더욱 마법을 퍼부어 주었고.
엔트들을 모조리 불태워 쓰러뜨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후, 끝이군.”
전소된 엔트들의 사체 사이.
성현이 짤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력의 심장 특성이 적용된 상태임에도, 워낙 고위력의 마법을 퍼부어 댄지라 남은 마나의 양이 아슬아슬했다.
어찌나 많이 몰려들었는지 이 녀석들을 쓰러뜨리는 사이, 레벨업도 두 번이나 한 뒤였다.
화르륵!
“이크……!”
코앞에서 일렁이는 불길에 성현은 얼마 남지 않은 마력을 급히 끌어올렸다.
엔트들의 시체를 먹어 치우며 더욱 난폭해진 불길은 저대로 두면 숲 전체로 번져 나갈 게 뻔했다.
‘주변 자원들이 몽땅 타 버리도록 할 순 없지.’
불을 막기 위해 성현은 냉기 속성의 마법을 사용했고, 서리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며 화기를 잠재웠다.
츠츠츠츳!
서리로 뒤덮이자, 불길은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을 통해 급히 전해져 오는 목소리가 있었고.
성현은 그림자를 뻗어 로칸을 소환시켰다.
“주군, 급히 전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엔트들이 이곳에서도 나타났군요.”
“그래. 엔트가 있단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엔트라면 다섯 번째 필드인 어둠 숲의 몬스터입니다. 놈들뿐 아니라 어둠 숲의 다른 몬스터들도 저희 거점에 대대적인 습격을 가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건가?”
“예. 소수가 지역을 넘나드는 일은 종종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던전의 입구가 생겨났다는 걸 몬스터들이 눈치챈 듯 보입니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각 거점을 공격해 온 몬스터들.
다른 필드에서 대규모로 넘어온 만큼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던전 입구의 발생을 인지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아직은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입구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다는 건가…….”
성현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던전의 입구가 열리게 된 순간, 던전의 몬스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이즈나에게 직접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필드를 대부분 장악하고, 진행 속도도 빠른 편이라 별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벌써 다섯 번째 구역의 몬스터들이 이렇게나 몰려들다니.
그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빠른 속도였다.
이 정도 속도로 퍼져 나가는 걸 보면 꽤나 골치 아플 수도 있을 듯했다.
입구가 열렸다는 걸 알면 본능적으로 몬스터들은 던전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 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 녀석들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정면으로 들이닥친 몬스터들은 미끼였을 뿐, 어둠 숲의 마족들이 저희의 존재를 알아챈 듯합니다.”
“뭐……?”
단순히 일반 몬스터들이 벌인 문제라면 군주들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로칸이 급히 성현을 찾았던 이유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 더욱 시급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칼날 협곡과 잿빛 땅에서도 적의 공격을 받은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당했던 아군의 사체들.
박혀 있는 화살이나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급소를 정확히 찌른 검상의 흔적이 남겨져 있었다.
급상승한 수하들의 레벨을 생각하면 단순히 리젠된 일반 몬스터가 벌였을 리는 만무한 노릇.
“잿빛 땅까지 닿았다는 건…….”
“이미 저희의 눈을 피해 상당히 깊숙이 들어섰다는 겁니다. 심지어 추적을 당하지 않도록 대부분의 흔적은 지워지거나 감춰져 있었습니다.”
사실들을 확인해 낸 로칸의 말.
이런 지능적인 행동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침투할 만한 솜씨를 지닌 것은 마족뿐이다.
‘젠장, 골치 아프게 됐네. 그래도 아직 게아드가 멀쩡한 걸 봐선 바깥까진 닿지는 않은 모양인데. 당장에라도 놈들을 막으러 가야겠군.’
다섯 번째 필드에 마족이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자신들을 그대로 지나치고서 던전 밖으로 나가려는 선택을 하려 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최소 S랭크의 전력을 지닌 지능적 몬스터.
놈들이 밖으로 나가면 당연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야 뻔했고, 성현의 입장에서도 그건 대참사였다.
하지만 성현이 안카라스를 불러 바로 놈들을 따라잡으려는 순간.
콰과과과과!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속에서 줄기와 뿌리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새장처럼 그들을 가둔 거대한 식물들.
“이 녀석들… 또 나타난 건가?”
주위에 나타난 엔트들의 등장에 성현의 인상은 찌푸려졌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 여긴 귀찮게 구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다른 엔트보다 배 이상은 거대한 몬스터가 솟구쳐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구어어어어!”
‘저건……?
등장과 함께 분위기를 바꾼 녀석의 위압감.
이곳에 나타난 모든 엔트들의 군주, 보스 몬스터였다.
“대놓고 발목을 잡을 셈인가 본데. 쉽게 놓아줄 것 같지는 않네.”
녀석의 위압적인 모습에 성현은 옆을 슬쩍 바라보았다.
“혼자서는 시간을 잡아먹겠어. 함께 처리한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로칸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성현이 검을 뽑아 든 동시에, 로칸의 몸이 우드득 뒤틀리기 시작했다.
* * *
“크르륵!”
“키익!”
순찰 중인 고블린 한 쌍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창을 치켜세운 채 바짝 긴장을 놓지 않는 녀석의 모습.
저레벨 몬스터가 리젠되는 게 전부인 고블린 숲을 순찰하는 평소의 임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침입자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은 터라 숲 곳곳을 빠짐없이 순찰하며 잔뜩 경계했다.
조금 전 성현이 직접 내린 지시이니만큼 숲 안에 있는 모든 고블린이 긴장하고 있었다.
피유웅!
하지만 그 순간, 반응할 새도 없이 갑자기 날아든 투사체가 그들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콰악!
날아든 화살이 단번에 두 고블린의 머리를 꿰뚫었다.
레어 메탈제 방어구와 질긴 피부, 단단한 뼈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확하고도 강력한 활솜씨에 고블린의 숨통이 끊어지며 사체가 나뒹굴자.
수풀 사이에서 기척을 감추고 있던 존재들이 나타났다.
“거의 다 도착했군.”
갈색 피부를 지닌 어둠 숲의 다크 엘프들.
다섯 번째 필드에 군림하고 있던 마족이었다.
그들은 던전의 입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었고, 이번 출정을 위해 움직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마주한 정체 모를 군단과 거점들이 있었다.
“제거해야 할 인간의 명이나 따르고 있다니.”
다크 엘프들의 군주, 카론은 고블린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한심하다는 듯한 그의 눈빛.
던전의 입구가 열렸음에도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던전 깊숙한 곳을 향해 들어서고 있는 놈들의 행동.
다크 엘프들은 이 몬스터들이 인간의 지시를 받는 소환수 군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거기다 던전의 존재들을 죽여 영구적인 대규모 언데드 군단으로 만든 정체불명의 능력.
이 주변에선 본 적 없는 이질적인 능력이었고, 던전의 입구까지 열려 있다면 어떤 존재의 소행일지는 뻔했다.
“숫자가 보통이 아니다만, 문이 열린 이상 던전 내부가 어찌 되건 우리가 신경 쓸 바가 아니지.”
어둠 숲에 있던 마을을 버리고서, 수백의 군단을 그대로 끌고 나온 다크 엘프들.
그동안 자신들이 지내고 있던 터전 따위는 상관없었다.
던전 밖으로 나가 인간들을 사냥해야 한다.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에 가까운,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 단계 위에 놓여 있는 그들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본능에 사로잡힌 채 무작정 달려 나가려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입구에 대해 인지하게 된 어둠 숲의 다른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입구 쪽으로 무작정 달려 나갔고, 그림자를 머금은 군단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하등종답게 무식하게 정면 돌파를 택하며 놈들이 시선을 끌어 주는 사이.
다크 엘프들은 은밀히 움직이며 성현이 장악한 지역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곳곳의 거점을 차지한 적들을 따돌리며, 빠르게 안으로 침투해 냈다.
기본적으로 다크 엘프 종족은 매우 민첩하고 기척을 죽이는 데에 능숙했다.
그 덕에 곳곳에 포진된 군단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부스럭!
“다들 모였군.”
물론 아무리 그들이라고 한들 한꺼번에 수백의 인원이 우르르 움직이면 눈에 띌 것은 뻔한 일.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른 경로로 도달한 다크 엘프들의 무리도 하나둘 그들의 주위로 합류했다.
입구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거리에서 모든 다크 엘프 전사들이 모이자, 그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얼마 가지 않아 던전의 입구 앞까지 닿을 수 있었다.
“여기로군. 놈들의 세상으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가.”
고블린 숲 중심부의 언덕 위에 놓인 동굴.
목적지에 닿았다는 것을 깨달은 다크 엘프의 왕 카론이 앞으로 나섰다.
지체할 것 없이 던전 밖으로 나가 모든 인간들을 사냥해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본능이었다.
쿠우우웅!
하지만 그 본능의 굴레에서 벗어난 존재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르륵…….”
“네놈은 뭐지?”
카론의 앞을 막아선 것은 고블린 대족장 게아드.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카론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평범한 고블린 같지는 않은데, 설마 군주라는 녀석이 인간의 아래에 들어간 것이냐? 아무리 하등종이라 해도 어처구니가 없군.”
하등종이라고 한들 한 종족의 군주가 인간을 위해 던전의 입구를 지키는 꼴이라니.
카론의 얼굴에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이 스쳤고,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단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날을 지닌 두 자루의 예리한 단검.
카론의 몸이 순식간에 움직였다.
콰아아앙!
하지만 카론이 그의 앞까지 닿기도 전.
바닥을 내리찍은 몽둥이에서 커다란 충격파가 일었다.
“큭……?”
거센 충격파로 인해 달려들던 카론의 몸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신호를 받은 큼직한 덩치의 고블린들이 사방에서 나타나 다크 엘프들을 포위했다.
“키이이익!”
“이건…….”
주위를 둘러싼 홉고블린들의 무리.
처음부터 성현에게 임무를 부여받아 던전의 입구를 지켜 온 녀석들이었다.
이는 게아드 역시도 마찬가지다.
“크르륵!”
수백의 홉고블린 사이에 선 게아드가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어떤 존재든 주군의 명이 없는 이상, 단 한 놈도 이곳을 넘어설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