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68화 (68/202)

68화 갈림길

지하 던전의 네 번째 필드, 생명의 숲.

이름에 걸맞게 울창한 숲이 펼쳐진 드넓은 지역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종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키에에엑!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사방으로 들려오는 야수 몬스터의 포효 소리.

그 앞에 홀로 선 성현은 검을 빙글 돌려 잡았다.

수풀 속에서 뛰쳐나온 커다란 야수가 그를 향해 입을 쩍 벌렸고, 성현은 가볍게 검을 휘둘러 놈의 몸뚱이를 반으로 쩌억 갈라 주었다.

쿠당탕!

야수들의 가죽은 보통 질긴 것이 아니었지만, 성현의 검 앞에서는 무의미한 이야기일 뿐.

토막 난 시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녀석의 피 냄새에 더욱 흥분한 야수들의 시선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역시, 가면 갈수록 살벌해지는군.’

여태 겪어 온 세 번의 필드들.

거기에 더해 이번 필드의 경험까지 비추어 보아.

깊숙이 들어갈수록 필드에 나타나는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건 사실상 확실해진 듯했다.

당장 마주하고 있는 이곳의 야수 몬스터 수준만 봐도 이전의 일반 몬스터에 비해 확실히 높은 편이었다.

크르르륵!

빠르게 모여드는 야수들.

성현이 보통 내기가 아니라는 건 알았는지, 섣불리 달려들려 하지 않던 녀석들은 충분한 숫자가 모이자 그제야 땅을 박찼다.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던 야수들이 동시에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일반 몬스터지.’

촤아아악!

성현은 순식간에 몸을 움직였다.

번뜩이는 검의 섬광과 함께 몬스터들의 몸뚱이가 하나둘 베여 나갔다.

아무리 야수들이 발버둥치며 그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해 봤자, 성현은 가볍게 피하며 놈들을 쓰러뜨려 나갈 뿐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몬스터를 한 마리, 한 마리 쓰러뜨릴 때마다 성현에겐 8배의 경험치가 적용되며 대량의 경험치가 쌓여 나갔다.

일반 몬스터라곤 해도 레벨부터가 상당한 녀석들.

거기다 숲 안에 도사리고 있는 몬스터의 개체수도 엄청났다.

찾아가 줄 필요도 없이 그저 돌아다니기만 해도 인간인 성현을 노리고서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덕분에 성현은 빠르게 레벨업을 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쿠우웅!

많이도 몰려들던 야수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성현.

잠시 한숨을 돌린 그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 이성현]

[칭호 - 경지에 도달한 자]

[레벨 - 186]

[직업 - 네크로맨서]

[주요 능력치]

힘: 340 민첩: 324 체력: 325 마력: 408

[보유 특성]

상태창(S), 그림자 군주(S), 백귀야행(S)

‘하루 동안 사냥에 매진한 보람이 있네.’

상태창을 바라본 성현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답답한 구석이 있던 바깥의 사냥과는 다르게, 비교가 안 되는 속도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S랭크의 수준에서 지금의 성장 폭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벌써 200을 코앞에 앞두고 있는 그의 레벨이었다.

거기다 그의 마력 스탯은 400을 넘어섰다.

몸으로만 싸우는 이전의 그였다면 마력 스탯이 높든 낮든 거의 의미가 없는 수준의 지표였겠지만.

지금은 검의 위력이 보정되어 함께 상승하는 데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까지 절륜해졌다.

‘그동안 필드의 개척도 많이 이뤄졌고.’

성현이 며칠 동안 바깥 일로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네 번째 필드의 개발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각종 자원들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구역이었기에 개발할 곳이 많기도 했지만.

그동안 워낙 성현의 밑에 딸린 부하들이 많아진 덕에 빠르게 생명의 숲을 점령하며 나아갈 수 있었다.

덕분에 그는 이미 네 번째 필드의 8할 이상을 손에 쥐게 되었다.

‘아무래도 필드 보스가 없는 땅이다 보니, 나 없이도 공략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지.’

마족인 뱀파이어와 웨어울프가 지배하고 있던 잿빛 땅이나 칼날 협곡과는 다르게.

이곳 네 번째 필드엔 마족이 없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특이하게도, 이 구역 내엔 아예 필드 보스급의 몬스터가 없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꽤나 의아하게 여겼던 소식이었다.

로칸에게 들은 대로라면, 이곳의 필드 보스는 다섯 번째 필드의 존재들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제거되었다고 한다.

몬스터들이 간혹 각자의 필드를 넘어서서 활동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 필드의 존재가 아예 해당 지역의 필드 보스를 죽이기까지 한다니.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어찌 됐건 그 덕에 네 번째 필드의 확고한 지배자 자리는 공석이었고.

그의 수하들은 큰 걸림돌 없이 빠르게 점령해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성장 겸 개척을 위해 성현도 마음 편히 사냥이나 나서며 몬스터의 개체수를 줄이는 데에 전념하고 있던 것이었다.

곧 넷째 구역의 개척을 끝내고 나면, 바로 이어진 다섯 번째 필드인 어둠 숲에 진입할 것이었다.

“바깥쪽은… 지금쯤 잘하고 있겠지.”

성현의 시선이 슬쩍 위를 향했다.

* * *

콰아아앙!

요란한 폭발 소리가 울려 퍼지는 길드 건물.

불시에 기습을 당한 길드는 급히 길드원들을 불러 모아 대응했다.

하지만 혼란한 상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이번 습격들 모두 백명 길드의 소행입니다!”

“뭐, 뭐라고?”

심지어 공격을 받는 것은 단순히 한 길드뿐만이 아니었다.

청성과 비밀스런 관계를 맺고 있던 인근 지역의 길드들이 일제히 공격을 받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백명 길드의 대대적인 공격이었다.

“말도 안 돼. 갑자기 왜?”

최근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이지스의 등장.

그리고 백명이 이지스 길드의 밑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은 당연히 들었고, 가까운 거리에서 벌어진 사건인 만큼 꽤나 주시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허나 그들이 이런 행동에 나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쿠구구궁!

싸움의 여파로 우르르 무너져 내린 길드의 건물 한쪽.

내부는 들이닥친 백명 헌터들로 인해 빠르게 장악되고 있었다.

양쪽 모두 헌터들 간의 싸움이었지만, 싸움의 내용은 일방적이었다.

수적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며 적 길드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백명은 서남부 지역을 삼 분할하던 대형 길드였고, 언제나 경쟁 길드와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검을 주고받았던 길드다.

길드원들의 규모든, 겪어 온 싸움이든, 실력이든.

어느 것 하나 압도하지 못할 게 없었고.

이런 변방에 뭉쳐 있는 크고 작은 중견 길드들 따윈 절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꺼져라.”

콰아아앙!

백명의 간부, 임대한이 주먹을 내뻗었고, 달려들던 헌터들이 그대로 널브러졌다.

고작 중견 길드 정도 되는 체급에선 A급 헌터인 그를 막을 자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장 앞장서서 적들을 해치우고 있던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금 속도대로라면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군.’

수월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길드의 공략.

길드장인 한승희가 직접 이 작전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기에 간부인 그가 이 작전을 주도하고 있었다.

‘산하 길드 자격으로 작전에 나선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지만…….’

임대한의 표정이 슬쩍 찌푸려졌다.

고위 헌터의 입장에선 이지스 길드의 밑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분명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산하 길드가 된 것은 길드장인 한승희의 뜻이었고, 그녀의 뜻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했다.

뭣보다 바로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이지스 길드원의 모습을 보자, 어째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콰아아앙!

폭발하는 화염구에서 뿜어져 나온 맹렬한 열기.

이지스의 길드원인 남자가 쏘아 낸 광역 마법이었고, 심지어 그는 근접한 적에겐 수준급의 검술까지 구사하며 대응했다.

싸우고 있는 백명의 길드원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이지스의 헌터들.

저들은 전부 이지스의 간부도 아니었고, 이번 작전에 따라붙은 일반 길드원에 불과했는데.

저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굉장히 놀라웠다.

‘한 명, 한 명이 최소 B급 이상의 고위 헌터… 아니, 그것도 단순히 평범한 B급으로 보이지는 않아.’

B급 헌터들 사이에서도 최상위.

혹은 확실치는 않지만 저들은 아직 모든 힘을 내보이지 않았고, 진짜는 더 강할 것이라는 느낌마저도 들 정도였다.

“컥… 젠장…….”

“얌전히 있어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목을 베어 줄 테니까.”

그사이, 그들이 맡아 진입했던 길드의 정리가 완전히 끝났다.

달아나려던 적 길드장을 생포했고, 저항하던 길드원들 역시 모두 제압했다.

그러자 백명의 길드원이 임대한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직 남은 길드가 몇 곳 있긴 하지만, 상황은 거의 끝난 것 같군요. 작전에 돌입한 지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방심할 건 아니야. 어차피 이번 작전의 핵심은 이 녀석들을 치우는 게 전부가 아니었으니까. 혹시 모를 청성의 개입이 있기 전에 최대한 빨리 마무리를 짓고 장악까지 마쳐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임대한의 말이 떨어지자, 헌터들은 다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A급 헌터인 자신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상황은 이미 정리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 지역의 얼빠진 중견 길드 놈들과 뒷거래가 오갔던 게 양대 길드 중 하나인 청성이라는 게 문제였다.

‘청성이 전면전까지 고려할 가능성은 적다고 해도, 작전 중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뒤에서 은밀하게 모종의 관계를 맺었다고 한들.

공식적인 관계는 전혀 없었기에 명분도 없었고, 청성의 입장에선 버린다고 해도 딱히 문제될 게 없는 곳이었다.

애당초 깊은 관계도 아니었고, 청성쯤 되는 거대 길드에겐 비중이 없는 곳이나 다름없는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자신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길드들이 다른 길드로 대체되는 걸 좋아할 리는 없었다.

이런 일을 벌인다면 청성에게 미운털이 박힐 것은 분명했고.

분쟁 상황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닌 이상, 도중에 그들이 개입해 들어올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 짓고, 이곳을 완전히 장악해 손에 넣어야 했다.

하지만 길드원들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바깥으로 나가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앙!

“크아아악!”

폭음과 함께 벽이 무너져 내렸다.

휩쓸린 백명의 길드원들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잔해 사이에서 남자가 나타났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던 건가?”

임대한은 흙먼지 사이에서 눈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검푸른 빛깔의 길드복을 걸치고 있는 남자의 모습에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하, 이 새끼들. 웬 소란인가 했더니 재미있는 일을 벌이고 있었네.”

“뭣… 청성의 최고 간부가 여기엔 왜……!”

코웃음을 치며 나타난 남자.

청성의 최고 간부이자 S급의 최고위 헌터 천태성이었다.

“이지스인지 뭔지 하는 길드에 대해선 들은 게 없어 잘 모르겠다만, 너희 길드장 한승희라면 이 구역의 사정에 대해 모를 리도 없을 텐데? 그런데도 굳이 여길 들쑤시는 건 한번 해 보자는 건가?”

“큭…….”

임대한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하필 S급 헌터가 이 인근에 있었을 줄이야.

우려하던 일 아니,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천태성이 마음만 먹는다면 여기 있는 인원들 정도야 간단히 전멸시킬 수도 있었다.

“대답 안 하고 가만히 있을 거라면…….”

콰득!

예리한 검이 천태성의 발치에 날아와 꽂혔다.

순식간에 검을 집어 든 천태성이 임대한의 목을 날려 버리기 직전의 순간이었다.

“너는…….”

“죽고 싶다면 끝까지 뽑아 봐라.”

천태성조차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기척.

S랭크 헌터, 이즈나가 그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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