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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66화 (66/202)

66화 일타삼피 (2)

콰아아앙!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건물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고, 튕겨져 나온 한승희가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재빨리 균형을 잡은 그녀는 촤아악 미끄러지며 자리에 섰다.

“…….”

백명의 길드장 한승희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무너진 벽 틈과 연기 속에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런 식으로 떨어뜨려 놓다니. 마치 우릴 하나씩 격파해 주겠다는 듯한 짓거리네.”

“단순히 네놈들의 목만 따러 온 게 아니라서 말이지.”

이즈나가 검을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단순히 적대 길드장의 목을 따기 위함이었다면 혼자 있을 때 따로따로 격파하는 편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두 길드장이 함께 모인 이 자리에 나타났고.

한승희와 유정수, 이 둘을 강제로 떨어뜨려 놓으며, 이렇게 일대일 매치업을 만들어 냈다.

오성의 길드장인 유정수는 로칸이 맡고 있었다.

“건방진 소리하기는.”

물론 그런 이들의 태도에 한승희는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보아하니, 이지스 길드의 간부인 모양인데.

길드장이 직접 들이닥친 것도 아니고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고작 중견 길드인 주제에 하는 행동만 보면 마치 9대 길드나 다름없는 듯한 모습.

“너희 길드부터 시작해 대체 어디서 굴러 들어온 놈들인지는 몰라도 내 앞에서 검을 뽑아 든 이상… 곱게 돌아가진 못할 거다.”

츠츠츠츳!

한승희의 왼쪽 눈에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동시에 땅을 박차고 나선 그녀의 움직임.

카아아앙!

둘의 검이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맞부딪혔다.

이즈나는 단숨에 검의 방향을 틀며 반격하려고 했지만, 한승희는 되레 그녀의 움직임을 읽은 듯 검을 휘둘렀다.

아슬아슬하게 지나간 칼날.

기세를 잡은 한승희의 주도적인 공세는 계속되었다.

“다 보인다.”

그녀가 지닌 A랭크의 특성, ‘망령의 눈.’

마치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하는 듯 보이는 특별한 눈의 능력 덕에 상대의 다음 움직임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덕분에 상대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 빈틈을 파고들어 찌를 수 있었다.

‘주군께 들었던 그대로군.’

높은 인지도를 가진 길드장답게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라면 이미 세간에 잘 알려져 있었다.

야차 한승희.

그녀는 망자의 힘을 사용하는 귀검사였다.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불길한 기운을 온몸으로 풀풀 풍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고.

경기 서남부의 삼대 길드장 중 가장 강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실력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성현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바.

광견 구창환의 실력까지 제대로 본 터라, 그와 견주던 한승희의 실력 역시 충분히 가늠이 되었다.

이즈나를 보내 그녀의 상대로 붙인 것은 괜한 짓이 아니었다.

확실히 이기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보낸 것일 뿐.

화르르륵!

이즈나의 손에 일렁이는 뜨거운 불의 기운.

달려들던 한승희는 그걸 보고선 흠칫 당황하고 말았다.

‘마법……?’

콰아아아앙!

터져 나오는 불꽃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근거리에서 일어난 폭발인 데다 워낙 위력적인 파괴력을 보여 그녀조차도 위험할 뻔했다.

하지만 한승희는 거기서 간신히 몸을 빼내었다.

망령의 눈을 지닌 덕에 더욱 재빨리 반응하고 폭발의 반경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던 것이다.

‘마검사였던 건가? 하지만 이 위력은…….’

카아아앙!

뜨거운 불길 속에서, 이즈나의 검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녀는 흐트러진 상대를 놓치지 않고서 매서운 검격을 퍼부었다.

콰아앙!

“젠장……!”

한승희가 다시 주도권을 가져오려는 순간, 이즈나의 강력한 광역 마법이 또다시 터져 나왔다.

마법과 검을 정확히 필요한 상황에 사용하는 그녀의 판단.

‘마검사가 이 정도 실력을 지녔을 줄이야……. 그것도 어느 쪽도 흠잡을 게 없다.’

일반적으로 마검사라고 하면 불균형한 직업의 대표 격으로, 양쪽 모두 애매하기만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마검사는 둘 중 어느 쪽도 실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전투 중 싸움을 풀어 나가는 솜씨가 아주 노련했고, S급 헌터 명단에 이름조차 못 올린 애송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보이는 힘은 물론이고, 경험과 전투 센스 역시 S급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흐름이 바뀌었다. 이대로는 금방 끝을 낼 수가 없어. 이런 상황에서 만약 유정수가 먼저 당해 놈의 동료가 싸움을 거들기라도 한다면…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예상을 한참 뛰어넘은 강적의 등장.

팽팽해진 흐름 속에서 한승희는 초조함을 느꼈다.

‘놈들의 계획에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지. 여기서 빠르게 끝낸다.’

츠츠츳!

한승희의 칼날에 실린 검은 혼령의 기운들.

자세를 취한 그녀의 몸이 순간적으로 가속화되었다.

촤아아악!

순식간에 날아든 한승희의 참격이 이즈나의 몸을 베어 갈랐다.

눈 깜짝할 새에 수차례의 참격을 가한 한승희는 이즈나를 스쳐 지나갔고, 깊이 파인 상처에서 피가 흩뿌려졌다.

아무리 S급 헌터라도 치명상을 입었을 결정타.

그녀의 결전 기술인 귀영참이었다.

푸욱!

“컥……!”

하지만 한승희의 배에 기다란 칼날이 꽂혔다.

정확히 급소를 꿰뚫은 이즈나의 검.

“어, 어떻게…….”

이겼다고 생각한 순간에 일어난 반전이었고, 한승희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커다란 상처를 온몸에 입었음에도 멀쩡히 서 있는 이즈나의 모습.

“너… 헌터가 아니로군.”

싸움을 시작할 때부터 이즈나의 주변에 풍기고 있던 검은 그림자.

한승희는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공격은 분명히 명중했으나 이즈나는 인간이 아닌 보스 몬스터였고, 이런 상처를 한 번쯤은 버텨 내고서 몸을 움직일 체력이 되었다.

쿠웅!

차마 다음 말을 잇지 못한 한승희가 풀썩 쓰러졌다.

* * *

한승희가 이즈나의 손에 제압된 사이.

오성의 길드장인 유정수 쪽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이즈나와 로칸은 성공적으로 각 길드장들을 제압해 내었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 성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를 맞이했다.

뼈 가면을 쓰고 있는 그의 모습.

제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길드장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설마 영왕… 네가 이지스의 수장이었을 줄이야.”

한승희가 성현을 올려다보았다.

무언가 둘 사이에 연관이 있을 거라곤 예상했지만, 설마 길드장의 정체가 그였다니 완전히 한 방 먹은 셈이었다.

하지만 체념한 듯한 그녀의 표정과 다르게.

유정수의 얼굴엔 분노가 한가득 서려 있었다.

“네놈! 이딴 개수작을 벌이고도 살……!”

“다물어라.”

쿠웅!

로칸이 유정수를 짓누르며 입을 다물게 했다.

로칸의 완력 앞에 이미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유정수로서는 저항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한승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제압만 하고 죽이지 않은 걸 봐선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 같은데, 우릴 어쩔 셈이지?”

“딱히 알던 사이도 아니고 이 상황에서 나눌 이야기라면 하나뿐이지. 선택해라. 죽을 건지 아니면 내 아래에 들어올 건지.”

성현이 그들에게 간단히 말했다.

상대 길드를 장악하는 데 있어 두 번째로 좋은 수단은 놈들의 수장인 길드장을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수단은 바로 길드장을 자신의 밑으로 굴복시키는 것이었다.

“길드를 통째로 넘기고서 네 밑으로 들어가라고? 닥쳐라! 내가 죽더라도 우리 길드는 끝까지 네놈을 죽이려 들 테니까!”

유정수가 버럭 소리쳤다.

예상대로 강한 반발이 돌아왔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여태 꾸려 온 길드를 통째로 넘기고, 루키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게 저들의 입장으로선 지독하게 자존심이 상할 일일 것이다.

그러자 성현은 옆으로 시선을 슥 돌렸다.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따르겠다.”

한승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운명이 결정지어진 순간이었고, 그와 동시에 유정수의 목이 날아갔다.

콰득!

옆에서 튄 피에 한승희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손을 더듬어 만져 보았지만, 다행히 자신의 목은 멀쩡했다.

“…일단 살았다고 봐야 하는 건가?”

“그래, 일단은.”

까칠하게 말한 이즈나가 팔을 떼고서 물러섰다.

붙잡고 있던 손이 사라지자, 한승희는 다시 성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살려 준 건 고맙지만, 나를 살려서 어디다 쓸 셈이지?”

“백명 길드의 대표 자리는 그대로 유지하고, 여러모로 협조를 좀 해 줘야겠어. 아무리 전력상 우위에 있다고 한들, 자기보다 덩치가 큰 대형 길드 세 곳을 동시에 먹어 치우려다간 배탈이 나기 마련이니까.”

성현이 그녀에게 말했다.

이지스의 길드원 수 자체는 규모에 비해 많지 않았다.

때문에 비류와 백명, 오성 길드 모두를 무작정 집어삼킬 순 없었다.

대형 길드 세 곳이 이지스의 산하 길드로 편입이 되면, 규모의 차이가 이례적으로 크다 보니.

무작정 집어삼키려다간 여러모로 차질이 생겨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 중 한 명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녀가 이끄는 백명 길드 내부뿐만 아니라 길드 전반에 걸쳐.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잘 정리하도록 큰 완충제 역할을 해 줄 것이다.

“…생각보다 판을 보는 감각은 있군. 단순히 재능만으로 치고 올라온 건 아닌 모양이야. 하지만 그만한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를 신뢰할 수 있겠어? 내가 네 입장이었다면 그냥 입막음을 시켰을 텐데.”

한승희가 성현을 향해 말했다.

네크로맨서 영왕이 이지스의 길드장이라는 사실.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자신을 살려 두는 데에서 오는 이점보다 비밀 유출에 대한 리스크가 훨씬 더 컸다.

자신들을 압도할 만큼 그의 전력이 엄청나다곤 하나.

지금 이 상태에서 비밀을 알게 된 청성과 전면전을 치르게 된다면, 그 결과가 어찌 될지 뻔했다.

물론 성현도 아직은 비밀을 지켜야 할 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거야 방법이 있지. 이즈나.”

“예, 주군.”

성현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인 이즈나가 움직였다.

츠츠츠츳!

꺼림칙한 붉은 마력이 이즈나의 손에 휘감기기 시작했다.

마치 핏빛처럼 진한 마력의 파동이었다.

성큼 다가간 이즈나는 한승희의 목덜미에 핏빛의 마력을 가져다 대었다.

“자, 잠깐! 이게 무슨 짓……!”

“저항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진짜 죽고 싶지 않다면.”

한승희의 목을 고정시킨 이즈나가 까칠하게 말했다.

몸속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불쾌한 마력.

하지만 한승희는 저항을 멈추고선 얌전히 마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끓어오르는 듯한 피의 고동이 멈추고, 그녀의 목엔 선명한 피의 문양이 새겨졌다.

“큭…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피의 맹세를 새겨 놓은 거다. 혈마법의 일종이지. 네가 배신을 하려 들거나 비밀을 누설하게 되면 즉시 효과가 나타날 거다.”

이즈나의 말에 한승희의 표정이 슬쩍 찌푸려졌다.

혈마법이라니.

그런 마법 계통 같은 건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협박이라기엔 그녀 스스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몸속에서 분명한 구속력이 느껴졌다.

사실 혈마법은 뱀파이어의 군주인 이즈나조차도 잊고 있었던 옛 마법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성소의 고서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면서 그녀는 잊고 있었던 혈마법의 일부를 되찾았다.

뱀파이어의 본질과도 같은 혈마법이었기에.

자신이 이것을 잊었다는 사실에 잠시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하, 내가 이런 꼴이 될 줄이야. 9대 길드한테 당한 것도 아니고, 이제 막 S급을 단 새파란 녀석한테…….”

한편, 한승희는 뒤늦게 자괴감이 든 것인지 중얼거렸다.

그러자 성현은 위로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그냥 싹이 다르다고 생각해.”

“…재수 없기는.”

한승희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자신을 매섭게 째려보는 이즈나의 시선에 살짝 움찔한 그녀는 재빨리 입을 열었다.

“좋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니 당분간 얌전히 협조하겠어. 야망도 좋지만, 개죽음을 당하는 건 싫거든.”

패배자가 된 이상, 선택지는 없었다.

직접 싸워서 진 것이니 변명거리도 없었고.

꼼수가 통할 상황도 아니라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 녀석들은 꼭두각시가 필요한 것뿐일 테니까. 내 목에 새겨진 이 마법에 대해 아직 몰라도 기회가 생길 때까진 얌전히 고개 숙이고 있으면 되겠지.’

단순히 길드를 손쉽게 흡수하고, 혼란을 줄이기 위한 꼭두각시.

길드장인 자신이 나서서 행동하지도 못하게 철저히 감시하고 견제할 게 뻔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점이었다.

‘좋아. 당분간 길드 일에 시간을 빼앗기진 않겠군.’

성현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는 이번에 합류한 대형 길드의 길드장이자 S급 헌터를 가만히 놀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길드 일 때문에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갔던 참인데.

이번 사건에 대한 뒤처리는 물론.

당분간 생겨날 온갖 골치 아픈 일들과 귀찮은 업무를 모조리 그녀에게 떠넘길 예정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훌륭한 전투 노예1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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