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미친개에게 필요한 건 (4)
“느… 늑대인간?”
커다란 덩치의 웨어울프.
칠흑과도 같은 어두운 모습을 한 녀석의 등장에 구창환은 멍해지고 말았다.
소환수나 눈속임 따위가 아니었다.
그의 앞에서 직접 모습이 변한, 가면을 쓰고 있던 영왕이었다.
‘이게 대체…….’
이렇게나 당황한 것은 구창환의 헌터 인생을 통틀어서도 난생처음이었다.
마주하고 있음에도 저게 대체 무슨 특성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어떤 능력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전사도 아닌 네크로맨서가 왜 저런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온갖 물음표가 구창환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를 때.
로칸이 발을 쿵 하고 내딛었다.
쩌엉!
“큭……!”
순식간에 다가온 로칸의 주먹이 꽂혔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속도와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힘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었다.
모습이 완전히 뒤바뀐 이후, 마치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력이 급상승했다.
아니, 저 모습으론 사람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콰과과광!
‘젠장, 네크로맨서라는 놈이 무슨 이딴 식으로……!’
더욱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로칸의 모습에 구창환이 이를 빠득 갈았다.
이건 인간이 아닌 흉포한 야수형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제대로 상대하지 않으면 자칫 당하고 말 것이다.
여태껏 여유를 부리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
쿠웅!
“빌어먹을 새끼들이!”
구창환은 등 뒤에서 달려든 철갑 거미 한 마리를 신경질적으로 떨쳐 냈다.
비등한 상대와 대결을 펼치게 되니, 주변에 있는 수많은 몬스터들의 무리 역시 신경에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이건……?’
허나 철갑 거미가 내뱉었던 단단한 거미줄이 끈적하게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구창환은 단숨에 힘을 줘 발을 빼냈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 로칸에겐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S급 헌터들의 싸움에서 찰나의 빈틈은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고.
뻗어진 로칸의 팔이 정확히 구창환의 급소를 노렸다.
“웃기지 마라!”
콰아아앙!
달려드는 로칸에게 구창환은 그대로 검으로 받아쳤다.
정면에서 충돌한 덕에 서로가 튕겨져 나갔고, 그 여파로 흙먼지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젠장할, 별 지랄도 아니네.”
인상을 확 찌푸린 구창환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로칸의 날카로운 손톱이 그의 살과 뼈에 타격을 입혔고, 가슴팍에서 벌어진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받아치긴 했지만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숙이 파인 것이 보통 상처는 아니었다.
균형을 잡으려던 구창환이었으나, 몸이 휘청거리려 했다.
“크르륵.”
로칸도 상처를 입은 채 몸을 일으켰다.
깊게 찔린 상처에서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구창환처럼 동요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구창환으로선 상상하지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로칸은 헌터가 아닌 보스 몬스터였으니.
공격을 받아 낼 수 있는 체력에 대해선 인간 헌터들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츠츠츠츳!
뭣보다 로칸이 지닌 재생력 특성이 있었다.
깊숙하게 찔린 상처도 빠르게 아물도록 만들었다.
“이제 슬슬 끝내 주마.”
“뭐, 뭐야? 이런 건방진 새끼가……! 방심한 걸 가지고 착각하지 마라!”
구창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이제 막 S급에 들어선 애송이 따위가 감히 저딴 시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다니.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저놈은 찢어 죽여 줄 것이다.
콰아아앙!
하지만 그 순간.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방의 입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솟구친 불길에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쓸려 나간 일격.
워낙 강력한 마법의 위력에 대치하고 있던 로칸과 구창환의 시선도 절로 그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기들 있었군.”
처억!
보스 룸의 안으로 코트를 입은 청성의 헌터들이 들이닥쳤다.
구창환의 연락을 받고서 온 수십여 명의 고위 헌터들.
바깥에 있던 소환수들로서는 난입한 이들을 막아 낼 도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줄줄이 들어선 헌터들의 사이.
방금 전 강력한 마법을 쏘아 낸 남자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구창환, 입구를 지키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요란하게 한바탕 벌여 놓고 있었군.”
“네, 네놈은…….”
청성 길드의 최고 간부 도윤일.
그의 등장에 구창환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너희들, 끼어들 생각 마라! 이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처리할 거니까!”
“그래? 그리 여유 있어 보이는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닥쳐! 네놈들은 내가 자른 목이나 들고 돌아가면 그만이야.”
구창환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도윤일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제보를 해 준 건 고맙게 생각한다만…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껄일 생각은 마라. 여기서 같이 묻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이, 이 자식이……!”
구창환이 이를 빠득 갈았다.
청성을 부르기야 했다만 하필이면 도윤일이 나타날 줄이야.
도윤일이라면 단순한 간부가 아니라 청성의 최고 간부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3성의 멤버 중 하나다.
‘현자’라는 수식어가 붙은 최강의 마법사 중 하나.
길드장인 독사 한인호를 제외하고선 청성 최고의 전력이나 다름없는 이였다.
자존심 강한 구창환조차 그의 앞에선 꼼짝 못 할 정도였다.
터엉!
새로운 적의 등장에 로칸은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강력한 마법사를 상대해야 한다면, 적이 방심하고 있는 사이 빈틈을 노려 허를 찔러야 했다.
단숨에 거리를 좁힌 로칸이 팔을 뻗었다.
“그런데 넌 내가 생각하고 있던 모습이 아니군.”
도윤일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동시에 이루어진 강력한 마력의 방출.
콰아아앙!
“크아악!”
강력한 폭발에 달려들던 로칸은 정면에서 휩쓸리고 말았다.
한참을 뒤로 튕겨 나간 그의 팔 한쪽이 날아가 버렸다.
이빨을 드러낸 로칸은 곧장 다시 일어나 도윤일에게 달려들었지만, 결과는 똑같을 뿐.
콰과과과!
달려드는 족족 쓸려 나가는 통에 로칸은 접근조차 할 수가 없었다.
S급의 마법사 클래스 헌터들은 팀원을 앞에 세워 놓고 후방에서 마법이나 쏘아 대는 자들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마법사의 한계와 인식 따위 가볍게 뛰어넘은 자들.
도윤일 역시 단순히 화력만 강한 마법사가 아니었다.
극도로 빠른 캐스팅 속도와 순발력.
로칸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교란하려 들든 도윤일은 상대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했다.
물론 그 한 방, 한 방이 뼈도 못 추릴 만큼 강력한 마법의 위력을 보임은 물론이었다.
콰아아앙!
또다시 화염 폭발에 휩쓸린 로칸이 주르륵 밀려나고 말았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채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몸이 드러났다.
보스 몬스터가 아닌 헌터였다며 진즉에 쓰러져서 죽었을 수준의 상처였다.
“크윽…….”
결국 무릎을 꿇은 로칸이 거친 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보스 몬스터의 생명력과 재생력 특성이 더해진다고 한들, 거기엔 한계가 있었다.
누적된 대미지와 부상이 워낙 심해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끝인가.”
싸움이 끝났다는 걸 눈치챈 도윤일은 마력을 거두었다.
그러곤 여전히 늑대인간의 모습을 한 로칸을 바라봤다.
“네크로맨서가 변신계 능력을 사용하고 이런 격투술까지 구사하다니. 확실히 이상한 녀석이긴 하군.”
길드에서도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의 전투 방식.
그러면서도 수천수만의 언데드 군단을 조종하는 네크로맨서였다.
그는 이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의 무리가 평범한 네크로맨서의 소환수가 아닌 것쯤이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등장 후 보인 행보도 그렇고, 독보적으로 특이한 헌터인 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 끝이지.’
뚜벅뚜벅 걸어와 로칸의 앞에 선 도윤일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라 당황스럽긴 하다만, 네놈은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 네 목을 서울 한복판에 내걸지 않으면 길드의 이름에 먹칠이 되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확실히… 여기까지인가.”
로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팔의 근육이라면 죄다 타들어 가 버린 탓에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다음엔 네놈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주마.”
“다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우우웅!
도윤일의 손 위에 강력한 마력이 깃들었다.
저 정도의 생명력이라면 더 이상의 변수가 생길 여지조차 없도록 확실하게 끝장을 내 줄 생각이었다.
고작 이곳에 있는 소환수 무리 정도로는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전력도 아닌 바.
“잘 가라.”
콰아아아앙!
강력한 마법이 로칸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날 정도였고.
뿌연 먼지로 방 전체의 시야가 한동안 가려질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시야가 돌아오고,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도윤일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없어졌어?”
텅 비어 있는 구덩이의 아래.
시체가 증발했다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마법이 녀석에게 직격되기 직전, 이 던전 안에 있던 모든 소환수들과 함께 그의 기척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시체가 잿더미가 된 게 아니라, 마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 * *
충돌이 일어난 S급 던전과는 한참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건물.
그곳의 텅 빈 옥상 위에 성현이 서 있었다.
“후, 이쯤 왔으면 문제없겠지.”
벽에 기댄 성현은 잠시 한숨을 돌렸다.
위험했던 순간에 그림자의 능력을 사용해 로칸을 돌아오게 만든 성현.
사실 성현이야 도윤일이 나타났던 순간부터 로칸을 곧장 불러들이려 했지만.
로칸이 고집을 부리는 통에 조금 더 싸우는 걸 허락했다.
“결과야 좋았지만 그래도 위험할 뻔했어.”
“죄송합니다.”
“됐고, 어서 마저 마시기나 해.”
성현은 돌아온 로칸에겐 최상급의 치유 포션을 연거푸 들이마시도록 시켰다.
그러자 재생력 특성까지 더해져 엉망이었던 녀석의 꼴은 금방 회복되었다.
몸 하나는 튼튼한 보스급 몬스터였으니 부상 정도로는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찌 됐건… 녀석들은 무사히 따돌렸군.’
꽤나 위험천만했던 순간이었다.
그는 직접 나서서 싸우지 않고 로칸이 시선을 끈 사이, 몰래 밖으로 빠져나가는 안전한 선택지를 선택했다.
청성의 구역과 거리가 멀지 않아서 혹시나 했던 것인데.
설마 광견 녀석이 청성의 헌터들까지 불러들였을 줄이야.
‘그것도 나타난 게 도윤일이었으니… 녀석 하나 쓰러뜨리겠다고 그 안에서 어물쩍거렸다간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성현이 최근 들어 빠르게 강해졌다고 한들.
아직 청성의 최고 간부, 그것도 3성의 괴물들을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깊은 던전 안에서 맞닥뜨리면 사실상 도망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대강 전력 가늠은 되었네.’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성현과 다른 S급 헌터들과의 만남이다.
덕분에 그들의 수준에 대해서도 대강 감이 잡혔다.
이는 아주 의미 있는 정보였다.
등급의 특성상, 각 S급 헌터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직접 부딪혀 보기 전까진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번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한 셈이다.
특히 예상대로 무지막지한 괴물이었던 도윤일의 경우.
로칸을 상대로 전력조차 다하지 않고서 쉽게 압도해 버렸지만, 그래도 녀석을 상대로 움직여야 할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대강 정해졌다.
“그럼 이제…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지.”
성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먼저 시비를 걸어온 상대를 얌전히 내버려 둘 만큼 성격이 좋지 못했다.
뭣보다 구창환과 그의 길드는 어차피 치워 내야 할 적이었다.
“놈들을 치러 가는 겁니까?”
“그래. 이런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너희도 간만에 바깥에서 마음껏 날뛸 수 있을 거야.”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양쪽 다 성현의 작품이라곤 해도, 외부적으론 S급 헌터 영왕과 이지스 길드는 아무런 접점도 없는 관계였다.
때문에 비류 길드와 충돌이 예고되어 있었음에도 가면을 쓴 영왕의 모습으로 직접 개입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구창환이 보기 좋게 먼저 싸움을 걸어옴으로써 상황은 훨씬 간단해졌다.
직접 나설 명분도 만들어 줬으니.
굳이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속 헌터만 수천여 명. 스케일이 다르긴 하지만 이번 일도 큰 차이는 없어.’
목표는 구창환의 비류 길드.
오늘 밤이 지나면 그곳의 주인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