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미친개에게 필요한 건 (3)
“음? 뭐야?”
구창환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를 가로막고 있던 던전의 고대 골렘들이 갑자기 공격해 오는 것을 딱 멈췄다.
거기다 양옆으로 물러나며 공격할 의사를 보이지 않으려는 듯한 집단행동을 취했다.
녀석들의 모습에 한창 전투 중이었던 구창환도 검을 슬쩍 내렸다.
“아… 내가 온 걸 알았나 보네. 이렇게 멀리서도 그 정도 컨트롤이 되는 건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 구창환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골렘들에게서 어른거리는 저 검은 기운의 주인.
이런 잔챙이 몬스터들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영왕 녀석이 안 것이다.
“하기야 처음으로 나타났다는 S급의 네크로맨서인데, 그 정도는 해 줘야지.”
구창환이 큭 웃었다.
세계 최초의 S랭크 네크로맨서.
기본적으로 수가 적은 건 두 번째 문제로, 네크로맨서는 여러모로 한계가 뚜렷한 직업군이었다.
시체를 이용해야 하는 직업의 구조적인 한계 탓에 일정 이상의 경지엔 오르기 힘들었고, 그런 이유로 S급 헌터를 여태껏 단 한 명도 배출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S랭크가 되었다는 건 그 한계를 넘어섰다는 이야기였고.
저 아래의 허접한 헌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차별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모든 S랭크 헌터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녀석은 거창하기 짝이 없는 왕이라는 수식어를 시작할 때부터 받고 시작했으니.
구창환은 한껏 기대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초대를 받았으니 찾아가 줘야지.”
구창환은 검을 짊어진 채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양옆에서 푸른 안광을 빛내고 있는 골렘들이 늘어서 있는 광경은 그 자체로 큰 압박감을 자아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구창환에겐 늘어서 있는 장난감 병정들에 불과했다.
보스 몬스터도 아닌 녀석들에게 움츠러드는 S급 헌터 따윈 없을 것이다.
‘뭐, 굳이 뒤에 적을 남겨 두는 것보다야 찜찜하지 않게 미리 제거하고 가는 게 낫긴 하겠지. 하지만 괜히 늦장부리다가 청성 놈들한테 먹잇감을 빼앗기긴 싫거든.’
그의 연락 덕에 청성의 헌터들이 던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무리 큰 세력을 가진 대형 길드라고 해도 힘의 척도는 상대적이기 마련이었다.
국내의 양대 길드 중 하나인 청성과 좋은 관계를 맺어 두면 여러모로 좋을 테니 구창환은 이번 기회에 빚을 하나 얹어 두려는 것이었다.
독사 한인호의 성격이 지랄 맞은 거야 헌터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실이지만.
그래도 헌터들끼리 주고받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했다.
두 눈 시퍼렇게 뜨고서 찾고 있던 골칫덩이를 넘겼는데, 그냥 입 싹 닫고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구창환은 자신이 정한 사냥감의 목을 누군가에게 양보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어차피 청성에게 놈의 목을 넘길 것이었기에 미리 와서 받아 가라고 부른 것이었을 뿐.
주제도 모르고 설치고 다니는 신참 S급 헌터 따위 그의 손으로 직접 쳐낼 예정이었다.
“흐음…….”
그렇게 골렘들을 지나친 구창환은 보스 룸에 들어섰다.
고블린과 스켈레톤들을 비롯한 각종 몬스터들이 잔뜩 그를 둘러싼 채 서 있었다.
최소 천 마리는 넘어 보이는 몬스터 군단이었고, 누구라도 압도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영상에서 보던 것 그대로 검은 기운까지 뿜어내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것 봐라.’
하지만 구창환이 보고 놀란 것은 놈들의 숫자가 아니었다.
마치 잘 훈련받은 군단처럼 사열해 있는 녀석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 전까진 언데드 특유의 우어어, 하는 울음소리 하나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조종하는 수하라면 언데드가 되며 지능까지 퇴화하기 때문에 저런 움직임을 보이긴 쉽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도 언데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고.
몬스터 주제에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거기다 이 녀석들 보통 전력이 아니로군. S급 헌터씩이나 돼서 웬 하급 몬스터들을 치렁치렁 달고 있나 했더니.’
심상치 않아 보이는 장비들로 무장해 있는 녀석들의 모습.
하지만 장비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경고라도 하듯,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고블린이나 스켈레톤 등의 종족이 가지고 있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도저히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뛰어난 네크로맨서들이 특성이나 마력을 통해 부리는 시체를 강화시키곤 했지만.
그것도 본판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변화를 줄 뿐.
이렇게 종족을 초월할 정도로 바꿀 수는 없었다.
‘재밌네. 벌써부터 내 기대 이상이야.’
하지만 구창환의 표정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한 번 더 시선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스 룸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던전에 군림하는 보스 몬스터의 존재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요란한 전투의 흔적만이 공간 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보스 몬스터는 이미 처치했나 보군.”
구창환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수많은 몬스터 군단의 사이.
뼈 가면을 쓰고 있는 네크로맨서, 영왕과 마주할 수 있었다.
“던전이라면 내가 맡아 처리했는데, 여긴 어쩐 일이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꽤나 굵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
“모른다.”
“몰라도 아는 척해야지, 이 새끼가. 까마득한 선배한테.”
구창환이 팍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뭐 하다 온 놈인지는 감도 안 잡힌다만… 적어도 S급 헌터쯤 되면 이쪽 업계 사정 정도는 빠삭하게 알아 둬야지. 대책 없이 정신줄 놓고 다니다간 한 방에 훅 간다.”
S급 헌터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좋건 싫건 같은 S급 헌터들과 엮이거나 마주칠 일이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이 격동하는 세상에 무작정 몸을 내던진 채 있다면 결국 휩쓸려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인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인 만큼.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보다 많은 정보를 알아 두는 것이 중요했다.
“하기야, 어차피 죽을 놈한테 무슨 충고를 하겠냐마는.”
“역시 나와 싸우러 온 건가 보군.”
“길드에 싸움도 걸고 다니고, 요란하게 데뷔까지 했는데 신고식 한 번 안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 거 아냐. 어디 실력이나 보자고. 왕이라는 수식어가 과연 네게 어울리는지 평가해 줄 테니.”
처억!
구창환이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가면인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의 몬스터들이 보일 텐데. 부하를 데려온 것도 아니고, 너 혼자 이 모두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하하… 농담이지?”
보스 룸 안에만 천이 넘는 숫자의 수하들이 있었다.
그 밖엔 아직 합류하지 않은 고대 골렘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다.
반면 구창환은 오직 자신 하나뿐이었다.
그를 따르는 수많은 길드원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S랭크 헌터는 기본적으로 혼자 활동하는 게 보통이지. 왜 그런지 알아? 일단 팀원을 짤 만큼 인원이 넘쳐나지가 않거든. 그 안에서도 서로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하지만 뭣보다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거야.”
S랭크의 헌터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압도적인 수준의 강함이었다.
일반 헌터들과는 분류 자체가 달라질 정도의 차이.
그리고 그런 힘을 지닌 헌터들에게 던전 안에 우글거리는 일반 몬스터의 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체력이 따르는 한, 몇백 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들던 간에 얼마든지 혼자서 정리해 낼 수 있다는 소리다.
“네 옆에 잔챙이가 아무리 많아 봐야 평소에 돌던 던전과 다를 바가 없단 거지. 오히려 몬스터들 사이에 둘러싸인 보스 몬스터보다야 나약해 빠진 네크로맨서 쪽이 훨씬 상대하기 손쉽기도 하고.”
구창환의 모습이 일순간 사라졌다.
쩌엉!
검을 들어 올린 가면인이 구창환의 공격을 막았다.
구창환은 검이 맞부딪힌 상태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근력으로 찍어 누르려 했지만.
놀랍게도 가면인은 자세가 무너지지 않은 채 버텨 내었다.
그러자 구창환의 표정이 약간의 호기심과 흥미가 어렸다.
“호오, 이걸 받아 낸 걸 보면 몸을 제법 쓸 줄 안다는 건데. 너 네크로맨서 아니었냐?”
“…….”
검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남자.
하지만 주변에 있던 수하들이 그 둘의 싸움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키에에엑!”
“귀찮게 굴지 마라.”
콰직!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베어 내는 구창환.
상대가 검을 비틀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구창환은 가면인을 거뜬히 상대해 내면서도 몬스터를 제거해 나갔다.
둘의 실력 사이엔 그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제법 몸을 쓸 줄은 아는군. 하지만 딱 그 정도다. 주 분야가 아니라 그런지 검 실력도 어설프고, 소환수도 숫자만 많지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청성을 적으로 돌려놓고 여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군.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콰아앙!
합류한 고대 골렘들마저도 단숨에 해체해 버리는 그의 실력.
사방에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무용지물이 된 듯한 광경이었다.
힘이나 속도 면에선 크게 밀리지 않았지만, 검 실력의 차이는 확연했기에 가면인은 버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S급 던전을 청소해 내느라 힘이라도 빠진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럼 이만 끝내 주마.”
구창환은 여유롭게 검을 빙글 돌려 잡았다.
고작 이 정도의 저력만을 지닌 것이라면 어차피 금방 걸러졌을 녀석이었고, 더 이상 가져줄 만한 흥미도 없었다.
“청성의 헌터들이 도착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 주지.”
후웅!
빈틈을 찾은 구창환의 검이 순식간에 휘둘러졌고.
푸욱 소리와 함께 가면인의 복부를 관통했다.
“크윽……!”
가면 사이로 약간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방금의 일격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아주 깊게 찔린 상처에 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등 뒤까지 칼날이 뻗어져 나오며 관통되었다.
“S랭크 던전의 공략은 그 자체로 매번 목숨을 거는 일이나 다름없다. 도망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더 강해지는 길밖에 없어. 그리고 이게 바로 격차라는 거다. 멋모르고 이제 막 입문한 루키와는 차원이 다르지.”
“아까부터 시끄러웠는데, 이제 그만 좀 쫑알대라.”
“뭐……?”
퍼억!
갑작스레 날아든 주먹에 얻어맞은 구창환.
얼굴을 얻어맞은 충격에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한껏 인상을 찌푸린 구창환은 핏물을 퉤 뱉었다.
“곱게 죽을 것이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 보겠다는 거냐?”
분명 구창환은 상대의 급소를 정확하고 깊숙이 찔렀다.
아무리 고위 헌터의 몸뚱이를 지녔다고 해도 결코 무사할 수 없는 상처였다.
츠츠츠츳!
하지만 놀랍게도 갈라졌던 가면인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그것도 서서히가 아니라 굉장한 속도로 회복되었다.
“…이게 어떻게?”
“역시 검은 못 써먹겠군.”
챙그랑!
가면인은 옆으로 검을 휙 내던졌다.
어차피 스켈레톤 전사 한 녀석이 쓰던 걸 잠깐 넘겨받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곤 가면인의 몸이 부풀어 오르고 뒤틀리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드득!
“청성의 헌터들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했지. 그 전에 네놈까진 확실히 끝을 내주고 가겠다.”
웨어울프 대족장, 로칸.
가면 뒤에 감춰져 있던 그가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