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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59화 (59/202)

59화 새로운 규율 (3)

전날 밤, 두 헌터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직접 당한 피해자부터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이야기가 금방 퍼져 나간 것이다.

헌터와 시비가 붙어 구타를 당하고 있던 시민들이 이지스의 길드원의 손에 구해졌다는 이야기.

심지어 그 이후 길드 차원에서 징계까지 이루어졌다고 했다.

사실 이게 당연한 이야기일 터였지만, 구역 내 시민들이 듣기엔 굉장히 신선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인이 헌터 사이의 문제를 길드 차원에서 나서서 이 정도로 해결해 주는 일은 결코 흔치 않았다.

그것도 헌터가 아닌 일반 시민의 손을 들어 주며 끝이 난 결말.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 이게 뭐야?”

“보호세를 안 받겠다고?”

이지스 길드에서는 앞으로 시민들에게서 걷는 모든 보호세를 없앤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던전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받은 보호비였다지만, 이미 던전에서 큰 부를 얻고 있는데 시민들에게 이중으로 세금을 뜯어내다니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물론 이는 지금껏 유례가 없던 파격적인 일이었다.

던전과 전리품에서 얻는 수익이 길드들의 주 수입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호세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9대 길드조차 보호세는 빠짐없이 거둬들였고.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해야 할 분쟁 지역의 길드들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진짜 저 말 믿어도 되는 거야?”

“…그러게.”

지금의 사회에서는 워낙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때문에 시민들도 얼떨떨해하며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지스 길드는 단순히 발표에서 그치지 않고서, 직접 행동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 이거 봐!”

“어? 진짜 돈이 들어왔잖아?”

“그게 정말이야?”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구역 내 모든 시민들에게 들어온 돈 때문이었다.

“이번 달에 냈던 보호세라는데?”

“세상에.”

단순히 다음 달부터 보호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지스 길드의 뜻이 아니었다.

구역의 주인이 바뀌기 전.

이미 이번 달에 황야 길드에게 납부했던 한 달 분의 보호세를 시민들은 그대로 되돌려 받게 되었다.

“와, 겉으로 착한 척해 봐야 헌터 길드 놈들은 다 똑같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길드도 다 있네.”

“황야 놈들하고는 비교도 하지 마라.”

이 한 방으로 시민들의 여론은 급격히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다 똑같은 놈들일 거란 소리는 싹 들어갔고, 하루아침에 여론은 완전히 호의 쪽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만큼 이번 보호세에 대한 이지스 길드의 행동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실상 국가와 길드에게 세금을 이중으로 뜯기는 거니.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선 무시하진 못할 액수가 매달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한데 그런 부담을 덜어 주었으니, 시민들에겐 다른 그 어떤 입발림 소리보다도 바로 체감이 되는 큰 혜택이었다.

길드 간 성향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보호세에 대한 수입을 전적으로 포기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놀랍기 그지없었다.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른 길드에게 공격이라도 받는 건 아니겠지.”

“암만 더러운 놈들이 잘 먹고 잘사는 세상이라지만…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계속 버텨 줬으면 하는데.”

“이런 길드가 커야지 우리 같은 비각성자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거라고.”

시민들은 이 파격적인 행보의 길드가 계속해서 남아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기대조차 접었던 현실에서 처음으로 길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 * *

“음, 예상대로 여론은 나쁘지 않네.”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대로 일이 잘 풀려 가고 있었다.

여론에 굉장히 신경을 쓰던 청성 아래에서 일하던 경험이 있는 그였기에, 대강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이번에 사고 친 이천 길드 쪽엔 적당한 조치가 내려졌고.’

사고를 친 개인에 대한 처벌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구역 내에서 길드원이 사고를 친다면 해당 길드에도 불이익을 가했다.

물론 이미 피를 본 이천 길드의 입장에선 길드 차원의 불이익까지 당한다고 하자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지스의 길드원 한 명이 이천 길드에 찾아가 차분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고.

그들은 반쯤 박살 난 길드 사무실과 함께 얌전히 수긍하고 말았다.

‘그 녀석들이 일찌감치 총대 메고 깨져 준 덕에 일이 조금 더 수월해졌어.’

이천 길드가 된통 당하자, 다른 지역 길드들은 알아서 눈치를 보며 열심히 내부 단속을 다지는 중이었다.

덕분에 황야 길드가 있던 시절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고 다니진 못할 것이다.

성현은 길드 밑에서 늘 당했기에 비각성자로서 느끼는 부조리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고위 헌터의 몸이 된 그였지만, 최소한 과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부분은 바꾸어 나가려는 것이었다.

‘길드가 자리 잡으면서 수입도 엄청나졌고.’

성현은 옆에 놓여 있던 서류를 슬쩍 보았다.

헌터 길드의 주 업무인 던전 공략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점.

하급 던전들은 지역 길드들에 배분되었고, 성현의 수하들이 움직이며 상급 던전들에서 나오는 전리품과 자원들을 쓸어 담는 중이었다.

덕분에 안 그래도 넉넉하던 길드 재정이 급격히 차오르고 있었다.

길드 매출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큰 부담이 헌터들을 영입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것이었는데.

성현은 헌터들의 급여를 부담하거나 던전의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결국 자신의 그림자 속에 있는 수하들이었으니 모든 수익을 독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반 직원들을 제외하면 분배 과정이 일체 없으니 말 그대로 돈을 쓸어 담는 수준이나 다를 게 없었다.

시민들에 대한 보호세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지만.

덕분에 성현은 그 정도 수익 정도는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만큼 넉넉한 형편이었다.

사실상 지분 100퍼센트의 대기업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가만히 있고 싶어도 곧 길드에서 견제가 들어오겠지.’

성현의 시선이 휙 하고 돌아갔다.

경기 남서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3대 길드.

비류, 백명, 오성 길드.

물론 9대 길드와 감히 비교될 세력은 아니었지만, 남서부 지역 대부분을 삼 분할하고 있는 만큼 분명 ‘대형 길드’였다.

세 길드 모두 이명을 지닌 S급 헌터들이 길드장을 맡고 있었고, 다수의 고위 헌터들이 포진되어 있었다.

성현이 여태 상대하던 중견급 길드들과는 차원이 다른 적수였다.

‘황야 길드는 그중 비류의 동맹 세력이었지.’

직접적인 산하 길드로 분류될 것까진 아니었지만, 비류 길드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동맹 세력.

남서부 지역 안에선 세 곳 중 한 곳과는 동맹 관계를 맺지 않으면 금방 먹잇감이 되어 노려지기 마련이었으니.

이런 식으로 자연스레 파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성현은 바로 그 황야 길드를 쳐내고 구역을 강탈함으로써 비류 길드와 척을 지게 된 것이다.

아직은 잠잠하다곤 하나.

지금쯤 비류 길드에선 열심히 길드에 대해 뒷조사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들도 결국엔 치워야 할 상대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이제부터는 진짜 싸움이 벌어질 테니까.’

세력의 크기든, 개인의 강함이든.

이전의 적들처럼 마음만 먹는다고 간단히 쓸어버릴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기존의 헌터들과는 격이 다른 힘을 가진 괴물들.

그것이 바로 S급 헌터였다.

‘비류 길드엔 구창환이 있다.’

광견이라는 이명을 지닌 비류의 길드장.

5년 전에 일찌감치 S급 헌터에 들어선 강자였고, 성현 역시 이전부터 꾸준히 들어온 이름이었다.

길드장인 구창환 개인의 전력은 물론.

그의 아래에 있는 헌터들의 규모까지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띠링!

그때, 성현의 눈앞에 메시지가 번쩍 나타났다.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목표에 대한 퀘스트 마커가 생성됩니다!]

“이건……?”

* * *

최근 헌터 업계와 관련된 뜨거운 이슈가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던전의 생성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

지역마다 시기에 따라 던전의 생성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일은 언제나 있어 왔다.

하지만 대략 보름 전부터 던전의 생성량은 일반적인 기준을 넘어서기 시작했고.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닌 전 지구적인 증가세가 나타나게 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단순한 시기상의 문제가 아닌, 이상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궤멸을 걱정할 정도의 엄청난 증가폭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헌터 전력이 취약한 국가들은 상당한 인명 피해를 입고 있었다.

땅덩이가 넓은 강대국도 보다 큰 재산 피해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나마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은 편인 데다 헌터 인구도 많은 편이라 일반인들이 체감할 정도의 무언가는 없었다.

오히려 던전의 생성이 늘어나 중하위권 헌터들에게는 던전 부족 현상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문제가 되려 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던전의 전체 생성량과 비례해 함께 늘어난 최상위 던전의 출현이었다.

쿠구구구!

뻥 뚫린 거대한 던전의 입구.

바리케이드 앞에 길드의 헌터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젠장, 하필 우리 구역 안에서 S급 던전이 나타나다니. 난리도 아니네.”

길드원 한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인근 구역을 밑에 두고서 관리하고 있는 중견급 길드였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런 게 무의미해졌다.

어지간한 대형 길드가 아닌 이상, 자력으로 처리하기란 불가능한 S급의 던전이다.

평소 어디 가서 무시 받을 일 없는 C급의 헌터 무리라고 해도, 그들 역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총알받이로 불려나온 수준이었다.

“헌터들은 언제 오는 거야? 불안하게시리.”

초조한 듯 시계와 던전을 번갈아 보고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S급 던전이 등장한 이런 상황의 대처법이라곤.

그저 최대한 가까운 거리에 있는 S급 헌터가 어서 빨리 현장에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이런 규격 외 던전 앞에선 권리나 소속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등장한 최상위 던전에서 빠른 대처를 하기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던전 내부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기 마련이었으니까.

쿠구구구구!

“나… 나왔다!”

“뭐? 벌써? 몇 분이나 지났다고……!”

던전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무리.

“그어어어!”

거대한 고대 골렘들이 저 안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을 온몸에 새긴 강력한 골렘들.

일반적인 골렘 몬스터들하곤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달랐다.

완전히 기겁한 헌터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젠장, 대형 사고야!”

“다들 물러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레벨이……!”

하지만 헌터들이 무기마저 내팽개치고 혼비백산 달아나려던 순간.

팔을 뻗으려던 거대한 골렘의 몸이 쩍 하고 갈라졌다.

쿠구구궁!

산산조각 나 무너진 고대 골렘의 잔해 속.

뼈 가면을 쓴 남자가 거대한 비룡과 함께 나타났다.

“늦진 않았군.”

“다… 당신은?”

가면의 네크로맨서, 영왕(影王).

얼마 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S급 헌터가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아직 다른 헌터는 안 온 겁니까?”

“아, 예… 예! 너무 빠르게 던전이 활성화된지라…….”

헌터들이 잔뜩 긴장한 채 대답했다.

S급 헌터를 앞에 두고 있자니 혀도 꼬이는 기분이었다.

한편, 이야기를 들은 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활성화 시간이 굉장히 짧았던 던전이었다.

성현조차도 예정 지역에 퀘스트 마커가 미리 생겨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빨리 오진 못했을 것이다.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던전에 대해 퀘스트 마커가 나타날 줄이야. 덕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어.’

성현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이번 퀘스트의 목표는 바로 이 던전 안에 있었다.

반드시 그가 처리해야 하는 던전인 셈.

하지만 제일 먼저 도착했다고 해서 느긋하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평균적으로 S급 던전이 지닌 가치는 엄청나니까 곧 연락을 받은 다른 헌터들도 오겠지.’

일반적으로 먼저 도착한 쪽이 던전을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던전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청성의 영역과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 데다 지금 성현의 입장에서는 그런 건 절대 사절이었다.

‘다른 S급 헌터와 마주하지 않도록,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떠난다.’

스릉!

검을 쥔 성현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오싹한 감각에 헌터들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 이건…….’

“크르르륵!”

쏟아지는 고대 골렘들을 맞이해, 수많은 괴수들이 성현의 그림자 속에서 눈을 번뜩였다.

간만에 본 실력을 발휘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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