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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58화 (58/202)

58화 새로운 규율 (2)

각성자와 비각성자.

지금의 사회에서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일종의 계급과 다름없었다.

두 사람끼리 마찰이 생긴다면 비각성자 쪽에선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일반인과 일반인 사이의 문제밖에 해결하지 못했다.

비록 공권력이라고 해도 일반인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이 지닌 한계였다.

그리고 그 한계를 메우는 건 헌터가 되어야 했다.

그렇기에 이지스가 내세운 규칙은 간단했다.

각성자라고 해도 일반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면 확실한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점과.

일반 시민들은 물론이고, 길드 안의 일반 직원들에게도 부조리나 가혹 행위를 금지시킨다는 것이었다.

성현은 자리에 모였던 모든 길드들에게 확실히 이 점을 말해 주었다.

바로 뒤편에 이즈나가 팔짱을 끼고서 서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선 모두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들의 머릿속에선 전혀 동의하지 못했을 게 뻔했다.

덜컹!

거칠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남자가 집무실에 들어섰다.

소속 헌터 인원 40여 명의 중소 지역 길드 ‘이천’을 이끌고 있는 길드장 서길영이었다.

조금 전 이지스 길드에서 돌아온 그는 속에 담아 두고 있던 짜증스러운 말들을 거칠게 토해 냈다.

“아주 시발, 성인군자 납셨네. 누가 보면 20년 전 세상에서 날아온 것들인 줄 알겠어.”

서길영이 가래침을 퉤 뱉으며 구시렁거렸다.

던전이 없던 세상으로 돌려놓기라도 하겠단 건지.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였다.

되지도 않는 이상을 품은 풋내기들이 모여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꼴이다.

“그래도 적당히 비위는 맞춰 줘야지. 다른 건 몰라도 그 여자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린 서길영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

일반 직원들과는 다른, 검은 코트의 길드 복장을 입고 있긴 했지만 헌터였는지는 몰랐다.

별말도 없이 얌전히 뒤쪽에 서 있기에, 구색이나 맞추려 보낸 얼굴마담인 줄 알았다.

‘한데 그런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니고 있는 고위 헌터였을 줄이야.’

그녀 한 명 때문에 방 안에 있던 모든 길드장들이 위압감에 완전히 짓눌려 버렸을 정도였다.

그런 괴물이 섞여 있었다면, 황야 길드가 하룻밤 사이에 치워진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저 정도 실력자라면 여태 이름이 안 알려졌을 수가 없을 텐데.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봐, 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

“아, 네. 대표님. 얼마 전에야 겨우 정식 등록된 길드라 정보를 캐내는 게 늦어졌지만, 몇 가지 조사를 해 놨습니다.”

서길영의 시선이 휙 돌아가자 직원이 재빨리 답했다.

“추정되는 헌터 인원은 대략 300여 명 안팎. 길드원 전원이 B랭크의 고위 헌터에 간부들은 A랭크 헌터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전의 국내 활동 내역이 전혀 없고, 자금이 상당한 걸로 보아 외국계 자본을 먹은 듯하고요.”

“길드장은 누구지? 여자인가?”

“아뇨. 길드장에 대해선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직 길드 내에서도 모습을 직접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그게 길드장도 아니었단 말이지…….”

서길영은 잠시 침음성을 흘렸다.

“확실히 보통 전력이 아니로군.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 온 놈들인지는 몰라도 일단 맞장구는 쳐 줘야겠어.”

이천 길드가 그들을 위해 싸우거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하는 산하 길드는 아니었다.

그저 구역 안에서 활동할 뿐인 지역 길드.

절대적인 상하 관계보다는 하청을 받는 거래 관계에 가까웠다.

하지만 거래라고 해도 엄연한 갑을 관계에 놓여 있었기에, 어지간한 구역 내의 지시 사항들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이 구역의 ‘지배 길드’였으니까.

“헌터의 특권을 내려놓으라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만, 일단은 잠자코 따르는 시늉이라도 하는 수밖에.”

“그럼 길드원들에게도 따로 일러둘까요.”

“말해 두기는. 말은 저렇게 해도 설마 개인행동까지 난리를 치겠냐? 결국 저놈들도 헌터인데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지. 호들갑 떨 것 없어.”

서길영은 피식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겉으로 저딴 소리를 해 대는 놈들은 속으로 들어가면 더 썩어 있기 마련이었다.

“빼앗은 구역에 막 자리 잡으려는 시점이니까 민심 얻으려고 잠깐 쇼나 하고 마는 거야. 하지만 뭘 모르는 거지. 이미 한물간 수작인데 말이야.”

* * *

주말을 앞둔 들뜬 밤 분위기 속.

번화가에 모인 시민들이 술집 테이블에 앉아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건배!”

맥주잔 네 개가 짠 하고 부딪혔다.

어느덧 20대 남녀 직장인이 된 동창들의 모임이었다.

시시콜콜 요즘 근황이나 상사의 뒷담화가 오갔고, 취기가 살짝 오른 남자는 팔을 살짝 의자에 걸친 채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아, 맞아. 이번에 들었어? 황야 길드 놈들 박살 나고 쫓겨난 거.”

“뭐? 정말이야?”

“나야 당연히 들었지. 거기 헌터 놈들 엄청 거들먹거리고 다니더니, 완전 꼬시다니까.”

“그러게. 양아치들이었는데 잘됐네.”

황야 길드의 행패야 모두가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인근 지역 시민들에겐 당연히 좋지 못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특히나 최근 들어선 경쟁 길드를 물리쳐야 한다며 어떻게든 돈을 뽑아 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시민들 불만이 팽배해져 있었다.

한데 그런 길드가 산산조각 나서 쫓겨났다니 화색이 도는 것도 당연했다.

“근데 그러면 뭐 하냐. 어차피 똑같은 놈들이 새로 들어와서 그대로 이어서 할 텐데.”

“그것도 그래. 특히 이 주변은 죄다 질 나쁜 놈들투성이잖아. 지들끼리 땅 따먹기에 미쳐서는… 보호세나 뜯어 가지.”

“옛날 정치인들하고 똑같다니까.”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뒷담화를 쏟아 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나고 세상이 뒤바뀐 순간부터 이미 더러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근데 새로 들어온 길드 이름이 이지스야? 조금 특이하네.”

“이름만 특이한 게 아니야. 각성자 갑질을 완전히 없앤다고 아예 발표까지 했다니까. 특히 민간인을 대상으로 헌터가 벌인 범죄는 얄짤없이 잡을 거라고 하던데.”

“하, 말로는 뭘 못 해. 이런 거에 한두 번 속나?”

“뭐… 그래도 듣기는 좋잖아.”

“듣기 좋기는 개뿔. 나중에 화만 더 나지.”

서길영이 길드의 새로운 방침을 비웃었듯이.

시민들의 반응 역시도 그와 별반 차이 없이 비슷했다.

길드는 바뀐 모양이지만 여태껏 정말 시민들을 위한 행보를 보인 길드는 없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를 막을 수 있는 건 헌터뿐인데, 뭐 하러 자기들의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시민들을 위해 힘을 쓴단 말인가.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잠깐 화장실 좀.”

남자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기 위해 의자를 뒤로 빼는 순간.

뒤에서 걷고 있던 남자의 다리와 쿵 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아, 죄송…….”

“이 새끼가!”

퍼억!

다짜고짜 날아든 주먹에 얻어맞았다.

쓰러진 남자와 함께 테이블이 엎어지며 와장창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게 누구 다리를 쳐 놓고 그냥 넘어가려고…….”

“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벌떡 일어난 일행이 남자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커다란 돌덩이를 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이, 이건…….”

“하. 지금 뭐 하냐?”

이천 길드의 헌터 최용혁.

그의 입가가 피식 비틀어졌다.

쿠당탕!

“컥…….”

“혀, 현석아!”

복부를 얻어맞은 남자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껏 힘을 뺀 주먹이었음에도, 그는 숨조차 쉬기 어려워하며 바닥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아까부터 니들 떠드는 소리, 반대편에서도 다 들리거든. 황야 놈들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나도 그 질 나쁜 놈들 중에 하나인데 어떻게 생각하냐? 어?”

다가온 최용혁이 쓰러진 남자들을 발로 툭툭 찼다.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와중에 발길질까지 당하자, 신음 소리를 내며 꿈틀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헌터였을 줄은…….”

“닥쳐.”

최용혁은 그의 머리를 잘근잘근 짓밟아 주었다.

“너 때문에 신발이 더러워졌잖아.”

최용혁은 남자의 머리칼에 발을 비비적거리며 신발 밑창을 닦아 냈다.

“큭…….”

굴욕적인 상황에 남자는 푹 고개를 숙였다.

그 옆의 일행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손님들은 물론, 가게 주인도 갑자기 벌어진 이 상황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특히나 최용혁의 얼굴을 알고 있는 가게 주인은 그가 이천 길드의 간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최용혁만 하더라도 무려 C급의 헌터.

일반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다.

드르륵!

하지만 그때,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던 한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싸움이 벌어진 쪽으로 다가갔다.

“자, 잠깐! 그리로 가면 위험…….”

툭.

만류하려는 가게 주인의 손도 뿌리친 그녀는 남자를 짓밟고 있는 최용혁의 앞에 섰다.

“넌 또 뭐야? 헌터냐?”

“일반인을 상대로 행패 부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길드의 지시 사항을 무시하겠다는 건가?”

긴 머리를 땋은 흑발의 여성.

웨어울프 일족의 여전사 에르닐이었다.

이전에 성현에게 맞서다 웨어울프로선 처음으로 죽음을 당했던 그녀였지만.

그의 그림자를 받아들인 뒤 수하가 되었고, 대외적으로 이지스 길드의 헌터로 활동 중이었다.

그러다 야간 순찰 겸 바깥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돌아다니던 중, 이 광경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설마 이지스의……?”

“그래.”

이지스의 길드원이라는 말에 최용혁은 잠시 움찔했다.

‘젠장, 당분간 괜히 부딪힐 일 만들진 말라고 했는데.’

이지스라면 며칠 전에 황야 길드를 쓸어버리고서 새로 구역을 차지한 길드였다.

지역 길드로서 어느 정도 눈치를 봐야 하는 상대.

자존심이 강한 최용혁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기세를 조금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이봐,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 없잖아? 이놈들은 조용한 곳에 가서 마저 조져 놓을 테니까, 그냥 못 본 척 지나가 주면 안 되나? 나중에 내가 뭐라도 대접해 줄게.”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에헤이… 그러지 말고.”

느물느물 다가온 최용혁이 그녀의 주머니에 꾸깃꾸깃한 지폐 몇 장을 쑤셔 넣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옷깃에 스치자마자 에르닐의 인상이 빡 찌푸려졌다.

파악!

단숨에 최용혁의 팔을 쳐 버린 그녀였고, 최용혁은 자신의 얼얼한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 이 새끼가!”

“수작질 부리지 마라. 이 자리에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하… 너 말이야. 길드가 조금 더 크다고 어깨에 잔뜩 힘 들어가 있는데, 일대일로 붙으면 내가 네놈한테 꿀릴 것 같아?”

최용혁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그는 이 인근에서 힘깨나 쓰는 이천 길드의 간부로 C랭크의 헌터였다.

상대도 간부라면 모를까, 중견급 길드의 일반 길드원 정도에게는 전혀 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너만 죽여 버리면 가게 안에 있는 비각성자 떨거지들 입막음시키는 거야 간단해. 무슨 상황인지 알아?”

검을 뽑아 든 최용혁이 험악한 표정으로 위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마지막 선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허세든 뭐든 검까지 뽑아 든 이상, 그녀는 녀석을 곱게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

후웅!

“윽?”

갑자기 저돌적으로 접근해 오는 그녀의 움직임에 최용혁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검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가로막혔다.

카아앙!

‘이, 이게 뭐야?’

무기조차 뽑아 들지 않은 그녀의 모습.

맨손으로 최용혁의 검을 막아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헌터라도 맨몸으로 같은 헌터의 검을 받아 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콰악!

팔을 뻗은 에르닐은 최용혁의 목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얼마 전에 주워들은 말인데, 인간들은 꼭 피를 봐야 말을 듣는다고 하더군.”

“커헉……! 자, 잠……!”

몸이 위로 붕 들어 올려진 최용혁은 컥컥대며 발버둥을 쳤다.

목을 쥐고 있는 그녀의 눈빛엔 숨겨져 있던 야성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가 그 본보기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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