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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57화 (57/202)

57화 새로운 규율

성현이 안팎으로 바삐 활동하는 사이.

그동안 지하실의 던전에서 쌓여 가던 자원들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세 개의 필드에 걸쳐 마련된 각종 광산과 재배지, 벌목장 등에서는 엄청난 물량의 자원들을 쏟아 냈다.

매장된 자원의 양도 많을 뿐 아니라, 동원되는 노동력 또한 지치지도 않는 강력한 몬스터들이었기에.

쉴 새 없이 자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슬슬 쌓아 둔 자원들이 넘쳐나서 곤란했던 참이었고.

성현은 던전에서 그동안 쌓아 놓은 자원들을 대량으로 처분하기 위해 흑련을 찾아와 창고에서 물건을 쏟아 내었다.

“하…….”

물론 그 광경을 직접 눈앞에서 목격한 서연화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흑련의 길드장이었던 그녀조차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봐도 봐도 믿기지가 않네.’

한 번에 수십 억짜리 보물 같은 걸 건네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창고를 가득 채워 버릴 자원들을 쏟아 내다니.

아무리 아공간 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이 정도로 능력에 대한 제약이 없을 줄은 몰랐다.

“길드장님, 다 끝났습니다.”

곰 가면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성현이 가져온 상품들에 대한 감정이 끝난 것이었다.

수십여 명이 붙었음에도 창고를 가득 채운 만큼 상품에 가격을 매기는 작업만 해도 꽤나 시간을 잡아먹고 말았다.

“우리가 지불해야 할 돈은 얼마나 되는데?”

“850억 원이더군요. 양도 양이지만 거의 모든 상품들이 최상급입니다. 제값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 약재들도 뭉텅이로 쌓여 있고, 이런 걸 대체 어디서 다 구했는지 모르겠군요.”

곰 가면의 남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무려 8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거래였다.

아무리 흑련이 다루는 액수가 크다고 해도, 한 번에 이 정도 규모의 거래를 주고받는 것은 대형 길드를 대상으로도 그리 흔치 않는 경우였다.

한데 개인이 이런 엄청난 거래를 해 오다니.

그는 주위를 잠시 두리번거렸다.

“거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고객님이라면 이미 떠나 버렸어. 시간이 없다나.”

“…금액도 듣지 않고서 말입니까?”

“그만큼 우릴 믿는다는 거지. 어쩌면 시험일지도 모르고.”

서연화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창고에 상품들을 쏟아 낸 성현은 다음 날 다시 찾아오겠다며 쿨하게 자리를 떴다.

이는 흑련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또한 이 정도의 물건들에 목숨 걸 것까지는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뭐, 애초에 이만큼 상품들을 가져온 이상, 얼마를 받을지 알아보지도 않고 내놓았을 리는 없겠지.”

어쨌든 상대에 대해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그는 더욱 거물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기서 푼돈 좀 후려쳐 보겠다고 장기적인 돈줄을 놓칠 생각 따위는 없었다.

“850억이라……. 당장 내일까지 현금 마련할 수 있지?”

“내일까지라면 가능할 겁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고객이니, 앞으로 더 신경 써.”

* * *

황야 길드의 구역을 통째로 집어삼킨 성현.

그러나 활동할 구역을 확보했다고는 해도, 실상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길드였다.

정식으로 등록조차 되어 있지 않았던 데다 길드 소속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던 상황.

하지만 미리 준비를 철저히 해 뒀던 성현은 그 절차들을 재빠르게 밟아 나갔다.

일단 본격적으로 길드를 꾸려 나가려면 자본이 필요했다.

헌터 전력이야 이미 확보해 둔 상태라지만, 길드가 굴러가려면 헌터뿐만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의 인력이 필요했다.

거기다 던전 통제나 뒤처리에 쓰일 각종 장비와 유지비부터 시작해.

길드 하나가 굴러 가려면 이런저런 자금들이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성현은 흑련으로부터 자금을 우선적으로 확보한 것이었다.

‘일단 당분간 돈 걱정은 필요 없겠지.’

불법적인 사업까지 다방면으로 벌여 놓았던 녀석들답게 황야 길드의 금고에 들어 있던 자금을 제법 짭짤하게 챙길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초기 발생 비용이나 당분간 길드를 굴릴 운영비 정도는 충당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성현은 본격적으로 길드 규모의 확대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흑련에게 건네받은 현금으로 850억 원을 확보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헌터 길드의 성장을 돈만으로는 이뤄 낼 수 없다곤 해도, 돈을 뿌리면 더욱 가속되는 건 분명했다.

“후… 좋아. 이제 좀 제대로 돌아가고 있네.”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텅 비어 있던 길드 건물 내에선 소속 직원과 헌터들이 오가고 있었다.

단순히 헌터들만 모인 무력 집단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길드의 모양새였다.

며칠 전만 해도 직원 한 명 없었던 것과는 대조되는 광경이다.

어지간한 대형 길드 부럽지 않은 조건으로 모집 공고를 내자, 쓸 만한 경력자들이 줄을 섰다.

각성자로부터 확실한 안전과 좋은 급여가 보장된 직장.

어느 정도 세력이 있는 길드의 입사 자리엔 늘 사람들이 줄을 서기 마련이었다.

성현도 이 부분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부분이었고, 이렇게 금방 직원들을 고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 때문에 며칠을 개고생을 했는지.’

길드를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이제 막 만들어진 신생 길드라면 각종 절차부터 시작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비전투직 직원으로 눈속임한 성현이 직접 나서서 직원들에게 일일이 업무를 배정하고 지시해야 했다.

하지만 다행히 성현에겐 수년간 청성에서 구르고 구른 경험이 있었다.

과거 경쟁률 500대1을 뚫고 입사해 실장직까지 꿰찼다는 프라이드를 나름 가지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업무 능력도 있었다.

덕분에 성현은 이 복잡한 일들을 능숙하게 처리해 낼 수 있었다.

며칠을 정신없이 바쁘긴 했지만, 이제 정상 궤도에 오르며 길드의 모든 절차가 대강 마무리되었다.

“주군, 부르셨습니까.”

목소리를 낮추며 다가온 이즈나가 말했다.

표면상으로는 이즈나가 명백히 자신의 위에 있었으니, 주변에 남들의 시선이 있을 땐 적당히 연기를 해 주어야 했다.

일단 이곳의 길드장이 누구인지는 당분간 숨길 생각이었다.

그 이유야 당연히 청성 때문이었다.

늦은 나이에 각성한 하급 헌터인 성현이건, S급 헌터로 데뷔한 네크로맨서 영왕(影王)이건.

길드장 자리에 앉아서 놈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게 없었다.

“구역 안에서 활동하는 중소 길드장들이 모일 자리를 마련해 놨어. 지금쯤 다들 모여 있을 텐데, 저번에 말했던 거 기억하지?”

“물론입니다.”

“이야긴 내가 나서서 할 테니까 뒤쪽에서 지켜보고만 있어. 그럼 가자.”

“네.”

* * *

“다들 모였군.”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건 처음인가.”

“뭐, 굳이 이런 자리가 생길 일이 없었으니까. 자기 할 일 하느라 바빴지.”

길드 건물 안에 모인 열댓 명의 길드장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들 모두 황야 길드의 구역 안에서 활동하던 지역 길드의 대표들이었다.

“황야 길드가 박살 났다는 건 다들 들었지?”

“그래, 이쪽 구역이 갈아 치워진 건 간만이잖아.”

“이야기를 듣자 하니 하룻밤 사이에 싹 정리됐다던데. 뭘 알아보려 해도 정보가 아예 없더라고. 전혀 성향을 알 수가 없으니 원.”

모두의 시선이 잠시 옆으로 향했다.

벽에 떡 하니 붙어 있는 ‘AEGIS’란 글자.

성현이 새롭게 만든 길드의 이름이었다.

사실 청성이나 화신 등 전통적인 국내 길드의 이름에서 벗어나 있긴 하지만, 이는 외국계 헌터 길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여태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은 고위 헌터들이 갑작스럽게 대거 나타난 길드이다 보니.

혹시 모를 뒷조사에 조금이라도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지스라… 외국계 길드인가 본데.”

“바깥에서 기어들어 온 것들치고 롱런한 적이 거의 없지 않나?”

“하긴 길드도 갈아 치워진 마당에 어수선한 틈을 노리고 구역 먹어 치우려고 달려든 녀석들이 한둘이 아닐걸.”

“잠깐 거쳐 가는 거든 말든, 그래도 말은 통하는 부류였으면 좋겠는데.”

중소 길드들은 해당 구역의 지배 길드로부터 던전을 배정 받으며 활동해 간다.

경우에 따라 비용을 지불하거나, 일정 비율의 수수료를 내는 식이었다.

최소 중견급 이상이 아니라면 작은 영역을 확보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소속 헌터가 직접 나서기엔 의미 없는 던전을 떠넘기고서 돈까지 챙길 수 있으니 대형 길드의 입장에서는 이득이었고.

지역 길드 역시 자신들이 공략할 던전을 받을 수 있으니 좋았다.

그래서 이들 사이엔 자연스레 갑을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덜컹!

그때, 문이 열렸고 길드의 관계자가 나타났다.

이즈나와 함께 나타난 성현이 걸어 나가 길드장들의 앞에 섰다.

“다들 와 계셨군요. 시간 내서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지스의…….”

“됐고. 너한텐 관심 없으니까 시작부터 하지?”

길드장 한 명이 삐딱한 자세로 말했다.

구역의 지배 길드라고는 해도 일반 직원처럼 보이는 성현의 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길드장까진 아니더라도 이지스의 간부 정도는 나와 줄 줄 알았기에 다들 기분이 상한 점도 있었다.

“좋습니다. 대표님들 모두 바쁘실 테니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역의 지배 길드가 바뀐 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자리니까요.”

탐탁지 못한 듯 쏘아보는 눈초리들 사이에서 성현은 능숙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가장 궁금해하실 일부터 말씀드리자면, 던전의 분배 방식은 이전처럼 유지될 테니 길드가 바뀌었다고 해서 지장이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기회가 갈 겁니다. C랭크 이하의 낮은 등급대 던전들은 대부분 지역 길드에게 배분될 테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지? 너희 길드의 몫은 어쩌고.”

“소수 정예를 표방하고 있는지라 저희 측의 모든 소속 길드원은 최소 B랭크 이상의 고위 헌터들입니다.”

한 마디로, C랭크대의 던전을 주력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연히 지역 길드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가기 마련이었다.

“뭐? 전원이 B랭크 헌터라고? 그걸 믿으라는 거냐?”

황당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소속 헌터 전원이 고위 헌터 수준의 전력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걸 감안해도 최소 구역 몇 곳은 차지했을 대형 길드급 전력은 되었을 것이다.

“이봐, 구역 주인도 바뀌었고 여러모로 어수선한 시기라 기강을 잡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허풍도 적당해야 믿을 수 있는 법이야.”

“뭐… 믿든 말든 그거야 마음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뭐야?”

“어디 비각성자 따위가 입을 놀려!”

콰앙!

벌떡 일어난 남자가 책상을 내려쳤다.

덩치가 큰 중견 길드라고 해도, 소속 헌터도 아닌 주제에 길드장들에게 저딴 건방진 소리를 해 대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세를 내뿜으며 겁을 주려던 남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현은 무표정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저도 각성자입니다. 등급이 낮아 헌터로 고용된 건 아니지만요.”

대외적으로 알려진 성현의 신분은 E급의 헌터였다.

헌터로서 성장하려 했지만 늦은 나이로 인해 좌절하고 큰 빚을 갚기 위해 이 외국계 길드에 고액을 받고 스카우트되었다는 스토리…….

성현이 생각해 낸 설정이었다.

“지랄하고 있네.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너, 이 새끼 이리…….”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벽이 쩌저적 갈라졌다.

방 안을 뒤덮은 오싹한 살기에 모든 이들이 얼어붙고 말았다.

“입 다물어라.”

뒤편에 서 있던 이즈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 섞인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

‘저, 저 정도의 헌터가 서 있었다니.’

‘이게 무슨…….’

길드장들은 완전히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지역 길드의 대표들답게 기껏해야 C랭크대 수준의 헌터들이었다.

힘을 감춘 게 A랭크 헌터 수준인 이즈나의 살기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물론이고, 이전에 군림하고 있던 황야 길드와도 급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각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제야 입장이 조금 정리된 것 같군요.”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성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본론을 꺼내 들었다.

“사실 여러분들께 모이라고 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반드시 지켜 줘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새로운 길드가 들어섰으면 구역 안의 규칙도 바뀌어야 했다.

물론 저들이 반겨할 만한 소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새로운 규율에 따라야 할 것이고, 선택권은 없었다.

“앞으로 저희 길드의 구역 안에서 일반인과 헌터의 구분은 없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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