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이 구역은 이제 제 겁니다
[웨어울프 대족장 ‘로칸’(A)]
[등급 - 군주]
[레벨 - 131]
[보스의 위압감], [광폭화], [무투술], [재생력]
[칼날 협곡의 모든 웨어울프들이 당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입니다.]
* * *
요새에서의 싸움이 끝이 나고.
웨어울프 대족장 로칸을 쓰러뜨린 성현은 모든 웨어울프들을 자신의 휘하로 거느릴 수 있게 되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이끄는 악령 병사 군단에 더해 서리 트롤, 웨어울프까지 합세하자 각 거점들은 빠르게 그의 손에 떨어졌다.
그 결과, 성현은 세 번째 필드 전체를 장악하며 자신의 손안에 넣을 수 있었다.
‘웨어울프들의 마을이라… 꽤 잘해 놓고 사네.’
마을에 들어선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칼날 협곡의 북부에 위치한 웨어울프 일족의 마을이었다.
그의 이미지 속의 늑대인간을 떠올리고 어두운 동굴이나 깊은 숲속에 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중세의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아예 고급스러운 성채에 사는 뱀파이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생활환경을 이루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몬스터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이쪽도 숫자가 조금 적은 편인 건 아쉽지만.’
로칸의 휘하에 있는 웨어울프들은 대략 300여 명이 넘는 숫자였다.
물론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기본이 수백, 수천 단위에다 스켈레톤 같은 경우에는 만 단위까지도 달하는 성현의 수하들이었다.
그 사이에선 이삼 백 정도는 그리 많은 수라고 볼 수 없었다.
‘뱀파이어들도 그렇고, 마족의 특징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기대한 것 이상으로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간과 동등한 지능을 가진 고급 인력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만족해.’
성현이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뱀파이어들이 그렇듯 겉보기엔 인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모습을 한 새로운 식구들이다.
덕분에 성현이 구상하고 있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듯 보였다.
“주군.”
“분부하신 대로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왔습니다.”
그때, 마을로 돌아온 이즈나와 로칸이 그의 앞에 찾아왔다.
둘 모두 대규모 리젠 지역에서의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로칸 역시 성현의 수하가 되었기에 사냥을 통해 레벨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고, 이즈나나 다른 보스들도 사냥을 거듭하며 성현과 가까운 수준으로 다가와 있었다.
“다들 수고했어.”
성현은 로칸에게 슬쩍 시선을 주었다.
그림자를 품고 있는 그의 모습.
“혹시 써먹을 만한 기억이 되돌아온 건 있어?”
성현이 그에게 물었다.
기억의 고서에 대한 효과를 묻는 것이었다.
일반 몬스터에겐 별다른 효과가 없던 고서였지만, 마족들에겐 통했고 로칸도 잃었던 기억의 일부를 찾게 되었다.
과거에 거대한 영역 위에 군림하던 세력이었다는 것, 그리고 잊고 있던 무투술의 일부를 기억해 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성현은 혹시 그것 외 기억이 나중에라도 돌아온 것은 없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새로운 광물에 대한 제련법이라든지 연금술이나 마법 부여법이라든지.
군단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무언가에 대해서였다.
이즈나도 나중에야 기억해 낼 수 있었던 사실들이 몇 가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즈나는 찬물을 끼얹듯 끼어들어 말했다.
“주군, 기대하진 마시죠. 기억이 조금 돌아왔다고 해도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지식은 없을 겁니다. 가진 건 몸뚱이밖에 없는 야만적인 놈들이라…….”
“입 다물어라. 주군의 앞이 아니었다면 당장 네놈의 목을 비틀어 줬을 테니까.”
발끈한 로칸이 이즈나를 보고선 이를 빠득 갈았다.
기억이 돌아온 부작용이었다.
이즈나가 웨어울프들에게 느꼈듯, 그 역시 뱀파이어에 대한 커다란 적개심이 생겨나 버린 것이다.
“하, 입만 살아 있는 건 여전하군.”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도 네놈만큼은 마음에 안 들었다.”
서로 한발도 물러나지 않고 맞서는 녀석들.
두 군주급 보스 몬스터들이 살벌할 살기를 풀풀 풍겨 대니,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어김없이 시작된 둘의 싸움에 성현은 잠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끼어들었다.
“둘 다 그만하지?”
성현이 말하자 녀석들은 움찔 멈춰 섰다.
“면목 없습니다. 이런 추태를…….”
“사이 좀 좋아지라고 같이 보냈는데, 어째 변한 게 없네. 하기야 고작 이 정도로 간단히 해결될 문제는 아니겠지.”
뱀파이어와 웨어울프.
오랜 세월 동안 앙숙이었던 종족 간의 갈등이다.
제삼자인 성현의 눈에도 성향 차부터 커서 확실히 섞이기 어려워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성현의 아래에 한데 묶여 있었기에 망정이지.
과거의 기억도 돌아온 마당에 서로가 죽을 때까지 싸워도 이상할 게 없었다.
“어쨌든 뭔가 더 생각난 건 없는 거지?”
“예… 더 돌아온 기억은 없습니다.”
로칸이 면목 없다는 듯 말했다.
다방면으로 쓸 만한 지식들을 폭넓게 알고 있는 뱀파이어 종족과는 달리, 웨어울프들은 그런 쪽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타고난 육체를 주력으로 싸우는 웨어울프들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고, 마법에도 전혀 의지하지 않았기에 뱀파이어처럼 여러 방면으로 조예가 깊을 수는 없었다.
생활양식에서 온 차이였고, 웨어울프들은 되레 뱀파이어가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성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다가왔다.
의기양양해하는 이즈나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고, 그걸 본 로칸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졌다.
“…….”
그나마 다행히도 이 상황에서 이즈나가 더 도발을 한다거나 로칸이 발끈하는 일은 없었다.
엄중한 주군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하라는 성현의 말이 떨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답잖은 말싸움을 시작하려 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런 선은 지키니 다행이네.’
이러다 또 안 보이는데 가서 싸워 대겠지만.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도로 만족했다.
뭣보다 지금 성현은 줄곧 머릿속으로 계획을 그려 놓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었다.
“세 번째 필드인 칼날 협곡은 다 손에 들어왔고. 마족인 너희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려 하는데, 괜찮지?”
“물론입니다. 주군.”
“뭐든 말씀하십시오.”
성현의 말에 이즈나와 로칸은 의욕적으로 대답했다.
그가 말하는 어떤 적이든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성현이 그들에게 원하는 건 평소의 임무와는 조금 달랐다.
“너희들, 바깥 공부 좀 해야겠다. 다 같이 옷도 하나 맞추고.”
* * *
9대 길드.
청성과 화신 등 한국을 나눠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강력한 세력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9개의 거대 길드가 정말 표현 그대로 한국의 모든 땅들을 9분할해 먹어 치우고 있는 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경기 지역을 태산과 파천이 양분했다고는 해도, 그들이 경기 전역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기 서남부 지역.
9대 길드가 자리 잡고 있진 않은 지역이었다.
절대적인 강자가 없는 덕분에 쟁쟁한 대형 길드와 여러 중견 길드들이 각자의 영역을 차지하고서 경쟁하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황야 길드는 바로 그 서남부 지역의 중견 길드 중 하나였다.
와장창!
가게의 테이블이 엎어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식기와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쏟아지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들은 공포에 덜덜 떨었다.
“자자, 제때 낼 돈 못 낸 체납자 양반들 다들 집중.”
황야 길드의 헌터가 입을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대략 열댓 명 가까운 헌터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헌터씩이나 돼서 돈이나 걷고 다녀야겠냐? 우리도 이러고 다니는 거 아주 좆같다고. 이런 시간에 던전을 더 돌고 말지.”
벌떡 일어난 남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움찔 움츠러든 사람들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근데 왜 낼 돈을 안 내? 우리는 개고생하면서 목숨을 걸고 던전 도는 데 무임승차하겠다는 거 아냐? 어떤 새끼들은 던전에서 돈 쓸어 담는 거 서민 돈까지 뜯어먹으려 한다고 구시렁대던데… 던전에서 나온 전리품에 니들이 뭐 보태 준 거라도 있어? 어차피 니들 다 죽고 던전 치워 놔도 우린 아무 문제없거든?”
남자가 들고 있던 검을 휙휙 들이밀며 말했다.
헌터들이 조성한 살벌한 분위기에 사람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아무튼 여태까지 배짱부린 거 보면 다들 믿는 구석이 있는 거지? 여기까지 불려 온 이상 곱게 집에 돌아갈 생각들은 말아.”
“제, 제발… 돈이라면 다음 달까지 꼭 내겠습니다.”
“하,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다음 달에 낼 수 있는 거 저번 달엔 왜 안냈는데, 어?”
콰악!
헌터가 코웃음을 치며 무릎 꿇은 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최소 몇 달 이상 황야 길드에 납부해야 할 돈을 내지 못한 체납자들이었다.
그나마 대형 길드들은 여론을 위해 어느 정도 시민들의 사정을 봐준다고 하지만, 어중간한 규모의 길드들에겐 그런 거 없었다.
비교적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작은 중견 길드의 경우는 수입을 위해 오히려 이런저런 수를 더 쓰기 마련.
어차피 길드 이름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입장이니.
시민들의 호의적인 여론에서 얻는 효용보다 쥐어짜는 편이 더 직접적인 수익으로 다가오기 마련이었다.
너무 심하다 싶은 선만 넘지 않으면 그만이다.
쿠당탕!
“커억!”
머리채를 잡힌 남자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는지 바닥에 축 늘어진 채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던 헌터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대책 없이 돈 빌려 간 놈들부터 시작한다. 장사하는 양반들이 돈 밀린 건 변명 좀 들어 본다고 쳐도, 너흰 경고한대로 손가락 몇 개부터 날리고 갈 거야.”
황야 길드는 단순히 시민들에게 보호세를 거둬 가는 것이 아니었다.
불법 도박과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대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을 유인해 사채까지 빌려주고 이자를 쥐어짜는 식으로 꽤나 짭짤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서울에선 보기 힘든 방식이었지만, 이쪽 지역에선 대부분의 길드들이 손대고 있는 돈벌이 수단이었다.
서울이나 9대 길드의 직접적인 세력권 아래에 있는 지역과는 다르게.
1강 체제가 굳건하지 않은 지역들은 길드 간의 경쟁이 몹시 심했고, 서로 간의 충돌도 훨씬 빈번하게 이루어졌다.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히 차지한 영역에 비해 더욱 많은 헌터 전력과 자금이 필요하니.
영역 안에 나타나는 던전들에서 얻는 수입 이상으로 자금을 창출해 낼 구석이 필요한 것이었다.
물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시민들에게로 향했다.
“제,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시끄럽다. 입부터 찢어 버리기 전에 닥쳐.”
“아, 안 돼! 컥…….”
끌려가는 남자가 발버둥쳤다.
하지만 헌터들의 완력 앞에선 일반인의 몸은 갓난아이의 그것만도 못했고, 목덜미를 잡힌 채 그저 질질 끌려갈 뿐이었다.
“일단 피를 좀 보고 시작해야지 말을 듣더라고. 그러게 미리 좀 잘하지 그랬어.”
피식 웃은 남자가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잠가 놓았던 가게의 문짝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콰아아앙!
“뭐, 뭐야!”
황야 길드의 헌터들이 일제히 시선을 돌렸다.
정장을 빼입은 대여섯 명의 헌터들이 건물 안으로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들이닥친 그들의 등장에 황야의 길드원들은 곧장 무기를 들었다.
“못 본 얼굴들인데, 너흰 또 어디 놈들이지?”
“이 새끼들…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건드려?”
경쟁 길드의 습격.
한두 번 겪어 보는 일도 아닌 데다 숫자조차 이쪽이 우세했기에, 길드원들은 거리낌 없이 무기를 꺼냈다.
하지만 무기조차 꺼내지 않은 채,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여성이 있었다.
“보아하니 황야 길드의 헌터들이 맞는 모양이군.”
이즈나가 부하들 사이에서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S급의 보스 몬스터이자 뱀파이어 로드가 아닌, 길드 소속의 A급 헌터 이즈나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너희 구역을 접수하러 왔다. 하등… 아니, 쓰레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