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진출
후웅!
웨어울프 전사들은 단숨에 요새의 안으로 진입했다.
날렵한 몸을 놀려 성벽을 가볍게 타 올랐고, 보수 작업에 여념이 없는 스켈레톤 전사들의 시선을 피해 내부로 진입했다.
뼈밖에 안 남은 몬스터답게 감각이 뛰어난 편은 아니기에 따돌리기 쉬운 상대였다.
“이쪽이군.”
요새의 건물 안으로 들어선 로칸의 시선이 이동했다.
꽤나 규모가 큰 요새였지만, 성채 안에서 인간 냄새만 풀풀 풍겼다.
어디쯤에 있을지 위치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준이었고, 로칸은 전사들과 함께 냄새를 빠르게 쫓아갔다.
까드드득!
하지만 스켈레톤 전사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은 바깥뿐만이 아니었다.
복도 중간중간마다 스켈레톤들이 배치되어 돌아다니고 있었고, 웨어울프들은 잠시 발목을 잡힌 채 멈춰 서야만 했다.
무시하고 지나가기엔 생각보다 숫자가 제법 되었다.
“대족장, 어떻게 합니까?”
“모두 제거하고 간다. 소란이 생기는 일 없도록 처리해.”
웨어울프들에게 스켈레톤은 전혀 까다로운 적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상대.
로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들은 단숨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콰드득!
갑작스러운 기습에 스켈레톤 전사들이 나뒹굴었다.
무기를 들어 올릴 새도 없이 더 많은 수의 웨어울프들이 나타나니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카앙!
하지만 모든 스켈레톤 전사가 이렇게 한 방에 쓰러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일찍 반응한 몇몇 스켈레톤 전사들은 주먹을 피해 낸 뒤, 곧바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웨어울프가 사납게 달려들었지만, 놈들은 공격을 받아 내며 되레 반격까지 가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어서 처리해!”
쉽사리 당하지 않는 스켈레톤 전사들 때문에 웨어울프들은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여기서 소란이 일어나면 목표가 도망갈 수도 있었기에 싸움을 길게 끌어선 안 되었다.
“비켜라.”
앞으로 나선 로칸은 순식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콰지직!
스켈레톤 전사가 들어 올린 방패째로 부숴 버리며 산산조각을 내 버린 로칸.
그의 주먹에 담긴 힘을 일반 몬스터들이 감당하기란 무리였고, 방어 태세에 들어섰던 나머지 스켈레톤 전사들까지도 단숨에 해치워 버렸다.
산산조각이 난 뼛조각들을 짓밟은 로칸은 인상을 팍 찌푸리더니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이 녀석들… 잿빛 땅에 있던 스켈레톤 전사 아니었나.”
스켈레톤 전사라면 그도 잘 알고 있던 몬스터였다.
바로 옆 지역에 있는 몬스터니 자주 마주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수준인지야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녀석들은 그가 알고 있던 스켈레톤 전사의 전력보다 훨씬 강했다.
자신이 직접 나섰을 때야 한 방에 해치웠지만 웨어울프 전사들을 상대로는 기습이 아닌 이상 쉽게 당해 주지 않았고, 방금 보인 움직임도 꽤 민첩한 편이었다.
“네크로맨서 녀석이 스켈레톤들에게 일일이 이런 걸 쥐어 준 건가.”
쥐고 있는 무기도 보통의 스켈레톤 전사의 것과는 달랐다.
마족도 아니고 스켈레톤이 레어 메탈제 무기를 들고 있다니.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상한 검은 마력을 두르고 있는 몬스터의 모습도 그렇고, 역시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반드시 여기서 숨통을 끊어야겠군.”
어떤 변수가 나와도 이상할 게 없는 적이었고, 최대한 빠르게 끝내는 게 좋았다.
“조금 더 서두른다.”
로칸은 전사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점점 선명해지는 인간의 냄새를 쫓아 요새의 지하로 향했고, 소란을 피하며 지하실의 문 앞까지 닿을 수 있었다.
바로 코앞에 목표를 두고서, 전사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단숨에 들이닥친다.’
콰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전사들이 내부로 진입했다.
놈에게 여지를 줘선 안 되었고, 인간이 보이는 순간 바로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뭐, 뭐야!”
“아무도 없어?”
안으로 들이닥친 웨어울프들이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히 인간의 냄새가 나는데, 정작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어지러이 흩어진 물건뿐이고 텅 비어 있는 방 안.
불길한 낌새를 감지한 로칸의 시선이 휙 돌아갔다.
순간 벽 뒤에서 강력한 마력이 느껴졌다.
“피해라!”
콰아아아앙!
벽 뒤로 커다란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한쪽 벽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고, 방 안은 화염 폭발에 휩쓸려 초토화되고 말았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그을린 자국들.
성현과 이즈나가 무너진 벽으로 걸어 나왔다.
“기껏 보수한 건데 이렇게 됐네. 스켈레톤들이 화내겠는걸.”
성현은 방 안을 뒤덮은 잔해 더미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나 강력했는지 벽의 일부가 무너진 수준이 아니라 방 안에 있던 기둥과 천장 전체가 폭삭 내려앉고 말았다.
덕분에 화염구에 정통으로 휩쓸린 웨어울프 중 절반 이상은 그대로 잔해 속에 파묻혀 죽고 말았다.
콰아앙!
물론 질긴 웨어울프들이 이렇게 쉽게 전멸당해 주진 않을 터.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녀석들이 잔해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불길에 그을린 웨어울프들의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기본적으로 육체적 스펙이 매우 뛰어난 데다 끈질긴 생명력과 회복력의 소유자였다.
즉사 당할 수준이 아니라면 지독할 정도의 생명력을 보이는 놈들이다.
“크아아아!”
“죽여 주마!”
분노한 웨어울프들이 순식간에 성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장에라도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 버릴 듯한 놈들의 기세.
“흥.”
하지만 코웃음을 치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선 이즈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악!
섬광이 번뜩이며 핏줄기가 튀었다.
이즈나는 유려한 검 솜씨를 뽐내며 달려드는 야수들을 하나둘 베어 나갔다.
토막 난 웨어울프들의 시체가 우당탕 바닥을 뒹굴었고, 이즈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서 검을 휘둘렀다.
“네놈!”
콰드득!
동시에 여럿이 달려든다고 한들 결과는 똑같았다.
모습이 변한 웨어울프들은 그녀보다 훨씬 큰 덩치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차이에도 무색하게 이즈나의 손끝 하나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
피 냄새에 흥분한 전사들을 멈춰 세운 것은 대족장, 로칸이었다.
이대로 달려든다면 무참히 도륙당하기만 할 뿐.
방금 날아든 마법의 위력도 그렇고, 상대는 평범한 뱀파이어가 아니었다.
“네놈이 어떻게… 아니, 네가 왜 인간과 함께 있는 거지?”
앞으로 나선 로칸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뱀파이어 로드, 이즈나.
영역 사이에서 서로 약간의 마찰을 빚은 적이 있었기에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그녀가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보면 모르나? 진정한 주인을 따르고 있는 것뿐.”
“그건 불가능해.”
저 인간이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쓰러뜨려 수하로 부리는 것 정도는 이미 정보를 입수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사령술이라고 한들.
이즈나나 그 같은 군주들을 권속으로 둘 수 없다는 건 마족들도 알고 있는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군. 하지만 그런 알량한 제약 따위 주군껜 통용되지 않는다. 네놈도 곧 알게 될 거다. 무식한 네놈들 따위에게 주어지기엔 과분한 영광이지만.”
“닥쳐라. 마족이 인간의 옆에 붙어 있는 꼴이라니.”
로칸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시답잖은 소리를 들어주는 건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했다.
콰득!
콰드드득!
로칸의 몸이 뒤틀리며 변형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인상의 늑대인간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옆에 선 다른 웨어울프보다 덩치가 큰 것은 물론이고.
일반 웨어울프들과는 뿜어내는 위압감부터가 달랐다.
“이 내가… 인간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것 같으냐!”
몬스터의 본능에 더해 마족으로서 지닌 긍지를 품고 말했다.
인간 따위는 철저히 물어 죽일 먹잇감일 뿐.
콰앙!
맞붙은 두 보스 몬스터가 살벌한 싸움을 시작했다.
날아드는 로칸의 발톱을 가볍게 피해 낸 이즈나는 녀석의 가슴팍을 검으로 깊게 베어 버렸다.
하지만 어지간한 상처 정도는 금방 재생되었고, 인상을 찌푸린 이즈나는 두 손에 마력을 한껏 실었다.
콰아아앙!
근거리에서 폭발한 화염구가 엄청난 위력을 뽐내며 불길을 토해 냈다.
피할 새도 없이 날아든 그녀의 마법.
아무리 로칸이라 해도 직격으로 마법에 휩쓸린 만큼 무사할 순 없었다.
새까맣게 그을려 온통 타들어 간 로칸의 피부였고, 타들어 간 살점과 뼈가 일부 보일 정도였다.
재생력 특성을 지닌 덕에 상처가 아물기야 하겠지만, 쉽사리 재생조차 되지 않는 상처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불길 속에서 로칸의 목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역시 네놈도 강해졌군.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다.”
“뭣……!”
로칸은 그 가공할 만한 화염을 그대로 뚫어 내었다.
그러곤 이즈나의 목에 날카로운 이빨을 박아 넣었다.
으득!
으드득!
뼈가 씹히는 섬뜩한 소리가 들리며 이즈나의 목덜미에서 피가 마구 뿜어 나왔다.
커다란 로칸의 이빨들은 그녀의 목덜미에 깊숙이 박혀 들어간 데다 어깨의 뼈까지 통째로 부숴 버리고 있는 중이었다.
“크윽… 이 자식…….”
이즈나가 인상을 한껏 찌푸렸다.
아무리 그녀라도 목이 꿰뚫리자 순간 자세가 풀리며 몸의 균형이 흔들리고 말았다.
이 상황을 이용해 로칸이 계속 몰아붙인다면 마법으로 입은 상처 이상으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죽일 수는 없다.’
후웅!
물고 있던 로칸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상대 역시 한 마족 계열의 군주이자 보스급의 몬스터였다.
목덜미를 제대로 물었다고 한들,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이즈나의 숨통을 끊어 버리는 건 불가능했다.
로칸의 목표는 처음부터 이즈나가 아닌 성현이었다.
이 방 안엔 이즈나를 제외하고선 주변에서 더 느껴지는 군단의 기척 따윈 없었다.
기습을 알아채 함정을 파 뒀든 아니든 간에, 놈이 군단과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건 녀석이 명백히 방심했다는 뜻이다.
“크아아아!”
방향을 튼 로칸은 순식간에 성현을 향해 몸을 틀었다.
이즈나의 존재는 큰 걸림돌이었지만, 그렇다고 한들 네크로맨서의 본체를 겹겹이 쌓아 가며 지켜 줄 수천의 군단 따위는 없었다.
녀석만 죽이면 이 상황은 그대로 끝이 났다.
“방심한 네놈의 최후다!”
단숨에 코앞까지 다가온 로칸이 팔을 뻗었다.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연약한 인간의 몸뚱이 따위 곁에 스치기만 해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수 있었다.
이만큼 근접한 이상, 녀석이 살아남을 방도 따윈 없었다.
촤아아악!
짙은 핏줄기가 높이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잘려 나간 것은 성현의 목이 아닌 로칸의 팔이었다.
믿기지 않은 사실에 로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게 어떻게……?’
콰드득!
성현은 단숨에 로칸의 목을 움켜쥐었다.
분명 연약해야 할 네크로맨서의 몸이었지만, 되레 일방적인 완력의 차이 앞에 로칸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미 마법으로 인한 부상까지 감수하고 달려든 로칸으로서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시도는 좋았네. 꽤나 인상적이었어.”
츠츠츠츳!
목을 쥔 성현의 등 뒤로 그림자가 스멀거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오싹한 기운이 엄습해 왔다.
‘이, 이건…….’
심연과도 같은 그림자 속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눈빛들.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빈틈을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했을 뿐.
그는 이미 수만의 존재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본 적 없는 진정한 포식자의 앞에서 로칸은 꼼짝 없이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