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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53화 (53/202)

53화 기억의 파편 (2)

“혼자서 상대할 수 있지?”

철컹!

성현이 슬쩍 시선을 주며 말하자, 데스 나이트는 당당히 앞으로 나섰다.

안카라스나 이즈나가 굳이 나설 것 없었다.

너무 일찍 싸움이 끝나 버리면 오히려 곤란할 테니까.

“우쭐거리지 마라, 인간.”

웨어울프가 이를 빠득 갈았다.

감히 인간 따위가 거들먹거리는 꼴이라니.

긍지 높은 일족의 전사로서 우습게 보이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뒤편에서 안카라스가 뿜어 대고 있는 위압감에도 그녀는 힘껏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터엉!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접근해 온 웨어울프 전사.

데스 나이트는 대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놀리며 날아드는 대검을 피했고, 거리 안으로 들어서며 주먹을 힘차게 내뻗었다.

쿠웅!

급히 회수한 대검에 그녀의 주먹이 막혔다.

하지만 그 정도쯤은 예상했다는 듯 웨어울프는 주먹이 막혔음에도 더욱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상대를 밀어붙였다.

커다란 대검을 든 상대였기에, 무기의 리치가 오히려 단점이 되도록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 드는 것이었다.

어떤 무기를 사용하든 무투가의 간격보다 가까울 순 없었다.

콰아앙!

대검을 비껴 낸 웨어울프가 데스 나이트에게 주먹을 먹였다.

날붙이와 합을 주고받는 와중임에도 신체가 잘려 나가지 않았다.

공격을 흘리며 아예 직격으로 베이는 각을 피하고 있는 데다 맨몸만으로도 보통의 종족들과는 몸 자체가 달랐다.

이즈나가 강한 마족들이 있다고 한 것은 괜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격차가 심하군.’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던 성현이 생각했다.

데스 나이트의 전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싸움의 결과는 눈에 뻔히 들어왔다.

카아앙!

‘이, 이게 어떻게……!’

데스 나이트의 본 실력이 드러나며 싸움이 계속될수록 일방적인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이 정도의 거리에선 불리한 대검을 사용함에도 되레 그녀는 점점 데스 나이트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데 버거워하고 있었다.

콰아앙!

특히 저 대검의 강력한 위력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맞았다간 그대로 몸이 반으로 갈라질 것이었다.

앞에 있는 검은 깡통 따위 빨리 해치운 다음에 저 뒤에 있는 안카라스를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하려 했거늘.

실상은 첫 상대부터 완전히 고전하는 웨어울프였다.

‘쓸 만한 전력이 될 거 같긴 한데. 당장이야 뭐… 레벨이 깡패니까.’

성현이 싸움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지금 보이는 움직임만 봐도 웨어울프들은 분명 마족이자 정예급 몬스터로서 가진 잠재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데스 나이트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긴 무리였다.

S급 던전의 정예 몬스터였던 데스 나이트는 성현이 지닌 그림자의 일부가 되었고, 군주인 칼라일을 따라 150레벨을 넘어서게 되었다.

웨어울프들도 최소 100레벨 이상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 레벨대에는 미치진 못했기에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쿠웅!

“젠장!”

인상을 한껏 찌푸린 그녀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이런 흐름으로 가서는 결국 당해 버린다는 걸 직감해서였지만, 그렇다고 등을 돌려 달아나기 위함은 아니었다.

“저건?”

“네놈들 모두 이 자리에서 죽여 주마…….”

우득!

우드드득!

그녀의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달라진 기운과 살기.

빠르게 부풀어 오르는 몸에 야수의 본성이 눈빛에 서려 있었다.

광폭화 특성이 발현되며 늑대인간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크아아아!”

“오…….”

본성을 드러낸 웨어울프의 포효.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은 두 눈을 빛냈다.

‘합격. 이 녀석들, 무조건 채용이다.’

콰아아앙!

웨어울프는 데스 나이트를 매섭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빨라진 움직임과 극도로 공격적인 공세를 취하는 그녀였다.

큰 격차가 여실히 보이며 일방적이었을 뿐인 방금의 흐름에서 달라진 것이 보였다.

“이제 됐어. 볼 건 다 본 것 같네.”

이제 그만 끝내도 좋다는 성현의 손짓.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이즈나는 스릉 검을 뽑아 들었다.

“주군께서 끝이라고 명하셨다.”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코앞까지 다가선 이즈나.

깜짝 놀란 상대가 급히 움직여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뒤였다.

“재롱을 피우는 건 여기까지다.”

“뭣……!”

콰과과광!

이즈나가 순식간에 웨어울프의 머리를 움켜쥐더니 땅바닥에 그대로 처박아 버렸다.

땅이 쩌저적 갈라지며 강력한 충격이 터져 나왔다.

이미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느라 한눈을 팔고 있던 상대로서는 미처 반응조차 하지 못할 빠른 움직임이었다.

강력한 충격에 온몸의 뼈가 부러져 버렸고, 이즈나의 발아래 짓눌린 채 웨어울프는 피를 울컥 토해 내고 말았다.

“네놈… 갑자기 끼어들다니… 비겁…….”

푸욱!

이즈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웨어울프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어차피 죽을 놈의 푸념 따위 들어 볼 것도 없었다.

성현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이런 녀석에게 조금의 시간도 낭비할 수 없었다.

“주군, 이건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되살릴 거니까… 시체만 적당히 회수해 둬.”

축 늘어진 시체를 가리킨 이즈나에게 성현이 답했다.

그러곤 기다리고 있던 안카라스의 등 위로 훌쩍 올라탔다.

면접을 통과했으니, 본격적으로 영입을 준비할 차례였다.

* * *

성현이 웨어울프 하나를 맛보기로 처리한 이후, 악령 병사 군단은 거침없이 전진했다.

냉기 저항을 얻은 덕에 눈보라가 들이치는 몇몇 지역에 들어서도 활동에 큰 지장이 없었다.

보스 몬스터 그롬과 서리 트롤 무리까지 합류한 덕에 더욱 속도가 붙었고, 세 번째 필드인 칼날 협곡의 거점들은 속속들이 그의 손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성현은 자신이 손에 넣은 칼날 협곡 북부의 한 거점으로 향했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버려진 요새.

저주받은 망령들이 점거하고 있던 요새였지만, 모조리 쓸어버리고선 거점으로 만들었다.

마침 기반 시설들도 있겠다, 지리상 위치가 좋아 중간 거점으로서의 역할에 적합했다.

물론 오랫동안 방치된 요새였기에 스켈레톤 전사들을 불러 적당히 보수한 뒤에야 사용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잿빛 땅의 진홍의 성채만은 못하더라도 제법 쓸 만한 거점이 되었고.

성현은 요새의 집무실에 앉아 보고를 받고 있었다.

“칼날 협곡 지역은 사실상 저희가 9할 이상을 손에 넣은 상태입니다. 이제 북부 끝자락에 있는 웨어울프 놈들만 남은 셈이죠.”

그의 앞에 선 이즈나가 말했다.

이미 필드 대부분을 손에 넣은 만큼 웨어울프만 처리한다면 세 번째 필드 전체를 집어삼킨 것과 다름이 없었다.

다만 성현은 군단을 이끌고 바로 그리로 향하진 않았다.

“어설프게 정찰을 나왔던 웨어울프 녀석도 그냥 지나쳐 주었으니… 저희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도 알 겁니다.”

“잘됐네. 어차피 조바심을 느끼는 건 상대일 테니까. 네가 말해 준 부분도 있고.”

성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군단을 모조리 이끌고 그곳을 쓸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의 능력상 웨어울프들의 보스 하나만 제대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성현은 웨어울프 대족장에 대한 정보들을 이즈나에게 몇 가지 전해 들을 수 있었고, 녀석의 다음 행동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

어차피 지역을 통째로 먹어 치우느라 이래저래 바쁜 상황에 굳이 먼저 움직여 줄 필욘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릴 건 이번에 새로 제작된 무구입니다.”

“음? 이건…….”

성현은 이즈나에게서 건네받은 검을 살펴보았다.

레어 메탈제 검으로, 마법 부여가 되어 있는 무구였다.

이전에 뱀파이어들이 완성했던 무구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마법이 부여되어 강력한 절삭력을 보였다.

상태창 특성을 지니고 있는 성현으로선 그 차이가 한눈에 보였다.

이번에 새로 확보한 재료들이 더해져 조금 바뀌긴 했다지만… 이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전부 되돌아온 기억으로 만들어 낸 솜씨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소의 고서를 통해 되살아난 기억은 그 폭이 굉장히 넓었다.

마법 부여, 연금술, 제련 등.

차원 너머에 있던 과거의 시절에 뱀파이어들이 지니고 있던 지식까지도 일부 되살아난 것이다.

잃어버렸던 지식과 노하우가 되살아나자 같은 재료로도 더욱 뛰어난 성능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던 것이고.

이는 지구의 각성자들보다 몇 발이나 앞선 우월한 실력이었다.

‘이게 돌아온 기억의 일부에 불과하단 말이지. 이 정도라면 기억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더 생겨난 셈인걸.’

성현은 무기를 계속해서 내려다봤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던 와중이라 아직 향상된 포션을 건네받아 보진 못했지만, 이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만 해도 굉장한 발전이었다.

하지만 그때, 인상을 슬쩍 찌푸린 이즈나가 시선을 돌렸다.

“놈들의 냄새가 나는군요. 가까이 온 듯합니다.”

“벌써 움직여 주는 건가. 고맙게 됐네.”

성현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 * *

갑작스럽게 영역 안에 나타난 엄청난 기세의 검은 군단.

그들의 등장을 눈치챈 시점엔 이미 칼날 협곡의 절반 이상이 놈들의 손에 떨어진 뒤였고, 웨어울프들은 당장 대책을 세워야했다.

급히 정찰대를 파견해 사태를 파악해 본 결과.

상대의 정체는 몬스터를 조종하는 네크로맨서였고, 심지어 던전 안의 존재가 아닌 인간이었다.

열린 던전의 입구를 통해 외부에서 찾아온 사냥꾼임이 분명할 터.

하지만 놈이 이끌고 있는 군단의 수준이나 규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웨어울프 일족이라고 한들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바스락!

그러나 그들은 적의 정체가 뚜렷해지자 바로 행동에 나섰다.

가만히 사냥당하길 기다려 주는 몬스터와는 달랐다.

어둠을 틈타 북부의 요새 앞에 숨어든 웨어울프 전사들.

대략 50여 명이 넘는 숫자였고, 기척을 죽인 그들은 수풀 속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대로 찾아왔군.”

야성적인 인상을 한 짙은 흑발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웨어울프 대족장, 로칸이었다.

그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기보단, 자신이 소수의 전사들과 직접 선제공격을 나서는 쪽을 택했다.

“녀석이 도망을 가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라. 놓치지 않게 단숨에 숨통을 끊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로칸의 말에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치가 아닌지 의심이 갈 만큼 상당한 실력의 네크로맨서.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소환수 군단과 함께 움직이지 않고서 명백히 방심하고 말았다.

네크로맨서라면 본체만 무력화시키면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 버리기 마련.

‘이 기회에 녀석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 놓아야 한다. 그 많은 군단과 함께 몰려든다면, 물리친다고 한들 우리 일족의 피해가 커질 테니까.’

굳은 표정의 로칸이 요새를 바라봤다.

정찰대가 물어온 정보대로 악령 병사들은 없었고, 요새를 지키고 있는 것은 비교적 적은 숫자의 스켈레톤뿐이었다.

부서진 요새의 시설들을 보수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제대로 된 구실을 하기엔 무리였다.

뭣보다 초인적인 육체 능력을 지닌 웨어울프들에게 이런 성벽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우리의 땅에 들어선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로칸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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