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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52화 (52/202)

52화 기억의 파편

“이게 무슨…….”

깜짝 놀란 성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쓰러졌던 가디언의 힘을 흡수하자마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아니, 굳이 자각하지 않더라도 시스템 메시지가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권속에게 강화 특성이 적용됩니다.]

[힘 스탯 +15]

[민첩 스탯 +15]

[체력 스탯 +15]

[마력 스탯 +15]

[냉기 저항력 +50%]

가디언이 품고 있던 정수를 성현이 쓰러뜨린 후 흡수했다.

성현은 정수의 힘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그림자의 힘을 강화시켰다.

물론 이는 사냥을 하고 레벨을 올리는 것처럼 단순히 자신의 힘을 키웠다는 것이 아니었다.

군단 전체가 버프를 받으며 전력이 상승한 것이다.

각 군주들은 물론이고, 고블린이나 밴시 같은 그 아래의 수하들까지 모든 군단에게 적용되는 대단위 능력치 보너스.

그들이 기존에 지녔던 능력치에 추가 스탯들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인상 깊은 옵션은 바로 냉기 저항이었다.

무려 50%의 냉기 저항이 군단 단위로 붙게 되었다.

모든 냉기 속성 공격에 저항을 지니며 입어야 할 피해를 반 토막 내 버리는 강력한 효과.

물론 그 군단의 꼭대기에 있는 성현 자신도 그 효과를 함께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군단 전체가 50퍼센트의 냉기 저항이라니 엄청난 보너스야.’

속성 저항은 아무리 올려도 한계가 존재했고, 100퍼센트의 저항은 시스템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최대치에 가까이 올려 둔다면 해당 속성에 대한 피해는 거의 없는 수준으로까지 줄일 수 있었다.

성현이 용의 비늘 특성까지 사용한다면 냉기 속성에 한해서는 사실상 최대치에 거의 근접할 정도로 적용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찜찜한 메시지도 하나 나타났어.’

[차원 너머의 존재가 당신의 존재를 알아챘습니다.]

가디언을 처치하고 정수를 흡수하자 나타난 메시지창.

차원 너머에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차원이 있다는 것쯤이야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곤 해도, 차원 너머에서 이쪽에 대해 인지한다니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다.

‘분명 이 장소와 관련이 있는 무언가겠지. 난데없이 들어와서 수호자까지 부숴 놓았으니 날 좋은 시선으로 보진 않겠군.’

그래도 아직은 메시지가 나타난 게 전부였기에 적대적인 존재인지, 호의적인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차원 너머의 무언가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시스템은 거짓을 말하진 않으니.

‘직접 나타나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존재보단… 당장 눈앞의 일부터 확인해 봐야겠지.’

고개를 돌린 성현은 통로로 다가갔다.

가디언이 이곳에서 무얼 지키려 했던 건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온갖 글씨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복도를 지나, 성현은 한 방에 닿았다.

별거 없어 보이는 작은 방이었다.

하지만 방 안의 한가운데에는 전시대와 함께 웬 낡은 책 한 권이 달랑 놓여 있었다.

‘이게 뭐지?’

성현은 반사적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유적지 곳곳에 적혀 있던 것과 같이 알아볼 수도 없는 고대의 문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성현은 그 책의 제목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기억의 고서]

성현에게 나타난 메시지.

무기들의 세세한 스펙을 알려 주고, 미확인된 잠재 물품까지 훤히 꿰뚫어보는 상태창 특성.

이번에도 기대했었지만, 아쉽게도 이름만이 나타날 뿐 특별한 정보는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평범한 물건은 아닐 텐데.’

잠시 고민하던 성현은 혹시 다른 전리품이나 숨겨진 공간이 있는 건 아닌지 방 안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무언가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성현은 책을 직접 펼쳐 보기까지 했지만.

그저 빼곡한 글씨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릴 뿐 그가 뭘 해석하기에는 한참 무리였다.

‘알아볼 수가 없네. 그림이라도 좀 그려 놓을 것이지……. 이즈나한테라도 한번 물어볼까.’

성채에서 봐 온 뱀파이어들이 사용하는 문자하고는 달랐지만.

그래도 혹시나 그녀와 같은 마족이라면 여기 있는 문자를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성현은 곧장 이즈나를 곁으로 불러들였다.

후우웅!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이즈나가 고개를 꾸벅였다.

“부르셨습니까, 주군. 한데 이곳은… 꽤나 생소하군요.”

“그게 어쩌다 보니 길이 샜거든. 아무튼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불렀는데. 혹시 이거 읽어 볼 수 있겠어?”

성현은 그녀에게 고서를 내밀었다.

하지만 고서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즈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내용입니다. 아예 처음 보는 문자군요. 굉장히 오래된 듯한데.”

이즈나는 말을 하는 동안에도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한 장 넘겨 보기 위해 고서에 손을 올린 순간.

그녀는 거친 숨을 들이켜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허억……!”

“뭐야, 왜 그래? 괜찮은 거야?”

놀란 성현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이즈나는 충격을 받은 듯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성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고서에 손을 댄 순간 안에 담겨 있던 마력이 갑작스럽게 그녀의 머릿속으로 몰아닥쳤다.

다소 멍한 눈빛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녀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생각났습니다, 주군.”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잃어버렸던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 * *

이즈나를 비롯한 모든 수하와 몬스터들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였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 대한 정보들은 아직까지도 전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몬스터들이 인간들에게 설명을 해 줄 수 없을뿐더러.

성현에게 복종하게 된 마족인 그녀와 뱀파이어들도 과거의 기억을 잃었기에 너머의 차원에 대해 성현에게 설명하기란 무리였다.

하지만 지금 고서에 손에 댄 순간, 이즈나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 놀라운 사실에 성현은 당연하게도 흥분한 채 물었다.

“기억을 되찾았다니, 그게 정말이야?”

“아, 네… 하지만 모든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이즈나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잃어버렸던 모든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돌아온 이즈나의 기억이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특히 구체적인 부분 없이 추상적인 수준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이런 던전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드넓은 대륙의 땅덩이에 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이끌고 있던 뱀파이어 집단은 지금보다 훨씬 강대했던 세력이었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그 외의 자잘한 사실들도 생각이 났지만, 아직은 흐릿하게 지워져 있는 부분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이런 고서가 더 있었나요?”

“아니. 여기서 발견한 고서라면 이게 끝이야.”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이 이즈나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잃었던 기억에 대한 문제이니만큼, 성현 이상으로 욕심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 번 더 살펴보지 그래.”

“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인 이즈나는 다시 하나뿐인 고서를 받아 들고는 안에 있는 내용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성현 역시 뭐라도 단서가 나오길 바라는 건 마찬가지였다.

“어때, 뭐라도 알아보겠어?”

“아뇨…….”

성현의 물음에 이즈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고서에 적힌 내용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이는 모든 기억이 되돌아오지 않아서라기보단, 애초에 쓰는 문자 체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었다.

뱀파이어들의 기준에서도 아주 오래된 고대의 문자였고, 이것을 그들이 알아보기란 무리였다.

“이 책은 뭐고, 이곳은 또 어디죠?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즈나가 책을 도로 건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이런 이질적인 장소로 불려 온 데다 기억까지 일부 되살아나니 꽤나 혼란스러워하는 이즈나였다.

하지만 성현은 건네받은 고서를 인벤토리에 챙겨 넣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그다음에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성소부터 가디언의 존재에 직접 흡수한 빛의 정수까지.

아직은 성현의 머릿속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몬스터와는 분명히 다른 가디언이라는 존재와, 이즈나의 기억을 되돌린 고서가 함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

‘다른 던전에선 발견된 적도 없는 장소지만… 이걸로 끝은 아닐 테지.’

여태 발견된 적 없는 마족이라는 존재들이 그의 집 지하실 속 던전에서만 발견되었듯이.

이곳 역시 마찬가지였고, 또 다른 곳에 성소가 더 숨겨져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성현과 이즈나는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오며 밖으로 향했다.

후우우웅!

유적지를 빠져나와 동굴 입구에 다다르자, 다시금 협곡의 찬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원래 느끼던 것에 비해 설원 지역의 추위가 훨씬 덜 춥게 느껴졌다.

이번에 새로 얻은 냉기 저항력의 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쿠우웅!

‘음? 무슨 일이지?’

저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성현은 서둘러 밖으로 나왔고, 입구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소란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데스 나이트와 대치하고 있는 여성이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신경전을 펼치고 있던 것이다.

“네놈은 처음 보는 종인데? 어디서 나타난 거지?”

사람의 모습을 한 흑발을 길게 땋은 여성.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다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듯 보통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저 녀석은…….”

“더러운 똥개 놈들이로군.”

이즈나가 팍 인상을 찌푸렸다.

칼날 협곡을 손아래에 둔 지배자이자 마족인 ‘웨어울프’ 종족이었다.

원래는 웨어울프라고 해도 그냥 옆 지역에 사는 마족일 뿐, 던전 안에서 딱히 마주칠 일도 없었기에 별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기억의 일부가 되돌아오며, 웨어울프와 숙적이었던 옛 사실까지도 기억이 나 깊었던 악감정이 되살아난 것이다.

“네놈들은……?”

한편, 웨어울프 전사는 데스 나이트의 뒤편에 나타난 성현과 이즈나까지 발견하고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잠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그녀는 표정이 돌변했다.

“인간이로군.”

표정에서부터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살기를 풀풀 풍기는 웨어울프의 기세.

몬스터로서의 그녀의 본능이 성현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쩐지 처음 보는 몬스터가 있다 했더니 던전의 문이 열렸다는 건가. 한데 뱀파이어 네놈은 왜 인간의 옆에 붙어 있는 거지? 벌써 인간 놈들에게 당해 하수인이라도 된 거냐?”

성현의 옆에 있는 이즈나의 정체까지 꿰뚫어 본 녀석.

다만 뱀파이어라고만 생각할 뿐, 그녀가 뱀파이어의 군주라는 건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눈치챘다면 진즉에 등을 돌려 달아나고 있었겠지.

“명령만 내리신다면 당장에라도 머리를 뽑아내겠습니다.”

“아니, 그럴 건 없어.”

이즈나의 살벌한 말투에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성급하게 죽이려 드는 건 곤란했다.

“마침 잘됐네. 어차피 군주가 아니긴 하지만, 미리 전력 파악 정도는 할 수 있겠어.”

놈들의 보스를 직접 상대하기 전에.

웨어울프 종족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지 직접 두 눈으로 알아볼 기회였다.

성현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왔고, 으르렁거리던 웨어울프 전사가 그를 향해 달려들려던 순간.

쿠우우웅!

하늘 위에서 줄곧 성현을 기다리고 있던 안카라스가 커다란 두 날개를 접으며 그의 옆에 착지했다.

“크르르륵!”

거대한 비룡의 등장에 웨어울프 전사는 흠칫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아, 안카라스? 저 녀석이 어째서 여기에……!”

두 필드를 나눈 경계의 산맥에 군림하고 있는 와이번의 군주.

웨어울프는 자세를 취한 채 식은땀을 흘렸다.

성현의 수하가 되기 전까지 아주 호전적으로 활동하던 녀석이었고, 놈을 알고 있던 그녀는 바짝 긴장하고 만 것이다.

일반 와이번이야 가뿐히 쓰러뜨릴 수 있다지만, 군주를 상대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너무 긴장하진 말고. 면접 자리라고 생각해.”

사면초가에 몰려 주먹을 바짝 쥔 웨어울프에게 성현은 친절히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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