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수호자의 성소 (3)
콰과과광!
석상과의 싸움이 시작되면서 방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자기들 살림이면서 가차 없이 무기를 휘둘러 대는 통에 바닥이 부서지고 기둥이 우르르 무너졌다.
침입자를 제거한다는 일념하에 성현을 집요하게 노리는 녀석들.
역시 놈들은 커다란 덩치에 걸맞게 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저런 큰 무기를 휘둘러 대는 통에 성현이라도 한 방 맞으면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하지만 맞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성현은 재빠르게 몸을 놀리며 공격을 피했다.
덩치치고 굼뜨진 않았지만 둘의 속도 차이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콰드득!
순식간에 파고든 성현이 석상의 발목 뒤편을 도려내었다.
생각보다 검이 깊이 들어가진 않았다.
빛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은 공간뿐만이 아니었고, 석상들 역시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성가시게 구는군.’
하지만 저 석문에 걸려 있는 강력한 간섭 수준만큼은 아니었다.
꽤나 단단한 주제에 일일이 상대해야 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쓰러뜨리지 못할 건 없었다.
성현의 칼날에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콰아아앙!
완전히 파괴된 석상이 우르르 주저앉았다.
성현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석상들의 몸뚱이가 크게 베이며 무너졌고, 그는 곧 부서진 잔해 더미들 사이에 서게 되었다.
[이름 - 이성현]
[칭호 - 경지에 도달한 자]
[레벨 - 154]
[직업 - 네크로맨서]
[주요 능력치]
힘: 286 민첩: 274 체력: 275 마력: 362
[보유 특성]
상태창(S), 그림자 군주(S), 백귀야행(S)
각성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성현의 상태창은 처음과 완전히 딴판으로 성장해 있었다.
이 석상들도 최소 A랭크 이상의 전력에 이질적인 기운으로 보호까지 받고 있었지만.
어지간한 수준의 적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을 성현이었고, 무기에 검은 마력까지 입히자 석상들을 일격에 베어 내며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었다.
츠츠츠츳!
한편, 무너졌던 석상에 차 있던 빛의 기운이 흩어지며 사라졌다.
역시 이질적인 기운을 풍긴다 했더니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었다.
‘잠깐, 이건……?’
성현은 석상이 부서지며 튕겨져 나온 열쇠를 주워 들었다.
앞부분이 큼지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보통의 열쇠는 아니었다.
느낌이 와 고개를 돌린 성현은 석문에서 비슷한 모양의 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란한 장식인 줄 알았는데, 이게 열쇠 구멍이었던 건가.”
석문의 앞에 다가간 성현은 틈새에 열쇠를 쑥 집어넣었다.
드르르륵!
열쇠를 끼워 넣자, 석문의 잠금장치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돌로만 이루어진 석문이라 그냥 독특한 문양들이 조각되어 새겨진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력으로 움직이는 장치가 주렁주렁 달려 있던 것이었다.
철컹!
매우 복잡한 구조의 장치들이 하나둘 열려 나갔고, 곧 굳게 닫혀 있던 석문이 양 옆으로 활짝 열렸다.
성현은 그 너머에 있는 통로로 발을 내디뎠다.
제법 길게 이어져 있는 통로가 끝나자, 방금 전의 방은 마치 장난으로 여겨질 만큼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뭐야, 여긴?’
이 정도 공간까지는 없었을 텐데, 마치 공간이 왜곡이라도 된 듯 드넓고 높은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그 공간의 한가운데엔 거대한 석상이 놓여 있었다.
방금 보았던 석상들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압도적인 크기의 거신상.
동물의 얼굴을 한 기이한 거인의 석상이었고, 고개를 들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설마…….’
거신상은 모종의 이유로 크게 손상이 되었는지 온전한 형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현은 거신상을 앞에 두고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쿠구구구!
“젠장, 역시나였잖아.”
성현은 급히 검을 빼 들었다.
거대한 석상이 감겨 있던 두 눈을 번쩍 뜬 것이다.
콰과광!
거신상이 다리를 움직이자,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호자의 성소라는 장소의 이름.
성현은 거기서 말하는 수호자란 바로 저 녀석을 뜻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런 걸 상대하라고?’
눈앞을 가득 메운 거대한 석상의 모습.
그가 여태 상대해 본 모든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였다.
성현은 급히 몸을 움직여 녀석의 발목에 검을 휘둘러 보았지만, 형편없이 튕겨져 나갈 뿐.
그림자까지 실은 그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어어어!
방해된다는 듯 거신상이 팔을 크게 휘두르자, 드높게 뻗어져 있던 기둥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성현은 쏟아져 내리는 막대한 잔해 더미를 피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거신상은 곧 두 팔을 모아 그를 향해 내리찍었고.
성현은 공격을 피해 한참 거리를 벌렸음에도 그 여파에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미친…….”
한 차례 바닥을 구른 성현이 곧장 일어났다.
말도 안 되는 위력.
직격을 당했다간 고위 헌터고 뭐고 한 방에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다.
‘저런 꼴로 잘도 움직이네.’
분명 거신상은 크게 손상되어 있어 원래의 모습보다 전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얼굴 부분만 해도 심하게 파손되었고, 온몸의 표면 곳곳이 떨어져 나간 데다 가슴팍엔 위태롭게 보일 정도의 거대한 균열이 가 있었다.
한데 저런 불완전한 형체임에도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이다니.
결코 평범한 몬스터가 아니다.
[최상급 포션, ‘신록의 비약’의 효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최상급 포션, ‘분노의 비약’의 효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최상급 포션, ‘불굴의 비약’의 효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성현은 단숨에 세 개의 포션을 꺼내 들어 삼켜 버렸다.
예상치 못한 적이라고 한들, 물러설 생각 따윈 없었다.
‘수호자라면 뭔가를 지키고 있다는 소리겠지. 거기다 이 녀석, 아까부터 저 길목을 지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거신상이 가로막고 서 있는 길목 뒤편의 작은 통로.
날뛰고 있으면서도 그 앞을 떠나진 않으려 하는 녀석의 움직임에 성현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뭘 그렇게 지키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이 상식 외의 존재들에 대한 단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순순히 비켜 줄 것 같진 않고, 처리하는 수밖에.’
머릿속을 정리한 성현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소환수를 불러올 수도 없는 장소에서 저런 존재를 마주하니 굉장히 난처하긴 했다.
그러나 소환수를 직접 불러올 수 없다고 해도, 오직 혼자의 힘만으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온다.’
거신상의 주변에 감돌기 시작한 싸늘한 마력에 성현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콰아아아아!
두 팔을 벌린 거신상이 강력한 냉기 폭풍을 쏟아 냈다.
공간 전체를 뒤덮을 강력한 혹한의 폭풍이었고, 엄폐물조차 없는 공간이라 숨을 데도 없었다.
그러자 성현은 재빨리 자신의 세 번째 특성을 발동시켰다.
[군주, 안카라스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용의 비늘’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비룡 안카라스가 지닌 용의 비늘 특성.
방어력 자체도 올라가는 방어형 특성이었지만, 이는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했다.
용족이 지닌 특성답게, 이 특성의 주된 효과는 마법 저항과 원소 저항력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순간적으로 특성의 효과를 받은 성현의 몸은 몰아치는 냉기 폭풍을 정면에서 받아들이고도 한 차례 버틸 수가 있었다.
‘큭…….’
온몸이 얼어붙을 듯했지만 여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늦췄다간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파앗!
이를 꽉 깨물었던 성현은 냉기 폭풍 속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특성을 전환하였다.
[군주, 안카라스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화염 숨결’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화르르륵!
성현이 쥔 검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나왔다.
이미 덮여 있던 그림자에 더해 용족의 화염이 일렁였고, 검은 화염이 그의 칼날에 씌워졌다.
콰아아앙!
성현의 검이 그대로 거신상을 강타했다.
온 힘을 다한 검격에 더해, 터져 나오는 검은 화염에 휩쓸리며 거신상은 휘청이고 말았다.
이전에 공격했을 땐 끄덕도 안 하던 녀석이었지만, 파손되었던 부위를 공격하자 불 속성의 효과까지 더해지며 대미지가 분명하게 들어갔다.
역시 설원 지역에서 냉기를 뿜어 대던 녀석답게 화염 속성에 약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계속 간다!’
성현은 거신상의 손상되어 있는 부위들만을 집요하게 노리며 공격을 이어 나갔다.
거신상은 계속해서 온몸으로 냉기를 토해 내는 까다로운 패턴을 보였지만, 용의 비늘 특성 덕에 버틸 만했다.
사실상 피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공격이었기에 회복 포션까지 계속해서 마셔 가며 온몸으로 받아 내었고, 몸이 받는 타격 이상의 대미지를 녀석에게 계속해서 누적시켜 주었다.
쿠웅!
그 결과, 휘청이던 거신상의 한쪽 무릎이 땅에 닿았다.
드디어 녀석의 무릎을 꿇게 만든 성현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거신상의 다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끝이다!’
거신상의 가슴팍에 갈라져 있던 거대한 균열.
정확히 그것을 노리고 뛰어든 성현의 검이 크게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치명적인 약점을 강타하자 터져 나온 검은 화염과 함께 거신상의 몸뚱이는 기우뚱 기울어졌다.
거대한 석상은 그대로 엎어지며 잔해 더미가 되어 버리고 말았고.
성현의 눈앞엔 메시지들이 주르륵 차올랐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칭호, ‘운명의 대적자’를 획득하였습니다!]
[그 어떤 적을 상대로도 위압 효과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허억…….”
우두커니 선 성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용의 비늘 특성의 효과를 받았다고 한들 그 냉기 폭풍 속을 수차례나 헤집은 성현이었다.
한계까지 몰아붙인 탓에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 덜덜 떨려 왔기에 그는 서둘러 포션을 마셨다.
뺨에 달라붙어 있는 서리는 여전했지만, 그래도 몸 상태가 조금은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맞아.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었지.’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성현은 쓰러진 거신상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자신의 그림자를 녀석에게 흘려보냈다.
“…정말 안 되잖아?”
그저 스르륵 통과할 뿐, 성현은 자신의 그림자를 거신상에게 불어넣을 수가 없었다.
엉망으로 파손된 상태에서도 그 정도로 날뛰어 대던 녀석이다.
아무리 봐도 일반 몬스터일 리는 없었고, 최소한 군주급의 보스 정도는 될 텐데 그림자 군주의 특성이 통하지 않는다니.
‘정말 몬스터가 아니라는 거네.’
성현이 수하로 만들 수 있는 건 보스급의 몬스터뿐.
몬스터가 아닌 존재라면 보스만큼 강하든 말든 섬기게 만들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도 아닌 것이 몬스터도 아니라니 대체 정체가 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여태껏 그 외의 분류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적지 전체를 감싸던 기운도 결국 이 녀석이 내뿜었던 걸로 보이고.’
성현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성소의 수호자를 파괴하고 나자, 유적지 안을 감싸고 있던 이질적인 빛의 기운들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몬스터의 출입을 막던 효과도 그와 함께 없어진 탓에 지금이라면 소환수도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었다.
츠츠츠츳!
‘뭐… 뭐지?’
그때, 쓰러진 거신상에게서 새하얀 빛의 구체가 둥실 흘러나왔다.
그 이질적인 빛의 기운은 곧장 성현의 몸으로 흘러들어오더니 감쪽같이 흡수되어 사라졌다.
당황한 성현이 흠칫 물러난 것도 잠시.
그는 곧 자신의 몸 안에서 요동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가디언의 정수를 획득하였습니다!]
[정수의 힘으로 그림자의 권능이 강화되었습니다. 새로운 군단 강화 보너스를 획득합니다.]
[차원 너머의 존재가 당신을 응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