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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49화 (49/202)

49화 수호자의 성소

“젠장, 이 몸뚱이로도 추운 게 느껴지긴 하네.”

휘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에 성현은 팔을 슬쩍 매만졌다.

혹한의 추위를 품고 있는 설원 지대.

일반인의 몸으로 들어섰다면 이미 몇 발자국 채 딛지도 못한 채 얼어 죽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 기후였다.

심지어 그는 평범하게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후우우웅!

성현은 비행을 하고 있는 와이번들의 군주, 안카라스의 등에 올라타 있는 중이었다.

당연히 걷는 것보다 훨씬 강한 추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S급 헌터인 성현은 이 기후 속에서 바람을 가르며 비행을 하고 있어도 멀쩡할 수가 있었다.

그는 이미 몬스터나 헌터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일이라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죽기조차 어려운 몸이 되었다.

길 가다 교통사고 같은 걸 당한다면, 죽는 건 5톤 트럭을 몰고 있던 운전기사 쪽일 테니까.

어쨌든 덕분에 이런 혹한의 추위 속에서 비행하고 있음에도 정작 몸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단지 감각상의 추위는 여실히 느껴질 뿐.

‘그래도 이 녀석 덕분에 훨씬 편해지긴 했어.’

성현은 올라타 있던 안카라스의 등을 툭 쳤다.

안카라스를 수하로 받아들인 것은 단순한 전투력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일단 평소 움직이는 데 드는 이동 시간을 확 줄여 줬다는 게 그 첫 번째로, 점점 넓어질 영역을 커버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안카라스의 경우, 다른 일반 와이번에 비해 덩치가 컸지만 비행 속도는 훨씬 빠른 편이었다.

‘거기다 지금처럼 새로운 필드를 마주했을 때 정찰하느라 시간을 잡아먹을 일도 없지.’

하늘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성현이었다.

공중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훤히 내려다보니, 이전 같은 번거로운 정찰 과정을 단번에 생략할 수 있었다.

물론 칼날 협곡이라는 이름답게 꽤나 지형이 복잡해서 직접 내려가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지점들도 많았다.

허나 가려진 장소들이 있다곤 해도 대략적인 지리와 트여 있는 장소는 멀리서도 모두 보였다.

그래서 성현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살펴보며 각 지형과 몬스터들의 대략적인 분포를 파악하는 중이었다.

서리 망령, 화이트 팽, 그 외의 각종 야수종 등.

거친 환경을 품은 데다 세 번째 필드답게 몬스터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개중엔 A랭크 던전 수준의 몬스터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보통의 헌터들은 이곳에서 생존하는 것조차 어려운 수준이었다.

‘리젠 장소처럼 보이는 곳도 꽤 많아 보이고, 부하들 레벨업 걱정은 없겠네.’

성현은 오히려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누군가에겐 재앙일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이미 S급 헌터의 경지에 닿은 성현에겐 훌륭한 고레벨 사냥감이자 경험치 덩어리로 보일 뿐이었다.

“저쪽도 좀 가까이서 살펴보자.”

“크르릉!”

성현의 말에 안카라스는 휙 방향을 틀었다.

그러곤 곧장 고도를 낮추어 비행하기 시작했다.

녀석은 커다란 덩치에도 자유자재로 비행을 할 수 있었고, 협곡 사이사이까지 누비며 안쪽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후웅!

협곡 사이를 지나가며 혹시 놓친 몬스터나 자원들이 있는지 살피는 성현.

그때, 들려오는 소음에 성현의 시선이 돌아갔다.

컹컹컹!

“음?”

협곡을 메우는 사나운 울음소리들.

설원의 포식자, 화이트 팽이 짖어 대는 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저 아래에서 격한 전투가 벌어진 것이 보였다.

“구어어어!”

좀비 군단을 이끄는 그의 우두머리급 수하, 누더기 군주 올렉이 놈들과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최소 수십은 넘어 보이는 몬스터 무리가 홀로 선 올렉을 향해 맹렬히 몰려들고 있는 모습.

커다란 화이트 팽의 덩치에 더해, 홀로 서서 포위를 당해 공격받는 올렉의 모습은 얼핏 보면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올렉 녀석, 열심히 하고 있네.’

하지만 성현은 평온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되레 불쌍한 것은 저 녀석들이었다.

콰직!

화이트 팽 한 마리가 올렉에게 짓밟혀 시뻘겋게 찌부러진 핏덩이가 되었다.

물론 놈들은 강력한 야수 몬스터답게 동족이 당하는 모습에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수십 마리나 되는 무리인 만큼, 그 틈에 다른 녀석들이 달려들어 올렉의 살점을 마구 뜯어냈다.

“크르륵……!”

하지만 화이트 팽들이 죽을힘을 다해 물어도, 올렉에겐 작은 흠집이나 겨우 내는 것이 전부였다.

심지어 그 흠집들마저 1초도 되지 않아 금방 회복되었다.

워낙 체급 차가 심한 데다 재생력 특성까지 지닌 올렉이다 보니 저런 자잘한 공격들 따윈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어차피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에게 최후의 발악을 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콰아앙!

“그어어어!”

마지막 한 마리까지 알뜰하게 짓뭉개 버린 올렉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모든 몬스터들을 초토화시키며 전진하고 있는 올렉.

8배의 경험치를 빠르게 쌓아 가며 레벨을 올리고 있는 녀석이었다.

‘다들 벌써 100레벨도 넘었으니… 일은 순조롭네. 지금쯤 다른 쪽도 잘하고 있겠지.’

올렉뿐만이 아니라 그의 휘하에 있는 군주들은 각자 맡은 구역으로 흩어져 사냥에 나선 참이었다.

지역 내에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을 청소할 겸, 각자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최근 S급 던전을 토벌한 성현의 레벨이 150까지 치솟아 오르며, 칼라일을 제외한 휘하 군주들과의 레벨 격차가 제법 벌어졌다.

그래서 녀석들은 성현이 없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던전 안에서 사냥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을 잘 필요도 없고, 지치지도 않는 보스 급의 수하들이었으니 금방 따라올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본대 쪽은 지금쯤 어디까지 닿았으려나.’

* * *

쿵쿵쿵!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는 악령 병사 군단.

무려 8천이나 되는 숫자가 칼날 협곡의 중심부를 향해 진격했다.

그렇지 않아도 검은 중갑옷으로 무장한 녀석들이었는데, 성현의 그림자마저 풀풀 풍기고 있으니 완전히 어둠의 군단이 따로 없었다.

놈들을 마주한 몬스터들의 입장에선 몰려드는 검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콰직!

“키이이익!”

군단이 지나가는 자리에 쌓여 가는 몬스터들의 시체들.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군단의 손에 간단히 쓸려 나거나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한데 파죽지세로 치고 나가던 악령 병사 군단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규모의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강력한 A랭크대의 몬스터, 서리 트롤.

트롤들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재생력에 강한 완력과 맷집을 지닌 까다로운 몬스터 종이었다.

하지만 이런 혹한의 기후에 적응한 서리 트롤들은 일반적인 트롤들보다 배 이상으로 더 무시무시해졌다.

“우어어어!”

서리 트롤 수백 마리가 양옆의 가파른 경사에서 쏟아져 나오며, 악령 병사들을 습격했다.

자신들의 영역에 침범한 침입자들을 살려 보낼 생각이 없다는 듯, 협곡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던 괴수 무리답게 엄청난 기세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척! 척! 척!

순식간에 진형을 짠 악령 병사들은 서리 트롤의 습격을 가뿐히 받아쳤다.

일반 몬스터라고는 해도 무려 150레벨대의 전력이었다.

성현이 따로 훈련시키지 않아도 방진의 개념을 이미 이해하고 있던 악령 병사들이었고.

심지어 숫자조차 우위에 있는 만큼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서리 트롤 따위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거대한 괴물이 전장에 난입했다.

콰아앙!

“크아아아아!”

힘차게 뛰어든 괴물에 악령 병사 여럿이 한꺼번에 나가떨어졌다.

기세부터가 다른 거대한 서리 트롤의 등장.

서리 트롤들의 왕이자 보스 몬스터 ‘그롬’이었다.

악령 병사들이 짜 놓은 진형을 어그러뜨리며 전장을 온통 휘젓는 것이 역시 보스 몬스터다운 모습이었다.

반면 지금 모여 있던 악령 병사들의 군단엔 게아드나 칼라일 같은 보스급 소환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녀석을 당해 낼 전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철커덕!

대검을 어깨에 진 데스 나이트가 악령 병사들의 사이로 걸어 나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데스 나이트를 발견한 그롬은 단숨에 녀석에게 달려들어 커다란 팔을 내뻗었다.

쿠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부딪힌 데스 나이트는 그롬의 괴력에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아무래도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한 보스 몬스터이다 보니, 정면에서의 힘 싸움으론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는 그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서걱!

“크아아악!”

휘둘러진 핼버드가 그롬의 팔을 단숨에 잘라 버렸다.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포효하며 몸부림을 쳤다.

츠츠츠츳!

잘려 나갔던 그롬의 팔 부위는 순식간에 출혈이 멈추더니 살점과 뼈까지 돋아나며 다시 자라났다.

트롤이 뛰어난 재생 능력을 지녔다고는 해도 저 정도 회복력을 보일 순 없었는데, 과연 보스 몬스터답게 차원이 다른 회복력을 보여 주었다.

올렉처럼 재생력 특성을 지닌 녀석이었다.

푸욱!

그러나 그 순간, 그롬의 배에 대검 두 개가 동시에 박혔다.

정면에서 달려들어 대검을 박아 넣은 두 데스 나이트가 있었다.

“…….”

말 한 마디 없이 붉은 안광을 빛내며 그롬을 노려보는 두 검은 기사들.

“크아아아!”

그롬은 격하게 몸부림을 치며 팔을 휘둘렀고, 대검과 함께 데스 나이트들을 떨쳐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또 다른 대검 하나가 녀석의 등 뒤를 깊숙이 관통했고.

다른 쪽에선 핼버드가 휘둘러지며 기껏 재생된 팔을 또다시 잘라 내었다.

무려 다섯의 데스 나이트가 한 번에 힘을 합쳐 합공을 가하자, 맥을 못 추는 녀석.

마지막으로 핼버드가 휘둘러지며 단숨에 그롬의 머리를 베어 버렸다.

쿠우우웅!

커다란 서리 트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우, 우어어…….”

우두머리인 그롬이 죽어 버리자, 동요하는 서리 트롤들.

데스 나이트들은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고, 직접 앞장서서 놈들을 베어 나가기 시작했다.

전장은 다시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바뀌었고, 남은 트롤들은 한 놈도 빠짐없이 처참하게 몰살당했다.

파스스.

트롤들의 시체로 한가득 쌓인 전장.

이것으로 협곡 중심부에 있던 서리 트롤의 영역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

싸움이 모두 끝나자 데스 나이트들은 한데 모여 서로를 마주했다.

데스 나이트는 그 자체로 굉장히 강력한 전력이었지만, 개체별로 지니고 있는 지능도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

악령 병사의 경우, 주어진 명령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편이었으나 칼라일과 완전히 같은 종족 계열인 데스 나이트들은 달랐다.

성현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알아서 지리를 파악하고, 진격로까지 척척 나눠 가며 진군할 정도로 머리를 쓸 줄 알았다.

심지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아 의사소통까지 하며 능동적으로 결정을 도출해 내었다.

칼라일이 마족도 아니면서 A랭크의 소환수 등급을 가지고 있었던 건 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인간의 말을 못 할 뿐이지, 거의 사람이나 마족과 비슷해 보이는 높은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었다.

“…….”

눈빛을 주고받던 데스 나이트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지체하지 않고서 진격을 해 나갈 예정이었지만,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이상 성현이 이 시체를 회수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연락을 보낸 사이, 그들은 악령 병사를 포함한 인원 일부가 흩어져 주변 지역 몇 곳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협곡 사이에 숨겨져 있을 자원들을 미리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군단은 무작정 몬스터를 처치하기만 하며 진군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이 매장된 각 거점들을 빠르게 손에 넣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곳 칼날 협곡 지역엔 바깥에선 찾아보기 힘든 희귀 광물 자원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매장되어 있었고.

각 지역의 자원들을 파악해 두라는 성현의 명을 따른 것이었다.

“…….”

그러던 중 주변을 돌아다니던 데스 나이트 한 기가 작은 동굴의 앞에 멈춰 섰다.

협곡의 가파른 빙하 절벽 아래에 감춰져 있던 입구.

어딘가 수상쩍어 보이는 그 모습에 녀석은 안으로 직접 들어가 확인해 보려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파지지직!

하지만 발을 안으로 들인 순간.

강한 스파크가 튀며 거부 반응이 나타났고, 놀란 데스 나이트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

[‘수호자의 성소’를 발견하였습니다.]

[주의 - 몬스터의 출입이 제한된 장소입니다!]

“……?”

데스 나이트는 멍하니 동굴의 입구를 바라봤다.

자신들은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장소.

무언가 이질적인 기운을 한가득 머금고 있는 입구였고, 잠시 고민하던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선 주군의 힘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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