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백귀야행 (7)
S랭크 보스 몬스터인 칼라일의 처치.
그리고 던전에 위치한 마력 기둥을 파괴하고 결계 안에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
이 두 가지 내용의 퀘스트를 동시에 받았던 성현이다.
그중 성현이 더욱 초점을 두었던 목표는 보스가 아닌 마력 기둥을 먼저 파괴하는 것이었다.
물론 똑같은 생김새의 퀘스트 마커 두 개가 둥둥 떠 있는 탓에, 어느 쪽이 마력 기둥을 가리키는 것인지 몰라 확신할 수 없었지만.
퀘스트 마커를 달고 있는 칼라일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이상,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바닥이 무너지고 아래의 숨겨진 공간으로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서도.
성현은 정신을 놓지 않고 퀘스트 마커가 떠 있는 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우르르 무너져 내린 기둥의 파편들.
마력 기둥은 그의 검에 반 토막이 났고, 품고 있던 마력을 잃은 채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말았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칼라일조차 손쓸 새가 없었다.
쿠구구궁!
“됐다!”
여기까지 전해져 오는 진동에 성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력을 공급할 장치가 사라져 버렸으니, 결계가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성현은 흠칫했다.
‘이런, 잔뜩 화가 났네…….’
계획은 보기 좋게 성공했지만.
당장 그의 앞에 있는 큰 문젯거리가 있었다.
쿠웅!
분노한 칼라일이 살기를 내뿜으며 성현을 죽여 버리려고 성큼 다가왔다.
바닥이 무너지며 떨어진 공간 안에 단둘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
사실 그의 계획에 있던 중대한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마력 기둥을 파괴해 사람들을 구출한다고 해도, 정작 성현 자신은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이만한 규모의 결계는 마력 기둥을 부숴도 즉시 파괴되지는 않아, 몇 분간 지체되는 시간이 있었다.
거기다 결계 바깥에 대기하고 있을 S급 헌터가 중심부의 지하에 있는 이 던전까지 찾아오는 데에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한데 성현은 S급 던전의 심장부까지 들어와 보스 몬스터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던전의 보스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상, 결계를 운 좋게 부순다고 해도 돌아오는 건 죽음뿐이었고, 성현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이었어. 그리고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확실하진 않지만, 한 가지 도박수를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성공만 한다면 시민들만큼은 확실히 살릴 수 있던 수였고, 그저 손놓고 앉아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파괴하여 보상이 주어집니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왔다.’
성현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기 시작한 시스템 메시지의 향연.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얻은 대량의 경험치 덕에 10레벨이 한꺼번에 상승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상황을 뒤집을 수도 있을, 성현이 건 도박수는 그다음에 적혀 있던 또 다른 보상의 내용이었다.
[퀘스트의 보상으로 새로운 특성이 개방됩니다!]
[S급 특성, ‘백귀야행’을 획득하였습니다!]
“…됐다.”
성현의 미소와 함께, 그의 세 번째 특성이 개화했다.
* * *
“젠장! 네깟 놈들에게 시간을 끌 수는……!”
데스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는 이즈나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무너져 내린 저 바닥의 아래로, 성현과 S랭크의 보스 몬스터인 칼라일만이 빠져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도우러 가야 했기에 여기 붙들려 있을 시간이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성현은 그림자의 힘으로 그녀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성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즈나, 내 말 들려?’
‘주, 주군? 이게 어떻게?’
당황한 이즈나가 흠칫했다.
혹시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성현이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의 의지만으로 대화가 통하는 기묘한 감각.
하지만 이건 성현이 얻은 새로운 특성의 효과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날 좀 도와줘야겠다.’
‘물론입니다, 주군! 당장 곁으로 향하겠습니다.’
이즈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데스 나이트 놈들이 여전히 끈질기게 달라붙고 있었지만, 자신이 산산조각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몸을 날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니, 직접 오지는 않아도 돼.’
‘예……?’
‘힘만 빌려 간다.’
후우우웅!
이즈나의 몸에서 그림자의 일부가 빠져나갔다.
성현은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과 함께 주었던 그림자의 일부를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려받았다.
동시에 그의 앞에 나타난 메시지들.
[S급 특성, ‘백귀야행’이 발동됩니다!]
[군주, 이즈나의 특성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고귀한 피]
[우월한 혈통의 피는 강력한 힘의 바탕입니다.]
성현의 몸 주위를 감돌기 시작한 붉은 기운.
강인한 힘이 그의 온몸에 실렸고, 성현은 힘껏 검을 휘둘렀다.
쩌엉!
성현은 날아들던 칼라일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하는 데만 급급해 달아나고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즈나가 지니고 있던 고귀한 피 특성이 적용되며, 모든 신체적 능력이 큰 폭으로 강화되었고 움직임이 빨라졌다.
카아앙!
되레 놈의 공격을 쳐 내며 역공을 가하는 성현.
갑작스레 급변한 그의 움직임에 칼라일마저도 순간 당황해 주춤거렸고, 그 틈에 맹공을 퍼부으며 녀석에게 상처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놈도 계속해서 당해 주지만은 않았다.
키릭!
다시 정신을 집중한 칼라일은 자신의 온 힘을 실어 성현에게 검을 찔러 넣었다.
매우 빠른 속도로 들어오는 위력적인 일격.
[군주, 자고스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망령의 혼’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후우우웅!
하지만 성현의 형체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녹색 잔영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 그의 모습.
“이쪽이다.”
“……!”
칼라일의 등 뒤편에서 나타난 성현의 모습.
잿빛 땅에서 뼈의 왕 자고스가 보였던 놀랍도록 빠른 움직임 그대로였다.
군주들에게 주었던 그림자의 일부를 다시 돌려받음으로써 해당 소환수의 특성을 자신의 것으로 빌려 올 수 있는 새로운 특성.
개화한 세 번째 특성과 함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콰드드득!
휘둘러진 성현의 검이 녀석의 갑주를 갈랐다.
어지간한 충격 따위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매우 단단한 갑옷이었지만, 성현의 검 앞에서는 무의미한 이야기일 뿐.
깊숙이 베여 너덜너덜해진 가슴팍의 칼라일이 비틀거렸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지. 슬슬 결계가 깨져서 헌터들이 넘어올 시간이거든.”
[군주, 이즈나의 그림자를 흡수하였습니다!]
[‘마력의 심장’ 특성이 활성화됩니다!]
한 번에 흡수할 수 있는 휘하 군주의 그림자는 하나뿐.
하지만 성현은 그림자를 흡수한 순간부턴 마치 자신의 특성인 것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특성을 빌려 오는 게 전부가 아닌 개념이었다.
자신의 등 뒤를 따르는 수많은 권속들.
이미 그림자 속에서 그를 섬기는 충실한 부하들이었지만, 서로가 긴밀하게 이어지며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게 느껴졌다.
츠츠츠츠츳!
성현의 두 손에 강력한 마력이 휘감겼다.
마력의 심장 특성을 가져오자 그의 마력이 급격하게 늘어남은 물론이고,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까지도 함께 넘어왔다.
단순히 되살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권속들의 힘마저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 지배할 수 있는, 진정한 그림자의 주인이 된 것이다.
‘끝이다!’
성현이 만들어 낸 거대한 불꽃이 녀석에게로 쏟아졌고, 눈부신 섬광 속으로 칼라일의 모습이 파묻혔다.
콰아아아앙!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모든 스탯이 25만큼 증가합니다!]
[칭호, ‘경지에 도달한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모든 주요 스탯에 5%의 추가 보정이 적용됩니다.]
“…해냈다.”
축 늘어진 칼라일의 시체 앞에서 성현은 두 다리를 짚었다.
쏟아진 엄청난 경험치 보상에 레벨업 메시지가 그의 눈앞을 가렸다.
두 개의 퀘스트를 깨고, S랭크 보스인 칼라일을 처치한 것까지.
106레벨에서 단숨에 154레벨을 돌파하며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일단 이것부터.’
기쁨을 잠시 미루고 성현은 널브러진 칼라일의 시체에 다가갔다.
아직 위쪽에서의 싸움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고, 성현은 지체 없이 녀석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흘려보냈다.
츠츠츠츳!
[암흑 기사 ‘칼라일’(A)]
[등급 - 군주]
[레벨 - 151]
[보스의 위압감], [기사도], [굳건한 결의]
그림자를 받아들인 칼라일이 철컹 소리와 함께 일어섰다.
성현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맹세하는 녀석.
녀석의 상태창을 들여다보니 역시나 압도적인 레벨을 가지고 있었고, 보통 던전이 아니었는지 군주 등급을 지니고 있었다.
‘소환수 등급은 A로군. 하긴 마족도 아닌데 승급을 거치지 않는 이상 S등급은 불가능하겠지.’
이름 뒤에 붙은 소환수 등급이야 실제 던전상의 등급과는 별개의 수치였으니, S급 보스인 녀석이 A로 표기되어 있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직접적인 강함의 척도는 레벨이었고.
같은 레벨 안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지능과 잠재력에 관련되어 있는 등급이었으니까.
오히려 마족이 아닌 것치고는 꽤 똑똑한 녀석들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이제 어서 나가 봐야겠지.’
녀석과 함께 성현은 지하 공간 밖으로 올라갔고, 격렬하던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주군, 해내셨군요!”
“크르륵!”
군주들이 그의 귀환을 반겨 주었다.
칼라일이 성현의 수하가 되며 전투 중이던 데스 나이트와 악령 병사 군단은 모두 성현의 휘하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다만 던전의 다른 몬스터들까지 다 부하가 되진 않았다.
같은 계열의 몬스터도 아니고, 이즈나의 아래에 있던 가고일이나 데스 하운드처럼 직속 권속도 아닌 탓이었다.
하지만 S급의 보스 몬스터, 수십의 데스 나이트, 수천의 악령 병사 군단까지 핵심적인 전력을 모두 빨아들였다.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이 던전의 모든 걸 다 얻어 간 셈이나 다름없었다.
“다들 수고했어. 이제 돌아가자. 지금쯤이면 결계가 풀렸을 거야.”
성현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무려 S급 던전이 발생한 대형 사건이다.
지금 상황에 사태를 수습하러 온 청성의 헌터들과 마주치기라도 했다간 굉장히 곤란해졌다.
“윽?”
하지만 그 순간, 움직이려던 성현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마치 온몸의 감각이 마비된 듯한 느낌.
그가 삼중으로 마셔 뒀던 비약의 효과가 끝난 것이었다.
“주, 주군?”
“이… 이런 미친…….”
털썩!
성현은 꼼짝없이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 * *
청성의 최고 간부, 천태성.
이름만 대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S급 최고위 헌터였다.
한데 그런 그가 대참사가 벌어졌다는 소식에 달려왔으나,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그를 반겼다.
“S급 던전이라길래 한참은 쓸려 나간 뒤에 열릴 줄 알았는데… 갑자기 결계가 멋대로 풀리질 않나, 남은 건 이미 다 먹고 난 찌꺼기뿐이군.”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만이 남아 있는 던전의 중심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보스에, 이미 파괴된 마력 기둥만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A랭크 헌터인 황석일을 비롯한 청성의 헌터들은 팀 단위로 전멸.
수많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 군단이 나타나 그들을 구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을 이끌고 있던 가면을 쓴 네크로맨서의 존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목격한 사실이었다.
즉, 최근 길드를 공격했던 그 네크로맨서 녀석이 이곳에도 나타났던 것이다.
‘내가 왔을 땐 이미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뒤였으니 추적은 무리겠지. 이번 사건을 숨기는 것도 불가능하고.’
헌터 한 명도 아닌, 도심을 뒤덮은 수준의 군단이다.
이 정도의 광경이라면 아무리 청성이라고 해도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길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네크로맨서 중 S급 헌터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만한 사건으로 데뷔한 녀석은 흔치 않은데… 한동안 전국이 떠들썩하겠어.’
새로운 S급 헌터의 탄생.
그것이 가져올 파장에 천태성은 골치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