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집 아래 경험치 800 지하던전-45화 (45/202)

45화 백귀야행 (6)

쿠구구궁!

연달아 폭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결계의 중심부.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던전의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의 소환수 군단이 놈들과 맞닥뜨리며 도시로 나가지 못하게 저지하고 있었다.

키이이익!

싸움 자체는 성현의 군단이 우위를 점했다.

자기 보스의 레벨을 그대로 따라가는 그림자 군단이었기에 어지간한 일반 몬스터의 수준을 가뿐히 넘어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예 놈들의 입구를 완전히 틀어막으려 했지만, 워낙 많은 숫자가 쏟아져 나오는 탓에 이 이상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끝이 없는 교착상태.

점점 던전에서 나타나는 녀석들의 수준이 높아졌고, 군단 쪽에도 손실이 점차 커져 갔다.

덕분에 온통 폐허로 변한 결계 중심부엔 잔해 더미와 몬스터들이 싸우고 난 시체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하늘 위에서 우렁찬 포효가 들려왔다.

콰아아아!

비룡 안카라스의 화염 브레스가 전장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몬스터 수백 마리가 안카라스의 불길에 타 죽었고, 놈들의 진형 일부가 붕괴되었다.

저벅저벅.

빽빽이 서 있는 그림자 군단 사이로 성현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등 뒤엔 곧바로 따라붙은 보스급 소환수들이 있었다.

“크아아아아!”

“키이이익!”

앞장선 게아드의 포효에 고블린들이 힘차게 전진했다.

군주가 선두에 서자, 사기가 고양된 녀석들은 일제히 무기를 치켜들고는 적들에게 뛰어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보스 몬스터인 게아드가 뿜어내는 위압감에 앞을 막는 적들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움츠러들었다.

“우리도 질 수 없지.”

옆을 본 이즈나가 휙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녀의 권속인 뱀파이어와 가고일들이 거침없이 던전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보스와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 계열의 수하를 군주들이 제대로 통솔하기 시작하자, 움직임과 기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크아아아!”

고작 성현과 일곱의 보스급 소환수들이 합류했을 뿐이었지만, 그 영향력은 단순히 강자 몇 명이 늘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놈들에게 압도적인 전력의 격차를 선사하며 지지부진하던 상황을 단숨에 뒤집어 버렸다.

쩌억!

성현은 검을 휘둘러 커다란 골렘을 반으로 베어 냈다.

나아가는 속도가 늦춰지지 않게 자신 역시 군단의 선두에 서며 적들을 베어 갈랐다.

“입구에 거의 다 와 가는군. 이대로 던전에 진입한다.”

처음의 목표라면 던전의 입구를 틀어막아 공격대가 던전 공략에 나선 사이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른 이들의 도움 따위 기대할 수가 없었다.

성현의 힘만으로 S급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며, 던전의 결계를 파괴해야 했다.

누가 봐도 죽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임무였다.

하지만 성현에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콰직!

구울의 머리를 으깨 버린 성현은 던전의 입구에 다가섰다.

도심의 대로 한가운데에 싱크홀처럼 뻥 뚫려 있는 커다란 구멍.

구덩이에서 수많은 몬스터들이 우르르 올라오고 있었지만, 무심하게 바라보던 성현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안카라스.”

콰아아아아!

성현이 손짓하자 안카라스는 공중에서 화염 숨결을 내뱉었다.

강력한 불길이 구덩이를 가득 메웠고, 그 아래에서 엄청난 비명 소리가 가득 올라왔다.

“키에에엑!”

올라오고 있던 몬스터들을 통째로 구워 버린 안카라스의 맹화.

거의 불지옥이나 다름없는 장면이 연출되고 탄내가 지독하게 올라왔다.

“좋아. 깔끔하게 청소됐네.”

밑을 확인한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아래로 몸을 던졌다.

쿠웅!

가장 먼저 구덩이 아래로 내려서며 드넓은 던전 안으로 진입한 성현.

그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눈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올라오고 있던 녀석들이야 모두 타 죽어 버렸지만, 지하에서 쏟아져 나오는 놈들의 무리는 끊이질 않았다.

“키이이익!”

여전히 바글거리는 몬스터들의 무리는 성현의 몸을 당장에라도 찢어발기려는 듯 달려들었다.

하지만 곧장 따라온 성현의 군주와 수하들이 구덩이 아래로 쏟아지며 녀석들과 충돌했다.

콰아앙!

달려드는 괴수들을 모조리 핏덩이로 만들어 버리며 진격하는 성현의 그림자 군단.

거대한 통로를 수하들로 가득 채우며 순식간에 뚫고 나갔다.

“이대로 밀고 나간다. 다들 잘 따라와.”

“크르르륵!”

성현이 가장 앞에서 군단을 이끌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중대형 규모의 던전이었고, 결코 작은 규모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사방으로 나뉜 갈림길들이 곳곳에 뻗어져 있었고, 크기에 맞게 제법 복잡한 구조였다.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숫자도 그렇고, 정석대로 공략한다면 공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처음 나타난 던전을 사전 정찰 과정도 없이 헤매지 않고 다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수고를 들일 필요가 없지.’

지금 성현의 눈에는 목표에 대한 퀘스트 마커가 보였다.

던전 안의 모든 구조가 훤히 눈에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퀘스트 마커가 있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한 방향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수년간 셀 수도 없이 많은 던전들을 봐 온 성현으로선 방향만으로도 길을 찾기엔 충분했다.

‘던전 안에 있을 다른 잡몬스터들은 건드릴 필요 없어. 결계를 파괴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들이 들어선 진격로와는 다른, 여러 샛길들을 통해 몬스터들이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려 들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성현의 수하들이 입구 부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의 명령이 없는 한, 지금 정도 수준의 몬스터로는 단 한 마리도 이곳에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성현은 앞을 가로막는 몬스터들을 가차 없이 짓뭉개 가며 던전 안 깊숙이 들어갔다.

그러자 조금 다른 풍경과 함께 커다란 문이 그를 막아섰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군.’

잠시 멈춰 선 성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닿기까지 거대한 동굴의 통로가 이어졌던 것과 달리, 이곳은 벽과 바닥부터 인위적인 건축물 형식으로 지어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지하 유적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렇게 같은 던전 안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는 경우라면, 높은 확률로 이 던전의 중심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꽤나 튼튼해 보이지만… 나한텐 상관없는 이야기지.’

콰아아앙!

성현은 곧바로 자신의 검에 그림자를 실어 휘둘렀고, 커다란 문을 통째로 갈라 버렸다.

쪼개진 문이 우르르 무너지자, 그 안으로 들어섰다.

드넓은 전당이 한참을 이어져 있는 것이, 마치 지하라는 걸 순간 잊게 할 만큼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넓은 공간엔 이미 충분히 많은 존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적들의 본대인 것 같군요.”

척척척!

갑주가 철컥이는 소리들이 일사불란하게 들려왔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수천의 악령 병사 군단.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언데드들이 그들에게로 전진해 오고 있었다.

여태 상대해 온 몬스터들과는 풍기는 분위기부터 다른 게 이번 던전의 주력 계열임이 확실해 보였다.

“놈들의 너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퀘스트 마커가 가리키는 방향도 똑같고. 그대로 돌파한다.”

“알겠습니다. 다들 위치로!”

쿠웅!

이즈나의 외침에 군단의 정예 병력들이 앞장섰다.

놈들의 본대를 상대하게 된 만큼, 이쪽에서도 전력을 맞춰 줘야 했다.

해골 기사, 홉고블린, 뱀파이어 등.

같은 보스의 휘하에서도 정예급의 몬스터들을 우선적으로 추린 구성이었고, 마법까지 부여되어 있는 레어 메탈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콰과과광!

서로를 향해 돌진한 두 군단이 맞붙었다.

강렬한 마법이 터져 나오고, 맞붙은 몬스터들 간의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일반 몬스터임에도 던전의 등급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것인지, 놈들의 전력은 아주 강력했다.

놈들과의 전투에 성현의 수하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번 그림자로 되살아난 수하는 다시 되살릴 수 없으니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감수해야 했고, 성현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키에에엑!”

그의 바로 옆에서 뛰쳐나가며 악령 병사 수십 마리를 단숨에 날려 버리는 철갑 거미 여왕 니아드라의 모습.

성현과 보스들을 중심으로 전선을 붕괴시키며 거침없이 밀고 들어갔다.

일반 수하들의 전력은 놈들에게 밀리고 있다곤 해도, 보스급 소환수들이 전장을 휘저으며 워낙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니 점차 승기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섬뜩한 기운이 성현의 감각에 감지되었다.

콰아아앙!

“…드디어 나타나셨군.”

공격을 피해 낸 성현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존재를 바라보았다.

철컥.

칠흑 같은 갑주를 입고 기다란 장검을 쥐고 있는 녀석.

암흑 기사 칼라일, S랭크의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느껴지는 기운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갑작스런 녀석의 등장에 다른 군주들이 성현에게 다가오려 했지만, 상황이 뒤바뀐 것은 다른 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아앙!

“이놈들은…….”

날아든 칼날에 이즈나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다,

데스 나이트 수십여 마리가 칼라일과 함께 전장에 난입했다.

악령 병사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상위 전력.

촤아악!

전장을 휘젓는 데스 나이트들은 일반 몬스터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매우 강력했다.

성현의 보스급 소환수들은 두세 마리씩 덤벼드는 놈들과 맞붙어 싸우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발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말없이 성현을 향해 검을 치켜든 칼라일.

순식간에 다가오는 녀석의 맹공에 성현은 급히 물러나야만 했다.

콰아아앙!

‘미친……!’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

무려 S랭크의 보스 몬스터답게, 검을 휘두르는 것뿐인데도 그 힘이 엄청나 폭음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덕분에 주변에 있던 성현의 수하들까지 녀석의 검격에 함께 휩쓸렸다.

일반 수하들의 수준으론 그를 도와 끼어들려 해 봤자 칼라일의 앞에 분쇄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젠장, 상대가 안 되잖아……!’

집요하게 성현을 쫓는 녀석.

다른 수하들과 함께 있는데도 그만을 노리는 걸로 봐선 성현이 이 군단의 대장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성현의 입장에서는 반격 따위는 진즉에 포기하고 그저 살아남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주군!”

카앙!

성현이 위험하다는 걸 본 이즈나가 급히 다가서려 했지만, 그녀의 앞을 데스 나이트가 막아섰다.

세 마리의 데스 나이트가 동시에 달려드니 그녀라고 해도 쉽게 떨쳐 낼 수가 없었다.

거대한 전쟁터가 되어 버린 공간 안에서 바닥을 구르던 성현은 생각을 짜냈다.

‘이만한 전력 차라면 쓰러뜨리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럴 가능성도 미리 계산은 다 해 뒀어.’

S랭크 던전에 아무 생각도 없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적을 감당할 수 없다면, 전환할 플랜 B를 가지고 있었다.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던전의 마력 기둥을 파괴하는 것.

물론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고, 딱히 거창한 계획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보스가 도사리고 있는 공간에 마력 기둥도 놓여 있었다.

보스 몬스터와 수하들의 포화를 뚫어 내고서 마력 기둥을 파괴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다 지금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 공간 안에는 마력 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마력 기둥이 던전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마력 기둥을 노리고 보스가 있는 곳까지 찾아온 경우라면 완전히 낭패가 아닐 수 없는 상황.

‘하지만 덕분에 어느 쪽이 내 진짜 목표인지 확실히 알았다.’

던전에 진입하기 전 성현이 받은 퀘스트는 두 가지.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고 있던 퀘스트 마커 역시 두 개였다.

퀘스트 마커 중 하나는 자신을 향해 매섭게 달려들고 있는 칼라일의 머리 위에 둥둥 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한참을 뒤로 물러나기만 하던 성현의 발밑에 존재했다.

콰직!

바닥을 향해 힘껏 검을 내리찍은 성현.

견고하게만 보였던 바닥에 커다란 금이 쩌저적 갈라졌다.

“……!”

“방심했지?”

당황한 듯한 녀석의 낌새에 성현의 입가가 올라갔다.

성현과 칼라일 모두 급격히 기울어지는 바닥 때문에 휘청였고, 곧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이 움푹 꺼지며 밑으로 무너져 내렸다.

0